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리스도인이 기다리는 종말은
이 세상 즉 지구의 종말인가?
아니면 악의 종말인가?
지진, 전쟁, 쓰나미, 홍수, 교통발달, 전쟁, 또는
많은 재림교인들이 믿고 기다리는 달이 핏빛으로 변하고,
유성우가 내리고, 일요일 휴업령... 등이 '종말'의 징조 일까?
과연 그게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가 '도래(advent)'할까?"
그리고 선택받은 자들만 빼고 나머지 지구 생명체 모두는
다 유황불에 타 죽어 없어지는 지구 종말이 올까?
그 선택을 위한 조사심판이란 것이 있을까?
정말 그렇게 믿어도 될까?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일까?
다음은 범재신론적 관점에서의 종말론에 관한 단상이다.
기독교 신학의 종말론을 크게 보면 세 가지의 물음을 답해야 한다.
첫째, 종말론(또는 종말신앙)이 발생한 삶의 자리에 대한 질문으로서,
'누구에게' 종말신앙이 요청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성서와 대부분의 신학은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종말(eschaton)'을 원했다고 답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악한 현실을 탄식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을 갈망하던 사람들(사 66:22, 계 21:21),
가난한 자들, 포로 된 자들, 눈먼 자, 눌린 자들의 해방에 관한 예수의 취임설교(눅 4:18, 사 61:1,2등))
둘째, 종말신앙을 가졌던 사람들이 원했던 종말이란 '어떤' 성격의 종말인가?
사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종말론자들이 주장하는 '세상 자체의 종말'보다는
삶을 질곡으로 빠뜨리고, 세상을 고통 속으로 빠뜨리는 '악의 종말'일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기독교의 종말신앙이 증언하고자 하는 목표가
역사적 실존의 참혹 속에서도 희망을 가능케 하는 힘,
또는 사랑(혹은 투쟁)의 삶을 살아갈 근거를 밝히는 것이란 이해를 낳는다.
세 번째 질문은 종말론이 신학적 체계를 더해 가면서 두 번째 질문의 철학적 차원을 밝히는 문제
즉, 종말과 우주적 시간/공간의 관계에 관한 질문으로 옮아갔다.
그러나 전통신학이 실체론적 사유에 물들어서 초자연주의적 이원론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채택하였을 때,
세 번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시간과 영원'을 분리하고
'역사와 하나님 나라'를 분리하는 편리한 선택을 하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적 시간의 끝이 영원한 신의 시간의 시작이요,
역사적 공간의 파멸이 신이 통치하는 공간의 출현이라고 이해되었다.
엄밀하게 보자면, 그러한 이해는 이 세상에서는 영원한 신을 결코 경험할 수 없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의 대부분의 전통신학은
자신의 실체론적 전제에 갇혀 시간과 영원을, 세계와 신을, 유한과 무한을,
몸과 영혼을, 역사와 하나님을, 속과 성을 분리함으로써
신께 영광을 돌리는 종교성을 획득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만이 아니라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해명까지도 왜곡 시켜서,
기독교적 종말론이 악의 종말이 아닌 세계 자체의 종말에 대한 것이라고 이해하게 만들었고,
결국 종말신앙의 본질을 흩트리고 말았다.
더 나아가 첫 번째 질문에 관한 답변까지 호도하여,
구원/해방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기독교적 종말론의 주체에서 배재하고,
이 땅에서의 해방을 저 세상적인 구원으로 대체하려는
이데올로기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범재신론(Panentheism)은 이와 다른 주장을 한다.(범신론 Pantheism이 아니다.)
범재신론은 하나님나라가 (초자연주의적 이신론이 주장하듯이) 역사와 동일한 것으로 여기지도 아니한다.
범재신론은 하나임의 나라와 이 세상을 역동적 관계성 속에서 파악한다.
화이트헤드는 "천국이 자연세계를 초월하듯, 이 세계도 천국을 초월한다. ...
그 나라는 이 세상 안(in)에 있지만, 이 세상의 것(of)은 아니다"고 말한다.
-Whitehead, <진화하는 종교 Religion in the making>, 영문 88/ 한글 83
이러한 사유는 범재신론이 지닌 관계론적 우주론에서 볼 때의 지평에서 이해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 세계에 내재하는 분이라면,
그의 나라 역시 홀로 '선(善)'이 되어 세계의 악과 분리된 채로 존재하지 않고,
"악을 선으로 극복해 가는" 곳에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Whitehead, <진화하는 종교 Religion in the making>, 영문 155/ 한글 146.
(주: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가 겨자씨처럼 "자란다."고도 하고, "우리 안에 있다"고도 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들어가야 할" 나라라고도 말하였다.)
범재신론적 이해는 영원이 시간으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고,
영원을 시간의 "깊이"로 이해하는 것에 있다.
세계의 완벽한 현실 즉, 하나님 나라의 도래는 "초시간적인(timeless)" 영원이 예증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세계 위에/안에 초시간성이 심겨지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의 "완전한 순간이란 시간의 경과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perpetual perishing)',
시간은 '영원의 움직이는 이미지(moving image of eternity'가 된다."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과정과 실재>, 영문 338/한글 639
전통신학의 시간 이해에서 신의 종말론적 '도래(advent)'는 시간의 파국을 의미하지만,
범재신론에서 신의 도래는 시간 속에서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활동하는 신의 "모험(adventure)"으로 이해된다.
-Roland Faber, "God's Advent/ure: The End of Evil and the Origin of Time". 2005, p 102
그 도래/모험(Advent/ure)의 목적은 하나님의 평화 즉, '샬롬'을 이루는 것이다.
분명히 이 세계는 선과 악이 혼재된 지극히 모호한 곳이다.
그러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힘주심'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인 평화는 이 세계 속에서 이루어져갈 것이다.
-김희헌, <민중신학과 범재신론 For a minjung theology as political panentheism>, 187-190
이 세상의 포기와 파멸로 인한 저 세상에서의 구원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악의 종말과 함께 도래하는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하나님 나라.
이것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소망하고 이 땅에서 이루어야하는 그리스도인의 사명 아닐까!
추)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아멘!
Photo from :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16/05/16051812555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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