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동산이라고 하는 매우 국지적 창조를 하신후에 내가 "천지 (하늘과 땅)를
지었다" 고 말씀하셨는데 지구전체를 볼 때 손바닥보다 작은 점같은 것
하나를 만들어 놓고 땅을 창조했다는 말은 나중에 따져보기로 하지만
적어도 하늘은 어떻게 무엇으로 지었다는 것인지는 물음표를 달아놓고
성경을 읽는 것이 요한계시록까지 내려가면서 점점 익어가는 새하늘과
새땅의 그림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선 땅의 것은 보이는 것이고
하늘의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땅의 시간은 시계의 태엽속에 감겨져 있고
하늘의 시간은 구원의 태엽속에 감겨져 있다.
순전히 성경안에서의 관점이다.
이 땅의 시간이 차면 손바닥 보다 작은 점 같은 처음의 창조가
당시에는 비어 있던 지구의 땅들을 채우게 되고
이 땅의 시간이 차면 아담안에서 시작한 죄의 물결이
온 인류의 삶속에서 물결치면서 심판의 필연성이 꽃을 피운다.
이 세상 임금의 시간은 태엽속에 감겨있는 그 시간이다.
천년동안을 갇히게 됨은 그가 가진 시간을 빼앗긴다는 의미도 된다.
이 교회에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이 태엽속에 감겨있는
시간속에서 모든 교회의 방향이 설정이 되고 예언도 해석이 되고
교리가 형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복음서 중에 특별히 요한복음에는 시계의 태엽에 감겨있는
시간 "크로노스" 와 구원의 태엽속에 감겨있는 시간 "카이로스" 를
명확하게 구별하고 크로노스를 사람의 시간으로 그리고 카이로스를
하나님의 시간으로 분리하여 소개한다.
요한복음 7장에는 1장에 소개한 빛, 생명, 진리, 은혜등이 "나의 때" 라고
하는 예수의 시간속에 싸여 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그 때는 십자가의
사건임을 또 암시하고 있다.
시계의 태엽이 감고있는 것은 "시간"이지만
구원의 태엽이 감고있는 것은 "때"라는 말이다.
"나의 때" 는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거니와 "너의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요7:6)
양쪽의 때가 똑같이 카이로스인데 왜 하나는 이미 준비되어 있고
또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는지는 다음호에 이어서 설명하겠지만
오늘은 시간과 때의 이야기만 하도록 하자.
천주교의 고등교리는 인간의 인식능력이 하나님의 언어를 인식할 수 없다고 보는
전제로
그런 인류의 암흑적 역사속에서 번개처럼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 꽃이는 모양으로
시내산에서 딱 한번 하나님이 인간의 언어로 십계명이라고 하는
전무후무한 계시를 보여 주셨으므로 적어도 계시를 논한다면
그 십계명이라고 하는 계시야 말로 성경중에서 하나님의 손때가 묻어 있는
유일한 계시라고 가르친다.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을 들고 거기서 나온 개신교회들이 위의 논리를
앞서거나 엎지를 수 있는 계시적 안목이 정리되어 있어야 하는데
루터 이후의 개신교는 루터가 놓았던 기초에서 오히려 빗나가는 역개혁을
시도하면서 무수한 교단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모세를 통해서 주어진 계시 즉 "기록되었으되" 를 허물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으로 다시주신 계시
로고스는 십자가이고 그 십자가의 시간은 "때" 이며 "카이로스" 인 것이다.
그 계시야 말로 믿을 만한 계시이며 완전한 계시이며 땅과 하늘이 맞닿는
계시이며 죄인과 의인이 화목할만한 화목이며 딱 한번으로도 족한 제사이며
영생에 관한 약속의 성취이며 믿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제하여 버리는
은혜의 속죄이며 동시에 죄인에게는 항상 준비되어 있는 기회의
초청인 것이다.
아직 그 "때"에 들어가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여
그대들은 심판을 전하라.
그러나 그 "때" 에 들어가서 안식을 누리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채워야 할 천국의 잔치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라!
하늘을 땅과함께 지었다는 말은 이 "때"를 계획했다는 말이다.
이 때는 다니엘서 2장의 돌나라의 시작이고 구원의 태엽이 다 풀린
시간의 성취이다.
" 다 이루었다" 를 율법의 저주나 심판의 요구를 다 들어 주었다고도
이해할 수 있으나 창조적 개념에서 새하늘과 새땅을 지었다고 하는
창세기적 선언이 되기도 한다.
돌나라는 이미 새하늘과 새땅의 시작이다.
이 나라의 백성들은 하늘의 구름을 쳐다보지 말고
오늘도 십자가를 바라 볼 일이다.
너희 때 (구원의 시간-카이로스) 는 항상 준비되어 있느니라!!!
할렐루야!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부활하신 그 예수가
바로
시내산에서 내려와 깨어지고, 또
모세가 다시 가지고 올라간 그 "두 돌판"이라!
[롬10:4]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두 돌판을 손에 들고지성소를 바라보며 재림을 기다리는 크로노스의 사람들과---
보혜사께서 이미 두 돌판을 가슴에 새겨주신 카이로스의 사람들!
[렘31:33]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크로노스 속에서는 구원을 기다리는 "나의 행함"이 있지만
카이로스 속의 행함은 내 마음에 이미 와 계신 "그분의 행함"이시라!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십자가의 카이로스가 바로 영원인 것을
왜 우리는 아직도 크로노스 속의 1844가 근간이라고 움켜쥐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