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113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속지 않는 자’가 가장 잘 속는다

 

 

[세계의 창] 슬라보이 지제크ㅣ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오늘날은 엄숙한 공적 공간, 자크 라캉식으로 말하면 ‘대타자’의 권위가 점차 쇠퇴하고 있는 이른바 “탈진실의 시대”다. 백신 접종을 인권 침해라고 주장하며 거부하는 이들을 보면 향수 어린 마음으로 레닌주의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떠올리게 된다. 민주적 사회주의에서는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지만, 결정이 내려지면 모두 그에 복종해야 했다. 이는 계몽에 대한 칸트의 정식과 일맥상통한다. ‘복종하지 말고, 사고하라!’가 아니라, 그 반대로 ‘자유롭게 사고하고, 그 사고를 자유롭게 말하되, 결정에 복종하라!’의 태도다.

 

우리는 여기서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결속이 맺는 관계를 볼 수 있다. 백신을 접종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지만, 백신 접종을 거부한 개인은 실질적으로는 타인의 자유뿐 아니라 자신의 자유까지 제한하고 만다. 백신을 맞아야만 다른 사람과 일상적인 방식으로 어울릴 수 있는 자유를 훨씬 높은 정도로 행사할 수 있다. 이처럼 자유가 실질적인 자유가 되려면 규칙의 규제를 받는 사회적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거리를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은 다른 이들이 문명화된 방식으로 행동하고, 나를 공격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처벌받을 것이라는 합리적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규칙을 바꿔야 하는 시기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규칙의 영역이 있기에 우리가 자유를 행사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헤겔은 추상적 자유와 구체적 자유의 차이를 이야기했다. 구체적 자유가 아닌 추상적 자유는 실제적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축소하며 자유가 아닌 그 무엇으로 변한다. 소통의 자유를 생각해 보자. 타인과 말하고 소통할 자유를 누리고자 할 때, 정해져 있는 언어의 규칙에 복종하지 않고는 타인과 소통할 수 없다. 언어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 편견의 산물이며, 특정한 사고를 표현하는 데는 부적절한 한계를 지니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고가 언제나 언어 안에서 언어와 함께 발생하는 한, 진정으로 사고하고 타인과 소통할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언어라는 규칙에 복종해야 한다.

 

공적 공간의 붕괴가 가장 심각한 곳은 미국이다. 유럽에서는 건물의 지반이 되는 층을 0층으로 셈하고, 그 위층을 1층이라고 부르지만, 미국에서는 1층부터 세기 시작한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유럽에서는 언제나 이미 주어져 있는 지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한다. 반면, 근대 이전의 역사적 전통이 부재하는 미국에서는 과거를 삭제한 채 모든 것을 자신들이 직접 제정한 자유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두 0부터 세는 법을 배우면 문제가 해결될까? 문제는 0도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재된 적대와 모순이 가로지르는 이념적 헤게모니의 공유 공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지반을 무시하면 더 강력한 형태의 대타자가 등장하는데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혼동할 수 있다.

 

어떤 라캉주의 지식인들은 ‘가짜 뉴스’의 시대에는 대타자가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대타자가 더 강력한 다른 형태로 존재하게 된 것은 아닐까? 과거에는 외설의 공간과 공적 공간이 나뉘었다. 그리고 외설의 공간과 구분되는 엄숙한 공적 공간이 대타자로 기능했다. 하지만 이제 공적 공간은 외설의 공간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아니, 가짜 뉴스와 루머와 음모이론이 유통되고 교환되는 바로 그 외설의 공간이 지금의 ‘공적’ 영역이 되었고, 새로운 대타자가 되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놀라운 사실이 있다. 과거에는 뻔뻔한 공적 외설이 전복으로 기능하며, 주인의 지배를 약화시켰다. 대안 우파들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외설이 공적 영역에서 폭발하고 있는 오늘날, 외설은 주인의 지배가 약화되고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형상이 의미하는 것은 다시 강력하게 등장하고 있는 주인의 지배다.

 

번역 김박수연

출처: 한겨레신문 논단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3686.html#csidx8ae93897b11703a8e31956a1bab473f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오케이, 오늘부터 (2014년 12월 1일) 달라지는 이 누리. 김원일 2014.12.01 12164
공지 게시물 올리실 때 유의사항 admin 2013.04.07 41454
공지 스팸 글과 스팸 회원 등록 차단 admin 2013.04.07 57627
공지 필명에 관한 안내 admin 2010.12.05 88819
1734 칼치를 함께 먹은 집사의 장노 안수를 생각한다 2 fallbaram. 2025.02.04 80
1733 기쁜소식 교회 목사의 기도? fallbaram. 2025.02.03 31
1732 나중 온것은 먼저 온 것보다 얼마나 더 좋은것일까? fallbaram. 2025.01.25 163
1731 시펀 23편 일본어 성경 3 무실 2025.01.17 354
1730 목적과 목적지가 바뀌면 6 fallbaram. 2025.01.17 287
1729 합당한 예배 형식 2 들꽃 2025.01.16 158
1728 광야의 만나도 거듭나야 한다고? fallbaram. 2025.01.14 121
1727 행함의 예배에서 믿음의 예배로 거듭나야 2 fallbaram. 2025.01.13 140
1726 거듭나야 할 예배 (남자의 예배에서 여자의 예배로) 1 fallbaram. 2025.01.12 129
1725 니고데모에게 설명한 그날밤의 "거듭남"이란 2 fallbaram. 2025.01.11 153
1724 전에 중국관련 글 하나 썼는데 김균 2025.01.09 133
1723 먼저 온 것은 절대로 "마침"이 아니다 6 fallbaram. 2025.01.06 233
1722 유한한 것과 영원한 것의 차이 fallbaram. 2025.01.06 169
1721 먼저 태어난 자와 나중 태어난 자의 성서적 운명? fallbaram. 2025.01.04 115
1720 사도요한과 사도바울의 간곡한 부탁? 1 fallbaram. 2025.01.04 170
1719 겸손하기 위하여 겸손할 필요가 있을까? 2 fallbaram. 2025.01.03 131
1718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fallbaram. 2024.12.31 87
1717 과정책 겉 표지 2 들꽃 2024.12.28 271
1716 이 땅이 어디라고 감히 2 김균 2024.12.25 187
1715 공정과 상식이 춤 추는 곳 3 김균 2024.12.25 174
1714 민초의 사랑방이 되려나 2 fallbaram. 2024.12.22 196
1713 소갈증 3 김균 2024.12.20 172
1712 우격다짐 7 fallbaram. 2024.12.20 323
1711 우리교회의 선지자 김균 2024.12.19 96
1710 성경 전반에 걸쳐서 이렇게 훌륭한 관점이 흐를수 있다면 알마나 좋을까 2 fallbaram. 2024.12.15 230
1709 김대성 목사 -- 최삼경 목사 70이레 지상 논쟁-2 (수정 추가) 달타냥 2024.12.14 265
1708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의 의미 2 fallbaram. 2024.12.13 201
1707 김대성 목사---최삼경 목사 70이레 해석 지상논쟁 달타냥 2024.12.12 354
1706 겨울 그리움의 끝에서 2 file 다알리아 2024.12.09 231
1705 예수는 길이요 ( 요 14:6) 1 들꽃 2024.12.05 217
1704 지옥의 자식 2 김균 2024.12.01 276
1703 다촛점 교회 3 fallbaram. 2024.11.29 388
1702 재림의 징조 1 김균 2024.11.28 202
1701 예수님은 왜 사팔이를 낫게하는 이적을 행하지 않으셨을까? 2 fallbaram. 2024.11.27 240
1700 등록이란 두 글자 3 김균 2024.11.22 232
1699 울고싶다는 영감님을 생각하며 fallbaram. 2024.11.21 179
1698 교회에 퍼 질고 앉아 1 김균 2024.11.21 210
1697 막달라 마리아 2 김균 2024.11.18 316
1696 우리 교회는 선지자가 계십니다 2 fallbaram. 2024.11.17 212
1695 이산가족을 만난 것 같은 fallbaram. 2024.11.14 238
1694 설교가 지겨우면 6 김균 2024.11.09 295
1693 다 늙은 몸! 3 fallbaram. 2024.11.07 320
1692 장가를 가더니 6 김균 2024.11.03 428
1691 오래된 기억 2 file 막내민초 2024.09.03 489
1690 지옥 가다가 돌아오다 2 김균 2024.06.23 1376
1689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2 김균 2024.06.23 821
1688 안식일 준수 3 들꽃 2024.06.22 726
1687 성경은 누구를 아들이라고 하는가 (1) fallbaram. 2024.06.19 521
1686 재림교인 되기 5 들꽃 2024.06.19 1175
1685 중세기의 신 이야기 7 김균 2024.06.18 849
1684 성경이 말하는 죄의 변천사 fallbaram. 2024.06.18 678
1683 계시록 13:11-18의 두 뿔의 양같은 짐승은 거짓 선지자인가, 소아시아의 고유 제국 숭배 현실인가, 미국인가 3 들꽃 2024.06.17 1636
1682 성경이 시작하고 성경이 끌고가는  살아있는 안식일의 변천사 1 fallbaram. 2024.06.16 797
1681 문자로 읽고 싶은 것은 문자로 읽고 해석이 필요한 것은 또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3 fallbaram. 2024.06.16 721
1680 자유 2 fallbaram. 2024.06.16 587
1679 들을 귀 있는자는 들으라 fallbaram. 2024.06.07 1148
1678 삼십팔년된 병자가 누구인가? 1 fallbaram. 2024.06.05 1153
1677 아주 간단한 질문 16 fallbaram. 2024.06.05 1675
1676 왜 오늘은 이리도 쓸쓸한가 7 fallbaram. 2024.06.04 1394
1675 "어깨넘어"로를 넘어야 할 우리 5 fallbaram. 2024.05.27 1194
1674 의학상식 fallbaram. 2024.05.27 964
1673 오늘은 야외예배를 가는 날 3 fallbaram. 2024.05.17 1204
1672 한국남자 서양남자 그리고 그 남자 3 fallbaram. 2024.05.05 1021
1671 감리교단의 동성애 목회자 허용 2 들꽃 2024.05.03 1165
1670 교단 사역역자에 대한 비난 들꽃 2024.04.30 699
1669 길이란 fallbaram. 2024.04.26 1216
1668 독서의 불편 3 들꽃 2024.04.24 1142
1667 안식일의 완성 fallbaram. 2024.04.24 1038
1666 배려와 권리 사이 2 fallbaram. 2024.04.18 684
1665 먼저 준 계명과 나중에 준 계명 fallbaram. 2024.04.17 1515
1664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 1 fallbaram. 2024.04.07 1052
1663 소문 3 fallbaram. 2024.03.31 1455
1662 일요일 쉼 법안 1 들꽃 2024.03.17 770
1661 행여 이 봄이 마지막이라고 해도 fallbaram. 2024.03.16 666
1660 "O" 목사 2 fallbaram. 2024.03.15 175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4 Next
/ 24

Copyright @ 2010 - 2025 Minchoquest.org. All rights reserved

Minchoquest.org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