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통과 물통
나처럼 어릴 때부터 집안을 난장판 만든 사람 드물거다.
그게 지금까지 계속되다니 나도 가히 이런 문제로는 금메달 감이다
내 나이 여섯 살 때 이야기 한 토막
울 아버지 39에 장가가셨다
그 때까지 총각(?)으로 지냈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기생하고 동거하고 있었다
형수가 소개를 해서 어떤 여자하고 약혼을 하고
일본으로 의사 공부 보냈는데
빨래터에서 빨래하던 사돈 끼리 빨래 방망이 물 튀는 문제로 싸우는 바람에
그만 강제 파혼했다
홧김에 절대로 장가는 안 간다. 하고 지내시다가
동네 친구들 하고 간 집에서 만난 기생하고 좋아져 버렸다
나중에 엄마 심부름으로 아버지 잡으로 그 기생 집에 자주 갔는데
그 기생이 날 너무 좋아해서(?) 맛있는 것 많이 얻어먹었다
그러면서 그 기생은 이랬다
“내가 너를 낳았으면 네 아버지 하고 내가 같이 사는 건데
난 아들 복이 없어서....)
그러다가 우리 교회 장로님(김 동기 목사님 부친)이
교회 처녀 몽달귀신 되겠다고 자기 친구인 아버지를 소개를 해서
그 때 학교 선생을 하던 우리 엄마하고 결혼을 했는데
아마 예수 믿는다고 약속을 했다나?
그리고 40에 아들 놓고 43에 그 아들이 경기 치료를 잘못해서 죽고
그 다음에 내가 태어났다
큰 아버지는 선생이셨는데 딸만 둘 낳았다
그래서 내가 태어나자마자 할머니의 등쌀에 못 이겨
큰 집으로 양자를 보냈다고 한다
내 형을 먼저 줬는데 죽고 나니 둘째는 절대 안 주려다가
할머니 눈 밖에 나서 고생깨나 하셨다
그러니 나는 어려서부터 큰집과 우리 집을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살았다
우리 집은 바닷가에 있었는데 그 바닷가서 여름이면 수영대회도 하곤 했다
가을이 다가올 무렵 거기서 혼자 낚시하다가 바다에 빠졌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용케도 지나가던 지게를 진 아저씨 덕분에 살아났다
수영도 못하는 어린 애가 물에 빠졌으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당시에는 수영장도 없어서 혼자서 초딩5년에야 수영을 배웠으니
6살 어린이는 물에 빠지면 죽는 때였다
그 아저씨가 집에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내가 엄청 욕을 벌었다
그리고 일 년여를 지나고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학교 근처인 큰댁으로 정식이사를 갔다
그 당시 큰 아버지는 통영수산중학교(당시 5년 제로 통영수산고등학교 전신) 교장이셨는데
교장사택이 세병관 아래에 있었다
그러다가 통영여자중학교 교장으로 전근이 되시어서 그 학교는 사택이 없어서
아버지가 집을 사서 형에게 줘서 주전골로 이사를 갔다
그 집은 아래 위채가 있는데 집 뒤에 남새밭이 있고 그 옆에 뒷간이 있었다
언덕 밑이라서 뱀도 종종 나온다고 누나가 나를 겁주는 바람에
화장실 가는 게 여간 고통이 아니었다
어느 날 화장실을 갔는데 매어있어야 할 신문지가 안 보이는 것이다
대변을 누고서 큰 소리로 소리 질렀다
“누부야 신문지!”
서너 번 불렀는데도 소식이 없다
그래서 반쯤 일어서면서 더 큰 소리로 “누부야 왜 신문지 안 주노?”
그와 동시에 발밑의 널빤지가 움직이더니 똥통으로 거꾸로 쳐 박혔다
머릴 내 미니 입술까지 똥이 찼다
그 때야 누이가 신문지를 가지고 왔는데
“와 신문지 안 가지고 갔노?” 하다가 내 몰골을 봤다
그 날 큰 엄마가 나를 씻기시고 옷을 갈아입히시고
동네 집집마다 떡을 해서 돌리셨다
그 이후 누나는 심심하면 똥통에 빠진 놈이라 놀렸다
그 소리 듣기 싫어서 우리 집으로 갔다가 할머니에게 이끌려서 다시 큰집으로 왔다
그 작은 누나는 올해 91세로 20년 이상 누워서 생활하신다
물에 빠지고 똥통에 빠지고....그래서 내가 오래 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