창세기 1장에서 3장까지 등장하는 모든 것이 에덴동산 밖에서
씨 (Seed) 의 역할을 하는 것이 패턴인것 처럼 또 하나의 패턴은
먼저 온 것과 나중 온 것이 합쳐서 하나가 되는 패턴이다
그렇게 보지 않고 먼저 온 것은 악한 것이고 나중 온것은 선한것이라고
보는 대조적 관계로 보게되면 성경이 말하는 구속의 경륜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출발하고 하나님에게서 완성이 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성경이 어디서 왔는지도 말하지 않는 죄와 악의 기원이 사단이라고 하면서
사단을 신격화 하게 되고 그 신격화된 사단과 하나님 사이에서 일어나는
선악의 대쟁투로 몰아가게 된다
창조의 처음 상태는 흙으로 나타나는 혼돈과 공허 그리고 흑암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하늘에서 비롯하는 빛이 온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는 어두움이 먼저이고 밝음이 나중이라고
알려주지만 그 둘이 합쳐서 하루라고 하는 시간의 매듭이 생겨나고
먼저 온 것을 나중 온것이 채워가는 패턴으로 여섯날이 흐른다
그리고 일곱이라고 하는 날 속에서
어섯은 하나님의 노동이라고 하는 창조가 먼저오고 일곱은
하나님의 쉼이라고 하는 안식이 따라온다
여섯과 그 다음 하나가 합쳐서 일곱이라고 하는 시간의 두번째
매듭을 만들어 가고
식물과 동물, 동물과 사람, 남자와 여자 그리고 노동과 쉼이라고 하는
불가분의 관계를 패턴으로 끌고 간다
이 패턴은 에덴동산 밖에서도 여전히 계속된다
가인과 아벨 (순종과 불순종의 제사)
홍수와 무지개 (심판과 긍휼)
이스마엘과 이삭 (시내산의 아들과 모리야의 아들)
에서와 야곱 (가나안의 아비와 가나안의 정복자)
모세와 여호수아 (먼저 온 장사하는 성소와 나중에 오는 기도하는 성소)
엘리야와 엘리사 (먼저 온 선지자와 나중 온 선지자)
침례요한과 예수 (먼저 온 율법과 선지자 그리고 나중 온 은혜)
옛언약 (구약의 유대인)과 새언약 (신약의 이방인)
레아와 라헬 (광야교회와 가나안의 교회)
빛과 참빛 (창세기에서 말씀으로 지어진 빛과 요한복음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나타나는 은혜와 생명의 빛)
그러나 먼저 온 것은 나중 온 것을 가리키는 것 즉
표상과 실상의 관계이어야 하는데 거의 모든 면에서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빛이 왔으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실상이 왔으되 표상이 실상을 깨닫지 못하더라"
"아들이 왔는데 종들이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복음이 왔는데 율법이 복음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계시가 말하는 장본인이 왔는데 계시가 알아보지 못하더라"
"나중 빛이 왔는데 처음빛이 알아보지 못하더라"
처음빛 (어두움)이 누구인가?
절대로 애급이 아니다
이스라엘이다
율법과 선지자이다
구원이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데
안에서 알아보지 못하고 부요함에 취해있는 그런 꼴이다
요한복음은 아니 사도 요한은 그의 책 요한복음과 요한 계시록에서
이 패턴을 말하는 것이지 선과 악의 대쟁투를 말하지 않는다
뱀도 하나님이 만들었고
사단도 피조물이며
사단을 대표하는 애급의 바로를 강퍅하게 하신분도 하나님이시며
사단의 심부름꾼이던 유다에게 "너가 하고자 하는 일을 지금 하라"고
하시는 분도 하나님의 아들이다
내가 만약에
성경 읽어주는 사람 (교회) 이라는 movement 를 세운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내가 아니다
그렇다고 먼저 온것과 나중 온 것으로 나누어서 가르치는 요한도
아니다
"이 성경이 곧 나에게 대하여 말하는도다"
그리스도는 성경읽어주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성경 하나로 우리가 교회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길을 잃은
율법이요, 선지자요, 백성이요 교회이다
먼저 온 것과 나중 온것이 비록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그 둘이 하나가 되어 구속의 청사진을 완성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에 속한 것인가는 치명적 질문이다
우리는 먼저 온 것에 속한자인가
아니면
나중 온 것에 속한자들인가
반드시 성경을 읽어주는 예수에게 물어야 한다
그럴때에 "오직 예수"는 성립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