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2021.01.20 07:02

새해풍경

조회 수 107 추천 수 1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새해풍경
   

 

적막했던 문 앞에 시종과 말이 가득하니
부족하게나마 상을 차려 신년 손님 대접하네
탁주 마다않는 임 파총(把揔)이요
떡국 맛좋다 하는 김 생원(生員)이네

 

羅雀門前僕馬闐 나작문전복마전
聊將薄具餉新年 요장박구향신년
不厭濁酒林把揔 불염탁주임파총
絶甘湯餠金生員 절감탕병김생원

 

이하곤(李夏坤, 1677~1724), 『두타초(頭陀草)』 4책 「새해 아침 장난삼아 배해체로 짓다[元朝戱作誹諧體]」

   
해설

   조선 후기 시인인 이하곤은 어느 해 설을 맞아 7수의 시를 지었다. 시 제목에서 보이는 ‘배해[誹諧]’는 풍자, 농담, 해학의 의미로, 진지하기 보다는 가볍고 유쾌하게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위는 7수 중 세 번째 수이다.

 

   1구의 ‘나문(羅雀門)’은 참새잡이 그물을 칠만큼 조용한 문이라는 뜻으로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 상황을 말한다. 평소에는 이처럼 적막한 집이지만 새해 명절만큼은 친지의 방문으로 문전이 북적인다. 주인도 넉넉지 않지만 나름 상을 차려 손님을 맞이하는데 이날 손님상에 없어서 안 되는 것이 술과 떡국이다. 손님 중 파총이라는 무관 벼슬을 지내고 있는 임씨는 술을 택했다. 무인답게 거친 탁주를 마다않고 벌컥벌컥 들이킨다. 한편 또 다른 손님인 김생원은 떡국을 택했다. 주인집 떡국 솜씨가 좋았던지 선비 체면도 잊은 채 한 그릇 뚝딱이다. 다양한 손님들이 북적이는 신년 손님맞이 풍경이 정겨워 보인다.

 

   7수 중 새해 풍경을 묘사한 몇 수를 더 소개해 본다.

 

   풍속과 인정은 설날을 중시하여/줄을 서가면서 부산하게 세배 다니네/모두 다 새해 복 받으라 축원하니/올봄에는 분명 장원급제하겠다”(土俗人情重歲旦, 紛紛拜謁自成行, 共道新年聊獻祝, 今春應作壯元郞.)

 

   세배를 올리자 덕담을 건넨다. 주로 과거 합격하라는 덕담이었던 모양이다. 요즘으로 치면 명절날 모인 친척에게 “올해는 취직해야지? 올해는 결혼해야지?”라는 말을 듣는 느낌이려나.

 

   빌려 입은 관과 적삼은 몸에 맞지 않지 않는데 /비틀비틀 취한 몸 가누며 세 집을 내달리네/과장된 이야기와 내뱉는 막말은 두서없고/ 도처에 사람 만나 술 찾는 소리 시끌벅적(借着冠衫不稱身, 踉蹌扶醉走三隣, 狂談胡說無倫次, 到處逢人索酒嗔.)

 

   명절이라 나름 차려입고 새해 인사를 돌던 중 집집마다 내놓은 술상에 취해 버렸다. 술기운에 과장되고 거친 말도 마구 내뱉다가도 또 사람을 만나면 술자리를 이어간다. 정신없고 떠들썩하지만 그 분위기 한번 명절답다.

 

   우스워라 동쪽 집에 사는 이 선배/ 술에 취해 황소 타고 가다 요 앞 시내에 빠져버렸네/옷이며 전부 다 젖은 것도 모르고/ 집에 돌아와 술주정 부리며 제 마누라 구박하는구나(好笑東家李先輩, 醉騎黃犢落前溪, 不省衣冠沾濕盡, 歸來使酒敺厥妻)

 

   명절에 누구를 만나다 보면 술이 빠질 수 없다. 그런데 술이 과하면 꼭 이런 사람 한 명씩은 있기 마련이다. 정초부터 물에 빠진 데다 아내에게 화풀이까지 했으니 새해를 맞은 그 심경이 어떠할까.

 

   요즘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소소한 새해의 풍경이다. 그 속에는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이 있다. 매년 다가오는 새해임에도 그때마다 설레는 것은 누군가와의 만남이 기대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만남이 올해도 있을까. 가족, 친척, 친구들과 함께 한 해의 복을 축원하고 맛있는 음식과 술을 즐기던 풍경이 몹시 그리워지는 새해이다.

 

글쓴이김준섭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출처는 이 곳을 클릭

  • ?
    김주영 2021.01.20 14:24
    물리적 거리두기 하느라 부모님도 뵙지 못했습니다.
    시끌벅적이 언제였던고?
  • ?
    김원일 2021.01.21 06:41
    대단히, 매우, 엄청, 흥겹습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오케이, 오늘부터 (2014년 12월 1일) 달라지는 이 누리. 김원일 2014.12.01 8508
공지 게시물 올리실 때 유의사항 admin 2013.04.07 38556
공지 스팸 글과 스팸 회원 등록 차단 admin 2013.04.07 54323
공지 필명에 관한 안내 admin 2010.12.05 86181
169 장강의 눈물-거대 중국의 민낯 김균 2020.07.23 78
168 그의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무실 2020.07.25 59
167 아! 기독교 1 김균 2020.07.29 113
166 Fallbaram 님의 슬픈 소식 듣고 1 들꽃 2020.07.29 211
165 나는 속죄를 위해서 밤을 새면서 기도해 본 일이 없다 3 김균 2020.07.30 113
164 패배주의는 우리의 적입니다 좋은나라에 사는 것에 감사합시다 김균 2020.08.02 79
163 켈로그와 이 상구(1) 3 김균 2020.08.02 327
162 아담에게 드리는 노래. 바이블 2020.08.03 66
161 아무리 생각해도 들꽃 2020.08.09 95
160 말세의 징조인가요 2 들꽃 2020.08.09 170
159 축하 합니다 북미지회 새 총무부장 2 들꽃 2020.08.18 186
158 달수님 4 김균 2020.08.22 185
157 도마도 죽었다 김균 2020.08.28 105
156 이 상구(2) 3 김균 2020.08.28 382
155 지난주 교과 질문 들꽃 2020.09.05 83
154 교회 소 그룹 성공과 실패의 원인? 들꽃 2020.09.05 61
153 안식일(9) 두 안식일 1 김균 2020.09.07 131
152 아침 안개 속에 다가오신 님 김균 2020.09.07 149
151 예수님의 이야기 나누기 다 양성 1 들꽃 2020.09.12 135
150 알듯 모를 듯한 세 천사 기별 2 들꽃 2020.09.19 184
149 성경 교사가 필요합니다 들꽃 2020.10.01 93
148 안교공과의 질문과 가능한 대답 들꽃 2020.10.17 66
147 안녕하십니까? 2 fallbaram. 2020.10.25 182
146 미국에 계시는 분들 2 김균 2020.10.25 234
145 나는 왕실의 아이 무실 2020.10.31 135
144 다미 선교회 2 제로미 2020.11.05 141
143 남 탓 내 탓 3 김균 2020.11.05 198
142 Chandelier-박정현 3 김균 2020.12.19 128
141 그러하다 작은아이 2020.12.29 96
140 저녁 종소리-러시아 민요 김균 2021.01.05 94
139 주님 오시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file 김균 2021.01.06 120
138 세상 끝 김균 2021.01.14 212
137 건강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2 김주영 2021.01.17 108
136 안녕하십니까. 한 동안 자리를 비웠던 이 누리 "주인장" 김원일입니다. 김원일 2021.01.19 135
135 2021 문턱에서 김원일 2021.01.19 101
134 예수께서 말씀하신 음식물에 관한 권면? 1 예수안에 2021.01.19 100
133 곽건용 목사의 책 이야기 01 2 김원일 2021.01.20 122
» 새해풍경 2 무실 2021.01.20 107
131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잘 전염되는 이것 1 김주영 2021.01.20 131
130 Trump 개색에게 바치는 노래 5 김원일 2021.01.21 210
129 곽건용 목사의 책 이야기-성서의 뜨락을 거닐다 02 <Text and Concept (텍스트와 개념)> 1 김원일 2021.01.23 87
128 겨울 숲은 환하다 1 다알리아 2021.01.25 90
127 2021년을 이런 해로 만들어 봅시다. 곽건용 목사 설교 01 김원일 2021.01.26 68
126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김원일 2021.01.27 99
125 실패한 디자인 대참사 1 다알리아 2021.01.28 101
124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1 다알리아 2021.01.28 113
123 곽건용의 책 이야기-성서의 뜨락을 거닐다 3 김원일 2021.01.31 114
122 건강한 삶의 알파와 오메가 1 김주영 2021.02.01 88
121 욕쟁이들 2 file 김균 2021.02.02 185
120 자기에게 절실하게 2 무실 2021.02.03 335
119 계급이란 무엇인가 김원일 2021.02.06 116
118 주4일 근무제 2 file 김균 2021.02.06 203
117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읍시다 곽건용 목사 설교 02 김원일 2021.02.16 59
116 신본 대 인본이라는 가짜 대립구조 곽건용 목사 설교 03 김원일 2021.02.16 70
115 코비드 백신을 맞았더니! 김주영 2021.02.17 106
114 영생이로다 2 file 김균 2021.02.17 164
113 세계의 예언가들 file 김균 2021.02.18 201
112 코비드 백신을 (안)맞는 분들에게 김주영 2021.02.20 124
111 '성전'이라는 신기루 곽건용 목사 설교 04 김원일 2021.02.20 80
110 곽건용의 책 이야기-성서의 뜨락을 거닐다 4 God's Phallus: And Other Problems for Men and Monotheism (하나님의 성기: 그리고 남성과 유일신론의 또 다른 문제점들) 김원일 2021.02.20 3048
109 곽건용의 책 이야기-성서의 뜨락을 거닐다 5 James Barr "The Garden of Eden and the Hope of Immortality"(에덴동산과 영생의 희망) 김원일 2021.02.20 1316
108 Are Koreans Human? 2 김원일 2021.02.21 155
107 보고싶은 친구 안대휘를 그리며 6 Rilke 2021.02.22 417
106 동네에서 스키타기 1 김주영 2021.03.01 143
105 마스크와 하나님 이해 들꽃 2021.03.13 114
104 곽건용의 책 이야기-성서의 뜨락을 거닐다 6 " The Nathan Narratives" by Gwilym H. Jones 김원일 2021.03.14 64
103 곽건용의 책 이야기-성서의 뜨락을 거닐다 7 Norman C. Habel, The Land Is Mine: Six Biblical Land Ideologies 김원일 2021.03.14 108
102 미주에 사시는 분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조심하시기를... 1 김원일 2021.03.19 214
101 전 조교가 보내온 그림 1 김원일 2021.03.29 256
100 비만은 질병인가? 김주영 2021.03.31 93
99 한 대학생이 몰래 붙이고 간 가짜 포스터 1 다알리아 2021.04.08 145
98 우울증아 물러가라! 1 무실 2021.04.10 178
97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다알리아 2021.04.14 129
96 세월호 공모전 작품들 1 다알리아 2021.04.19 134
95 Mother, How Are You Today? 2 김균 2021.04.28 140
Board Pagination Prev 1 ...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Next
/ 23

Copyright @ 2010 - 2024 Minchoquest.org. All rights reserved

Minchoquest.org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