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지남 10월호 14쪽 엘렌 G 화잇과 예언의 신에 대한 태도(글쓴이 도현석 교수)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게르하르트 하젤 박사의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과 엘렌 화잇 여사를 통하여 주신 예언의 신의 말씀을
절대로 의심하거나 비평하지 말라
그 이외는 다 비평해도 좋고 비평해야 한다"
이 글을 한 번 뜯어봅시다.
성경 비평하지 말라
예언의 신 비평하지 말라
그럼 뭐를 비평할까요?
재림교인이 성경과 예언의 신을 비평하지 않고
남겨진 뭐가 있어요?
결국 아무 것도 비평하지 말아라 하는 절대 권력의 지시사항입니다 그려
성경 비평하지 말라
그럼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 되라 이런 말이며
예언의 신 비평하지 말라
그럼 화잇이 말한 것 한 치도 건드리지 말고 믿어라 하는 말입니다
거기다가 그 외에는 다 비평해도 된다 인데
목사들 비평하면 안 된다
성도들 비평해도 안 된다
교리도 비평하면 안 된다
정치도 비평하면 안 된다
오직 기도만 해라 하는 무리들도 나오는데
우리가 속한 이 곳이 진짜 웃기는 곳인지 아닌지 가름이 안 된다 이 말입니다
여기서 예언님이 올리는 증언은
오늘 우리들에게 질긴 인연을 만들고 있어요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는데도 지금 생각하니 너무 이상한데
문제는 거기 있는 게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예언님이 퍼 올리는 예언의 신은 정당합니다
그가 올리는 글에 자기 견해만 없다면 그건 당연한 겁니다
내가 싫어하고 내가 그와 같이 믿지 않는다는 것과
그가 퍼 올리는 것에 상관관계를 연결시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합니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그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오늘을 두들기는데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데로 게르하르트 하젤 박사의 말처럼
예언의 신은 절대로 비평하지 말아라 하는 견해로 볼 때는
자전거를 타지 말라면 자전거를 안 타야 하고
자신은 간혹 먹어도 너희들 하늘가는 사람들 밥상에 고기가 왠 말이냐 하면
고기는 국물도 올려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역도를 하지 말라는데
예언의 신에 통달한 박 아무개 장로도 역기 하지 말라는 증언을 무시하고
몸만들기에 빠져서 보디빌더처럼 몸을 만들어서 재림마을에 올린 것 봤는데
대단한 근육질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한 번 해 보자 하고 아침마다 역기를 드는데
나이를 먹어가니 150번 들던 것도 100번으로 줄더니 이젠 70번쯤 하고 나면
애고 힘들어 하는 소리가 나옵니다
집사람은 그럼 역기를 좀 가볍게 바꾸라고 하는데
역기를 집에 그리고 딸애 집에 두 개를 뒀는데 바꾸려면 둘 다 바꿔야 하니
그냥 사용하자 하고 있어요
이야기가 옆으로 샜네요
역기 들다가 다친 사람 이야기 하면서 역기는 절대로 안 된다 하는 것도
예언의 신에 폭 빠진 사람도 들고 있어요
게르하르트 하젤 박사의 논리대로라면 역기 들면 안 되요
축구도 하면 안 되지요
예언님이 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전에 쓴 적이 있는데 참 대단한 분입니다
미국의 어떤 축자영감하는 분은 아들이 축구를 하자 운동장에서 개 패듯이 팼다는데
이건 내가 못 본 것이어서 정말로 팼는지 아니면 패는 시늉만 했는지
잘 모릅니다만 축구한다고 나무라면서 증언을 들먹였다면
이해난망이 올시다
그러나 그 또한 예언의 신을 글자 그대로 믿으려면 축구하는 자식 두들겨 패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인들과 함께 있기를 구하며,
그들의 난잡한 몸가짐을 즐기며,
그들의 이야기와 스포츠와 단정치 못함을 즐거워하고
그것에 흥미를 가진다면
정결하고 거룩한 천사들은
보호망을 제거하고
우리가 택한 대로 어두움 속에 우리를 방치할 것이다.“(증언 2권 223 장동기님이 퍼옴)
난잡한 몸가짐
스포츠
단정치 못함
이런 것들을 즐거워하고 그것에 흥미를 가진다면
정결하고 거룩한 천사들은
보호망을 제거하고
우리가 택한 대로 어두움 속에 우리를 방치할 것이다 라는데
이건 공갈인지 아니면 협박인지 구별이 안 된다 하는 말입니다
그럼 우리는 뭘 하면서 신앙생활을 할까요?
유대인들은
“여호와 앞에서 먹고”(신12:7)
“여호와 앞에서 주악하”(삼하6:5)고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삼하6:14)며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삼하6:16)었으며
솔로몬이 왕이 된 날
“이 날에 무리가 크게 기뻐하여 여호와 앞에서 먹으며 마셨더라”(대상 29:22)고 하는데
그들의 신앙 형태를 오늘 우리는 어떻게 판단할까요?
난잡한 몸가짐은 뭘까요
혹시 비키니 입은 모습으로 교회 와서 앉아 있는 처녀를 보고 말한 것일까요?
그런데 그 시대에는 비키니가 없었으니 레이스를 단 옷을 못 입게 했으니
레이스를 단 긴 옷을 입었을까요?
그 시대 스포츠에 K1이니 하는 격투기가 없었으니
스포츠를 뭘로 표현했을까요?
나는 이런 것들 읽으면서
이 할머니 괜히 이러네 건드리지 않아도 될 벌집을 건드려서
100년 후에 이 세상이 어찌될지도 모르면서 시끄럽게만 했네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모두가 자기 소견의 옳은 대로 성경도 증언도 평가합니다.
뭐 특별한 해석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 잣대로 상대를 평가합니다
증언의 구절구절마다 의미를 부여하던 사람도
정작 자기가 들고 있는 바벨이 역기가 아니라고 항변 할 지도 모릅니다
바벨은 바벨이며 역기는 역기다 할지도 모릅니다
예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한다고 대문 옆에다가 작은 문을 만드는
그런 우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손을 자르라 한다고 손을 자르고 눈을 뽑으라 한다고 눈을 뽑는 사람은 없듯이
다들 지 잘난 맛에 신앙합니다
성경과 증언을 비평하면 안 된다구요?
정말 그럴까요?
신앙은 비평하면서 새로운 것 깨닫고 느끼면서 자라는 것 아닌가요?
아니라고요?
애이
사진은 청산도 명사십리입니다
장로님
삼육대학 체육교육과? 학생들이 미국 와서 교회들을 순방하면서
우리 교회에도 와서 에어로빅 시범 보였습니다.
화잇 아주머니가 보셨으면 기절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