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신은 매우 편하고 해방적으로 여겨진다.
엄숙한 계율적 종교 에 회석되면 더욱 그렇게 보인다
이것은 "진리가 자유케 한다" 는
성경적 의미와는 그 본질이 상극 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합당하듯
짐짓 혼합시키면서 닥아온, 인간의 인간적 의무라 주장한다.
종교 지력의 소유자 들이 뻔히 그 의미를 알면서도
왜 이런 휴우머니즘 에 열광 하는가 ?
그 중심에는
이해관계에서, 혹은 상실해 왔던 의무적 입 보상, 편리함 에서 오는
방관 이라는 무책임 자유가 있기때문이다.
이런 자기방관적 휴우머니의 논리속에는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근본적 원칙, 혹은 선험적 의식 조차
변형 시킬수있는 자기조정, 수정, 삭제 의 조작을 할수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휴우머니즘 으로 만들어진 포스트모던 속에는
존재에 대한 모방, 파괴 의 표현이 자유로움이 분명있다.
필자도 이런 미를 모방하며 그런 자유스런 표현욕구앞에 얼쩡이든
휴우머니즘 이란 신을 만났을때,
이것이
속류적 종교본능 의 신인지 아니면
다위니즘 으로부터 진화된 신앙 절충적 신인지 헷갈리면서도
이 휴우머니의 신만 합일된다면
다양성의 가치를 만들어 낼수도 있고 새로운 모럴의 실험결과에
만족할수 있겠다 라는 합리적 착각을 할 만큼 매력적이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곳 신앙 지식인들도 읶히 알고 있듯이
인류사 에서 그런 인간적 욕구에 하나님을 매매 한일이
어디 이것뿐이 였는가 ?
morl rearmament 도 알고보면 그속에 인간 의 인간적 본질을
종교로 이해했고,
소피스트 들이 대립시켜온 "정의의 객관적 표준" 속에도,
볼세비즘 의 원리 속에도, 이 휴우머니즘의 포스트모던 의 창조와 파괴가
다양한 신으로 존재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곳 안식일교회 지자들이 왜 모르겠는가 ?
알만한 사람들이 겪을만큼 겪은 이 신앙사의 실패된 산물을
다시 하나님 위에 우선도덕 이라는 증명으로
칸트식 뱀의질문 으로 우리에게 접근 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