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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른세살이었다. 흔히 착각하기를, 옛날 사람들은 일찍 어른이 되고 일찍 죽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이삭을 낳은 건 아흔살이 되어서였다. 그러니 기원 0세기의 서른세살은 일하기에 딱 적당한 나이였다. 몇년간의 보따리장사 끝에 수도 예루살렘에도 그의 강의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이제 겨우 자기 이름으로 된 강좌 두엇 정도는 가질 참이었다.

 

 

그가 주로 강의한 내용은 경제, 인권, 젠더 같은 주제였는데, 어려운 얘기를 정말 쉽게 말하는 재주가 있었기에 그의 학생들은 학력 제한 없이 그의 강의를 들으려 몰려왔다. 요즘 말로 하면 그는 분배에 역점을 두는 경제정책을 펼치고자 했다. 오병이어, 모든 사람이 가진 것을 내놓아 함께 먹으니 다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더라는 이 정책은 분배가 지닌 힘을 단순명료하게 보여준다. 그는 기본소득과 생활임금주의자여서, 포도밭 주인이 그를 대신해서 모든 일꾼에게 생계가 보장되는 임금을 주었다.

 

 

그의 교육정책은 어떠했던가. 여성은 부엌에 있고 남성은 학당에 있는 것이 순리인 시대에, 그의 곁에는 손등으로 턱을 괴고 이야기를 듣느라 눈을 빛내는 소녀들이 두어명쯤은 항상 있었다. 언니 마르타가 일하러 보내달라고 부르러 왔을 때 그는 마리아도 좋은 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했다.

 

 

그는 과시하는 부자의 거금보다 과부의 전재산인 동전 한닢에 가치를 매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도 유명한 일화다. 의료문제에 이르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가 치료비로 사람 차별 했다는 말을 들은 사람 있나? 그가 화를 낸 일은 영리병원을 짓겠다는 성전 장사치들에게 정도다. 그는 기득권자들을 대놓고 공격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 몫을 가지겠다고 했을 뿐이다. 가이사르의 것과 하느님의 것 중 하느님의 것을 가지겠다고 했을 뿐이다. 다만 그는 하느님 나라가 산 채로 임해야 한다고 했을 뿐이다.

 

 

그랬는데 그는 죽었다. 그들은 왜 그를 죽였을까.

 

 

한껏 비아냥 섞인 그의 죄명은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인데, 이는 일제강점기 불령선인 비슷한 것이다. 윤동주라든가 이육사 등에게 붙은 바로 그 죄명 말이다. 좀더 요즘 익숙한 것으로 골라보면 국가보안법 위반쯤 되겠다. 말하자면 그는 지나치게 정치적 영향력이 커질 것을 우려한 당시의 유력 정치인들에 의해 사회불안 사범으로 몰려 처형당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구름처럼 몰려들던 사람들, 그중엔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환호하던 사람들도 있었을 거다.

 

 

오죽하면 그가 죽으러 가는 마당에 “예루살렘의 여인들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해 우세요. 더 힘든 날이 닥칠 겁니다”라고 했을까. 하지만 그 눈먼 듯 보이는 군중들의 발걸음이 이루는 리듬이 ‘새날이 온다 새날이 온다’라는 노래처럼 들렸던 사람들은 불안했나 보다. 댓글부대와 가짜뉴스를 동원하여 그들은 강도 대신 그를 죽이라고 외치게끔 여론을 조작했다.

 

여기 참혹하게 죽어간 한 청년이 있다. 어쩌면 그의 실제 이름은 예수였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를 김용균이라고 불러버렸기 때문에 그는 이름이 바뀌었다. 김용균뿐만이 아니다. 아니 예수라는 이름이 기원 0세기엔 김용균이라든가 박준경이라든가처럼 굳이 불러보거나 들어보려 하지 않으면 귓가를 스쳐가버리는 그렇고 그런 이름이었을 거다. 그의 인생이 어떠했는지는 몰라도 그가 가지고 싶었던 자기의 몫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안다.

 

 

안전한 작업환경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임금과 신분보장. 이천년 전 포도밭 일꾼도 가졌던 것들. 이 청년은 물론 강의를 하거나 사람들을 구름처럼 모으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일하기 딱 적당한 나이에, 이윤추구라는 이름 뒤에 숨은 사회 유력 인사들의 고의적 외면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불행히도 그가 죽은 다음에야 우리 귀에 닿았다.

 

이렇게 단순명료하게 비교되는 이야기를 우리는 무려 이천년이나 듣고 사는데도 왜 아직도 그의 이름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을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네온사인에 지나지 못한다. 어떤 이는 내 죄를 대신 지고 죽는 사람, 그러니까 위험을 외주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라 부르고 또 어떤 이는 강사법을 빙자하여 곧 정리해버릴 시간강사라고도 한다. 크리스마스다. 메리 크리스마스다. 풀어보면 구세주와 함께 드리는 제사의 날. 기도하지 말자. 화내자.

 

노혜경 시인 

출처: 한겨레신문 논단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75741.html?_fr=mt5#csidxa9a322ea90f739abf2bc3ba6bfb52c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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