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은 환하다 / 박노해
눈 내리는 겨울 숲에서
우리 겨울 나무로 만나자
아무도 이 눈보라를 멈출 수 없고
누구도 이 추위를 막을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그대 곁에 겨울 나무로 서서
이 눈보라를 함께 맞으리
그리하여 얼어붙은 땅속에서
따뜻한 뿌리로 손과 손을 꼭 쥐고
가난한 체온을 함께 나누리
외로운 마음이 외로운 자의 친구가 될 수 있고
가난한 마음이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될 수 있어
우리들 벌거벗은 나무처럼 정직한 모습으로
겨울 사랑을 이야기하리니
봄의 희망을 이야기하리니
어느샌가 다가선 겨울 나무들
흰 산에 가득한
겨울 숲은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