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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마 23: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나는 솔직히 예수님이 언급하신 그대로 바리새인들만도 못한 자임을 고백한다.

내가 내 스스로를 아무리 점검해봐도 십계의 정신은 놔두고라도

십계의 문자라도 충실했던 저 바리새인만도 못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요즘 우리 재림교회 안의 성도들 중

제발 바리새인만큼이라도 십계의 정신인 사랑은 차치하고서라도

십계의 문자라도 성실히 키지는 자들을 보기 원한다.

 

실상은 바리새인보다도 못한, 즉 율법의 문자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자신의 변화되지 않는 품성과 참 믿음으로 인한 변혁과 열매가 없는 삶을 변명하고

호도하기 위해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남발하는 거짓 복음 기별자들이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 저들이 율법에 신실한 자들을

바리새주의로 염색된 율법주의자로 매도하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기도 하다.

 

나는 과연 바리새주의로 염색된 율법주의자인지 아랫 글로 답을 대신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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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할 주제 : 맛보지도 말아야할 다른복음! 

 

 

 

우리가 처음 예수 믿을 때 얻는 칭의(稱義)는
우리 전 생애의 죄에 대한 것이다
침례 받을 때 까지 만의 죄가 아니라,
우리가 죄 중에 출생하면서 가지고 나온 신분적이고 본질적인 죄와
우리가 일생의 삶을 통해 짓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들을 망라하여 용서받고 씻음 받는 것이다.

나의 전 생애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부활함을 상징하는 의식이 바로 침례식이다.
내가 미래에 긍극적으로 신령한 몸으로의 변화와
부활을 경험할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침례식인 것 동시에
나의 전 생애의 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과거, 현재 뿐 아니라
미래의 것들까지 모두, 전부 물속에 장사되어 용서받고
칭의된 것에 대한 보증이 바로 침례식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침례 이후에 짐짓 범죄 하거나 부지중에 죄를 지으면
회개를 하는데 그때의 회개를 통해 그날 죄를 용서 받는 것이 아니고
실상은 침례 시 이미 내가 믿어 버려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영원히 못 박혀 버린
용서받은 죄를 확인하는 것 뿐 이다.

다시 말하면 매일의 삶속에서의 회개의 경험은
이미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경험인 침례 시에 처리된 죄였음을
다시 한 번 예수 믿음으로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한 것이다.
예수님은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라고 하셨다.


우리가 자주 세족예식을 하면서
우리는 매일의 삶속에서 우리의 연약함으로 더럽혀지고 구겨진
그리스도의 옷을 흠 없고 주름 잡힌 것이 없는 것으로 만들면서
그 세족예식(침례의 기념예식)의 ‘죄 용서 영수증’을 통해
다시 한 번 침례 시 영원히 못 박힌 나의 죄를 보면서
바로 나의 죄가 무흠하신 어린양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것임을 인식하면서 눈물로 아파하고
나의 그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어린양 예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교회 안의 "완전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무흠했던 아담이 선악과를 먹는 동시에 의의 옷이 벗겨진 것처럼
오늘 우리도 영적 생애 중에 한번만이라도 범죄 하면
그 즉시로 칭의된 옷이 벗겨진다는 것은 억설(臆說)이다.


아담은 범죄 하여 죽은 것이고,
우리는 침례 시에 이미 일생의 죄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힌 것을 믿고
새 생명 가운데로 들어와 있기 때문에,
연약하여 범죄 하였을 때일지라도
이미 그 죄악까지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어 버린 것임을 믿음으로 확인하고
그 순간에 나의 죄를 위한 대언자 예수께서
바로 나의 그 죄 때문에 하늘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아직도 일하고 계심을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이러한 삶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삶이며
그러한 사람에겐 결코 정죄가 없는 것이다(롬8:1참조).
이러한 성도들이 진정 율법에서 벗어나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아들로서의 자유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연약하여 실족하였을 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회개를 요청하는 음성을
지속적으로 거절하고 성령을 좇아 살지 않는 삶을 계속하여
영적 양심이 무뎌져서 결국 성령께서 떠나버리고
화인 맞은 양심이 되어 버렸을 경우이다.


그것이 바로 용서 받을 수 없는 성령 훼방죄로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마12:31;요일5:16참조).

그렇게 되는 절망적인 최후의 상황을 막기 위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시기하면서까지
우리를 위해 우시며 간원하시는 것이다(약4:5참조).
예수 믿고 침례 받을 때 하늘 생명책에 녹명된
우리의 이름들이 흐려지거나 지워지지 않도록 말이다(계3:5;출32:32참조).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히 6:6)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no turning point)에 이르기 전에
성령께서는 끊임없이 말씀과 환경과 사람과 상황과
우리 양심을 통해 끊임없이 호소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엡 4:30)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한번이라도 범죄 하면 칭의에서 떠난다는 말은
곧 하늘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지워 버린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성경은 너무도 확실하게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그 이름들이 도말되지 않도록 흐려지지 않도록
성령의 사역이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하나님의 자비이며 큰 긍휼이신가!
그리스도 안에 날마다 믿음을 활용하여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연약함으로 짓는 죄들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들]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미 그 죄들은 침례 시에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죽게 만든 신분적인 죄와 우리가 짓는 전 생애의 죄를
용서 받는 데는 우리의 행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우리의 무엇을 먹고 안 먹고, 어떤 선한 일을 하고 안하고
무엇을 지키고 하는 것 등은 이 단계에서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다.
"오직 예수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의 전 생애의 죄가 용서받고

한 번도 죄 짓지 않은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격은
‘오직 예수 믿음’이며

‘오직 믿음의 법’이며 ‘오직 은혜’일 뿐이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롬 3:27)


"믿음의 법"으로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며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다.


그 어떤 것도 여기에 게재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일생의 죄들을 오직 예수 믿음으로 용서받고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씻음 받은 우리들이
그 다음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살 때는
그 ‘오직’에 그 무엇인가를 자꾸 붙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골로새 이단들이 그랬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랬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생의 죄들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믿음으로 용서된 것을 경험하고도
칭의된 이후의 성화의 삶은 율법의 행위로 해야 한다고 하고
먹고 마시는 것, 절기, 월삭, 안식일을 지키는 것,
‘일부러 겸손’과 천사 숭배 등의
[행위적인 것들]로 거룩을 유지하고
그래야만 온전해지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한 거짓 완전론, 행위적인 완전주의가 거짓 선생들을 통해
슬그머니 교회 안에 스며 들어 온 것이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갈 2:4)

[오직 믿음]인데 거기에 어떤 인간의 행위와 율법의 준수,
도덕과 선행과 공덕의 결과들이 의로움과 거룩함의 조건인양
제시되어지는 당시 현실 앞에서 바울은 단호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1-3)


그러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갈 1:6)
고 한탄하였다.

그리고 “믿음에 굳게 서서”(골2:7) 있지 못하고
우리 의로움이신 그리스도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골2:19)
세상 초등학문에 불과한 그러한 행위적인 것들로의 거룩과
의로움을 추구하는 것들에 대해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골2:21)
고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적인 "먹고" "마시고" "입고" "하고"
"안하고"의 방식으로 성화(聖化)를 주장하고 의로움을 얻고
그렇게 해야 완전해진다고 생각하는 교리나 가르침은
“쓰는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골2:22)고 하면서
성경이 아닌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지 말라고 강권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데
지혜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를 좇는 것을 금하는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
다고 결론을 짓고 있다(골2:20~23참고).


칭의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였다면,
성화도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1-2)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은 칭의 후에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성화의 단계도
“믿음으로 서있는 은혜”라는 것이다.
오직 믿음이 아니면 서 있을 수 없는 은혜가 바로 성화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성화의 표징]이라고 말하는 안식일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안식일을 지켜서 성화되는 것이 아니다.
안식일 자체가 우리를 성화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시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 인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겔20:12)


위 성경절에서 확연히 드러나듯이
안식일이 기능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우리가 지키는 안식일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줄 착각한다.

다른 말로 완전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어떤 특별한 행위나
구별된 생애 등이 자신들을 거룩하게 하고 성화케 하고
완전케 하는 수단인 줄 착각하는 것이다.

성화의 주체는 [의] 자체이신 "오직 예수"밖에 없으며
그분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완전하다고 하실 수 있으시다.
칭의나 성화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상실한 경우를 들어보자.

어떤 교인들에게서 우린 가끔 황당한 이야기들을 불쑥불쑥 듣게 된다
자신들이 교회에 충실하지 못했거나 어떤 실족한 일이 있으면
'내가 아직 거듭나지 못해서...'
혹은 '내가 아직 성화가 덜 되어서...'라고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말하곤 한다.

신앙생활을 몇 년 혹은 몇 십 년 하고 있는데도
자신의 작은 실수들을 보면서 자신이 아직 거듭나지 못했거나
아직 성화되지 못한 사람이라고 자책하는 것이다
사실 이 말은 엄격하게 따지면 아직 그는 그리스도인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거듭나지 못하고 의롭게 되지 못하고 거룩하게 되지 못한 자가
어찌 '성도'일 수 있으며 '교인'일 수 있겠는가?


여기에 우리의 착각이 있다.
많은 교인들은 우리가 처음 예수 믿을 때는
예수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는데
살면서 착한 일 많이 하고 선행을 쌓고 교회에 헌신하고
기도 많이 하고 해야만 '성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칭의의 결과가 곧 성화임을 망각하고 칭의는 값없이 받았지만,
성화는 우리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안하고의 행위 문제가 결부되어
때로는 극단주의로, 또 율법주의로
광신적으로 되어 버리는 경우도 허다한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점점 성화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성화 중에서 더욱 온전한 표준인
그리스도를 향하여 자라나고 성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 예수 믿고 의롭다함을 얻을 때
이미 우리는 "단번에" 거룩해졌고
그래서 '성도'가 되었고 성화 가운데 들어서게 된 것이다.
우리의 신분이 마귀의 아들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바뀌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이고 죄인에서 의인으로 된 것이다.

선지자의 글을 읽고 순종하면서 재림교인들이 사는 독특한 삶과
우리의 변화된 생애와 구별된 삶은 칭의의 결과이며 열매이지
성화를 위한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렇게 그날 당장 죽어도
구원과 영생이 보장된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획득하고도
아들답게 살지 못하고 종처럼,
삯군처럼 일한 댓가대로 그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시도들을
우리 생애 가운데 얼마나 많이 했었는가?


우리는 아직도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의 종 기질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종과 삯군의 기질이 농후한 사람들일수록
재림하실 예수님 보다는 어떤 사건들을 기다리고
삯을 받기 위해 얼른 해가 지기를 바라면서
일은 하지 않고 서산만 바라다보는
극단 주의적 종말론 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재림교회 주변에 [완전론 주의자들]이나 그런 그룹치고
극단적인 종말 가르침과 시기를 정하는 문제 등으로
교회 안팎에서 문제를 야기 시키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이다.


1960년대 입산파들과 시기파가 그러했고,
1980년대 후반  희년설을 주장하면서 재림의 시기를 정했던
그들이 그러했고,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의 국가적 일요일 휴업령이
내릴 것이라고 하면서 도표까지 그려냈던 그들이 그러했다.
그리고 아직도, 지금도 그런 행위적 완전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우리 주변에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종]이 아니라 [아들]이다.
[종의 기질]을 벗어 버리고 [아들]답게 살아야한다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 8:35-36)


율법의 행위적인 것들에 얽메여
“의문의 묵은 것으로”(롬 7:6) 섬기는 종의 삶이 아닌,
“얽매였던 것”(롬 7:6)에서 벗어난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롬 7:6)기며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약 1:25)의 물위를
믿음으로 거닐며 아들답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하자!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명하신다
“물 위로 오라”(마 14:28)
“바람을 보고 무서워”(마 14:30)하지 말고
오직 예수만 바라보고 '믿으면'
우리는 인간의 과학으로나 상식으로나 힘으로

전혀 불가능한 그 물위를 주님과 함께 자유로이 거닐 수 있다.

우리의 거룩함과 의로움과 완전함의 근거는
우리의 그 어떤 행위적인 것들이  아닌,
'오직 예수로 말미암아'

'오직 예수 믿음'임을 망각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나 안전하다.
우리의 시선이 '오직 예수'에게서 떠나
'행위적인 것들' 곧 바람을 보면
우리도 베드로처럼 빠져 죽게 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혹 우리가 그런 위기에 있을지라도 베드로처럼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마 14:30)라고 다시 주님을 바라보면
주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마 14:31)아 주시는
자비와 긍휼과 은혜가 풍성하신 사랑의 주님이 되어 주신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 바라보자!!!”(히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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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풀피리 2016.09.24 05:13

    x

  • ?
    안성맨 2016.09.24 05:16

    x

  • ?
    의문 2016.09.24 08:28
    매우 훌륭한 글입니다.

    다만, "믿음의 법"으로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며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다" 에서 '완전한'이라는 말을 '온전한'이라는 말로 대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힘입어 '온전한' 삶을 살아가면서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 ?
    말석 2016.09.24 19:53
    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주 안에"있는 '완전'과 '온전'이 무엇이 다를까요? ^^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하신 것처럼,
    그 예수 안에 있는 우리 모두도 온전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예수님이 완전하신 것처럼,
    오직 믿음으로 그 예수 안에 거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 예수로 말미암아
    완전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그 완전한 생애를
    우리도 본받고 닮아가기 위해
    날마다 주 안에서 푯대를 향하여 다름질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 3:12-16)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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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7 5.18 광주사태는 폭동도, 민주화운동도 아니었다. 북한 공작조가 남남갈등을 일으켜 내란 봉기를 시도한 사건이었다.-관리자에 의해 삭제 12 눈장 2017.08.20 252
1266 풋풋한 그런 세월도 나에게 있었다 4 file 박성술 2016.12.15 252
1265 (박성술과 가톨릭 신부 두 사람의 사상과 성경 해석을 비교한다) '빨갱이' 말한 신부님, 성당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12 술술 2016.12.10 252
» 변화와 열매 없는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거짓 복음 꿰뚫어 보기 - 내가 바리새주의로 염색된 율법주의자인가? (나의 사상 검증) 4 file 말석 2016.09.23 251
1263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종말 3 징조 2017.01.26 250
1262 의식주 4 file 김균 2023.09.22 249
1261 은퇴에 대해 무실 2018.12.25 249
1260 미주 뉴스앤조이에 나온 광고를 이용하여 또 한 번 선전. ^^ 김원일 2017.02.23 249
1259 이재명의 부상과 대선 1 김원일 2021.11.22 248
1258 에스 독구 메리 봇지 2 file 김균 2018.12.24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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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6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 두리니" (스바냐 3:12) = 평화교류협의회가 북한 수해를 말하다 (첨부파일: 아래아한글, MS Word) 1 (사)평화교류협의회[CPC] 2016.11.03 248
1255 사탄에 관한 복음 4 file 김주영 2016.11.12 248
1254 <지진>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십니다 12 재림의 징조...지진 2016.09.24 248
1253 이 남자가 화장실을 못 간 이유.....에라이! 몹쓸 박가야! 5 황금동사거리 2016.12.12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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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 일용 할 양식. 16 박성술 2016.10.24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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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4 김운혁 님께 드리는 정중한 부탁 (몇 번째 "정중한 부탁"인지는 모르겠으나) 김원일 2022.01.18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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