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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6 23:35

비겁한 차별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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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겁한 차별의 교회

한국교회에 존재하는 불평등의 고착화, 외면 말아야

주원규 bay3135@empal.com | 2016.10.16  14: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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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교회

초대교회의 모범으로 평가받는 안디옥교회, 그 초기 멤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현대의 상식으로도 도저히 어울리지 못하는 조합이 읽힌다. 노예 출신, 로마 시민권 소유자, 거기에 흑인이란 전혀 다른 혈통까지 가세했다. 이 정도의 조합은 현대사회에 빗대어 이야기해도 주목할 만하다.

 

 

현대사회에 신분제도가 철폐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강고한 그들만의 리그가 엄존한다. 부러 사회 양극화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가난한 자와 가진 자의 빈부 차가 임계점까지 상승한 현실에서 상위 1%와 빈민 계층은 어울리기조차 힘들게 되어 버렸다.

 

 

제도와 법적 기준으로 눈에 보이는 차별을 혁파하는 데 앞장선 현대사회에도 이 정도 차별은 비일비재하다. 하물며 노예제도와 식민 통치, 이방 민족에 대한 노골적 혐오가 전통처럼 굳어 버린 1세기 현실에서 안디옥교회의 모델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두말할 것 없이 차별을 넘어선 원형으로서의 교회를 지향했음을 보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충분히 허용된다. 계급, 신분, 인종 차별의 외연에 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못한 채 피상적인 복음의 원초성에만 호소해 교회를 일궜다는 비판도 피해 가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과실 못지않게 공로 역시 간과해선 곤란하다.

 

 

사람과 사람이 모인 교회 공동체가 마음을 터놓고 한마음, 한뜻을 나눌 수 있으려면 공동체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와 전제가 요구되는 법이다. 차별, 혹은 차별적 현실에 대한 편견, 그 편견에서 비롯된 태도를 내려놓는 이른바 차별의 잠정적 쇄신과 유보의 전제가 성립되지 않으면 교회는 그 존립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 초대교회의 원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덕 중 하나로 차별의 극복이 있다. 좀 더 완곡한 표현으로 차별의 잠정적 유보가 그것이다. 이는 교회 공동체와 그 구성원의 신앙적 표지로 인정받는 성경의 증언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오늘의 교회, 특히 오늘의 한국교회는 이러한 차별의 쇄신, 혹은 잠정적 유보에 대한 정신적 논지를 지탱하고 있는가. 불행히도 차별의 유보는 고사하고 차별의 조장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불길함을 지우기 어렵다.

 

 

가깝게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럴수록 더 노골적인 천민성을 드러내는 양극화 선전 기관으로서의 차별에서부터 세대 간, 인종 간, 이념이나 정치 성향으로 인한 차별 등, 한국교회가 계층, 신분, 경제, 신분 간 차별의 전초기지가 된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차별의 지류를 관통하는 해명하기 어려운, 엉킨 실타래의 중심 매듭과 같은 차별의 궁극은 조금은 해묵은 주제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남아 있다. 성적(性的) 차별이 그 중심 매듭이다.

 

 

문제는 교회가 차별을 이야기할 때, 놀라울 정도로 성적 차별에 대해 근본적 침묵을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대외적으로 일어난 목사와 성도 간 위계에 대한 성추행, 성폭력과 관계된 문제 제기는 지난 시절 한국교회가 겪어 온 무지에 비하면 적잖이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앞서 말한 근본적 성차별에 대한 성찰에 대해서는 침묵 일변도다.

 

 

이러한 침묵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늘 문제의 핵심은 단순하다. 교회가 공동체의 존립 근거였던 성경에서부터 성적 차별의 맥락을 당연시하는 것으로 간주해 왔기 때문이다.

 

 

차별의 중심, 성(性)차별

성경이 성차별을 당연시했다고? 그렇다면 성경의 전개 과정에서부터 성차별이 시작됐다는 말인가. 그렇게 단정 짓고 성경의 정경성이나 그 신비적 합목적성에 대해 비평적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이분법적 논리로 재단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성경 자체가 폭력적 기록의 산물이니 그러한 기록의 산물을 따르는 교회를 믿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독설을 퍼붓는 일 또한 교회와 교회의 존립 근거인 성경 정신의 뿌리 파악에 소홀한 오독이라고밖에 보기 어렵다. 구약성경에서부터 시작된 눈에 두드러지는 성차별적 발언, 그런 류의 문화적 강조점이 갖는 맥락은 역사적 기술이나 성차별 문화의 당위성을 옹호하려는 이른바 텍스트의 정경성과는 차원이 다르다.

 

 

성차별적 뉘앙스로 무장된 논지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려는 근본 의도가 아니다. 근본 의도에서 멀어질 대로 멀어져 버린, 이른바 신으로부터의 소외를 겪은 인간이 보여 주는 차별과 폭력 중 가장 근원적인 폭력임을 고발하거나 최소한 성찰하도록 열어주는 콘텍스트의 정경성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의 성취는 신약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성찰적 메시지의 흩뿌림에서 절정에 이른다. 간음한 여인을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 남성이 여성을 판단하는 뿌리 깊은 야만성, 그 깊은 차별의 응달을 바닥에서부터 길어 올리는 그의 통렬함 앞에서 오랜 시간 인간의 야만적 본능이 가진 힘과 가부장의 논리가 뿌리서부터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복기를 시작한다.

 

 

구약의 역사, 더 나아가 인류의 역사에서 성차별의 어두움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하고 있는지를 보게 한다. 성경이 고발하는 성차별의 뿌리는 여러 층위의 다양한 편차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선명한 한 가지 해악을 보여 주는데, 계급 간 위계로의 악진화(惡進化)가 그것이다.

 

 

불평등한 성적 위계

위계의 원리엔 절대적으로 계급이란 개념이 따라붙는다. 계급의 본질엔 역할이나 기능으로서의 위, 아래가 아닌 차별의 개념 강화가 뿌리내리고 있음이 명확히 드러난다. 그러한 차별의 질서를 조화의 질서라고 합리화한다. 위계의 본질은 외면한 채 그 주변에 온갖 이론과 이념적 수사로 포장하기에 급급하다.

교회는 이러한 조화의 질서, 그 깊은 근간에 섹슈얼리티의 역할과 기능을 위계의 근간에서부터 풀어내려고 한다. 비근한 예로 여성이 먼저 뱀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에 여성이 원죄의 원흉이란 식의 접근이다. 그러한 주장이 바탕 정서로 자리 잡게 될 때, 겉으로는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 차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본질엔 '남성은 여성 위에, 여성은 남성 밑에'라는 위계의식에서 비롯된 차별의 개념이 스며들 수밖에 없다.

 

 

문제의 난처함은 이 부분에서 정점에 달한다. 교회의 바탕 정서를 이러한 위계의 방식에 포진시켜 놓으면 일단의 질서는 잠정적 온전함을 회복한 것처럼 보인다. 조화의 질서에 충실한 것처럼 보이므로 눈에 보이는 성차별의 사건에 대해 획일적 처리 방식에만 골몰하기에 급급해지는 것이다. 위계로서의 교회, 바탕 정서로서의 성차별을 인내하지 못하고 서투른 방식으로 처리했기에 이런 눈에 보이는 성차별의 사단이 일어난 것으로 원인을 진단해 버리는 것이다.

 

 

불평등의 진화

이렇듯 교회 정신을 구성하는 바탕 정서인 성경에서 결정된 성 역할이 전개될 경우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억압의 구성 요소는 불평등의 고착화다.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궁극적인 이유는 평등으로 이끌고 가려는 교회 정신의 근간이 성 역할의 생래적 불평등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는 분명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성경 전체의 흐름에서 남성과 여성의 위계가 어떤 식으로든 높고 낮음, 우월과 열등의 구조로 결정되어야만 성 역할의 안정성이 확보된다고 말하는 것은 해석의 의도적 파탄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렇다.

 

 

이 경우 교회는 불평등의 해소를 위해 그 바탕 정서를 언제나 성경에서 찾아보려 하지만 성 역할의 생래적 불평등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결여한 채 진행되는 문제 해결의 의지는 우월과 열등의 고착화를 초래할 뿐이다. 평등을 향한 선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고착화는 불평등을 견고히 지지한다. 이럴 때마다 교회는 해석과 현실의 딜레마 앞에서 방황하게 된다.

 

 

더욱이 오늘의 현실은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관련된 관계망이 자본과 계급, 과학문명과 문화의 분화와 함께 뒤섞여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 맥락에서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바탕 정서에 호소하지만 돌아오는 건 융합적 현실에 주어진 불평등 혁신의 다리를 걷어차거나 스스로 길을 잃어버리는 역진(逆進)의 길을 걷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교회의 본래 가치 회복 또는 수호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켜켜이 쌓여 가는 차별의 마각을 인지하지 못하는 헛된 순진함으로 교회만큼은 차별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그것이 도리어 비겁한 차별의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고 있지 않은가.

 

 

비겁한 차별을 넘어서는 교회

성경해석학에 대한 콘텍스트와 텍스트의 긴장감, 그 자체를 존중할 때 교회는 현실과 본래성 사이의 간극을 스스로 견디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긴장의 공존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교회는 비로소 성경을 역사와 인간 앞에 말하고자 했던 차별의 뿌리에 대한 솔직한 자기 고백으로 읽게 될 것이다. 성경의 인물을 통해 드러난 남성 중심주의, 편견의 민족주의, 우월성에 도취된 선민주의, 물질만능에 빠진 배금주의의 추태가 추태 그 자체로 고발될 수 있도록 텍스트의 본의를 지지하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교회가 차별의 바탕을 차지한 성차별과 그로 인한 불평등의 진화를 원천적으로 틀어막을 수 있다고 자신하지 말자. 오히려 교회가 불평등의 고착화를 방임할 수 있는 위험성으로 가득한 공동체임을 외면하지 말자. 그때 비로소 성적 불평등, 그 뒤틀린 억압과 차별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는 최소한의 성찰 기제를 확보할 것이다.

 

 

교회는 비겁한 차별로부터 넘어설 수 있다. 아니, 넘어서야만 한다. 예수를 생각해 보자. 그가 오욕과 억압의 역사 앞에서 어떻게 사랑했는지, 어떻게 비겁한 차별과 맞섰는지 기억하자. 그래도 교회는, 적어도 교회는 예수를 가장 열광적으로 이해하려는 처음이자 마지막 공동체 아니던가. 필자의 외침이 착각이 아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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