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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7 18:48

십일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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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신천지교인입니다"

혹은 "여호와의 증인입니다"라고 하면 성경 말씀의 은혜가 뚝 떨어지나요? 그러한것에 얽매이지마세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사로잡히는 분들이 되기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말씀으로 행복하고 사랑으로 하나되시기 바랍니다.

 

마 5:40~45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이 성경을 읽으면 아버지의 아들이 되려면(45절) 45절 이전의 것을 행해야 하는 것처럼 들릴겁니다. 그러나 45절에 동사가 가정법, 과거, 2인칭과 3인칭, 직설법, 현재, 능동태가 사용되었습니다. 쉽게말해  '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너희를 아들이 되게하려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신다'는 말입니다. 

 

십일조에 대한 신약의 근거가 있는가?>

[개역개정]말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KJV]말 3:8 Will a man rob God? Yet ye have robbed me. But ye say, Wherein have we robbed thee? In tithes and offerings.

[NIV]말 3:8 "Will a mere mortal rob God? Yet you rob me. "But you ask, 'How are we robbing you?' "In tithes and offerings.
[RSV]말 3:8 Will man rob God? Yet you are robbing me. But you say, 'How are we robbing thee?' In your tithes and offerings.

 

 인칭대명사와 물질대명사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나님은 십일조와 자신을 동일시 한다.

 

hmwrt.h.w r`[m.h ^.wn[bq hm.b !trma.w y.ta !y[bq !ta yk !yhla !da [bqy.hㅠ  (BHS 자음 말 3:8)

 

!yhla     스트롱번호 : 430  발음 : {el-o-heem'} : 엘로힘   어원(기원) : 433의 복수형  TWOT : 93c  품사 :  명사,남성형,인칭 파생어: 없음

통상적인 의미에서 '신들'; 그러나 특별히 지존하신 '하나님'에 대하여(복수로 특히 관사와 함께) 사용됨; 가끔 '높은 관리'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방법으로 적용됨; 어떤 때는 최상급으로:- 천사들, x뛰어난, 하나님(신들) (같은), (매우) 위대한, 재판장들, 능한

  1)(복수)통치자, 재판관, 신적 존재, 천사
  2)(복수 강조 용법 - 단수의 의미)신, 신과 같은 존재, 특별한 신의 역사나 사로잡힘, (진짜)하나님

 

구약의 모든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취되었다. 더이상 제사를 드리지 않는 이유도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십일조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취되었다. 십일조의 본질은 돈에 있지 않다. 더구나 신약에서는 어느 구절도 십일조를 강조하는 부분이 없다. 만약 [금전적인 ] 십일조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서신서 어느 한 곳에라도 강조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에서 예수님이 십일조를 강조하셨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바로 마 23:23(11:41)이 그 근거 구절이다. 이 본문이 정말 금전적인 십일조를 강조하는 구절인가?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개역 개정에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라고 되어있어 마치 미래를 향한 명령처럼 보인다. 원어 그대로 보면 데이(dei)는 현재로 ~해야한다로 되어 있지만, 주동사 포이에오 (poievw )는 과거형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데이와 포이에오가 만나면 했어야 했다로 번역해야 한다.

You should have practiced the latter(공의, 긍휼, 믿음), without neglecting the former(겉의 십일조).

Shoud have라는 것은 과거에 대한 후회이다. 영어번역본도 제대로 번역을 했다. 그러나 개역 개정은 말아야 할지니라!로 되어있어 마치 미래형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미래의 그리스도인에게 말하는 뉘앙스처럼 느끼게 만든다. 저것 (앞의 십일조)을 버리지 말고(현재), 이것을 했어야 했다. 즉 정의와 자비와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했었다. 그러므로 미래에 관한 것이 아니다. 미래의 그리스도인에게 한 말이 아니라 지금 화자 되고있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한 말이다. 따라서 이 본문은 십일조를 해라 !는 것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십일조를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게다가 당시 유대 사회는 구약시대이지, 여전히 신약교회시대는 아니다. 이 본문이 신약에 등장하는 유일한 십일조 구절인데, 너희는 십일조도 행하고, 하나님의 공의도 지켜야 할지니라고 번역을 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있다.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유대인에게, 그리고 그들에게조차 십일조를 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너희들은 십일조를 내면서 자기 의를 드러내기 전에 하나님의 공의부터 먼저 지켜야 했었다라며 질책하신 문장을 마치 신약시대에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준엄한 계명인 양 교회 정관에 명시하겠다는 것은 교회를 건물로 보는 근본적인 오류에 있다.

 

병행구절인 누가복음에서는 왜 이 말씀을 하셨는지, 보다 더 분명하다.

 

11: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11: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은 깨끗이 하나 너희 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11:40 어리석은 자들아 을 만드신 이가 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11: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손을 안 씻어 바리새인들이 깜짝 놀랐다. 정결 예식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율법 지킴은 겉을 깨끗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속을 깨끗게 함을 논한다. 율법은 속의 내용을 가지고 있다. 내용은 가지고 있지 못하고 겉의 것만 취하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 겉과 속을 비교하면서 속은 모르고 왜 겉의 것 가지고 난리 법석을 떠느냐? 이 말 뒤에 갑자기 십일조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십일조 문제도 겉과 속이 있다는 것이고 속의 것을 강조하고자 하시는 말씀이다.

 

박하, 운향, 채소(허브)는 분향 단에서 향을 피우는 것들이다. 성전에서 사용되는 것들을 예로들은 것은 율법을 꼬집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겉이다. 그리고 내용은 의와 사랑이다. 그런데 겉의 것 신경 쓰다가 속의 겉, 즉 의와 사랑은 소멸시켰다. 정말 중요한 하나님과 하나 됨, 그 중심을 소멸시켰다. 과녁에서 벗어났다. 예수 당시에는 율법으로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 시대이다. 그래서 그때는 이것저것 다 필요한 것이다. 겉과 속 다 필요하다. 겉옷 속옷 다 필요한 것이다.

 

십일조는 십의 대표이다. 십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것이 아니다. 십은 십계명이다. 그 계명의 그 십. 수없이 많은 계명을 10개로 설명하는데, 10개는 바로 이 하나야! 이것이 십일조이다. 그것이 의와 사랑이다. 의와 사랑은 하나님이다. 그 의를 가지면 내가 십일조가 된다. 율법이 이웃사랑으로 완성되면 내가 십일조이다. 이러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41절에 안의 것으로 구제하라 하는 말씀이다.

 

십일조는 왜 있는가? 예루살렘 성전과 희생 제사 제도가 있었고 거기에 봉사하는 분깃 없는 레위인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이제 예루살렘 성전도 희생 제사도, 레위 지파, 제사장도 다 없어졌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모두가 성전이요, 제사장이다. 그래서 유럽교회는 십일조를 더 이상 드리지 않는다.

 

신학에서는 성경에 나오는 율법을 도덕법/사회법 /제사법으로 나눈다. 도덕법은 10계명 같은 것이고, 사회법은 여자가 남자 옷 입으면 안된다는 것 같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사회법이기 때문이다. 청바지 입는 성도들에게 뭐라고 하는 목사들 있는가? 물론 한때는 그런 적이 있었다. 희생 제사는 제사법이다. 그래서 더 이상 드리지 않는다. 십일조는 분명히 도덕법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레위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십일조는 살아있다. 아이러니이다. 그런데 다른 것은 다 제사법으로 취급을 하고 없앴는데 왜 십일조는 도덕법으로 취급을 할까? 왜 십일조 만큼은 끈질기게 유지하려고 하는가?

 

유럽에도 이미 십일조는 폐지되었는데 유독 한국에는 십일조 내지 않으면 성도가 아니라고 고집하는가? 이것은 건물 중심의 교회 운영때문이다. 우선 빚을 내더라도 신도시에 크게 짓고 본다. 그 빚을 갚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들어간다. 성경 어디에 건물이 교회라고 했는가? 왜 그렇게 큰 교회가 필요한가? 돈을 십일조라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모독하는 것이다(10:3-10, 4:10-11).

 

10: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10: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10: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10: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10: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10: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1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4: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4: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2: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십일조는 예수님 외에 또 다른 무엇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잘못된 성경해석에 기인한 것이다.

 

신약에 십일조 (데카테 1182)라는 말은 히브리서에 4번밖에 나오지 않는다(7:2, 7:4, 7:8, 7:9). 그것도 구약의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리는 것을 언급하는 내용이다. 즉 본질인 그리스도를 말하고자 함이다. 십일조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신약에 한 번이라도 십일조를 내라! 그러면 복을 받는다! 그래야 될 것 아닌가? 그런데 신약에 한 번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놀랍지 않은가? 예수님은 십일조를 바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해 언급하시지만(23:23 병행구 11:42 ; 18:12 )그는 결코 제자들에게 십일조를 바치라고 명하지 않으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 Melchizedek)에게 십일조를 바치는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을 통해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치는 레위에 대해 언급한다(7:2 ,7:5 ). 그러나 그는 결코 독자들에게 그들의 실례를 따르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십일조를 어떻게 할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물을 것이다.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되는가? 이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십일조에 대한 교회사를 잠깐 살펴보자!

 

사도 교부들과 변증론자들의 문헌들에는 십일조를 일컫는 일상적인 단어들이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연보가 있었다. 저스틴마터(Justin Martyr)는 매 주일마다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정한 만큼 각각 기부한다. 거둬들인 것은 대표자에게 맡겨두며, 그러면 그는 그것을 가지고 고아와 과부와 곤란 받는 사람들과‥‥감금되어있는 사람들과 우리와 함께 머무르고 있는 이방인들을 돌봐준다"고 말하고 있다( I Apo1.67; 참조 : Apost. Const. 2,27).

 

이레니우스(Irenaeus)는 기독교인들은 "자유"를 누렸으며 따라서 외적 강제 없이 연보를 바쳤으므로, 십일조를 기독교인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유대의 율법으로 간주하였다(Haer.4,18,2).

 

오리겐(Origen)은 기독교인들의 연보 제도가 십일조 제도를 훨씬 상회 한다고 보았다(In Num.hom. 11). 그러므로 신약성서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의 교부들도 십일조 제도를 과거의 것으로 여겼다.

 

그 이후 초대 교회사에도 연보는 자발적인 것이었으며 사역자의 생활과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행해졌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십일조 제도는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다시 받아 들여졌다. 그리고 A.D. 785 년 샤를레망의 칙령에 의해 아예 으로 제정되었다. 그래서 이제 백성들은 자발적인 것이 아닌 강제적인 종교세가 되었다. 그들은 좋든 싫든 교회의 유지를 위하여 세금을 바쳤다. 이것이 곧 나를 훔친 행위(3:8)인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거의 종교세가 되었다.

 

이제 초대 교회로 돌아가 보자!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바울은 가난한 사람(The Poor)을 돌봐주고(고전 16:1-3 ;고후 8-9; 4:28 ) 기독교 사역을 유지할 수 있도록(고전 9) 소유를 나눠주라고 말한다. 그런데 바울은 관용을 주장하고 명령하지만(고후 9:6 ; 고후 8:1-5 ) 결코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말로, 어떤 특정한 양을 바치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울은 성도들을 위하여, 즉 모()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기독교인들을 위하여 연보(로게이아이)하라고 요구하였다(디아탓세인, 고전 16:1-3; 고후 8:4; 고후 9:1, 고후 9:12). 연보로 번역된 로게이아 (logeia)라는 말은 예배 때 징수된 자발적인 기부금, 모금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금이었다. 강제로 낸 징수금이 아니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전 16: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의 연보는 구약성서 시대의 성도들의 연보와는 달리, 마지못해서 하거나 강제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며(고후 9:7) 연간 수입의 십 분의 일로 정해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즐겁게, 자발적으로, 긍휼로 행해졌다(고전 16:1 고후 9:6-9 ). 이것이 안의 것으로 구제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원래 십일조의 정신이기도 하다.

 

26: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26:12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의 공통점은 모두가 상실한 자들이다. 고아는 아버지를, 과부는 남편을, 나그네는 땅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실은 단순히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 가나안은 젖과 꿀, 즉 말씀이 흐르는 땅이다. 그래서 스스로 말씀을 줄 수 있는 땅이다. 그래서 신랑 없는, 아비 없는, 땅이 없는 자들에게 말씀을 건내주는 것이다. 이것이 구제의 하늘적 차원이다. 그러한 구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모금을 통하여 말씀 사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25:45)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25:46)

 

신약에서는 이들을 지극히 작은 자라고 표현한다. 흔히 소자라고 한다. 이 말씀은 주님이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 심판의 장면에서 나오는 말씀이다. 그런데 그 기준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다. 이 소자가 바로 객과 고아와 과부이다세상의 구제는 동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불쌍해서 거지를 돕고, 불쌍해서 아프리카 난민들을 돕는다. 그래서 은근히 자기 의를 쌓는다. 그러나 성경의 구제 개념은 전혀 다르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제란 단순히 동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제는 소자 사상이다. 소자에게 한 것이 예수께 한 것이다. 소자 사상이라 함은 소자와 예수님을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소자들은 상실한 사람들이다.

 

소자들은 무엇을 상실하였는가? 땅 적인 것으로 보면 그들은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복음이다. 그래서 십일조는 이렇게 근본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곳에 사용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교회의 십일조는 소자에게는 흘러 들어가는 것 같지 않다. 건물에, 교회운영에, 목사에게 지나치게 집중되어있다. 예전에 종교의식으로 드렸던 십일조를 소자에게 할당하는 방법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교회, 목사에게 집중되었던 십일조를 분산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목사가 레위인이라 볼 수는 없겠지만 공동체를 위해 말씀 연구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부분을 할당하는 것은 귀한 일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가난한 자를 위해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사실 소득의 일정 부분을 구제로 사용하는 것은 물질이라는 욕망에서 벗어나는 좋은 도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늘의 존재가 되면 모든 것이 선하다.

 

그러나 땅 적 존재의 행위는 무엇을 해도 악하다. 아무리 돈을 퍼다 주어도 악한 것이다. 그것은 가이사의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구제는 내가 가진 자요, 내가 잘난 자요, 내가 긍휼이 많은 자요, 내가 착한 자요, 내가 자선가라 돕는 것이지만, 하늘적 존재는 내가 높고 잘나서 돕는 것이 아니라, 모두 예수로 보이기 때문에 돕는 것이다. 모든 존재가 로 보이기 때문이다. 모두는 나의 합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말한 공의, 긍휼, 믿음의 개념이다. 너희들은 이런 십일조는 안 하고 채소밭에 상추만 열심히 종교단체에 올리는구나! 진짜 이웃사랑 한번 해봐! 그말이다.

 

, 담배, 제사 가리고 십일조 잘하면 신앙생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교회 신앙관이다. 그들은 술, 담배, 십일조 무서워서 예수님을 못만난다. 십일조는 분명히 가나안의 전리품인데 말이다. 십일조 때문에 소자들이 복음을 들을 기회조차 상실한다. 이제 소자에게 복음이 들려져야 한다. 소자가 구제 받아야 한다. 소득의 일정액을 소자의 구제로 사용하는 것은 귀하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재산 불리기로 사용되는 것은 하나님을 훔치는 짓이다.

 

그리스도가 십일조의 실체이다. 그가 단번에 드려 모든 그림자를 이루셨다(7:27). 성경은 십일조를 바치라가 아니라 산 제물이 되라고 한다(12:1). 그렇지 않으면 그림자만 붙드는 것이요, 하나님을 훔치는 행위가 된다. 내가 가나안 땅이 되어야 영적인 전리품을 드릴 수가 있다. 즉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되어 진리를 내어주는 자가 된다. 그래서 그 양식(진리/)<소자>에게 나누어주는 진정한 이웃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돈을 원하시지 않는다. 실질적인 이웃사랑을 원하신다. 십일조는 이웃사랑의 방편이다.

 

-다음은 초대교우들의 신조였습니다. 드릴 말씀은 많지만 여기서 폐하려 합니다.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고 아무쪼록 주님의 평강이 내내 깃드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혹 개인적으로 더많은 자료가 필요하신분은 메일(gohj3650@naver.com)로 연락바랍니다 -

1. 개인 존중주의깨달음과 신인 합일은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자각에 의해서만 성취될수 있으며 교회나 교화와 같은 외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권위주의 종교조직에 의하여 절대화 되고 우상화 되어버린 신은 더이상 인간을 해방하는 진정한 신이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고 속박하는 또 다른 권력자에 불과한 것이다.

2. 만인 제사장 주의 하나님과 직접적인 관계로 인하여 별도의 직업적인 성직자를 필요로 하지않는다.

3. 만인 평등주의 신분과 지위 상에서 계급 차별주의만 아니라 가부장제의 성 차별주의도 넘어서는 급진적인 평등주의다( 대부분의 영지주의 운동이나 집단들은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와 지위를 부여하며, 신의 이미지를 남성으로 표현한 로마교회와 달리 여성성의 여러요소를지니고 있는 다양한 모습으로도 신을 묘사했다).

4. 현재주의 부활이나 신의 왕국의 도래를 현세의 희생이나 믿음에 대한 보상으로 미래에 주어질 실제사건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다시말해 내재된 자기변혁, 자기변형으로 지금, 여기(now & here)에서 성취하고 발견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고통속에서 사는 것이 죄때문이 아닌 '참나'에 대한 무지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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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 마지막 방주= 3낮3밤 땅속에서=주의 길 예비= 방주를 예비 김운혁 2020.11.09 25
1602 말씀에 갈한 영혼에게...(3) 작은아이 2020.11.09 66
1601 말씀에 갈한 분들께(2).. 작은아이 2020.11.08 105
1600 광야의 외침= 주의 길을 곧게 하라. 주의 길= 3낮3밤 땅속에서. 김운혁 2020.11.07 16
1599 말씀에 갈한 영혼들에게... 작은아이 2020.11.06 241
1598 남 탓 내 탓 2 김균 2020.11.05 95
1597 다미 선교회 2 제로미 2020.11.04 75
1596 주의길 "3낮3밤"에 대한 무지= 멸망 김운혁 2020.11.04 17
1595 정도령 = 보혜사 성령= 3낮3밤 땅속에서= 예수의 영=말씀=길 김운혁 2020.11.04 24
1594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양의 피에 죄가 전가 된다?) 예수안에 2020.11.03 43
1593 인자가 올때에 세상에서 "예수믿음"을 보겠느냐? 1 김운혁 2020.11.02 37
1592 나는 왕실의 아이 무실 2020.10.31 56
1591 다른 복음은 없나니 예수안에 2020.10.28 49
1590 엘리야의 사명 김운혁 2020.10.27 39
1589 미국에 계시는 분들 2 김균 2020.10.25 123
1588 안녕하십니까? 2 fallbaram. 2020.10.25 100
1587 2023년 4월 1일부터 1260일간 비오지 않도록 기도 합시다. 2명의 기도를 응답 하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김운혁 2020.10.23 42
1586 예언을 사사로이 해석하지 말라. 김운혁 2020.10.21 33
1585 2021년= 예수님의 잔치의 해. 예수님이 모두를 초청 하십니다. 김운혁 2020.10.18 27
1584 안교공과의 질문과 가능한 대답 들꽃 2020.10.17 36
1583 엘리야와 두 증인이 온다. 김운혁 2020.10.14 28
1582 성경 교사가 필요합니다 들꽃 2020.10.01 67
1581 알듯 모를 듯한 세 천사 기별 1 들꽃 2020.09.18 91
1580 예수님의 이야기 나누기 다 양성 1 들꽃 2020.09.12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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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8 안식일(9) 두 안식일 김균 2020.09.07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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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5 예배당 보증금 빼 전 교인 '기본 소득' 주는 교회 1 나부터 2020.08.28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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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0 말세의 징조인가요 2 들꽃 2020.08.08 132
1569 아무리 생각해도 들꽃 2020.08.08 72
1568 CBS에 고함. 이상구 박사라 부르지 말라. 2 달수 2020.08.06 245
1567 아담에게 드리는 노래. 바이블 2020.08.03 38
1566 켈로그와 이 상구(1) 2 김균 2020.08.02 255
1565 패배주의는 우리의 적입니다 좋은나라에 사는 것에 감사합시다 김균 2020.08.01 54
1564 나는 속죄를 위해서 밤을 새면서 기도해 본 일이 없다 2 김균 2020.07.29 61
1563 Fallbaram 님의 슬픈 소식 듣고 1 들꽃 2020.07.29 128
1562 아! 기독교 1 김균 2020.07.28 77
1561 그의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무실 2020.07.25 35
1560 장강의 눈물-거대 중국의 민낯 김균 2020.07.22 57
1559 여우사냥하는 나라 김균 2020.07.14 94
1558 고로나19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 김균 2020.07.11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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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6 비유 김균 2020.07.09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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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3 유투브 닥터 김 (김주영 박사) 건강 TV 개설 1 무실 2020.07.03 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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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1 냉장고에 보관하면 않되는 음식물, 달수 2020.06.24 47
1550 안식교 - 이단2 달수 2020.06.24 94
1549 교리가 진리라는 포장을 거치면 1 김균 2020.06.24 79
1548 오만불손 김균 2020.06.23 66
1547 목구멍을 넓혀라 김균 2020.06.23 35
1546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 세상은 다시 오지 않는다 김균 2020.06.23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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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4 카스다에서 어느 목사에게 쓴 글 1 김균 2020.06.22 250
1543 별똥별이라도 되고 싶다 김균 2020.06.2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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