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정혜신은 왜 '사람 공부'에 매달렸을까

<정혜신의 사람 공부>를 읽고

 

16.10.19 20:57l최종 업데이트 16.10.19 20:57l

글: 김종성(wanderingpoet)btn_arw2.gif

편집: 최은경(nuri78)btn_arw2.gif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러니까 정신과 의사 정혜신을 처음 만난 건, 2001년 출간된 <남자 VS 남자>라는 책을 읽으면서부터였다. 

대한민국의 소위 '유명한' 남성 21명을 소환해놓고, 각각의 키워드로 2명씩 묶어 링 위에 올리는 방식은 매우 신선했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를 '자기 인식(내맘대로 왕자. 니맘대로 독재자)'이라는 키워드로 엮은 대목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가수 조영남을 '열등감(완벽하지 못한 황제. 망가지지 않는 광대)'이라는 관점에서 들여다 본 건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기사 관련 사진
▲  정혜신의 책『남자 VS 남자』과 『사람 VS 사람』
ⓒ 개마고원

관련사진보기

 


책에는 '심리분석'과 '인물평전'이 적절히 섞여 있는데, 여기에서 그가 갖고 있는 전문가로서의 능력과 소양(素養)을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각각의 인물에 대한 끈기 있는 조사(調査)와 날카로운 분석이 돋보인다. 자연스레 독자들은 수긍을 하게 되고, 이를 넘어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깊이가 있으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는 그의 접근은 전혀 의도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건 '작가'로서의 소질일까, 아니면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일까.

당시 정혜신에겐 "한국 남성을 이보다 더 잘 이해하는 여자는 없다"는 평가가 뒤따라다녔는데, 그 '목적어'는 2005년 <사람 VS 사람>이라는 책이 나오면서 '사람'으로 대체됐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비는 남성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여성'의 출현이 사회의 억압에 가려져 있던 2005년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살짝 고려하기로 하자. 무엇보다 '아버지'라는 키워드로 박근혜 대통령과 문성근씨를 묶은 대목은 그야말로 탁월했다. 그리하여 정혜신은 그 누구보다 '사람'을 잘 이해하는 사람으로 읽혔다.
 

기사 관련 사진
▲  <정혜신의 사람 공부> 표지
ⓒ 창비

관련사진보기

후속편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렸지만, 그 이후로 '정혜신'이라는 이름은 '신문'에서 더 많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1970~1980년대 군사독재정권에서 고문을 당했던 피해자를 돕기 위해 '진실의 힘'이라는 재단을 만들어 집단상담을 이끌었고, 2011년에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한 공간으로 심리치유센터 '와락'을 만들었다.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후에는 안산에서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났던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안락한 공간을 벗어나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고. <창작과비평> 창간 50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강연 '공부의 시대'에 참여한 본인의 강의를 엮은 <정혜신의 사람 공부>는 그가 터득한 '사람 공부'에 대한 결론이 담겨 있는 책이다(참고로 '공부의 시대' 시리즈엔 강만길, 김영란, 유시민, 진중권도 참여했다). 과연 정혜신이 깨달은 '사람 공부'가 무엇인지 살짝 들여다보기로 하자.

정혜신은 "내가 의사가 아니고 '사람'에 가까워질수록 의사로서의 실력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사람'이 될수록 탁월한 치유자는 절로 된다"고 고백한다. 무슨 말일까? 그는 진료실은 '철저하게 의사를 위한 공간'일 뿐, '환자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고 말한다. '의사라는 절대적 권위가 보장된 곳에서 나는 사람에 대한 입체적인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진료실을 벗어나면서부터, 그리하여 사람의 속마음을 만나게 되면서 '더 섬세하고 더 과감한 상담도 가능해졌'고, '훨씬 더 용한 의사가 된 것 같다'고 한다.

 

가령, 이런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진도 팽목항에 수십 개의 천막이 세워졌다. 피해자들의 가족들과 유가족을 위해 심리 상담 부스가 차려진 것이다. 기사로도 수차례 보도됐지만, 그 누구도 이 공간을 찾지 않았다. 언론과 전문가들은 피해자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며 심리 상담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심리 상담소는 계속해서 텅 비어 있었다. 이후 안산에서 장례식이 치러졌고, 정부합동분향소를 비롯해 안산 지역 곳곳에 상담 센터가 차려졌다. 여전히 유가족들은 상담을 받으러 가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문가적인 시선'으로 보면 말이다. 혹은 '일반인의 시각'에서도 그러했다. 그들은 왜 그토록 괴로워하면서도 심리 상담을 받지 않는 것일까. 전문가들을 찾아가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으면, 한결 마음이 편해질 텐데 말이다. 공개된 장소를 찾아가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일까? 정부가 정신과 의사와 상담사들로 꾸려진 상담 팀을 유가족들을 일일이 방문했지만, 유가족들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전문가들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역정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정혜신은 그것이 '치유의 교과서적인 방식'이라고 꼬집는다. 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 정작 '현장'에서는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혜신은 이렇게 되묻는다. "이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지만, 이것이 과연 2014년 대한민국의 세월호 현장에도 맞는 이야기였을까요?" 바닷속에서 내 아이를 아직 찾지 못한 상황, 부모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내 자식의 생사 여부에 온몸의 신경이 빨랫줄처럼 팽팽하게 곤두서 있'고, '아이를 찾을 때까지는 자신에게 최소한의 이완도 허용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내 마음이 편하자고 상담을 받을 수 있었을까?

죄의식과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그들에게 속 편하게 '상담'이나 받으라고 말하는 건, 그 자체로 하나의 폭력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밀려오면서 부끄러워진다. 정혜신은 "세월호 트라우마 피해자들에게 치유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공부나 많이 했지 내 마음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혜신은 달랐다. 그는 '정신과 의사'라는 '전문가'로서 '환자'를 대한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의 상담 내용을 살펴보자.
 

"선생님, 제가 미친년 아닌가요?"

"미치면 어때요. OO가 갑자기 없어졌는데 OO 엄마가 잘 지내면 그게 엄마예요? OO가 없는데 어떻게 잘 살 수가 있어요. 그러면 OO가 얼마나 섭섭하겠어요?"

"그렇죠? 내가 미친 게 아니죠? 제가 엄마라서 그런 거죠?"


정혜신이 '교과서'에 어긋나는 상담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십여 년을 넘게 현장에 머물면서 체득한 치유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깔려 있다. 사람에겐 저마다의 '자기 통제력'과 '자기 치유력'이 있다는 확신이다. 또, 교과서를 통해 배우게 되는 치유의 이론이나 일반적인 상식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사람은 모두 똑같지 않다는 당연한 진리'이다. 이 사실을 간과한다면 어떤 이론이나 학문도 누군가에겐 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와 같은 사례를 얼마나 많이 봐왔던가. 

그는 '치유를 공부하는 건 치유가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고, 그렇기 때문에 '화려한 지식이나 버젓한 자격증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어야만 제대로 된 공부'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자격증과 학위로 자신만의 높은 탑을 쌓을 것인가, 아니면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개별적인 사람들을 만날 것인가. 당신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정혜신의 당부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전문가를 이상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삶에 그닥 관계 없는 분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 일상에 더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우리 삶이 전문가의 도움 없어도 빛날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개별적 존재다, 그걸 아는 게 사람 공부의 끝이고 그게 치유의 출발점입니다. 그게 사람 공부에 대한 제 결론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추천추천

21

좋은기사 후원하고 응원글 남겨주세요!

좋은기사 원고료주기

태그:정혜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오케이, 오늘부터 (2014년 12월 1일) 달라지는 이 누리. 김원일 2014.12.01 8665
공지 게시물 올리실 때 유의사항 admin 2013.04.07 38734
공지 스팸 글과 스팸 회원 등록 차단 admin 2013.04.07 54611
공지 필명에 관한 안내 admin 2010.12.05 86361
1229 부전자전 fallbaram. 2024.03.14 296
1228 조사심판과 진화론 6 fallbaram 2017.09.24 296
1227 빌어먹을 대한민국 외교부 3 김원일 2017.03.31 296
1226 혼자 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남 걱정 많이도 했네 2 김균 2017.02.22 296
1225 갱년기 1 file 김균 2021.05.17 295
1224 결론으로 말하는 정죄 1 file 김균 2017.10.01 295
1223 우리는 남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예사로이한다 4 김균 2016.12.10 295
1222 한마리 유기견의 기억 1 fallbaram. 2024.03.03 294
1221 박근혜의 미소..그리고 그 미소에 "전 박근혜 대통령은 훌륭했다!"라 화답하는 재림교 목사..(카스다) 1 악어의눈물 2017.03.18 294
1220 매도당하는 칭의주의 5 file 김균 2017.09.28 293
1219 개 짖는 소리 4 file 김균 2017.09.21 293
1218 노무현의 운전기사 vs 이명박의 운전기사 who 2016.11.22 293
1217 [컬투쇼] 회식후 사라진 미스김을 찾습니다 1 개성 대로 2016.09.21 293
1216 세상 끝 김균 2021.01.14 292
1215 나는 속죄를 위해서 밤을 새면서 기도해 본 일이 없다 3 김균 2020.07.30 292
1214 기독교에서 진보와 보수의 결정적 구분은 '성서해석' 김균 2018.08.04 292
1213 레11장에 대하여 6 나도 한마디 2017.04.20 292
1212 교회성장연구소, 한국 교회 SWOT 분석 자료 공개... 한국 재림교회의 ‘강점’ ‘약점’ ‘기회’ ‘위협’ 요소는? 용서 2016.09.17 292
1211 자작 올무에 걸린 줄도 모르고 9 김균 2016.10.01 292
1210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 2 소나무 2018.01.08 291
1209 이 글 읽고 반성해야 할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요. 7 재림교인 2017.09.27 291
1208 이분법에 능한 사람들이 오히려 상대를 이분법으로 논한다 1 file 김균 2017.04.26 291
1207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종말 3 징조 2017.01.26 291
1206 만유내재신론 "Panentheism (not Pantheism) 이야기 02 김원일 2021.11.28 290
1205 (부고) 고 김태곤 장로님 주안에서 잠드셨솝니다, 장례일정 1.5세 2018.09.22 290
1204 레위기 11장? 무슨 레위기 11장?? 2 김주영 2017.04.09 290
1203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3 김균 2017.03.02 290
1202 누가 삯꾼인가? 5 김주영 2017.02.13 290
1201 욥기에서 건진 불온한 생각 3 file 김주영 2016.12.31 290
1200 추석 특별 톡 쇼 : ----- 게스트/김균, 계명을------ 제목/율법의 실체 (2년전 글에서 재구성) 2 계명을 2016.09.15 290
1199 성실한지 못한 교인을 <아끼지 말고 살육의 때에 죽이라>는 임무를 받은 천사 8 코사람 2016.10.01 290
1198 갈라디아서 2장 3 등대지기 2017.09.28 289
1197 그 중에 간음 이야기로 질문한 이유(민초1님) 12 한빛 2016.09.19 289
1196 새롭게 본 윤석렬 바이블 2019.09.14 288
1195 성소수자에게 직접 듣는다: 초청합니다. 7월 8일. 김원일 2018.06.29 288
1194 소래산(蘇萊山)과 정도령의 관계....해월 황여일의 예언 (해월유록) 중 1 현민 2017.01.06 288
1193 화잇부인이 오늘날 살아계시면 2 김주영 2016.12.17 288
1192 동중한합회 임시총회는 왜 했는지 궁금합니다. 1 궁금 2017.01.09 287
1191 김운혁 님께 드리는 정중한 부탁 (몇 번째 "정중한 부탁"인지는 모르겠으나) 김원일 2022.01.18 286
1190 기다림 1 fmla 2017.03.23 286
1189 내가 만약 이곳 사이트를 집창촌이라 했다면 1 꼴통 2016.09.24 286
1188 볼지어다 내가 속히 오리라 김균 2020.03.25 285
1187 이 남자가 화장실을 못 간 이유.....에라이! 몹쓸 박가야! 5 황금동사거리 2016.12.12 285
1186 김운혁님, 제발! 2 김원일 2016.09.11 285
1185 이재명의 부상과 대선 1 김원일 2021.11.22 284
1184 전 조교가 보내온 그림 1 김원일 2021.03.29 284
1183 지팡이가 되어 소나무 2017.11.27 284
1182 나의 구원 너의 구원 2 file 김균 2017.09.28 284
1181 미투가머길레! fmla 2018.03.12 284
1180 [백근철] 시대의소망 - 유다의 실수 3 hm 2016.10.11 284
1179 미국 대형교회 목사가 홈리스가된 사건 다알리아 2023.06.24 283
1178 오징어게임이 말하는 드라마의 핵심 김원일 2021.10.27 283
1177 삶과 죽음 1 김균 2018.10.29 283
1176 옛 사이트는 (minchosda.com) 어떻게 되는가. 김원일 2017.10.10 283
1175 접장님만 보세요 1 삼육동사람 2017.03.01 283
1174 김주영님께 드리는 노래 3 김원일 2017.01.02 283
1173 말석님.님은 누구십니까?......그리고 접장님. 1 민초막내 2016.09.24 283
1172 화면이 달라졌어요 2 김종현 2016.09.20 283
1171 인사 4 fallbaram 2016.12.30 282
1170 거길 왜 갔냐고요? 세 아이의 아빠라서요...참 향기로운 가족. 1 의로운삶 2016.10.07 282
1169 <지진>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십니다 12 재림의 징조...지진 2016.09.24 281
1168 남 탓 내 탓 3 김균 2020.11.05 280
1167 계명으로 뭔가를 얻고자 하는 분들에게 5 김균 2017.09.29 280
1166 남녀 구별 참 어렵습니다 김균 2017.01.12 280
1165 10월은 목사님 감사의 달입니다. 2 무실 2017.10.24 279
1164 눈장님 보십시요....정치인 믿을 놈 하나 없다고?..이제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6 범어사 2017.08.30 279
1163 Nashville, TN 에 새로운 한인 교회 탄생 marcusmin 2016.12.08 279
1162 성육신=세속화 2 file 김주영 2016.10.01 279
1161 개꿈 4 file 김균 2017.10.01 278
1160 미국에도 이런 군인들이 있는지? 6 2016.11.13 278
1159 신없이 도덕하기라는 글을 보고 1 진실 2017.03.06 277
1158 성경 으로 주장 했다면 성경으로 대답 했을것이다. 4 박성술 2016.10.22 277
1157 오늘의 우주회의 7 김균 2016.10.08 277
1156 여기서 성경이나 복음 이야기 하지 말라고 4 김원일 2016.09.22 277
1155 말세의 징조인가요 2 들꽃 2020.08.09 27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23 Next
/ 23

Copyright @ 2010 - 2024 Minchoquest.org. All rights reserved

Minchoquest.org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