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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마음·영혼에 들러붙은 '박근혜 귀신' 나가라" [인터뷰] 제주 강정서 감귤 농사짓는 오세열 목사…해군기지 반대 운동하다 농부로 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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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100만 인파가 거리로 뛰쳐나온 11월 12일. 제주도에서 상경한 오세열 목사(39)는 이날 '박근혜는 하야하라'가 적힌 빨간 팻말을 들고 대학로에서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캐주얼한 옷차림을 하고 나온 오 목사 표정은 한껏 들뜬 듯했다. 수십만 명의 시민을 바라보면서 2008년 광우병 사태를 떠올렸다. 오세열 목사는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재학하던 2008년 광우병 집회에 참가했다. 맨 앞에서 시위하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이 일을 계기로 한신대 신학생뿐만 아니라 교수까지 거리로 뛰쳐나왔다. 구릿빛 피부의 오 목사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국정 농단, 목사이기 전 시민으로서 분노 오세열 목사의 발걸음을 서울로 인도한 건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였다. 오 목사는 "목사이기 전에 시민으로서 분노하고, 박근혜에게 저항하기 위해 집회에 참석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 목사는 '박근혜' 이름 뒤에 '대통령'이라는 말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오 목사는 속된 말로 '삘'이 꽂혀야 나서는 스타일이다. 대통령 경호실 경비부대에서 근무하다 2002년 제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효순이·미선이가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꼭 친동생이 죽은 것 같았다. 시위에 동참했다. 오 목사는 전경을 뚫고 미대사관 앞까지 진격했다. 2008년 광우병 파동 때도 거리로 뛰쳐나갔다. 제주 강정에서 해군기지 반대 운동도 벌였다. 국정 농단 사태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삘'이 다시 한 번 발동했다. 민중총궐기 하루 전인 10일, 오 목사가 소속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는 십자가 행진을 벌였다. 오 목사는 선두에서 나무 십자가를 치켜들고 걸었다. 오 목사는 박근혜 대통령을 '거라사 광인'에 들러붙은 '귀신'으로 규정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세계 부흥 순회 선교사가 꿈꾸다 투사 같은 이미지와 달리 오세열 목사의 꿈은 부흥사였다. 5대양 6대주를 활보하는 세계 부흥 순회 선교사가 되고 싶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처럼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다 뜻밖에 제주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진로가 바뀌었다. 오 목사는 2011년 선배 목사의 부탁을 받고 강정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강정은 해군기지 문제로 갈등에 휩싸여 있었다. 멀쩡하던 마을 교회는 해군기지 찬반 문제로 쪼개지기까지 했다. 해군기지 반대를 외치며 나온 몇몇 교인은 강정생명평화교회(조영배 목사)를 세웠다. 오 목사는 12월 25일 부교역자로 부임했다. 사실 오 목사는 제주행을 선택하기 전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부흥사가 되려면 현장이 아닌 제도권, 즉 기성 교회로 가야 했다. 무엇보다 직접 와서 경험한 강정 현장은 기대 이하였다. 오 목사는 "이곳에서 사역하기 힘들 것 같다. 미안하다"는 말을 뒤로 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며칠 뒤 오 목사는 페이스북에서 거창고등학교 직업 십계명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제주에 정착한 오 목사는 해군기지 반대 운동에 투신했다. 주민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정부와 국방부에 대항했다. 대치 과정에서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이때 오 목사는 공무집행방해죄 등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명령 60시간, 보호관찰 1년 확정판결을 받았다. 공사 방해 혐의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지금도 재판을 받고 있다. 강정마을해군기지개신교대책위(개신교대책위)는 2012년 4월부터 12월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해군기지 반대 집회를 열었다. 에큐메니컬과 복음주의 진영이 힘을 모았다. 제주를 찾는 기장 총회 관계자들도 예배 현장을 찾아 힘을 실어 줬다.
목사에서 '농부' 베드로가 되다
오세열 목사는 2년 가까이 강정생명평화교회에서 시무한 후 사임 의사를 밝혔다. 쉼이 필요했다. 기성 교회 현장으로 돌아갈까 고민하던 오 목사는 결국 제주에 남기로 결심했다. 과수원 1,000평을 임대받아 감귤 농사를 짓고 있다. 오 목사는 자기 스스로를 '농부' 베드로라고 불렀다. 감귤 농사는 농약을 쓰지 않는다. 제주에서 친환경 농법은 보기 드물다고 한다.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으면 일반 감귤 농사에 비해 생산율이 50~60%밖에 되지 않는다. 주위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우려와 달리 감귤 농사는 올해로 4년 차를 맞이했다. 적응할 만도 싶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딱 먹고살 만큼 벌고 싶을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오 목사는 가급적 많은 수익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오세열 목사는 인연이 없던 제주 강정을 찾아, 30대 절반을 보냈다. 그를 바라보는 몇몇 지인은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목회자가 되기로 했으니, 제도권으로 돌아오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오 목사는 당분간 그럴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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