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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시위 현장에서 처음 뵌 것은 1987년 전북 익산의 창인동성당 앞 도로에서였다. 당시 나는 이리중학교 교사였는데, 퇴근 후에는 학생들을 지도한다는 핑계로 대규모 시위대의 꽁무니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6월항쟁’을 멀찍이서 팔짱 끼고 바라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성당 앞 도로를 점거한 시위대 앞에 민가협 어머니 한 분이 핸드마이크를 들고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선쌍임 여사였다.

 

 

[안도현의 사람]내가 아는 가장 진보적인 할머니 선쌍임 여사

 

 

다음 만남은 정읍에서 열린 최덕수 열사 노제 때였다.

‘한라에서 백두까지’라는 시구가 적힌 대형 걸개그림이 걸린 연단 앞에서 나는 조시를 읽었고,

선쌍임 여사는 원고도 없이 눈물 섞인 즉석연설을 하였다. 머뭇거림도 막힘도 없었다.

 

맑고 단아한 얼굴 그 어디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나오는지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이제는 사라진 전주의 사회과학 전문 금강서점에서도 가끔 여사님께 인사를 드릴 기회가 있었다.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자식을 감옥에 보낸 어머니들이 많은 때였다.

여사님은 비전향 장기수 할아버지들을 가족 아닌 민간인 여성의 얼굴로 면회를 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선쌍임 여사는 알고 보니 내 대학 선배의 어머니셨다. 그 이후 나는 여사님을 어머니로 부른다.

여사님은 1938년생 호랑이 띠인데 올해 79세다. 선 여사님은 영산강이 에돌아 흐르는 전남 나주군 동강면에서 면장의 딸로 태어났다.

늘 신문을 읽던 아버지의 막내딸은 처녀시절 비싸다는 ‘비로드’ 옷을 입을 정도로 유복했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어머니는 쌍둥이로 태어났다.

 

한날한시에 오빠와 함께 이란성 쌍둥이로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 사실을 창피하게 여겼던 오빠는 쌍둥이 여동생과 같이 학교에 다닐 수 없다고 떼를 썼고,

그래서 여사님에게는 졸업장이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여사님은 한글 해독은 물론 기본적인 한자를 읽을 줄 알고 물론 쓸 줄도 안다.

 

아들들에게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쇠금(金)’자나 ‘나라국(國)’자 쓰는 필순을 노래를 얹어 가르치기도 했다.

자신은 배우지 못했지만 자식들은 모두 대학에 보냈다.

 

같은 마을에서 농사를 짓던 신광호씨와 결혼한 여사님은 자식들 공부를 위해 1965년 호남선 열차를 타고 고무신 차림으로 이리역(현재 익산역)에 내렸다. 아들 하나는 업고 둘은 손을 잡고 말이다. 처음에는 주현동 사글세방에서 살았다. 여사님은 홀치기와 바느질을 하면서 자식들에게 전과를 사주고 학원비를 대면서 뒷바라지를 했다. 

 

익산에서 아들 하나를 더 낳은 여사님은 아들만 넷이다. 내 선배인 큰아들은 오래도록 교사생활을 한 작가다.

1980년대 수배전단지에 ‘미남형’이라고 적힌 바 있는 둘째가 문제였다. 둘째는 전북대학교 재학 중 공대 앞 히말라야시다 위에 올라가서 시너를 뿌리고 할복을 감행하며 감옥행을 택했다. 처음에는 여사님도 교도소 면회를 할 때 덜덜 떨었다고 한다.

 

둘째가 노동자 투쟁 때 다시 교도소에 들어간 이후 어머니의 무용담은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 이상이었다. 정치적으로 참혹한 현실이 나약한 어머니를 투사로 만드는 존재의 전이를 우리는 여기서도 목격한다. 그때 속을 썩이던 둘째 귀종은 진안에서 농사를 지으며 여전히 시민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고분고분하고 용돈을 잘 드리는 셋째아들 귀홍은 공기업에 다닌다. 넷째 귀중은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고 있고 막내며느리도 유명한 신문사의 기자다. 모두 여사님의 든든한 ‘빽’들이다. 

 

딸이 없어 서운하지 않으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아, 목욕할 때 등 밀어줄 사람이 없어 좀 서운허지만 여자로서의 고통은 나 혼자로도 충분해.” 한국사회 여성의 수난사를 이렇게 한마디로 간명하게 정리하는 분이 여사님이다. 

 

선쌍임 여사는 요즘 노인복지관에 다니신다. 여기서 배운 영어 실력으로 영어로 된 간판도 웬만한 건 다 읽을 줄 안다. 몇 년 전 여사님이 모현동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할 때 담배를 사러 갔다가 여러 권의 노트에 빼곡히 영어 단어를 써놓은 걸 보고 그 열정에 감동한 적도 있다.

 

무슨 일이든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여사님이 최근에는 인터넷에 푹 빠져 있다고 한다. 노인복지관에서 영어와 댄스를 배웠는데 얼마 전부터는 컴퓨터반에 등록하셨다. 일찌감치 새벽 네 시에 나가서 등록을 한 거라고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제 전자편지도 쓰고 사진 올리기도 능숙하게 할 줄 아신다. 가끔 영감님들로부터 핑크빛 마음을 담은 은근한 전자편지가 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인기가 여전하시다는 거다. 하지만 답장을 해본 적은 없다. 

 

 

포털사이트에 접속해서 뉴스를 살피는 건 여사님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비록 독수리 타법이지만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문제들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단 몇 줄이라도 댓글을 남기신다. 며칠 전에는 백남기 농민을 애도하면서 현 정부의 태도에 분노하는 댓글을 올렸는데 여사님의 의견에 동조하는 반응들을 보면서 사는 맛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고 했다.

 

 

여사님이 그렇다고 모든 일을 다 잘하시는 건 아니다. 신문이나 성경책을 읽을 때 묵독을 못하고 손가락으로 문장을 짚어가며 반드시 소리 내서 글을 읽는다. 큰아들에게 들은 얘기다. “우리 어머니는 아들들이 조금 쓸 만한 일을 하거나 용돈을 드리면 ‘개보다 낫다’는 말을 자주 하시지. 어느 때는 페미니스트 같지만 ‘각시 자랑은 이불 속에서만 하라’는 말로 아내에게 티를 내는 것을 경계하는 완고함을 가지고 계셔.” 

 

 

교회에서 여사님은 ‘권사님’으로 불린다. 교회에서 대표기도를 할 때는 언제나 이 민족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도를 앞세운다.

그러다 보니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우선시하는 교인들한테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내가 아는 가장 진보적인 할머니가 선쌍임 여사다.

 

몇 해 전 대선이 끝난 후, 익산에서 우연한 기회에 여사님을 뵈었다.

허리는 전보다 조금 굽었지만 양장 차림에 손에 매니큐어를 바른 여사님은 내 손을 잡더니 막 우는 것이었다.

 

“내 나이가 팔십이 다 되는데 정권교체가 이룩되기 전에 내가 죽으면 어떡해? 젊은 안 선생이 어떻게 좀 해봐. 나 좋은 세상 좀 보고 죽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사님을 껴안아 드리면서 가만히 등을 다독이는 일밖에. 최근에 여사님은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여권을 10년짜리로 갱신을 했다고 한다. 또 한 번 갱신을 할 때까지 오래오래 사시면서 좋은 세상도 맞이하시기를 빈다. 

 

-경향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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