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환 목사
필자는 삼육대학 대학원 신학과(태릉)와 재림교 국제대학원(AIIAS 필리핀)을 졸업하고 20년을 재림교 목사로 사역을 했으며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양지)를 졸업하고 예장합동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에서 사역 하였다. 재림교가 바른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세워지는 교회다움을 더 회복하고 참된 개혁이 있기를 기도하는 사람 중에 하나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상구 저서의 파장
심장이 멎으면 멎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사라진다. 혈액형은 바꿀 수 도 없고 바뀌지도 않는다. 재림교에게 ‘2300주야’와 ‘조사심판’ 교리는 ‘심장’이고 ‘피’인가? 교리적 발전을 인정하는 교단이니 성경과 다르면 조정할 수도 있는 것이지 왜 교회가 죽고 사라지는 것처럼 생각하는가? 왜 그래야 하는가?
이단시비에 휘말려 있는 한국 재림교 백여년 역사에서 안식교의 대내외적 신인도를 이상구 박사 만큼 제고시킨 의사도 없고 건강 전도사로서 선교에 이처럼 탁월하게 이바지한 의사도 없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결코 짧지 않는 40여년 시간 동안 이상구 박사가 재림교단의 지도자들과 영적인 파트너가 되어 대학과 각종집회와 지역 교회에서 행한 강연과 설교들은 헤아릴 수 없으며 이젠 브랜드화 된 뉴스타트의 영향력으로 이상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 그가 최근(2016년 6월)에 펴낸 두 책(<십자가와 조사심판>, <화잇이 다시 한 예언>)으로 인하여 재림교는 메가톤급 파장에 휩싸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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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구 박사와 그의 저서 <십자가와 조사심판>과 <화잇이 다시 한 예언>의 표지 |
전국적으로 행하는 2016년 기도주일 내용도, 2017년 사경회 교재도 이 책에 대한 방어하고 공격하는 것은 물론 재림교 본부인 한국연합회의 요청으로 삼육대학(원) 교수들을 중심으로 ‘1844, 1888, 그리고 조사심판의 신학적 조명’이라는 주제로 논문 발표와 함께(이하 책은 ‘조명’으로 표기함) 신학 심포지엄을 개최했다(2016년 12월 17일).
이상구만의 독보적 사역
그는 의사이지만 단순히 가운 입은 진료실 의사가 아니라 현대의학이 포기한 시한부 환자들에게 알약 대신 신구약(성경)을 처방하고 영적인 검(말씀)으로 집도하는 영적인 의사이기도 한 점이 독보적이다.
당장 타들어가는 육적 생명은 물론 영적인 생명까지 동시에 소생되어야 할 절박한 강의실에서 그가 진정한 생명의 힘인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문제를 피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아닐까?
의사로서 그저 의학 얘기만 하지 어쭙잖게 목사들의 영역인 신학적인 쟁점까지 건들어서 괜히 이런 사달을 자초하는가? 라며 핀잔하는 이도 있지만 죄에 대한 현대적인 표현은 바로 중독이 아닐까?
구약에서 질병 완치 검증은 제사장이 했으며 신약에서도 한번은 예수님께서 한번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마 9:5)고 하셨다. 사람을 쌩으로 굶겨대고 온 몸을 두들기며 안수하고 개구리처럼 방언하는 삼류 기도원 방식이 아니라 순전한 말씀의 선포로 치유의 역사는 복음적인 교회에서도 일어나는 것을 종종 본다.
육신의 병 이전에 그 뿌리가 되는 심령의 문제를 다루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죄 문제이다. 그러므로 강론에서 죄의 처리 문제, 즉 속죄(복음) 문제는 비껴갈 수 없다. 이런 치열한 현장에 몸 담았던 그가 장고의 고뇌 끝에 마침내 내린 양심고백서 같은 선언이 바로 두 책으로 보인다.
과연 이 책들에 관하여 재림교 본부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자못 궁금했는데 사실은 진지한 대화 속에서 한국 재림 교회에 변화가 있기를 나름 기도하며 바랬었다.
재림교 본부의 응전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이상구 박사의 진지한 신앙적 고백을 마침내 이설과 오류로 규정하고 교단에 대한 반기로 여겨 강단금지령과 접촉금지령을 내릴 뿐 아니라 전 성도를 대상으로 더 이상 물들지 않도록 사상을 단속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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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교 측이 주최한 심포지엄 포스터 |
“조명” 서문의 내용이다.
“이상구 박사는 .... 두 권의 책을 출판하여 재림교회의 핵심적인 교리들이라고 볼 수 있는 대속죄일과 십자가 그리고 조사심판에 관하여 재림교회의 공식입장에 철저히 위배되는 견해를 공표하면서 재림교회를 공격하고 엘렌 G. 화잇의 선지자적 권위에 엄청난 타격을 가하는 일을 도모했다.”(조명, 4)
신학자도 아닌 평신도 이상구의 책을 놓고 재림교회를 대표하는 신학교수들 5명이 연구논문을 발표할 정도니까 이 책이 가져올 파장에 그만큼 위협을 느낀 방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40년이나 같이 했던 동료를 하루아침에 흉악한 이리니 사탄의 공격과 함정이니 하는 표현은 지나친 표현이 아닌가? 정말 그렇다면 그런 이리(?)를 40년간 몰라보고 함께했던 재림교의 시력은 어떻게 설명 할건가?
조사심판 교리는 기독교사에서 도통 낯선 개념
하계상 교수(삼육대 구약신학)는 ‘성소신학의 대속죄일과 조사심판’ 교리를 두고 재림교회가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분야라고 했는데 등장초반부터 비성경적이라고 비판을 받아왔는데 무슨 기여를 어떤 기독교에 했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북한에서는 아무리 재능이 탁월하고 업적이 뛰어나도 주체사상을 조금이라도 흠집내는 바늘만한 시도에는 무관용의 원칙에 따라 즉결 처형이다. 고모부 장성택이 그렇게 가지 않았는가? 조사심판은 재림교의 주체사상 인가? 아니면 관심법으로 많은 사람을 무고히 죽였다는 궁예의 철퇴인가? 재림교에선 조사심판 교리에 태클을 걸면 목사라도 당장 신임서 회수이고 누구라도 배교자로 규정하고 아웃시켜 버리는 중대한 오류자이다. 어떤 면에서 재림교에서 조사심판은 단두대 교리다. 이의를 달면 사라져야 한다.
진행된 심포지엄 모든 발제자들은 한결 조사심판교리야 말로 심장처럼 핵심이고 혈액처럼 귀중한 교리라서 무너져서도 안되고 양보 할 수도 없는 교리라고 입을 모아 설파했다. 그러나 이는 재림교라는 찻잔 안에서의 얘기다.
지구상에 ‘2300주야 교리’, ‘조사심판 교리’ 는 예수님의 성육신 이래 사도시대, 초대교회 교부시대부터 중세시대를 지나 지금까지의 기독교 교회 역사에 재림교 외에는 없다는 점을 왜 애써 외면하는가?
삼위일체처럼 성경에 명시적으로 없어도 성경적 개념이라면 그런 교리를 만들 수 도 있고 그런 특수 교리가 한 교단의 기둥 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의 조명을 선명하게 받고 유구한 기독교 역사를 통해 검증된 보편타당성과 조화를 이뤄야 힘 있는 기둥(교리)이 될 수 있다. 과연 그런가? 성경 전체에서 볼 때 2300주야(조사심판) 교리는 한 교단이 그저 변방의 교리로 가질 수는 있지만 성경의 심장(기둥) 교리는 될 수 없다.
성경에서 ‘심판’이란 개념은 중요한 신학적 주제와 근간(根幹)이지만 재림교가 이해하고 주장하는 방식의 ‘조사심판 교리’는 영양가 없는, 아니 유익보다 해독성이 많은 비복음적 요소가 다분하다.
‘조사심판’이란 단어가 따로 존재할 이유 무엇?
성경에 심판사상은 또렷이 있지만 조사심판은 분명히 없다. 제대로 된 국가에서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심판이라면 그 과정에 조사(심리)가 있는 것은 기본이다. 조사 없는 심판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이런 상식을 뒤로하고 도대체 ‘조사’와 ‘심판’이라는 두 단어를 조합하여 사전에도 없는 ‘조사심판’이란 단어를 굳이 만들어 담아내고자 한 신학(사상)이 무엇인가?
성경에 또렷이 나와 있는 ‘심판’이라는 단어(개념)만 가지고는 왜 무엇이 부족하여 재림교회는 이상한 ‘조사심판’이란 단어를 따로 만들어 등장시켜야 했는가?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이것에 대한 시원한 대답을 아직 못 봤다. 단언컨대 이 조사심판 개념은 기록된 말씀 밖으로 나간 개념이다(고전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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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식교 측의 심포지엄 관련 소식(안식교 측 블로그 캡처) |
그렇기에 이국헌 교수(삼육대 역사신학)는 이 교리를 두고 “재림 교리 교리사에서 등장한 가장 어려운 질문들 중에 하나”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가 명시한대로 조사심판 교리는 등장 초반부터 재림교회 안팎에서 일어난 도전은 끈질겼고 심각했고 지금도 이단 시비 논쟁의 중심에서 불꽃 튀는 교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재림교가 불신자 선교에 힘쓰기도 바쁜데 왜 이 교리로 형제여야 할 교단들로부터 이단 시비에 휘말리는 태풍을 자초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조사심판 교리는 인정하고 말 할 중요 교리가 아니다. 하든 않든 재림교회 조사심판 교리는 교회 현장에서는 이미 낡은 유품이고 책에만 존재하는 사문화된 교리가 된지 오래다. 일선 교회에선 필요성도 잘 못 느끼고, 가르치면 유익보다는 부담(해독)이 더 많은 것으로 증명된 유효 만료된 교리임으로 어떤 식으로든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필자는 이상구 박사의 책을 비판하기 위하여 발표된 심포지엄을 계기로 다섯 교수들이 제기한 소논문을 중심으로 재림교 조사심판 교리에 대한 시비곡직의 이야기를 이어가 보고자 한다. 부디 깨어있는 지성과 진지한 양심으로 올바른 이해에 모두가 이르게 되기를 바란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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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이렇게 요약된 부분이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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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자격의 요건은 무엇이냐?
오직 믿음이 아니라 ‘예수 믿음’ + ‘하나님의 계명(순종)과 하나님께 충성’
이 섞음이 바로 율법주의요 비복음적이라는 것
믿음과 행함은 구원의 원인과 결과이지
이 둘을 동시에 구원의 원인으로 놓으면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이다.
재림교는 균형이란 이름으로 이렇게 하는데
이것은 구원의 은혜성을 파괴하는 기독교 구원론에 대한 근본적 오류다.
충성(순종, 행함)은 충성일 뿐이지 이를 구원의 신분과 연결시키면 모조리 자기 의(義)이며 공로 탑이 된다.
(중략)
조사심판은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율법주의 사상이다.
즉 오직 믿음으로만 얻는다는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에
인간의 몫을 촘촘히 꼽아 넣는 ‘믿음 플러스 알파’ 율법주의 구원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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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새물결플러스에서 최근 출판된 <칭의란 무엇인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1. 서론 중에서...
나는 오늘날에도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하는 구원론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를 분명하게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성경이 가르치고 있고, 또한 종교개혁자들이 재발견한
이신칭의의 가르침이야말로 구원론 문제에 대한 올바른 답변으로
오늘날에도 계속 가르쳐져야 하고 또 보전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우리 신자들이 어떻게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
우리가 어떻게 예수의 제자로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는 상황에서는,
말하자면 교회의 거룩성과 윤리성이 강조되어야 할 상황에서는
성경에 나타난 “행위에 따른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강조하거나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2. 1장 칭의에 관한 최근의 쟁점 중에서...
새 관점자들, 예를 들면 던, 라이트는 물론 일부 복음주의학자들도
최후 심판 때 주어지는 미래의 칭의의 경우
예수를 믿는 믿음에 의한 초기의 칭의가 아닌,
성령을 통해 살아온 그의 전 생애 곧 성화의 결과에 의해 좌우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한번 칭의를 받은 자라 할지라도
거룩한 삶을 통해 그 칭의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지 못하는 자는
최종적인 칭의의 상태에 들어가지 못하고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추가할 수 있지만... 이 정도에서 일단...^^
곽정환이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재림교회 목회를 중단하고...
총신대 대학원에서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공부하고 있을 때
김세원 교수의 <칭의와 성화>가 출판되고
총신대 대학원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물었습니다.
- "어떻게 생각해?"
- "골치 아파!"
천주교의 행위 강조에서 루터의 믿음 강조...
그런 이분법으로 지난 500년을 버틴 프로테스탄트...
하지만 이젠 또 다른 제국주의 세계를 구축한 복음주의자들에게...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당신들의 열매는 중세 1000년의 열매와 뭐가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