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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1 06:15

그림자를 판 사나이-3

조회 수 248 추천 수 0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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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자야?”
“대학생.”
“미쳤구나.”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겠는데, 그거하고는 달라.”
“내가 무슨 생각 하는데?”
“무슨 생각을 하든, 하여튼 그건 아냐.”
“그럼?”
“그냥, 내 미사 때마다 맨 앞에 와서 앉아 있어.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어.”
“그게 전부야?”
“전부야.”
“고백성사는 보러 안 와?”
“들어와. 그러곤 아무 말도 안 해. 말을 하라고 다그치면, 자기가 모르는 죄를 사해달래.”
“예뻐?”
“예뻐. 청년단체들 엠티 갈 때 지도신부라고 따라가잖아.

한번은 청평으로 갔는데 추워서 강이 꽁꽁 얼었거든. 강 위에서 청년들이 썰매도 타고 게임도 하고 노는데,

신부님도 오세요, 그러면서 나도 끌고 들어가는데, 자꾸 걔만 보이는 거야.

그런 느낌 너는 알 거 아냐? 그애가 지나가면 어떤 광채가 지나가는 것 같아.

그애가 다른 남자애들과 장난을 치고 있으면 차마 볼 수가 없어. 하루는 배구를 하는데, 그애가 내 앞에 있었어.

여자치고는 키가 큰 편이거든. 그애가 블로킹을 하려고 점프를 할 때마다, 나 미쳤나봐,

청바지 속에 들어 있는 그 작고 단단한 엉덩이가, 올라갈 때는 잔뜩 긴장했다가 착지할 땐 살짝 출렁이잖아,

그런 게 보이는 거야. 아니, 느껴져. 마치 내가 손을 대고 만지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한번은 그애가 점프를 했다가 넘어졌어.

옆에 서 있던 남자애들이 팔을 붙잡아 일으켜주더라구. 그애, 까르르 웃으며 일어나면서 글쎄

오른손으로 제 엉덩이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는 거야. 다시 흔들리는 두 덩어리의 그……”
“너 좀 심하구나.”
“나도 알아.”
“근데 걔가 너 좋아하는 거 확실해?”
“아니면 평일 미사까지 꼬박꼬박 챙겨서, 그것도 맨 앞자리에서……”
“그건 그래.”
“사실은 이메일도 보내와.”
“내용은? 설마 자기 누드 같은 거 담아서 보내는 건 아니겠지? 날 좀 어떻게 해주세요, 신부님!”
그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의 굵은 눈썹이 마치 위험을 감지한 곤충처럼 살짝 일그러졌다.

그는 반쯤 남은 채로 식어가는 면발을 포크로 뒤적이며 말했다.


“스테파노, 너 요즘 상태 안 좋구나.”
“내용이 뭐냐니까?”
“그냥 이런저런 얘기. 상담을 가장한 연서.”
“자꾸 나오네. 딴 건 없어?”
“딱 한 번 술 같이 마셨어.”

잠깐만.”
나는 식탁 위의 빈 접시를 치웠다. 그리고 간단하게 술상을 보아 응접실의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는 동안 바오로는 멍하니 앉아 내 책장 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가져온 스카치위스키의 봉인을 뜯었다. 아무래도 맨정신으로 듣기에는 힘든 얘기였다. 하는 사람이야 오죽하랴.


“내가 신부 같다야.”
“될 뻔했잖아.”
“아냐. 나는 금방 그만뒀을 거야. 연애도 맘대로 못 하고 그게 뭐냐.”
“저녁 미사 끝나고 나면 무지하게 공허할 때 있거든. 할머니들 앉혀놓고 기계적으로 영성체하고 복음 읽고, 복사들 데리고 들어갔다 나왔다 하다가 사제관에 오면, 문득, 이 생이 이대로 끝난다는 생각이 목을 죄어오는 거야. 나는 젊다는 게 뭔지도 모르고 토마스 아퀴나스나 파다가 이십대를 보냈어. 그런 생각 하다보니 갑갑해져서 옷 갈아입고 술집에 갔지. 바에 앉아서 막 병마개를 따는데 옆에 누가 와서 앉더라구. 걔였어. 확 향수 냄새가 풍기는데 그야말로 아찔하더군.”
“굶고 사니 감각만 발달하는구나. 그래서?”
“성당 앞을 지나다 봤나봐. 아님, 미행을 했는지도 모르지. 어쨌든 둘이 말없이 앉아 술을 마셨어. 술이 좀 도니까 그 여자애가 조잘조잘 말을 하는 거야. 그 작은 볼로 숨이 드나들고 그 숨이 말이 돼서 내 귓가에 살랑거리는 게……”
“그래서, 잤어?”
바오로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 역시 그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려고 망설이는 눈빛은 아니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신부가 신자하고 자는 건 반칙이겠지? 네 등뒤에 매달려 있는 예수 백으로 하는 거니까. 일종의 후광효과지.”
“나도 알아.”
“다행이다.”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내 서가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손으로 책등들을 건성으로 훑었다. 드르르륵. 책들이 떨리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거기서 세실리아 봤어.”
“세실리아? 미경이 말이야?”
“응. 혼자 와서 술 마시고 있더라구. 날 진작에 알아본 모양인데, 내가 어린 여자애하고 있으니까 등 돌리고 있었나봐. 화장실 가다가 딱 마주쳤어. 쪽팔리더구만.”
“아침에 전화 왔었는데.”
“그래?”
바오로가 몸을 돌렸다. 그때 문득, 새 그림자가 내 위를 휙 지나가는, 차갑고 선뜩한 느낌이 덮쳐와 나는 천적을 만난 설치류처럼 몸을 조금 웅크렸다. 그는 그 어린 여자애 때문에 온 것이 아니었다. 아무 근거도 없이 그런 확신이 들었다. 미경이었다. 지진이 있었고 미경이 전화를 해왔다. 그리고 바오로는 우리 집에 와 있다. 이 모든 일이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맥주 없니?”
나는 냉장고에서 카스 캔을 꺼내 갖다주었다.
“잔도.”
그는 내가 갖다준 잔에 맥주를 따르고 그 위에 살짝 양주를 부었다.
“사제관에서 먹는 방식이야. 근데 아침에, 세실리아가 별말 안 하디?”
“내가 바쁘다니까 그냥 다음에 보자고 하던데.”


바오로와 미경이 화장실 앞에서 조우하는 사이, 어린 여자애는 슬며시 술집을 빠져나갔다고 했다. 미안해,

나 때문에. 미경이 사과했고 그는 괜찮다고 했고, 근 십 년 만에 만난 둘은 자리에 앉아 새로운 술을 시켜 마시기 시작했다는 얘기.

그건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의 오랜 친구, 게다가 술까지 센 두 남녀가,

일대일로 만났으니 술 한잔하는 것이 문제될 것은 없었다. 게다가 미경은 고등학교 시절,

바오로를 향해 연정을 불태우던 그 수다한 여자애들 중에서 단연 발군이었고 결국 인생의 한 시기, 바오로와 연인으로 지내는 영광을 누렸다. 지금까지도 그걸 영광으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여자애들은 그녀에 대한 루머를 퍼뜨렸고 소문 속에서 미경은 수십 번 애를 낳고 유기했다.

전교 일이등을 다투는데다 미모까지 출중한 여자애가 인기 제일의 남자애와 사귀고 있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바오로와 나, 미경은 곧잘 함께 어울려 다녔다. 미경과는 바오로 얘기를 했고 바오로와는 미경이 얘기를 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랬기에 둘과 별 마찰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질투가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면 미경이라는 특정한 여성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그런 관계에 대한 선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춘기에만 가능한 그 낯간지러운 진지함이 나는 부러웠다.

물론 미경은 예뻤다. 분명한 의지를 드러내는 콧날에 동그랗고 검은 눈동자가 어우러져 마치 네덜란드 산 도자기인형 같았다.

<계속>

 

 

  • ?
    김원일 2017.06.12 08:01
    재밌네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지만.
  • ?
    단편 2017.06.13 04:41

    그림자는 팔 수도 없지만
    살 사람도 없지 않나요?
    그런데 그림자를 판 사람이라는 제목을 선정한 작가의 시선집중 능력이 남 다르네요
    한 여자를 위한 두 남자의 처신이 과연 잘 한 처신 인지는

    적어도 한 사람은 성직자라는 신분인데
    끝까지 다 읽어봐야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겠지요

  • ?
    김원일 2017.06.13 07:36
    그러니까요.
    작가의 이상 문학상 수상 작품 <옥수수와 나>를 한 5년 전엔가 읽은 기억이 있는데
    이 단편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합니다.
    그의 잘 알려진 허무주의 쪽으로 흐르겠지 하면서도 기대되네요.
  • ?
    이해난망 2017.06.12 21:54
    참으로 이해할수없는 조회수
    어떻게 3회가 2회보다 더블로 많은가?
    본문보다 댓글에 더 관심이 많은듯
    제사보다 젯밥에 만 ...ㅉㅉ
  • ?
    단편 2017.06.13 04:49
    창공의 작은 새가
    잠시 그림자를 드리우는 가 보다
    하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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