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사는 문제- 흑사병-페스트

by 김균 posted Mar 27, 202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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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사는 문제- 흑사병-페스트

 

중국과 아시아 내륙에서 유래한 흑사병은

1347년 킵차크 군대가 크림에서 제노바 교역소를 포위하고,

페스트 환자의 시체들을 노포(弩砲)로 도시를 향해 쏘아보냄으로써

유럽인들에게 전파되었다. ....도시 내에서는 수도원이 가장 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당시의 문헌 연구에 따르면, 치사율은 지역에 따라

인구의 1/8~2/3 정도에 이르렀다.“(다음 백과)

 

조반니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에서는

3년간 포위했던 크림반도의 카파에서 흑사병으로 철수하면서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를

투석기에 달아서 던졌다고 한다

그 이후는 아시다시피 유럽은 흑사병으로 2400만 명 이상이 죽는 대 참사가 발생하고

도망가는 배에 실린 쥐가 그 매개체가 된 것이다

서유럽 인구는 16세기가 되어서야 1348년 이전 수준으로 인구가 회복됐다

그 이후 1664년에는 영국 런던 인구 46만명 중 7만명이 사망했다

하도 사람이 많이 죽었으니 요즘 사람들이 그 인구감소를 느끼지 못하다가

코로나19로 이웃이 죽었다고 하니 이제야 그 숫자를 느끼는 것 같다

 

그 시대의 말세

내가 종종 이야기하는 화두다

우리동네는 아직 코로나19가 안 들어와서 나는 잘 돌아다닌다.

교회도 가고 낚시도 가고 여행도 가고 마트도 간다

만약 1사람이라도 확진자가 있다 하면 내가 돌아다닐까?

그럼 돌아다니지 뭐가 겁나냐? 다 늙어서 죽기만 기다리는데

이런 게 겁난다면 유치찬란한 인간이다

 

세월 흘러 1894년에는 중국 광둥에서 발생해서

사망자가 약 8-10만명이 죽었고 항구를 통해 나가서 전 세계에서

1000만명이 죽었다

우리가 재림 날짜 잡고 실패를 안고 있을 때 일어난 일이다

한 쪽은 전염성으로 죽어가고 또 한 쪽은 실망으로 애를 태웠다

 

흑사병은 노동자의 급속한 감소로 경작지가 줄어들고 전쟁까지 중지시켰다

지주들이 파산했으며, 노동력의 부족으로 기술자와 소작농의 임금도 상승했다.

이러한 변화들이 그때까지의 엄격한 사회계층구조에 새로운 유동성을 가져왔다.

 

오늘 날 코로나19로 우리 주위가 일휴 전조라고 하다가는 말세론을 설파하고

자다가 깨라고 떠드는 것처럼

흑사병도 정신적인 면에서 변화도 많았다

불안정과 계속적인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미신에 의존하고 불건전한 병적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흑사병의 만연으로 신분이 하락한 성직자들은

이러한 위기에 필요한 영적인 지도를 해줄 수가 없었다.

성직자의 수가 많이 줄어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거나 교양이 없는 사람들을

성직자로 뽑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4세기 후반에 성직자의 질과 지적인 능력은 심각할 정도로 저하되었고,

결과적으로 많은 미신적 행위와 이단이 생겨났다.

 

의약품이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교황청은 신자들에게

회개의 눈물로 섞은 고약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다.

일부 신자들은 성인의 성상 앞에 매달려 기도하거나

성지를 순례하는 등 스스로 고행을 자처하며 자신을 학대하는

퍼포먼스에 몰입했다.

아울러 일부는 오늘의 개신교 목사들처럼 전염병을 하나님의 진노라거나

마귀의 농간으로 규정하면서 광신도들을 자극하기도 했고

또 어떤 목사는 단상에서 기도하는 대통령이 청와대에 없어서 내린

하나님의 진노라고 떠들기도 했다

어처구니없는 진단과 처방이지만 당시 유럽인들처럼

오늘의 기독교도 형편없는 수준을 보여 준 것이다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의 백년 전쟁도 중단될 지경이었다.

교황청의 추기경마저 절반 이상 사망해 종교가 위안을 줄 수도 없었다.

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악마를 잡아야 한다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 유대 인이 대표적인 표적삼았다.

수많은 유대 인들은 고문에 지쳐 자신이 우물에 독약을 풀어

페스트를 유행시켰다는 거짓 자백을 했고,

그 대가로 생매장되거나 산 채로 화형되는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1348년 무렵부터 페스트는 차츰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

유럽의 몇 도시에서 발생한 대화재로 인해

도시가 새로이 건축되면서 하수구 등 도시 기반시설과

위생시설물들이 정비되었기 때문이다.

 

흑사병은 14세기 이후 유럽인들에게 죽음의 공포와 보편성을 상기시켜 주며

다양한 예술 방식으로 표현되었는데 반면에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해 일손이 부족해져 농민의 몸값이 올라갔다.

땅을 경작하고 곡식을 수확할 농민을 구하기 위해

영주들은 전보다 2, 3배 비싼 임금을 지불해야 했다.

교회의 위상은 더욱 낮아졌다.

말단 성직자들이 시체를 매장하고 환자를 돌보는 데 헌신하는 사이

고위 성직자들은 교구민을 버리고 시골로 달아났고,

숨진 성직자를 대신해 새로 성직자가 된 사람들 중 일부는

교구민을 수탈하는 데만 열을 올리기도 했다.

 

교황권이 하락하고, 죽음으로 인한 염세주의에 물든 중세 유럽인들은

종교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이 우후죽순 죽어 나갔던 14세기 중반 이후

유럽에는 삶에 대한 비관주의와 함께 정서적인 공허감이 유행했다.

이로써 중세 유럽 시대의 봉건적 질서는 토대부터 동요되기 시작했다.

 

오늘을 보라

우리가 이런 역병을 하나님의 진노하심이라고 역설하거나

이것을 처리하는 정부를 일휴를 만들 기미를 제공한다고 하거나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염소로 비하하면

역병은 더 나쁜 효과로 발전한다

 

아담의 범죄 이후 이 땅에는 역병이 계속됐다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3:17-18)

땅이 저주를 받는단다.

그 저주는 엉겅퀴를 내는 것만이 아니다

그 저주는 종신토록 수고하는 것만이 아니다

땅이 저주를 받아 농사는 물론 풍토병을 양산하고 그로 인한 후유증을 유발한다

아담의 범죄로 인한 대를 물리는 병들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다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온역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무론하고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과 고통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며 사유하시되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 모든 행위대로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인생의 마음을 아심이니이다“)(대하6:28-30)

 

이럴 때 일수록 주만 의지하는 신앙을 회복하자

터부시하면 중세기처럼 종교가 흘러간다

21세기 교인들답게 살자

하나님이여 여기 있사오니 나를 붙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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