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2017.05.02 15:16

나의 어머니-박제가

조회 수 15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나의 어머니
   
번역문

   그릇을 씻다가 내 어머니를 생각하면, 아침저녁 끼니도 잇지 못할 양식으로 음식을 준비하시던 일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으니, 다른 사람도 그렇겠는가? 옷걸이를 어루만지다 내 어머니를 생각하면 못쓰게 된 솜으로 늘 추위와 바람을 막아줄 옷을 다 지어주시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도 나와 같겠는가? 등불을 걸다가 내 어머니를 떠올리면 닭이 울 때까지 잠 못 이루시며 무릎을 굽혀 삯바느질하시던 모습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이런 경험이 있겠는가?
   상자를 열다가 어머니의 편지를 얻어 자식이 먼데 나가 노니는 데 대한 마음을 술회하시고 헤어져 있는 괴로움을 말씀하신 대목을 보면 넋이 녹고 뼈가 저미지 않을 수 없어, 갑자기 차라리 몰랐으면 싶다. 손꼽아 어머니 연세와 내 나이를 세어보니 돌아가신 어머니 연세는 겨우 48세이시고 나는 24살이니, 슬피 머뭇거리며 소리를 놓아 길게 부르짖으며 비 오듯 눈물 흘리지 않을 수가 없구나.

원문

滌器而思吾親, 未嘗不念其或醎或淡, 朝夕不繼之食矣, 他人其然乎哉? 撫椸而思吾親, 未嘗不憶其敗絮不完, 歷盡風寒之衣矣, 他人其同乎哉? 懸燈而思吾親, 未嘗不想其雞鳴不寐, 曲膝傭針之狀矣, 他人其有乎哉? 發篋而得親之書, 見其述遠遊之情叙離別之苦, 則未嘗不魂消骨冷, 溘欲無知也. 屈指而算親之齡, 與已之生, 而四十纔八,二十逾四,則未嘗不悵然踟躕, 失聲長號, 而淚之無從也.

-박제가(朴齊家, 1750-1805), 『초정전서(楚亭全書)』, 「서풍수정기후(書風樹亭記後)」

   
해설

   전주 이씨는 자식의 앞날을 위해 무엇이든 하리라 결심했다. 서얼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가난과 차별을 경험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의 아버지 우부승지 박평(朴玶)은 둘째인 제가(齊家)가 11살 때 세상을 떠났다. 이씨는 본가에서 나와 청교(靑橋), 묵동(墨洞), 필애(筆厓) 등지를 전전하며 이사를 다녔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남의 집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려가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씨는 자식에게 공부를 시켰다. 아들인 제가는 총명하고 똑똑했다. 말수가 적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고집이 너무 센 게 염려되긴 했지만, 어릴 때부터 입에 붓을 물고 다닐 정도로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한 아이였다. 측간에 들어가면 모래에 그림을 그리고, 앉기만 하면 허공에 글씨 쓰는 연습을 했다. 열 살 무렵에 이미 『맹자(孟子)』 『시경(詩經)』은 물론 『이소(離騷)』 『진한문선(秦漢文選)』 『두시(杜詩)』 『당시(唐詩)』 등을 읽고 스스로 비점을 찍을 만큼 남다른 재능을 지녔다. 어머니로서, 가난 때문에 아이의 남다른 재능을 썩힐 수는 없었다.

 

   이씨는 동네 주변에 이름난 명사(名士)가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수소문을 해서라도 찾아내 집으로 초청했다. 술과 안주를 푸짐하게 차려서 자식과 어울리게 했다. 덕분에 박제가는 당시의 저명한 인사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푸짐한 상차림을 대접받은 사람들은 박제가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박제가의 말에 따르면 어머니는 온전한 옷을 걸쳐본 적이 없고, 좋은 음식을 먹은 적이 없었다. 새벽까지 잠도 못 자면서 바늘 품을 팔아 자식을 공부시켰다. 그와 같은 어머니의 눈물겨운 헌신 덕분에 자식은 훌륭한 문장가로 성장해 갔다. 열일곱 살에 결혼도 했고 박지원(朴趾源), 홍대용(洪大容), 이덕무(李德懋), 유득공(柳得恭) 등 백탑(白塔) 주변 실학자들과 어울려 공부하면서 북학(北學)의 꿈도 키워갔다. 그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을 꿈꾸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리라 다짐했다.

 

   그러던 1773년 겨울, 박제가가 스물네 살이던 해에 어머니 전주 이씨가 세상을 떠났다. 날마다 늦은 밤까지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리다가 허약해진 몸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스러진 것이다. 집안의 생계를 홀로 떠맡은 가장으로써, 자식의 성공과 살아갈 방도를 위해 새벽까지 삯바느질하던 어머니는 자식의 성공도 보지 못한 채 그렇게 눈을 감았다. 그때 이씨의 나이 마흔여덟이었다.

 

   박제가에게 어머니는 가난한 엄마, 자식 생계를 위해 새벽까지 잠 못 들고 일하시던 엄마였다. ‘다른 사람도 그랬겠는가?’ 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하는데 이르면 자식 뒷바라지로 평생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정한이 몹시 절실하다.

 

   박제가는 어머니 유품을 열었다. 편지 한 통이 나왔다. 예전 멀리 나갔을 때, 몸조심하라며 걱정하시던 어머니의 편지였다. 애타는 엄마의 마음을 읽자니 넋이 녹고 뼈가 저려와 차마 편지를 몰랐으면 싶다. 너무 일찍 떠나가신 어머니 나이를 떠올리니 한스러움이 밀려와, 박제가는 목 놓아 울었다.

 

   윗글 「서풍수정기후(書風樹亭記後)」의 시작은 이러하다. 부모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세상의 온갖 영화를 누리며 오래 살다가 떠났을 때, 그 자식이 남 못지않게 서럽게 운다면 사사로운 욕심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하늘의 이치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나면서부터 가난 속에서 굶주리며 이리저리 떠돌다 불행히 일찍 세상을 떠나갔을 때, 그 자식이 남보다 서럽게 우는 것은 하늘의 이치일까? 그렇지 않다. 사사로운 마음이다. 골육(骨肉)의 마음은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더하거나 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더 한스럽고 사사로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고생하신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남보다 더욱 서럽고 더욱 아프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민한 감수성으로 자기만의 시 세계를 구축한 시인 박제가. 조선 지성사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과 사귄 열혈남아 박제가. 그러나 이전에 그는 한 가난한 어머니의 자식이었다. 자식이 되어 가난한 어머니를 위해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다는 죄책감, 가난 가운데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박제가는 울고 또 울었다.

 

   이후 박제가는 중국을 다녀와 조선의 가난한 현실을 타개할 방도를 제시한 『북학의』를 저술하고 최초로 규장각의 검서관으로 발탁되었다. 정조의 편찬 정책을 돕던 박제가는, 정조가 승하한 이듬해 사돈의 옥사 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를 갔다. 변방으로 귀양 온 박제가는 자신의 가련한 처지를 빗대어 ‘흠 가진 늙은이’라는 뜻의 뇌옹(纇翁)으로 호를 바꾸었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점을 치고 나서 “이름이 온 세상에 가득하지만 몸에 큰 흠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려 한 것이었다. 사랑이 깊어지면 꺼리던 말도 그리움이 된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사랑이고 헌신이다. 여든을 바라보시는 나의 어머니는 오늘도 흐릿한 한쪽 눈으로 새벽 어스름에 밭일을 나가신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으로 자식은 이 험한 세상을 잘 견디며 살아왔다. 비바람 부는 고단한 삶의 여정에서 몸소 우산이 되어주시던 분이 나의 어머니이다.





 
박수밀
글쓴이박수밀(朴壽密)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미래인문학교육인증센터 연구교수

 

주요 저서
  • 『박지원의 글 짓는 법 』, 돌베개, 2013
  • 『알기 쉬운 한자 인문학』, 다락원, 2014
  • 『옛 공부벌레들의 좌우명』, 샘터, 2015
  • 『고전필사』, 토트, 2015 외 다수의 저역서와 논문이 있다.


출처:한국고전 번역원 고전산문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오케이, 오늘부터 (2014년 12월 1일) 달라지는 이 누리. 김원일 2014.12.01 8667
공지 게시물 올리실 때 유의사항 admin 2013.04.07 38740
공지 스팸 글과 스팸 회원 등록 차단 admin 2013.04.07 54612
공지 필명에 관한 안내 admin 2010.12.05 86365
1305 [북미간 갈등을 어떻게 이해할까] 2017년 8월 9일(수) 뉴스룸, 8월 3일(목) 썰전 CPCKorea 2017.08.11 148
1304 우리시대의 깃발과 예수. 2 재림목사뭐하냐? 2017.09.13 148
1303 민족 반역자 노덕술 - 최고의 악질 친일파 고문경찰 3 비극 2016.09.14 149
1302 박인수- 가고파(testings) 백향목 2016.09.24 149
1301 서울대 교수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성명을 조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하야촉구 2016.10.25 149
1300 김종대 의원 "4성장군 인사 등 군 요직인사에도 최순실 개입했다" 군사순통 2016.11.20 149
1299 [채널A단독] 박태환 주사, 최순실 연관성 조사 1 호박 2016.12.04 149
1298 세월호에 대해 "이젠 그만하자"라고 했던 분들은 이 동영상을 보시고 느끼시는 게 있을 것입니다. 2 바벨론 2017.01.01 149
1297 2018년 4월 7일(토) 제1기 제1과 마지막 때를 위한 준비(Preparation for the End Time)(4.01일-4.06금) [아래아한글] [MS 워드] file 녹색세상 2018.04.14 149
1296 실패한 디자인 대참사 1 다알리아 2021.01.28 149
1295 시정연설 내내 불안함 보인 대통령 개헌 2016.10.24 150
1294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 때 ? 광야소리 2017.01.03 150
1293 제국(요셉, 솔로몬)과 반-제국(다니엘) (19) 곰솔 2017.01.24 150
1292 일상의 금융화는 결국 이집트 7년 흉년으로? (23) 곰솔 2017.01.26 150
1291 선악과는 과연 무엇인가? 하주민 2017.09.23 150
1290 선지자 중에는 거짓 선지자가 있다고 합니다. 1 피터 2017.09.28 150
1289 계급이란 무엇인가 김원일 2021.02.06 150
1288 ‘나(自我)’가 있을 확률 vs. 그것이 꺼졌다가 다시 나타날 확률(욥기) 최종오 2016.12.09 151
1287 유일하게 지킨 공약 file 유일 2016.12.18 151
1286 조용필 - 그대 발 길 머무는 곳에 발길 2017.04.02 151
1285 죽음, 그 뒷처리 사후 2017.08.02 151
1284 폭풍 공감 깨알 2016.09.15 152
1283 '이번엔 200만'… 1 광장 2016.11.17 152
1282 박근혜 5촌 살인사건.....방송에 나온다. 1 황금동사거리 2016.12.16 152
1281 우리는 이제 하나님을 버려야 한다 이런하나님 2017.01.03 152
1280 지난주 교과 질문 들꽃 2020.09.05 152
1279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항거 2016.10.04 153
1278 '강골 윤석열'이 돌아왔다! 1 뷰스 2016.12.01 153
1277 박근혜대통령 탄핵은 정당했다. <대통령 탄핵 결정문 전문> 2 파면옳음 2017.03.19 153
1276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독일 소녀 합창단의 세월호 추모곡 노란리본 2017.04.16 153
1275 육식의 반란3 - 팝콘치킨의 고백 눈장 2017.04.20 153
1274 각종 방송사들 문재인 홍은동 자택으로 이동시작!!!! 안봐도 비데오 2017.05.09 153
1273 율법의 개념(槪念) 하주민 2017.06.30 153
1272 주님 오시기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file 김균 2021.01.06 153
1271 '독단과 불통'이 문제로다, 오뚜기 2016.10.18 154
1270 내년 1월 사랑의교회서 대규모 '구국' 기도회? 사랑 2016.12.22 154
1269 JTBC "최순실 PC 더 충격적 진실, 8시 뉴스룸서 공개" 실체 2016.10.25 154
1268 목타는 세상을 축여주고 구하는 정도령--해월 황여일의 예언 (해월유록) 현민 2016.11.06 154
1267  그들의 혀는 사람을 속이며  푸른집 2016.11.19 154
1266 이승만이 남긴 더러운 유산을 처분해야만 한다. 과거청산 2017.03.21 154
1265 명진스님(5) 但知不會 是卽見性----다만 알지 못함을 아는가, 그것이 깨달음이다. 1 에르미 2017.07.10 154
1264 기담자님 2 kan4083@daum.net 2016.09.17 155
1263 구원의 조건도 구원의 조건 나름이다. 율법과 계명은 구원의 조건이다, 뭐가 어때서? 2 눈뜬장님 2016.09.18 155
1262 이명박, 독도 기다려달라 '매국 발언' 사실로 확인! 독도 2016.11.06 155
1261 x Once is more than enough: 박상길 목사의 『시국(時局) 기도회』 산꼭대기로 올라갑시다 (천수답의 일요칼럼) 2 Tous 2016.11.11 155
1260 달마가 눈을 부릅뜬 까닭 보름달 2016.11.18 155
1259 [1053회 그것이 알고싶다] 대통령의 시크릿 knowing 2016.12.12 155
1258 [싸이판] 신천지, 동아리 지원금을 노린다 우리동네 2017.02.28 155
1257 봄이와요 깨어나세요 1 file 2017.03.02 155
1256 우리 시대의 선지자, 불신을 몰아내고 신뢰의 시대를 열다 file 선지자 2017.04.02 155
1255 사랑의 찬가 (뜌엣) : [ 손준호&김소현 ] , [ 윤형주&박인희 ] 2 눈장 2017.05.07 155
1254 도전한 사람들이 이룰 것이다 다알리아 2023.05.15 155
1253 인류의 노예화~어디까지 진행됐나? 산울림 2016.09.25 156
1252 성탄제 1 눈길 2016.12.23 156
1251 sbs.co.kr 그것이 알고 싶댜. 한국시간 오늘밤(토) 11:10 <대통령의 7시간 - [1053회] 대통령의 시크릿>. 본방 사수하라!!! SbS 2016.11.19 156
1250 거룩함의 정치 혁명  (마지막회) 곰솔 2017.01.29 156
1249 나는 이 가문을 살려야 한다. 운명 2017.06.27 156
1248 (눈장님 보십시요)....TNT·클레이모어·수류탄까지..계엄군, 광주서 '전쟁'을 했나 2 범어사 2017.08.28 156
1247 죽고 사는 문제- 흑사병-페스트 김균 2020.03.27 156
1246 저녁 종소리-러시아 민요 김균 2021.01.05 156
1245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다알리아 2021.04.14 156
1244 구원받은 자는 이렇게 살지 않는다 - 계명에 충실한 자들을 "바리새주의로 지독하게 염색된 자들"로 매도하는 불법과 무법 5 한빛 2016.09.19 157
1243 미국에도 이런 경찰이 있는지? 광장 2016.11.13 157
1242 [영상] 탄핵 가결 순간…어느 고교의 격한 반응 그래! 2016.12.09 157
1241 진짜 보수란? 3 보수 2017.01.08 157
1240 눈깔 빠지는 줄 알았써 ! 라고 했어야.. 치니 2017.01.12 157
» 나의 어머니-박제가 무실 2017.05.02 157
1238 제 19대 대통령 선거 예언 향화사 황순연 보살 - 왜 정치인들은 선거철에 점술가를 찾는가 별이 2017.05.07 157
1237 택시 운전사 보고 울다 2 지경야인 2017.08.26 157
1236 억울한 누명을 쓴 하나님의 항변-I 1 정 석 진 2017.09.23 157
1235 파시즘이란 무엇인가? 김원일 2021.01.27 157
1234 “조선일보 반성하고 달라져야” 방상훈 사장이 입을 열었다 글쎄 2016.09.05 158
1233 왕실장이 보시길 바라며 눈꽃 2016.12.21 158
1232 '진리'는 Jtbc(www.jtbc.co.kr)에 있다. 8시 뉴스에 덴마크에서 체포된 정유라 체포 장면 jtbc 단독 현장 취재 코펜하겐 2017.01.02 158
1231 슬픈 메트로폴리탄 (22) 곰솔 2017.01.25 158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3 Next
/ 23

Copyright @ 2010 - 2024 Minchoquest.org. All rights reserved

Minchoquest.org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