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조회 수 12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속지 않는 자’가 가장 잘 속는다

 

 

[세계의 창] 슬라보이 지제크ㅣ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오늘날은 엄숙한 공적 공간, 자크 라캉식으로 말하면 ‘대타자’의 권위가 점차 쇠퇴하고 있는 이른바 “탈진실의 시대”다. 백신 접종을 인권 침해라고 주장하며 거부하는 이들을 보면 향수 어린 마음으로 레닌주의의 민주적 사회주의를 떠올리게 된다. 민주적 사회주의에서는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지만, 결정이 내려지면 모두 그에 복종해야 했다. 이는 계몽에 대한 칸트의 정식과 일맥상통한다. ‘복종하지 말고, 사고하라!’가 아니라, 그 반대로 ‘자유롭게 사고하고, 그 사고를 자유롭게 말하되, 결정에 복종하라!’의 태도다.

 

우리는 여기서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결속이 맺는 관계를 볼 수 있다. 백신을 접종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지만, 백신 접종을 거부한 개인은 실질적으로는 타인의 자유뿐 아니라 자신의 자유까지 제한하고 만다. 백신을 맞아야만 다른 사람과 일상적인 방식으로 어울릴 수 있는 자유를 훨씬 높은 정도로 행사할 수 있다. 이처럼 자유가 실질적인 자유가 되려면 규칙의 규제를 받는 사회적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거리를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은 다른 이들이 문명화된 방식으로 행동하고, 나를 공격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처벌받을 것이라는 합리적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규칙을 바꿔야 하는 시기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규칙의 영역이 있기에 우리가 자유를 행사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헤겔은 추상적 자유와 구체적 자유의 차이를 이야기했다. 구체적 자유가 아닌 추상적 자유는 실제적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축소하며 자유가 아닌 그 무엇으로 변한다. 소통의 자유를 생각해 보자. 타인과 말하고 소통할 자유를 누리고자 할 때, 정해져 있는 언어의 규칙에 복종하지 않고는 타인과 소통할 수 없다. 언어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립적이지 않다. 편견의 산물이며, 특정한 사고를 표현하는 데는 부적절한 한계를 지니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고가 언제나 언어 안에서 언어와 함께 발생하는 한, 진정으로 사고하고 타인과 소통할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언어라는 규칙에 복종해야 한다.

 

공적 공간의 붕괴가 가장 심각한 곳은 미국이다. 유럽에서는 건물의 지반이 되는 층을 0층으로 셈하고, 그 위층을 1층이라고 부르지만, 미국에서는 1층부터 세기 시작한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보면, 유럽에서는 언제나 이미 주어져 있는 지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한다. 반면, 근대 이전의 역사적 전통이 부재하는 미국에서는 과거를 삭제한 채 모든 것을 자신들이 직접 제정한 자유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두 0부터 세는 법을 배우면 문제가 해결될까? 문제는 0도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재된 적대와 모순이 가로지르는 이념적 헤게모니의 공유 공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 지반을 무시하면 더 강력한 형태의 대타자가 등장하는데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혼동할 수 있다.

 

어떤 라캉주의 지식인들은 ‘가짜 뉴스’의 시대에는 대타자가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대타자가 더 강력한 다른 형태로 존재하게 된 것은 아닐까? 과거에는 외설의 공간과 공적 공간이 나뉘었다. 그리고 외설의 공간과 구분되는 엄숙한 공적 공간이 대타자로 기능했다. 하지만 이제 공적 공간은 외설의 공간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아니, 가짜 뉴스와 루머와 음모이론이 유통되고 교환되는 바로 그 외설의 공간이 지금의 ‘공적’ 영역이 되었고, 새로운 대타자가 되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놀라운 사실이 있다. 과거에는 뻔뻔한 공적 외설이 전복으로 기능하며, 주인의 지배를 약화시켰다. 대안 우파들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외설이 공적 영역에서 폭발하고 있는 오늘날, 외설은 주인의 지배가 약화되고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형상이 의미하는 것은 다시 강력하게 등장하고 있는 주인의 지배다.

 

번역 김박수연

출처: 한겨레신문 논단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13686.html#csidx8ae93897b11703a8e31956a1bab473f 


  1. 오케이, 오늘부터 (2014년 12월 1일) 달라지는 이 누리.

    Date2014.12.01 By김원일 Views8556
    read more
  2. 게시물 올리실 때 유의사항

    Date2013.04.07 Byadmin Views38610
    read more
  3. 스팸 글과 스팸 회원 등록 차단

    Date2013.04.07 Byadmin Views54366
    read more
  4. 필명에 관한 안내

    Date2010.12.05 Byadmin Views86229
    read more
  5. 요즘

    Date2021.04.28 By김균 Views552
    Read More
  6. 운영자님꼐

    Date2021.04.28 Byjacklee Views183
    Read More
  7. 봄은 봄이구나

    Date2021.04.28 Byjacklee Views218
    Read More
  8. 잔인한 4월

    Date2021.05.01 By무실 Views178
    Read More
  9. 체지방에 대해 당신이 알아야 할 모든 것

    Date2021.05.02 By김주영 Views204
    Read More
  10. 갱년기

    Date2021.05.17 By김균 Views267
    Read More
  11. 주일과 안식일

    Date2021.05.18 By못난쟁이 Views209
    Read More
  12. 일월성신의 징조(1)

    Date2021.05.24 By김균 Views360
    Read More
  13. 일월성신의 징조(2)

    Date2021.05.27 By김균 Views240
    Read More
  14. O Happy Day

    Date2021.06.14 By김균 Views170
    Read More
  15. 기쁨과 행복은 같은 것인가요?

    Date2021.06.26 By무실 Views134
    Read More
  16. 나는 오늘도 기이한 기적 속에서 살아간다.

    Date2021.07.06 By김균 Views192
    Read More
  17. 만찬 성찬 그리고 성만찬

    Date2021.07.11 By김균 Views214
    Read More
  18. 기도에 대한 괴이하고도 수긍이 가는 정의

    Date2021.07.25 By김원일 Views247
    Read More
  19. 요것이 은혜라고라고라...

    Date2021.07.27 By김원일 Views261
    Read More
  20. 어느 특별한 결혼식에 읽혀진 시

    Date2021.08.11 By무실 Views222
    Read More
  21. Joke of the day

    Date2021.08.18 By1.5세 Views243
    Read More
  22. 일본 군가를 찬송가로 만든 우리나라 기독교

    Date2021.08.20 By김균 Views297
    Read More
  23. 이런 기독교인도 있다

    Date2021.08.20 By들꽃 Views370
    Read More
  24. 성경 읽을 때 혼돈된 것

    Date2021.09.18 By들꽃 Views476
    Read More
  25. 왜 일까

    Date2021.09.20 By들꽃 Views147
    Read More
  26. 우리 셋째 이모 박영애

    Date2021.10.01 By김원일 Views186
    Read More
  27. ‘속지 않는 자’가 가장 잘 속는다

    Date2021.10.03 By김원일 Views126
    Read More
  28. 오늘의 유머

    Date2021.10.12 By1.5세 Views239
    Read More
  29. 오징어게임이 말하는 드라마의 핵심

    Date2021.10.27 By김원일 Views190
    Read More
  30. 식습관이 유래된 이야기

    Date2021.11.15 By김균 Views151
    Read More
  31. 이재명의 부상과 대선

    Date2021.11.22 By김원일 Views251
    Read More
  32. 바이든의 외교와 중국: 놈 촘스키

    Date2021.11.24 By김원일 Views133
    Read More
  33. 조사심판

    Date2021.11.25 By못난쟁이 Views1299
    Read More
  34. 김무식 님에게 미루다가 드리는 부탁 

    Date2021.11.28 By김원일 Views240
    Read More
  35. 만유내재신론 "Panentheism (not Pantheism) 이야기 01

    Date2021.11.28 By김원일 Views169
    Read More
  36. 만유내재신론 "Panentheism (not Pantheism) 이야기 02

    Date2021.11.28 By김원일 Views189
    Read More
  37. 만유내재신론 "Panentheism (not Pantheism) 이야기 03

    Date2021.11.30 By김원일 Views153
    Read More
  38. 만유내재신론 "Panentheism (not Pantheism) 이야기 04

    Date2021.12.01 By김원일 Views176
    Read More
  39. 한국, 왜 우경화하나?

    Date2021.12.01 By김원일 Views196
    Read More
  40. @@@ 2010.11.12 @@@ 그 때 가 그 리 워 서 & & &

    Date2021.12.04 By둥근달 Views330
    Read More
  41. 내 영혼이 은총입어

    Date2021.12.16 By무실 Views136
    Read More
  42. 오 거룩한 밤!

    Date2021.12.17 By무실 Views172
    Read More
  43. 북한 감옥에서의 949일은 축복과 같은 시간이었어요ㅣ캐나다큰빛교회 원로목사 임현수

    Date2022.01.13 By알아보자 Views134
    Read More
  44. Free Self Covid-19 Test Kit(수정)

    Date2022.01.17 By1.5세 Views351
    Read More
  45. 김운혁 님께 드리는 정중한 부탁 (몇 번째 "정중한 부탁"인지는 모르겠으나)

    Date2022.01.18 By김원일 Views246
    Read More
  46. 축복_The Blessing (민수기 6:24-26)

    Date2022.02.05 By무실 Views184
    Read More
  47. 우울증에 좋은 것들

    Date2022.02.15 By무실 Views156
    Read More
  48. 왜 미주 재림교회 협회의 장로부부 세미나가 필요한가

    Date2022.02.25 By들꽃 Views380
    Read More
  49. 우크라이나 대통령 근황

    Date2022.02.26 By무실 Views325
    Read More
  50. 성경은 완전한가?

    Date2022.02.26 By김균 Views387
    Read More
  51. 우크라이나 합창단의 성가와 민요

    Date2022.04.02 By무실 Views310
    Read More
  52. 이 세상은

    Date2022.04.29 By김균 Views172
    Read More
  53. 믿을 놈 없었다

    Date2022.04.29 By김균 Views461
    Read More
  54. 요즘 내가 왜 이리 됐을까?

    Date2022.04.30 By김균 Views612
    Read More
  55. 나는 한번씩 환상을 본다

    Date2022.07.13 By김균 Views129
    Read More
  56. 무좀 이야기

    Date2022.07.13 By김균 Views142
    Read More
  57. 천국 있냐?

    Date2022.07.13 By김균 Views180
    Read More
  58. 우리 손녀

    Date2022.07.13 By김균 Views183
    Read More
  59.  이것이 행복이라오 

    Date2022.07.21 By다알리아 Views416
    Read More
  60. 모든 것이 은혜였소

    Date2022.08.17 By다알리아 Views639
    Read More
  61. 갈릴레오의 출현

    Date2022.12.31 By들꽃 Views201
    Read More
  62. 2023 새해의 바램

    Date2023.01.02 By무실 Views207
    Read More
  63. 오늘도 감사

    Date2023.05.05 By다알리아 Views608
    Read More
  64. 도전한 사람들이 이룰 것이다

    Date2023.05.15 By다알리아 Views117
    Read More
  65. 어머니 덕분이다

    Date2023.05.18 By다알리아 Views233
    Read More
  66. 여름 편지

    Date2023.06.07 By다알리아 Views269
    Read More
  67. 미국 대형교회 목사가 홈리스가된 사건

    Date2023.06.24 By다알리아 Views210
    Read More
  68. 삼나무 뿌리의 지혜

    Date2023.06.27 By다알리아 Views564
    Read More
  69. 치매99%는 절대 못 찾는 다른 그림찾기

    Date2023.07.02 By다알리아 Views287
    Read More
  70. 사랑의 등수 매기기

    Date2023.07.06 By다알리아 Views440
    Read More
  71. 의식주

    Date2023.09.22 By김균 Views281
    Read More
  72. [반달]이 게시판에 아직도 살아있는지? 올려봄니다.

    Date2023.11.18 By반달 Views290
    Read More
  73. 황당한 Kasda

    Date2023.11.19 By들꽃 Views248
    Read More
  74. Sharon Kim 집사님의 체험간증 - 하나님의 능력으로 10여년간 걷지못하든 환우가 걷게된 Story !

    Date2023.11.25 By반달 Views191
    Read More
  75. 일년의 계획_김교신

    Date2023.12.31 By무실 Views440
    Read More
  76. 제야의 기도_김교신

    Date2023.12.31 By무실 Views193
    Read More
  77. 대총회 10일 기도회 (1월 10 일 -20일, 2024) 낭독문

    Date2024.01.10 By무실 Views166
    Read More
  78. 대총회 10일 기도회 (1월 10 일 -20일, 2024) 낭독문 열째날

    Date2024.01.11 By무실 Views280
    Read More
  79. 만남

    Date2024.02.19 Byfallbaram. Views47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Next
/ 23

Copyright @ 2010 - 2024 Minchoquest.org. All rights reserved

Minchoquest.org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