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만큼 기독교인들이 신학적으로 귀중한 교범으로 받드는 책이 없는데
그 '신학적' 담론의 마침은
14장에 와서 무엇을 먹고 마시는 문제로 서로를 판단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화와 기쁨이라는 말씀과 함께.
왜 바울이 이런 식으로 끝맺음을 했을까
늘 의문이 있었다.
최근에 유툽에서 NT Wright 의 로마서 해설을 좀 보면서
아하! 깨닫는 것이 있었다.
Wright 은 로마서의 배경을 이렇게 그린다.
바울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의 신자들에게 편지한다.
로마에는 아마 당시 초대교회 모습 그대로 가정을 중심으로 모이는 몇개의 회중이 있었을 것이었다.
개별적으로 많아도 수십명도 되지 않는, 다 모아 봐야 많아야 기백명 될 듯 한 그런 교인들
그 가정 교회들은 서로를 잘 알지 못했을 수도 있고
서로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21세기에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들의 모습이나
본질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가장 심각한 골짜기는 유대인 교인들과 이방인 교인들 사이였을 것이다.
바울은 이들에게 서로를 받으라고 말한다.
하나님에게는 거대한 계획이 있다.
구태여 좀 거칠게 표현하면
갈라디아서에서는 유대인이 갑이었다면
로마에서는 이방인이 갑이었다.
그들에게 바울은 자신의 동족인 원감람나무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이
이방인 그대들도 아끼지 않으실 거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을 말한다.
그런 배경에서 볼 때
무엇을 먹느냐
누구와 먹느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아이덴티티를 구별하는 가장 눈에 띄는 표였다.
나의 나 됨, 내 소속된 공동체의 아이덴티티, 소중한 가치, 특색, 유니크한 색깔
이런 것을 내세워 서로를 의심하거나 편을 가르거나 담을 쌓지 말고 서로 받으라고 말한다.
오늘날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가 새삼 새겨야 할 부분이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보니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이
화잇 여사의 건강기 별로 인하여
재림교 내에서만큼은 다시
로마서를 기록한 동시대로 되돌려 놓고 말았다는 느낌.
지금도 예수를 믿는
모든 교인들의 아이덴티티를 구별하는 가장 눈에 띄는 표는
"무엇을 먹는가" 가 아닌가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