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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30 00:05

할 일 없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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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좀처럼 멈출 줄 모르는 사람들이 멈칫하게 할 만큼 커다란 소리였다.

나를 비롯해 이 도시의 누구도 그렇게 쉽게 옆을 돌아보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바쁜 사람들이니까.

이 도시에서는 걸인에게 돈을 주어선 안 되고, 잡상인의 물건을 사면 안 되고, 모르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선 안 된다.
교통사고였다.

십자로에서 컨테이너 트럭의 앞머리에 부딪친 경차 한 대가 종잇장처럼 이그러진 채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굳게 닫혀 있던 차문이 튕겨나가, 운전석에 있던 여인의 팔이 아스팔트에 축 늘어졌다.

나는 부장과 화상통화를 하며 정오 미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부장이 물었다.

뭔데?

나는 대답했다. 교통사고요.

부장이 말했다. 빨리 복귀해.
 다른 차들은 이미 정체된 도로에서 요모조모 주위를 살피며 차를 돌려 제갈길로 향했다.

어쩌다 한 번 곁눈질로 여인을 흘끗거릴 뿐. 평소엔 잘 그러지 않는데, 어쩐지 나도 눈이 갔다.

마흔 중순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경찰이 곧 올 것이었다.

주위의 사람들도 잠시 그곳을 바라보았다가 제 갈길로 가기 시작했다.
 

여자는 이마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여자가 외쳤다. 미안해요.

어서 갈 길 가세요.

다들 바쁘시잖아요.

샌 소리가 새어나왔다.

안전벨트를 끌러보려 안간힘을 쓰지만 여자의 몸은 차에 묶여 있다.

뒤집힌 앞범퍼에서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여자는 계속 외쳤다. 신경쓰지 마세요, 어서 가세요, 다들 바쁘시잖아요.

남학생이 멈칫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한데 학원이 급해요, 경찰이 올 거에요.

말끔한 정장을 입은 여대생이 머뭇거렸다. 저 지금 면접에 가야 해요, 이번엔 떨어지면 안 돼요, 경찰이 당신을 구해줄 거에요.

여자와 동년배의 주부가 흘끔흘끔 시선을 피했다. 집에서 애가 기다리고 있어요, 경찰이 당신을 도와줄 거에요.

중년의 남성은 서류가방을 바로 메고 짐짓 묵직한 목소리를 내었다. 회사 일이 많습니다, 경찰이 곧 여기 올 겁니다,

당신이 이해해야 해요, 당신도 똑같았을 거예요.
 

여자는 말했다. 알아요,

저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지만요.
 

전화기 너머에서 부장이 외쳤다. 뭘 보고 있는 거야? 빨리 돌아와!

아내에게서도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지금 어디야? 언제 들어와? 빨리 와, 애가 보채.

거리의 플랭카드에는 [공공예절을 지키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삼갑시다]라는 문장이 시뻘건 고딕체로 걸려 있다.
나는 바빴다. 지금 가지 않으면 부장의 면박이 떨어질 것이다.

회사에서의 지위가 위태로워지면 아내에게 인정받지 못할 것이고, 내 부모가 날 부끄러워할 것이다.

밀린 빚이 산더미인데 월급이라도 깎이면 안 된다.

나는 가야 한다.

전복된 차에서 사람을 꺼내는 일은 전문가가 하는 일이다.

티비 너머에서 나오는 대형사고나 내 앞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나 다를 것은 없다.

여인은 곧 잊힐 것이다. 그녀가 살아남든 아니든, 신문에 며칠 정도 실리냐 마느냐의 이야기일 뿐.

이런 일은 본 적도 없게 된 채로 계속 살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한 남자가 사고가 난 차로 다가가는 것을 보고 거리의 모두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경찰이 아니다

그는 소방수가 아니다.

그는 구조요원이 아니다.

말쑥한 정장. 풀어헤친 넥타이, 왁스로 빗어넘긴 머리, 그는 평범한 남자였다.

그가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가 외쳤다. 절 도와주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가세요.

여자의 눈빛이 간절하게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무표정하게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 기세였다.

그냥 가라니까요, 제발요,

당신의 일상을 방해할 수 없어요!
 

남자는 여자의 안전벨트를 칼로 끊어내고 여자를 무사히 끌어내었다.

차에서 안전해질 만큼 그가 충분히 물러서자,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분노했다.

위선자! 남학생이 외쳤다.

영웅행세하지 마요! 여대생이 고함쳤다.

당신까지 죽었으면 어쩔 뻔했어! 주부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제 목숨 귀한 줄 알아야지! 중년 남성이 길길이 날뛰었다.

나는 그저 아무 말도 못하고 쳐다보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한 마디는 모두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왜 날 구해줬나요?

당신은 바쁘지 않았나요? 여자가 울먹였다.

 

남자가 짙은 한숨을 쉬었다.

오늘 실직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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