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신약 학자 중 주의 기도문에 나오는 '용서'의 개념을 '빚' 탕감으로 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John Dominic Crossan 같은 사람입니다.
초기 원문은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탕감해준 것 같이 우리 빚을 탕감해주시고'였다는 것이죠.
언젠가부터 '빚'이(debt) '잘못 함,' '부당하게 이용함,' '부당하게 침범함'(transgress) 등으로 번역되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죄'라는 '영적'(spiritual) 의미로 바뀌었다는 얘기입니다 [누가복음은 두 개념을 섞어 쓰지요. '죄'(ἁμαρτίας)로 시작했다가 '빚'(ὀφείλοντι)으로 끝납니다. ㅋ~].
일용할 양식과 빚 탕감이 생존을 위해 가장 절실한 과제였던 당시 상황을 배경으로 한 해석입니다.
하루하루 먹을 것을 걱정해야 했고, 빚을 갚지 못하면 노예로 팔려가야 하는 열악하고 참담한 경제 구조 속에서 부르짖는 민중의 호소였다는 말입니다.
그의 저서 <The Greatest Prayer: Rediscovering the Revolutionary Message of the Lord's Prayer>를 이참에 소개해드립니다.
이미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
주 기도문처럼 간략하고 정갈스런 기도문이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