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에겔 은 그의 3분법 에서
흩어진 3위론 은 어떤 "참" 에 회귀 시킬 방향을
"종합" 이란 것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파르지팔 의 극 이나
피카소 의 게르니카.
혹은
비트겐슈탄인 의 철학 에서
부정 의 부정 됨으로 겷국 본래 로 회귀 한다 는
이 종합 의 유희, 그 처절한
현대 예술, 철학, 종교적 지식인 들의 착각으로
회귀 를 향해 몸부림을 치고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몇번이나 밝힌 것이지만
이 잃어진 낙원을 향한 회귀 과정 에서
단 한번도 율법 주의 가 되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율법 주의가 되고 싶어도
나의 신앙짓 으로 는 어림도 없었다 란
고백 까지 덧붙혔습니다.
그러매도 불구하고 나를 율법주의 라
영광스럽게 불러들 줍니다..
그런데도
이런 신앙종합 시대에
나는 율법 도 믿음도 도달못하는 내 널브러진 꼴을 알면서도
왜 이들의 곡해된 신앙가치 회귀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 부정 의부정적 종합주의 에 반항 하고 있을까요 ?
그것은
그들의 회귀 의 길에서
방종을 섞은 부정적 종합을 보았기 때문 입니다
율법을 거절함으로 믿음에 도달된다는 야바구 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교리의 도덕성 까지 허물고 자유로워야
깨침믿음 이 된다 는 방종 신앙 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회귀 란것은
지향된 목적지 와 존재성 그리고 잠재된 기억의 방향 이
있을때 만이 가능한 것이지
본래 의 원형, 존재, 방향 을 버리고 망각 한후에
우리가 회귀 될수 있는가 라는 질문인것입니다.
헤에겔 이 부정에 의한 부정 으로 부터 만들려던
그 가치 회귀 를 그는 겷고 방종종합 에 두지않고
참 의 종합에 두려 한것도
그래도 최소한 피조물로서 의 두러움 을 놓지 않으려는
그의 겸손한 철학이고 고민 이었다 고 나는 생각 합니다.
아무리 믿음 으로 자유스럽게 되었다 해도
겷국 믿는자 가 못될 속절없는 어르신 의 이 두러움 없는 종합 신앙유희 처럼
절대 율법 에 자신있는 저의 율법주의 도 이곳에 존재 하지 않습니다.
삼천포 어르신 께서 지적하신것 처럼
나는 어느곳에 도 자리버투고 있을줄 모르는 부평 잡초 입니다
무론 어르신과 감히 글짓 을 비교 하겠습니까 ?
그렇지만 이곳 지식인들의 그 지식남용 을
매달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