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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곧 율법의 목표란 말이지요.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모든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시나요? 그렇게 되셔서 말씀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1.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방언

고린도전서 12장에서 14장을 읽어보면 전체 문맥은 방언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12장에서 바울은 의도적으로 방언을 은사목록 맨 뒤에 놓는다(고전 12:10, 28)

 

고전 12: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고전 12: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고전 12: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13:8, 14:6을 보면 방언을 계시, 지식, 예언과 같은 분류로 놓고 있다.

 

고전 13:8-10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전 14: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 하리요

 

139-10절의 예언은 문맥상 분명히 8절의 은사들이다. 이 세 가지들(예언, 방언, 지식)을 모두 예언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어버린다. 그런데 이 예언은 말씀의 은사이지, 흔히 말하는 기도의 은사가 아니다. (기도도 결국은 말씀/진리를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은사가 온전한 것이 올 때는 폐할 것이다. 즉 온전한 말씀이 오면 이러한 예언들이 폐할 것이다. 사도바울조차도 자신이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라는 표현을 쓴다.

 

고전 13: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고전 13: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래서 온전한 것이 올 때"가지는 지금 가지고 있는 성경 66권이라고 하지만, 내가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온전히 안다고 할 수 없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때에는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다. 언제인가? 영광의 몸을 입고 주님을 만날 때이다고린도전서 14장은 계속해서 방언과 예언을 비교하고 있다. 비교하는 자체가 같은 계열이라는 말이다.

 

예언이라는 단어가 신약에는 프로페튜오, 구약에는 나바이다

 

profhteuvw (4395, 프로페튜오 {prof-ate-yoo'-o} ) 예언적인 계시를 하다, 예언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은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다라는 의미이다.

 

[고전 11: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1: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1: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1: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1: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1: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1: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1: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1:74 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1: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1: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1: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1: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1: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프로페튜오는 가르치고 권고하고 위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전 14:3, 고전 14:31).

 

[고전 14: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11:3에서는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고 심판과 회개의 복음을 전한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예언이다.

 

ab;n: (5012, 나바) 예언하다 prophesy 

나바(동사)는 나비(aybin: 5030: 예언자, 대언자)에서 유래한 동사이며 '예언하다 prophesy'를 의미한다.

 

11:25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신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신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아니하였더라

11:26 그 녹명된 자 중 엘닷이라 하는 자와 메닷이라 하는 자 두 사람이 진에 머물고 회막에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나 그들에게도 신이 임하였으므로 진에서 [예언한지라 ]

11:27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더이다 ]하매

 

예언은 여호와의 신이 임했을 때 하는 것이다. 즉 진리의 영이 임했을 때 가능하다. 그런데 수금과 비파와 제금으로 예언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찬양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예언의 일종이다.

 

대상 25:1 다윗이 군대 장관들로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 하였으니 ]그 직무대로 일하는 자의 수효가 이러하니라

대상 25:2 아삽의 아들 중 삭굴과 요셉과 느다냐와 아사렐라니 이 아삽의 아들들이 아삽의 수하에 속하여 왕의 명령을 좇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 ]

대상 25:3 여두둔에게 이르러는 그 아들 그달리야와 스리와 여사야와 하사뱌와 맛디디야 여섯 사람이니 그 아비 여두둔의 수하에 속하여 수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신령한 노래를 하다로 번역되어 있는것이 '라바'이다. 많은 사람이 예언자하면 미래를 예측하는 점쟁이처럼 생각한다.

 

14: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

 

23: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37:4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37:7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37:9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 하라

37:10 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37:12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뼈에게 대언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죽은 네크로스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뼈들이 살아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언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은 무엇인가?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2:15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2:16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2: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2:18 그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2: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2:22 이스라엘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2:25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2: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2: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2:29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 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2: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2: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2: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2: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2: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이것이 예언이다.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계시라면, 예언은 알아들을 수 있는 계시이므로 예언이 교회에 유익을 끼친다는 것이 고전 14장의 주요 메시지이다

이런 내용으로 볼 때, 고린도전서 14장이 말씀하고 있는 방언이란

1) 예언과 비견될 수 있는 분명한 말씀 은사이다.

2)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므로 예언보다 못하다.

따라서 결론은 방언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기도 은사가 아니라 말씀(계시) 은사이다. 고린도전서 14장에 의하면 방언은 심판의 표지이다.

 

고전 14: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고전 14: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고전 14: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고전 14: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고전 14: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고린도전서의 배경이 이사야 28장이다.

 

28:9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28:10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28:11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28:12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 하였으므로  

28:13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

 

[28:9] 제사장들이 나에게 빈정거린다. "저자가 누구를 가르친다는 건가? 저자의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젖뗀 아이들이나 가르치라고 하여라. 젖을 먹지 않는 어린아이들이나 가르치라고 하여라.

[28:10] 저자는 우리에게, 한 자 한 자, 한 절 한 절, 한 장 한 장 가르치려고 한다. (히브리어 본문의 뜻이 불확실하다). / , '차브 라차브 차브 라차브/카브 라카브 카브 라카브/제에르 샴 제에르 샴' 예언자의 말을 흉내 내는 뜻 없는 소리일 수도 있다. 번역판에 따라서는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또는 '명령에 또 명령을 명령에 또 명령을 /규칙에 또 규칙을 규칙에 또 규칙을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28:11]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알아듣지 못할 말씨와 다른 나라 말로 이 백성을 가르치실 것이다.

[28:12] 주님께서 전에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 "이곳은 평안히 쉴 곳이다. 고달픈 사람들은 편히 쉬어라. 이곳은 평안히 쉴 곳이다 ." 그러나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28:13]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차브 라차브, 차브 라차브, 카브 라카브, 카브 라카브, 제에르 샴, 제에르 샴". 그래서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서 다치게 하시고, 덫에 걸려서 잡히게 하려 하신 것이다. / 히브리어 본문의 뜻이 불확실하다. , '차브 라차브 차브 라차브/카브 라카브 카브 라카브/제에르 샴 제에르 샴' 예언자의 말을 흉내 내는 뜻 없는 소리일 수도 있다. 번역판에 따라서는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또는 '명령에 또 명령을 명령에 또 명령을 /규칙에 또 규칙을 규칙에 또 규칙을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28:9]"저자가 하느님을 안다고 누구를 가르칠 셈인가? 되지 못하게 계시를 받았다고 누구를 깨우쳐줄 셈인가? 겨우 젖뗀 아기에게나, 금방 젖꼭지 놓은 아기에게나 해보시라지!

[28:10] 저자가 하는 소리를 좀 들어보세 . '사울라사우, 사울라사 ! 카울라카우, 카울라카우! 즈에르삼, 즈에르삼!'" / 뜻은 이런 것인지 모른다. "명령에 또 명령을, 명령에 또 명령을, 규칙에 또 규칙을, 규칙에 또 규칙을, 여기서 조금,저기서 조금."

[28:11] 과연 이제 하느님께서는 더듬거리는 말씨와 다른 나라 말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셔야겠구나.

[28:12] "쉴 때가 되었다. 고단한 자는 안식을 얻어라. 이제는 안심하여라." 일찍이 이렇게 말씀 하셨지만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28:13] 그래서 야훼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사울라사우, 사울라사우! 카울라카우, 카울라카우! 즈에르삼, 즈에르삼!" 이런 말을 들으며 걸어가다가 뒤로 자빠지거라. 뒤통수가 깨지고 그물에 걸려 잡히거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려고 한다. 12절에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이렇게 전했는데 그들은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듣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은 선지자들의 지식이 아이들에게나 어울린다고 한다. 그리고 선지자들을 하는 말을 조롱하는 것이 10절이다. 개역 개정에는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이렇게 번역되어 있으나 사실은 배우기 싫은 아이들이 아무 뜻 없이 아브라카타브라 아브라카타브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일종의 지금 아무 뜻 없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11절에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이 등장하는 것이다. 너희들이 그렇게 방언을 하니, 그래 진짜 방언을 들려주겠다는 말이다. 어떻게? 앗수르의 침공으로 말이다. 다른 나라가 침공하면 어떤 현상이 있겠는가?

 

앗수르가 침공하면 다른 나라 언어가 웅성웅성 들릴 것이다. 이스라엘의 언어가 아닌 외국어가 성밖에서 그것도 한두 명도 아닌 몇만 명의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공포일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폐허로 만들기 위한 이방인들의 침략이다. 즉 심판이다. 따라서 방언은 심판의 표지이다.

 

고린도전서는 이사야의 말씀의 배경으로 하여 방언은 심판의 표지라고 한 것이다. 통역되지 않은 방언은 심판의 표지이다. 동일한 심판의 표지가 오순절 방언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번에 이 방언은 이스라엘 성전의 완전 파멸을 암시하지만 말이다. 이스라엘이 들은 소리는 그들의 땅을 파괴하려고 준비하는 앗수르 병사들의 것이 아니라 새 성전의 건축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갈릴리 사람들(2:7)의 것이다.

 

2:7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2:11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방언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이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묵시를 뜻한다. 방언은 하나님의 큰일이다. 똑같은 말씀을 듣는데 어떤 이는 아멘, 어떤 이는 전혀 깨달아지지 않는다. 전혀 깨달아지지 않는 언어, 그것이 방언이다. 하나님의 큰일을 알아듣는 자들은 그 언어가 더 이상 방언이 아니다. 그러나 알아듣지 못하는 자들은 그들이 술 취한 줄 안다. 즉 미친 자들로 취급한다.

 

2: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그래서 알아듣는 자에게는 구원이요, 알아듣지 못하는 자에게는 심판이다. 그래서 믿지 않는 자들에게 표적이 된다고 한 것이다.

 

지금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면 미쳤다고 하지 않는가? 또 같은 교회 내에서도 진짜 복음을 전하면 알아들을 수 없다. 나는 복음을 전하는데 그들에게 나의 언어는 마치 방언처럼 들리는 모양이다. 아무리 예기해도 알아듣는 것 같지가 않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큰일은 방언으로 들리고 하나님의 작은 일만 복음으로 들린다. 그래서 설교자들은 점점 더 타협하게 되고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하고 우울한 감정을 치유하는 작은 일 말이다. 큰일을 전하는 진짜 방언을 하자!

 

2. 왜 바울은 전면적으로 방언을 금지하지 않았는가? 

고전 14:39 그런즉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고전 14:40 모든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당시 이방 종교에서도 방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거짓 방언이 고린도 교회에 들어왔는데, 그럼에도 바울이 전면폐지 하지 않았던 것은 그것과 명확히 구분되는 진짜 계시로서 방언(language)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중첩 시기이므로 계시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였다. 진리와 비진리가 섞여 있던 시대였다. 방언을 금지하면 그가 은사를 멸시한다는 반대파를 고려하여 전면 부정은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체 문맥은 방언에 대해 부정적이다(해석할 때 항상 소문맥보다 전체 문맥이 중요하다. 이것은 해석의 기본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은 사도행전 2장이든 고린도전서에서든 명확히 통역이 필요한 언어이다(고전 14:27). 방언이 오늘날처럼 개인기도 수단이라면 굳이 왜 통역하라고 하는가?

 

고전 14: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고전 14: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고전 14:28 만일 통역 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그러나 현대의 방언 대부분은 통역이 전혀 되지 않는다. 언어가 아니라 단순 음절의 반복이다. 방언은 개인 기도수단이 아니라 계시 [진리의 흘림]의 방편이다.

 

diermhneuvw (1329, 디엘메뉴오 ) 번역하다 translale, 해석하다 interpret, 설명하다 explain.

 

1329  diermhneuvw   diermeneuo  {dee-er-main-yoo'-o}

1223 2059 에서 유래 ;철저하게 설명하다 ,  (함축적으로 )번역하다 , 강해하다해석(하다 )<24:27;고전 14:5>. to explain thoroughly, translate;

 

1223  diav   dia {dee-ah'}

기본적 전치사 행위의 통로를 가르키는;(매우 광범위한 적용; 지역, 원인, 경우에 있어서)통하여, 후에, 항상, 가운데, ~, 피하다, (그것)때문에, 간단히 ~에 의해서 (원인을)위해, 으로부터, 안에, 경우에 따라서, 때문에, ~를위해그것, 그것에 의해, 그러므로, 비록, 통해서,~에게, 무슨이유로, 와 함께, 복합어에서 역시 같은 일반적 뜻을 보유한다 <1:3;6:4>  Dia, <디아 >2203 을 보라 전. through, by with;a)소유격지배시, 통하여, 말미암아 b)목적격 지배시, 때문에 c)합성어 에서종종완전성을 나타낸다.

 

2059  eJrmhneuvw   hermeneuo  {her-mayn-yoo'-o}

추정된 2060(언어의 신으로서)의 파생어에서 유래 ;번역하다, 해석하다 <1:42;7:2>. to translate;

 

헤르메스(2060)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 중 전령의 신이다.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달하는 신이다. 그래서 디엘메뉴오라는 것은 신의 계시를 인간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통역이라 함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말(랄랄라가 아니라), 즉 복음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다. 자신이 깨달은 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들을 수 없다면 그것은 방언에 지나지 않는다.

 

24: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디엘메뉴오 )

 

자세히 설명하는 통역(디엘메뉴오)은 언어의 번역도 있겠지만 눅 24장에서는 자세히 설명하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구약을 자세히 설명하여 그리스도에 관해서 설명한다. 미련하고 더디 믿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 구약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 그것이 통역(디엘메뉴오이)이다. 따라서 방언은 아직 해설되지 않은 계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동의하고도, 그 당시의 방언과 현대의 방언은 다르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성령께서 말씀 안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와의 다른 방언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당시의 방언은 language이고 현대의 방언은 하나님과 비밀리 말하는 천사의 말(고전 13:1)이라고 한다.

 

이 무슨 궤변인가? 13장에서 천사의 말이라고 한 것은 과장법에 불과하다. 네가 천사의 말(강조)”을 한다 할지라도 사랑 없으면 소용없다는 것이지, 네가 말하는 방언이 천사의 말이란 것이 아니다. 어떤 책에서 마귀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가 방언이란다. 그래서 하나님과 나와의 비밀 언어가 방언이란다. 왜냐면 마귀가 말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흔히 생각하는 드라큘라 혹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 마귀는 없다.

 

진짜 방언은 통역됨이 마땅하다. 통역되지 않는 짝퉁 방언은 마땅히 없어져야 한다. 그런데 기도 좀 한다고 하는 분들 치고 방언 안 하는 분이 거의 없다. 솔직하게 자신을 돌아보자! 자신의 방언이 랄랄라 방언인지! 명백히 통역될 수 있는 language인지! 이미 하나님은 알고 있다. 그러니 진실 하자! 기만하지 말자!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짝퉁 방언들이 판을 치고 있다. 짝퉁 방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학습된 몇 마디 언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랄랄라 방언을 용인할 수 없다. 랄랄라 방언을 용인하는 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이방 종교를 기독교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바울 당시에는 계시가 계속 주어졌기 때문에 금지하지 않았다. 방언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다른 서신서에도 방언을 하라고 강조했을 것이 아닌가? 방언을 해야 거듭난 것이라면 서신서에 한 마디라도 그렇게 말해야 하지 않는가? 어느 서신서에도 방언을 강조하지 않는다. 은사주의/오순절 주의에서오늘날에도 성경을 통하지 않고서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란 개념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왜냐면 하나님은 진리에서 벗어나 말씀하시지 않는다. 성령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는데 도대체 누구의 음성을 들은 것인가? 자기의 음성인가? 하나님의 말씀인가? 결국 방언을 추구하다 보면 진리보다 자기 마음속에서 들리는 음성에 더 귀를 기울인다. 성경을 읽어 성령의 음성을 듣기보다는 기도를 해서 내면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더 귀를 기울인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거짓 예언이 판을 치게 된다.

 

방언을 용인하는 순간 말씀보다 체험을 위에 둔다. 체험을 위에 두게 되면 모든 기준은 자신의 경험이 되게 된다. 자신의 경험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방언을 추구하면 계속해서 더 자극적인 신비주의를 추구하게 된다. 말씀이 최고의 신비이다. 말씀은 곧 그리스도를 말하니 그리스도가 최고의 비밀이다. 더 이상 무슨 비밀이 필요한가? 방언을 하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한 것처럼 말하는데 성경 어디에 그런 말이 나오는가? 그런데 왜 자꾸 더하려고 하는가? 왜 자꾸 기만하는가? 왜 자꾸 자신은 영적인 것처럼 위장하는가?

 

사실 방언은 20세기에 미국의 아주사란 곳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면 20세기 이전의 성도들은 구원도 못 받았는가? 믿음의 선배들은 방언 없이 신앙생활 잘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20세기에 들어 난리인가? 말세라 그런 것인가? 갑자기 신령해지기라도 했는가? 그렇게 신령해서 한국교회가 이 모양 이 꼴인가?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미혹이다. 모든 종교에 방언은 있다. 모든 종교가 교리는 달라도 방언 만큼은 같다. 무당도 방언을 한다. 최근 종교통합을 시도할 수 있는 것도 이 부분이다. 모두 방언으로 접신을 시도하고 있다. 그 신이 도대체 누구인가? 여호와인가? 바알인가?

 

방언을 신학적으로 틀리지만, 실천적으로 좋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기도를 깊게 하고 오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기도를 오래 한다는 사상 자체가 이미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종교 사상이다). 그러나 자신만 그렇지 타인은 어떤가? 본인은 깊고 오래 기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처음 교회에 온 사람은 어떠한가? 랄랄라, 코카콜라를 듣고 미쳤다고 하지 않겠는가? 조롱하지 않겠는가?(고전 14:23). 그리고 실제로 방언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상당한 방해를 준다. 오늘날 랄랄라 방언은 더 이상 공동체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기도를 오래 할수록 좋은가? 왜 사람들은 기도를 오래 해야 좋다고 생각할까?  말을 더 많이 하고, 크게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듣는다고 생각한다.

 

왕상 18:25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  

왕상 18:26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왕상 18:27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왕상 18:28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  

왕상 18:29 이같이 하여 정오가 지났고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 저녁 소제드릴 때까지 이르렀으나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이 장면이 어떤 면에서 오늘날 모습과 많이 닮이 있다는 점에서 섬짓하다. 현재 많은 사람이 방언을 한다. 그런데 목회자들은 이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 왜냐면 입장을 밝히는 순간 방언을 하는 사람을 잃기 때문이다. 교회성장에 방해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학적으로는 분명히 아닌 것을 알면서도, 실천적으로는 그것을 허용해버린다성경에서 말하는 진짜 기도는 무엇인가? 진짜 기도가 무엇인지 알면 소위 랄랄라 방언은 자동으로 멈춘다.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사도바울은 말한다 .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가 무엇인지 알면 자연스럽게 (거짓) 방언은 없어진다.

 

2-1. 외식의 기도 하나님의 기도

 

기도가 무엇인지 알면 자연적으로 (가짜)방언을 하지 않게 된다. 사도바울이 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알면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모르니까 하는 것이다예수께서 기도할 때 하지 말라고 한 것이 있다. 그런데 현대교회에서 죽으라고 하는 것들이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6: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6: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예배당에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교회에서 기도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오래 기도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 의식해서 오랫동안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새벽 기도 때 가장 늦게 가는 사람이 가장 거룩한 사람이다. 물론 목사와 교역자들이 늦게 가야 한다. 실제로 목사는 가장 오래 남아 기도해야 하지 않는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 의를 쌓기를 좋아한다. 어떤 목사는 하루에 7시간씩 기도한다고 공공연히 자랑하지 않는가! 그렇게 기도해야 신령한 능력이 많아진다고 주장한다. 기도를 오래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율법적 사고이다. 이렇게 기도를 오래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 (가짜)방언이다.

 

중언부언[重言復言, babbling]하지 말아야 한다.

중언부언에서 중은 무거울 중, 되풀이할 부를 사용한다. 그런데 은 무겁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중복 이라는 의미도 있다. 예를들면 중복(重複), 중첩(重疊), 이중(二重)같은 단어이다. 복은 되풀이된다, 다시라는 뜻으로 으로 발음된다. 왕복(往復), 회복(回復), 광복절(光復節). 그래서 중언부언은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는 뜻이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밧톨로게오밧토스’(말을 더듬는 사람)로고스’(말씀)의 합성어로서 말을 더듬거나, 생각 하지 않고 함부로 주절대거나, 이방의 술사들이 주문을 외우듯이 웅얼거리거나, 어린아이들이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여 지절거리는 것을 뜻한다.

 

근접 문맥에서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다. 왜 말을 많이 하는가? 말을 많이 해야 들으실 줄 생각한다. 말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은 오래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방언으로 하면 기도를 오래하는데 도움이 되긴 된다. 때로는 깊은 황홀경으로 인도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가짜)방언하는 사람들은 (가짜)방언을 마치 자랑거리로 하고 있다. 방언을 받지 못했으면 구원을 받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다른 사람을 멸시한다. 어떤 사람은 (가짜)방언기도하다 폰이 울리면 폰 메시지 보면서 (가짜)방언으로 중얼중얼 거린다. 그러나 (가짜)방언이야말로 중언부언의 전형이다. 그리고 저희는 (외식하는자, 이방인)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5:20절에서 너희 의가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할 때의 그 <플레이온>이라는 말이 쓰였는데 그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러니까 율법적인 바리새인들은 계속해서 더, , 더를 추구한다. 그러니까 기도도 율법적으로 더 많은 말을 하여야 하고, 더 오랜 시간을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한다. 기도를 오래 하면 하나님의 보좌를 흔든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가 아니고 더 낫지 아니하면이라고 했는데 그때 그말이 <페리슈오>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같은 <플레이온> 신앙이 아닌 <페리슈오>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페리슈오>라는 말은 차원이 다르다는 말이다. 바리새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의가 되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한 것이다. 차원이 다른 의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차원이 다른 기도는 무엇인가? 일반 종교와 다른 차원이 다른 기도는 무엇인가? 다른 종교에서 하는 기복적인 기도와 차원이 같을 수 없다. 종교적 기도가 아닌 복음적 기도는 무엇일까?

 

프로슈코마이

프로슈코마이란 간단히 정의하면 ‘~을 향한(prov") 원함(eu[comai)’이다. 대부분 인간의 하나님을 향한 원함을 기도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원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인간은 무엇인가를 원한다. 그러나 죽어 있는 네크로스가 원하는 것은 우상을 원할 뿐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바람을 할 수 없는 존재가 네크로스이다. 누가 누구에게 원할까?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기도의 의미는 너희를 향한(prov") 나의 원함(eu[comai)”이다. 그러닌까 하나님의 원함이다. 그러니까내가 하나님께 소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에게 향하신 뜻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기도는 하나님 편에서 나에게 하시는 것이다. 사람은 본래 네크로스이다. 네크로스가 하나님의 뜻을 바라지는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이 원하는 소원을 신에게 바랄 뿐이다.

 

그 좋은 예가 요셉의 꿈이다. 요셉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먼저 요셉에게 당신의 원함을 알려주셨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두 번에 걸쳐서 꿈(계시)을 보여주신 것은 바로 하나님이 요셉에게 기도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신 것이다. 기도는 내리사랑이다. 기도는 먼저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하셔야 한다. 따라서 기도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그 말씀을 먼저 듣는 것이 기도이다. 그러므로 먼저 아버지의 마음(원함)을 들어야 한다. 차원이 다른 기도는 하나님의 기도이다.

 

2-2. 예수가 새벽기도의 창시자?

 

6:5 또 너희는 기도 할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골방에서 기도하라고 한다. 그렇다면 골방이 없는 사람은 어찌하란 말인가? 이 골방은 보이지 않게 기도하라는 일종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큰 거리 어귀는 예루살렘 성전 광장의 주변 같은 곳이다. 큰 거리 어귀는 성전 마당 같은 곳인데 그곳은 희생 제사가 있는 곳이다. 희생 제사로 자기 의를 쌓지 말고, 지성소로 들어가라는 말이다. 큰 거리 어귀는 성전 마당, 그와 반대되는 성전 골방을 말한다. 즉 지성소를 말한다.

 

예수는 틈나면 산으로들어가 홀로 기도하셨다. 왜 산으로 가셨을까?

 

21:13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도다 하시니라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다. 즉 진리를 공급받고 진리가 흘러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것을 하지 못하면 강도의 소굴이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산으로 홀로 가서 기도하셨다.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1636  ejlaiva   elaia {el-ah'-yah}

폐어가 된 기본어로부터 추정된 파생어의 여성형 ;(나무나 열매 )올리브 <21:1>여명 . olive-tree;

 

14: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1068  Geqshmanh'   Gethsemane {gheth-say-man-ay'}

기원은 아람어 1660 8081 과 비교;기름 틀 , 겟세마네 , 예루살렘의 가까운   언덕 <26:36>고명 . Gethsemane;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기도를 주로 하셨는데, 감람은 올리브라는 뜻이고, 겟세마네라는 뜻은 기름틀을 뜻한다. 즉 기름을 짜내는 산이다. 올리브를 갈아서 올리브 기름을 내는 곳이다. 즉 진리를 공급받는 곳이다. 그곳에서 아버지와 소통을 했으며, 진리를 공급 받았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서는 진리를 가르쳐 줌으로 병자들을 치유하였다. 예수님은 자주 산에서 홀로 기도하셨는데 그 산이 일종의 골방이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기도를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아들이 도대체 무엇을 기도했을까?

사람들은 예수의 신성을 너무 강조해서 하나님이 하나님께 기도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성소에는 무엇이 있는가? 약속이 담긴 언약궤가 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원함이 무엇인지 잘 들으라는 것이다.

 

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qevlw)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하나님은 십자가 질 것을 원했고, 예수는 괴로워했다. 그러나 예수는 아버지의 뜻이거든 잔을 옮겨달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 뜻을 따른다. 아버지의 뜻을 발견하는 자리가 기도이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기도 응답이다. 기도는 아버지의 원함을 듣고 발견하는 자리이며, 그 원함에 순종하는 자리이다. 자신의 원함, 욕망이 해결되는 것이 기도 응답이 아니다.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소원에 불과하다. 예수께서 홀로 산에서 기도한 내용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먼저 아버지의 뜻을 듣고 그 뜻에 순종하는 과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소원을 빌고 있는 것이다. 이름만 다를 뿐 기도의 내용이 불교나, 천주교나, 개신교나, 이슬람이나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2-3. 중재로서의 기도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간다. 베드로는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

 

10: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10: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0: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10: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10: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베드로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했는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의 기도(원함)는 베드로와 전혀 달랐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부정한 짐승을 먹을 것을 명하셨다. 즉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베드로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원함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원함(기도)3번이나 부정한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원함을 깨닫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

 

6: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그래서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도는 진리를 넘겨받는 것이고(기도 응답), 그 넘겨받은 진리를 전하는 것이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사도들은 진리를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넘겨받았고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무 하였다. 그것을 하라고 보냄을 받은 자들이 사도들이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들은 다른 일에 전무하느라 볼 일 다 본다. 심지어 기도조차도 진리를 공급받는 기도가 아니라 대부분은 자신의 육신의 필요함을 구하는데 전부 소진하는 것이다. 기도제목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전부 교회 부흥, 아픈 신자들의 병을 고쳐달라는 기도이다.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소원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기도를 한다고 해도 단상에서 진리 아닌 말씀을 전하다면 무슨 소용있겠는가? 기도를 통하여 말씀을 공급받고, 그 공급받은 말씀을 전하는 자리가 단상 아니겠는가?

 

기도는 외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골방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말씀을 잘 들어서 내가 먼저 그 말씀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 골방에서 되어진 (내게 있는 것) 것을 가지고 또 가난한 자에게 프로슈코마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슈코마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랄이라는 동사는 중재하다라는 뜻이 강하다. 헬라어의 구제 개념과 유사하다. 구약에는 진리를 소유한 자들이 그렇지 않은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장면이 많다.

 

6419  ll'P;   palal {paw-lal'}

기본어근 ;판단하다 (공식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연루된  의미로 중재하다 ,   기도하다 :-탄원하다 , 판단 (하다 ), 기도 (하다 , 하게하다 , 하는 ), 간구하다

 

20: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찌니라

 

아브라함을 선지자로 소개하고 있다. 왜 그를 선지자라고 하는가? 선지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위해 기도[중재 /진리 흘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진리로 중재를 하였다.

 

20: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야라드'했다. 아들을 낳았다. 왜 갑자기 아들낳는 얘기가 나오는가? 이런 장면을 보고 또 소원을 빌면 아들도 낳는다로 흘러간다. 사람들은 항상 기복으로 해석하는 재주가 있다. 성경은 항상 복음을 말한다. 복음은 소원성취가 아니다. 진리를 흘려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림이다. 단순히 아들을 낳는 것이라면 왜 아비멜렉을 치료했다고 하는가? 원어를 잘 살펴보면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여종을 모두 치료했고, 그리고 아들들을 낳았다라고 되어 있다. 남자가 무슨 재주로 아들을 낳는단 말인가?

 

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 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모세는 백성을 위하여 기도(중재)한다. 그리고 여호와는 응답한다. 즉 진리를 넘겨주신다. 그래서 그 진리를, 놋 뱀을, 장대 위에 다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 진리를 받는 사람은 살아난다. 기도의 좋은 전형이다. 모세는 여호와께 진리를 넘겨받고, 또 백성에게 넘겨준다. 그는 백성을 위해 중재한다. 그리고 그 진리를 넘겨받은 사람은 산다. 이처럼 기도는 생명과 관련이 있다. 기도는 반드시 치료를 낳는다. 기도는 반드시 사람을 살리고 고친다. 이것이 기도의 진정한 힘이다.

 

9:20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  

9:21 너희의 죄 곧 너희가 만든 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살라 찧고 티끌같이 가늘게 갈아 그 가루를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느니라  

 

모세는 아론을 위하여 기도(중재)했다. 그리고 아론이 만든 우상을 가루로 만들어 시내에 뿌렸다. 모세의 기도가 진리의 흘림이 되어 비진리 우상을 녹여 버렸다. 이처럼 기도는 상당히 실재적인 것이다.

 

삼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삼상 12: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라고 참 많이 인용하는 구절이다 . 그래서 기도는 무조건 오래해야 된다고 생각을 한다 . 그리고 각종기도회를 만들어 잡아돌린다 .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죄이기 때문이다 . 신약에도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한다 . 그런데 어떻게 쉬지않고 기도할 수 있을까 ?  

 

2-4. 하나님의 기도

 

8:26 이와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질병에 걸려 있음)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프로슈코마이)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표현될 수 없는) 탄식으로(히스테미에서 유래)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는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왜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고 할까?

 

ajsqevneia (769, 아스데네이아 ) 약함, 연약, , 질병, , 소심, 마음 약함.

 

'인류-나'는 질병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진정한 의미에서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살전 5:17에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다. 내가 어떻게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는가? 사무엘이 말한 기도하기를 쉬는 죄란 무엇일까? 그 해답은 성령에 있다성령이 나를 위하여 친히 간구한다

 

uJperentugcavnw (5241,휘페렌튕카노 ) 52281793에서 유래

중재하다, 탄원하다.

5228 uJpevr {hoop-er'} : 휘펠

'위에', (소유격을 가진)'장소의','위의','너머','가로질러서', (원인을 나타내는) 을 찾기 위해서,'대신으로', 에 관해서(목적격과 함께),'보다 뛰어난', 보다더, 복합어에서도 위의 용례들로 사용 <고후 1:6; 1:13>. in behalf of, over beyond, more t

1)위하여, 위한 2)위에, 너머에, ~보다 더 3)더욱, 넘어서, 이상

 

1793  ejntugcavnw   entugchano  {en-toong-khan'-o}

1722 5177에서 유래 ;우연히   만나다 , (함축적으로 )협의하다 , 연루된   의미로 (편들거나 반대하여 )간청하다 , 다루다, 호소하다 <8:27>. tolight on;

 

tugcavnw (5177, 튕카노) 맞히다, 얻다, 발생하다

 

표적에 맞추다라는 뜻이다. 성령이 표적에 맞추게 해준다는 것이다. 어떻게?

 

ajlavlhto"(215, 알랄레토스 )

형용사 알랄레토스 (Phidod.; Anth. Pal. 5. 4 )는 부정 접두사 아(a)와 랄레오(lalevw , 2980: 말하다, 이야기하다 )에서 유래했으며 , '말로 표현되지 않는, 말할 수 없는'을 의미한다.

 

stenagmov"(4726,스테나그모스 ) 한숨, 탄식, 신음함.

명사 스테나그모스 (Pind. 이래)는 스테나조(stenavzw 4727)에서 유래했으며, '한숨지음, 한숨, 탄식, 신음'을 의미한다.

 

4727  stenavzw   stenazo  {sten-ad'-zo}

4728 에서 유래 ;(함축적으로 )탄식하다 ,묵도하다 ,중얼거리다 , 슬픔으로 신음하다, 불평하다<8:23>. to groan;

 

4728  stenov"   stenos {sten-os'}

아마도 2476 의 어간에서 유래 ; (장애물이 가까이 서 있음으로 )좁은 <7:13>. narrow;

 

형용사 스테노스는 '폭이 좁은, 얇은, 가난한'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 '좁은' 문에 대해 사용되었다.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

 

i{sthmi (2476, 히스테미 ) 서다, 세우다, 멈추다, 무게를 달다.

 

성령이 표현될 수 없는 진리로 표적에 맞추게 해준다는 말이다. 성령의 탄식은 표현될 수 없는 진리의 탄식을 말한다. 따라서 기도는 성령이 하시는 것이다. 그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이 기도이다. 그것을 하지 않는 것-곧 성령의 음성을 듣지 않는 것-이 기도하기를 쉬는 죄이다. 성령이 하는 것을 듣는 것, 그것이 페리슈오, 즉 차원이 다른 기도이다. 그때 나는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 기도는 성령의 호흡이다.

 

삼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삼상 12: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tm²a²) 섬기라(db'[;)

 

그래서 그 다음에 바로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일을 사무엘은 가르친다.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 진리의 흘림을 받아서 아버지를 사랑하며 진리로 예배하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4:24).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새벽기도같이 정해 놓고 하는 기도를 말함이 아니다. 기도는 쉬지 말고 하라 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오늘날 한국교회는 새벽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쉬지 않고 기도하는 자는 얼마나 될까? 24시간 기도하란 말인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면 성령께서 쉬지 않고 기도하신다. 기도는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성령이  나에게 흘러들어오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바울의 말에 아멘! 할 수 있는가? 그분과 하나 되면 항상 기도하게 된다.

 

따라서 기도는 방법이 아니다. 기도도 하나님의 기도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탄식이요, 숨소리요, 생각이다(8:26). 그래서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 기도는 무릎 꿇고 눈감고 하는 것만이 기도가 아니다. 말씀 읽는 시간도 기도요,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기도이다. 그분과 하나 되면 모든 것이 기도이다. 존재가 바뀌면 삶이 기도이다. 기도는 교제이다. 마음과 마음의 교제이다.

 

기도의 순서를 무엇보다도 바르게 알자. 기도, 즉 프로슈코마이는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온다. 하나님 그분이 누구인지 먼저 알아가는 과정이 기도이다. 따라서 기도는 내가 말하기 전에 먼저 들어야 한다. 어떻게 듣는가? 바로 말씀을 먼저 들어야 한다. 설교 말씀을 듣는 것도 그래서 기도이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것도 기도요 구제이다. 그런데 그 말씀에는 반드시 그리스도가 선포되어야 한다. 말씀에서 그리스도가 선포되지 않고 이 땅의 풍요와 치유가 선포되면, 그것은 바알에 불과하다. 그것을 성경에서는 독극물, 쑥물이라고 표현한다(15::23, 8:11). 그 말씀을 듣고 기도하면 금송아지 앞에 뛰노는 이스라엘 백성에 불과하고, 바알 선지자들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설교 강단에서는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생명수를 흘러나와야 한다. 그것이 프로슈코마이이다. 성도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조금이라도 잘못 알면 나는 무당 기도가 되어 예배당은 끔찍한 산당이 되어 버린다. 열왕기 시대 가장 성공한 종교개혁도 산당은 없애지 못했음을 심각하게 상고하자.

 

3.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면?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다 받는다이렇게 멋진 구절은 쪽집게로 한 구절만 쏙 뽑아서 사용한다. 그래서 전혀 엉뚱한 뜻으로 본문을 사용한다. 즉 자기 구미에 맞게 사용한다. 그런데 한 구절만 앞으로 가봐도 이 기도가 무엇과 관련이 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11: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나 본문은 소원성취해준다는 말이 아니고 옛 성전심판에 관한 내용이다. 산은 예루살렘 성전을 상징한다. 왜냐면 위 구절 이전에 나오는 내용은 무화과나무가 마르는 사건을 다루는데, 그것은 기도하는 집인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되었으므로 성전은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바다에 던져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심판받아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맥 속에서 막 11:24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로 이어지기 때문에 앞에 것과 연관해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기도하면 옛 성전이 바다에 던져지고, 자신이 새 성전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만큼 귀한 복이 어디에 있는가!

 

33: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으라는 기도하다라는 단어는 아니다. 부르짖으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카라이다다양한 뜻으로 쓰이는 카라이다. 그런데 이 부분만 쏙 빼내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응답하겠다! 하니 나의 소원성취를 위해 기도를 하는데, 이 구절을 인용하여 나의 욕망을 위해서 기도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에 대한 언약이라는 문맥 속에서 해석 되어져야 한다.

 

너무나도 뿌리 깊은 기도에 대한 오해는 나의 소원성취 도구로 생각한다. 그래서 치성을 드려 전능자에게 기도한다. 그리고 응답을 구한다. 그래서 우연히 응답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주어지면 방방 뜬다. 그러나 기도 응답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해 회의한다. 그러나 기도는 소원 응답과 무관하다. 하나님은 알라딘 램프의 지니가 아니다. 스스로가 신이면 스스로 감동하고 신이 감동한 것으로 생각한다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Big Boss처럼 생각을 하고 열심히 소원을 빌면 들어주실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입시철이 되면 불교도나 기독교인이나 모두 열심히 자녀를 위해서 빈다.

 

3. 한나의 기도

 

기도는 치성이면 감천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한나의 기도를 말한다. 한나는 기도의사람이 아니냐? 그가 열심히 기도했더니 아들을 주셨지 않았느냐? 라고 한다.

 

삼상 1: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삼상 1: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삼상 1: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삼상 1:14 엘리가그 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한나는 속으로 말하고,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않았. 그래서 엘리 제사장은 그가 술에 취한 줄 안다. 칼빈은 이 장면을 한나도 방언했다고 한다. 그런데 방언했다기보다 한나는 기도하면서 뭔가 크게 깨달은 것이다. 기도하다 보면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말로 표현 못 할 그 마음!

 

삼상 1: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 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그 마음을 한나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했다고 표현한다. 내 심정을 통했다는 표현의 원어는 나의 네페쉬를 샤파크했다. 나의 호흡을 샤파크 했다. 나의 생명을 샤파크했다.

 

&p'v;(8210, 샤파크 ) 따르다, 붓다, 쏟다, 흘리다

 

샤파크는 피를 붓거나 물을 붓는 것에 사용되었다.

 

삼상 7: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붓는 행위는 그들이 여호와께 헌신하여 그 앞에 그들의 영혼을 완전히 쏟아 내는 심령을 상징한다. 마음 혹은 정신을 쏟는다는 표현은 오늘날에도 흔히 사용되며 잘 이해되는 표현이다. 하나님의 영을 쏟아 부어준다는 약속이 있다.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

 

12: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39:29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영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새번역 삼상 1:15] 한나가 대답하였다. "제사장님, 저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슬픈 마음을 가눌길이 없어서, 저의 마음을 주님 앞에 쏟아 놓았을 뿐입니다. / 곡식이나 과일로 만든 도수가 높은 술 (, 셰카르 )

 

[공동번역 삼상 1:15] 한나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사제님! 저는 정신이 말짱합니다. 포도주도 소주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야훼께 제 속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나도 그의 네페쉬를 하나님께 쏟아 부었다. 그러면서 한나는 하나님의 心情을 이해한 것이다. 그녀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그 임재를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앞에 입술을 떨뿐이다(삼상 1:13). 한나는 지금 그 임재에 깊이 잠겨있다. 그리고 그 심정을 통하고 있다. 그녀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입술만 움직일 뿐이다. 그래서 제사장은 한나를 술 취한 것으로 알았다.

 

삼상 1: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삼상 2:1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보통 한나는 아들을 원하는 기도를 했고, 하나님은 그녀의 기도에 응답하여 아들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도를 한나처럼 지극 정성으로 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나 이야기는 기복적인 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나도 처음에는 아들을 구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들을 구하다 보니, 여호와의 심정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나는 이렇게 말한다.

 

삼상 1:27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삼상 1: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그녀는 왜 사무엘을 야웨께 드린다고 했을까? 그녀는 야웨와 심정을 통했다. 이것이 진짜 기도이다. 심정을 통했더니, 온 마음을 쏟아 부었더니, 그의 마음과 통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그의 마음을 좀 알겠다는 것이다. 그 시대가 어느 시대인가? 사사 시대이다. 그런데 한나에게 아들이 없듯이 여호와의 아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기도 중에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기도다.

 

삼상 2: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삼상 2: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삼상 2: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삼상 2: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삼상 2:5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삼상 2: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삼상 2: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삼상 2: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하나하나가 다 예언이요 계시이다. 이것이 기도이다. 기도는 아들과 아버지의 사귐이다. 사귐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는 시간이다. 천국을 맛보는 시간이다.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는 시간이다. 하나님과 하나 됨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기도는 호흡이다. 그 호흡을 쏟아 붓는 시간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표현하면 모두가 계시가 된다. 예언이 된다. 진리가 흘러간다. 그의 입에서 나온다. 그것이 곧 찬양이다.

 

3-1.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까?

 

많은 교회에서 특별 기도회 혹은 새벽기도를 가진다. 다니엘은 하루에 3번 기도했지 않은가? 그런데 다니엘은 무슨 내용을 기도했을까? 그것이 중요한 문제이다. 기도 제목을 가만히 살펴보면 사실 욕심이 들어가 있는 제목도 많다. 그중의 대표적인 기도가 아마도 교회 부흥을 위한 기도 제목일 것이다. 그런데 부흥이라는 뜻이 무엇일까? 부흥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3:1 시기오놋에 맞춘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이 본문을 가지고 교회 부흥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한다. 그런데 부흥이라는 단어는 한국교회 교인의 숫자가 줄어들었으니 다시 늘려달라는 그런 말이 아니다.

 

[공동 합 3:2] 야훼여,우리가 당신의 명성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야훼께서 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그 일을 보여주십시오. 아무리 노여우셔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새번역 합 3:2] 주님, 내가 주님의 명성을 듣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놀랍니다. 주님의 일을 우리 시대에도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 시대에도 알려 주십시오. 진노하시더라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중동의 신흥 강대국 바벨론이 앗수르 제국을 멸망시키고, 전통적 강국 애굽 마저 격파하는 등 중근동의 신질서가 재편되던 때. 당시 유다는 개혁 주의자 요시야 왕이 전사하면서 국운이 급속도로 쇠퇴해가고 있다. 쉽게 얘기해서 유다가 망하고 있는데,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유다를 망하게 하는데, 더 악한 악인을 통해 망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야훼께서 하신 일을 보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노여우셔도, 잊지 마시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부흥으로 번역된 하야 (hy:j )이다. 살려달라는 것이다. 교인 숫자 늘려 달라는 말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를 모르고 교회성장을 부흥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기도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구해야 할까사실 주께서 기도를 알려주었다. 외식 적인 기도를 쭉 말씀하고, 이제 내가 구해야 할 기도에 대해 알려준다. 그것이 곧 잘 알려진 주기도이다.

 

6: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결핍)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외식하는 자들처럼 그렇게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뭐라고 하는가? 구하기 전에 나에게 있어야 할 것은 하나님 내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한다. 그들과 다른 기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차원이 다른 기도가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구함도 <아이테오>가 쓰였다. 아이테오는 그 빚진 것을 구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미리 약속하신 그것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하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는 나의 결핍을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결핍이 번역이 생략된 autos이다. 원문에는 그를구하기 전에 라고 되어 있다. autos를 넘겨주는(아포디도미) 기도가 바로 주기도문이다. 진정한 결핍은 autos이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autos>를 넘겨달라는 기도이다.

 

Autos3인칭/남성/단수이다. 이 아우토스는 도대체 누구일까

주기도문은 7가지 청원으로 되어 있는데 그중에 가장 가운데 있는 것이 일용할 양식에 대한 기도이다. 주기도문의 문학적 구조상 한 가운데에 핵심이 있는 기도이다. 따라서 이 기도가 주기도문의 핵심이 되는 내용이다. 주기도의 핵심이 되는 내용인데 하루 먹을 밥 달라는 기도일까? 이 일용할 양식이라는 것은 매일 매일을 위한 양식이다. 여기에 함의된 내용은 내가 매일 구해야 된다는 것이다. 매일 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의 매일의 양식이 무엇인가?

 

Autos3//단수이다. 그래서 그를구하라는 것이 주기도문의 내용이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바로 성령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주기도문이다. 따라서 주기도문은 내가 몰랐던 아이테오를 가르치는 것이다. 주기도문은 “autos 그를넘겨주는 작업이다. 주기도문은 암송문이 아니라 결핍을 채우는 기도이다. (성령 /진리 /생명 )를 넘겨받는 기도이다. 이것이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이고, 누가복음에서 말하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1113).

 

11: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1: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1: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찾고 구하라고 한다. 그러면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약속한다. 그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 성령이라고 말씀하시지 않는가? 나는 이미 성령을 받았는데요? 내가 예수님 믿으면 성령이 내주하는 것 아닌가요? 정말로 그런가? 그렇다면 성령이 무엇인가? 성령은 보혜사이다. 즉 진리로 나를 인도하는 영이다. 그러한 증거가 있는가? 진리로 인도함을 받고 있는가? 그러한 인도함이 없으면 점점 중심에서 벗어난다. 그것이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죄이다. 진리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하는 기도는 하면 할수록 중심에서 벗어난다. 즉 죄다. 그럴 경우 열심히 하면 할수록 오히려 죄가 된다. 금송아지 앞에 춤추는 꼴이다. 방향이 잘못되면 차라리 안하는게 낫다.

 

가장 좋은 것은 진리의 영, 성령 그 자체이다. 그래서 주기도문은 성령을 구하는 기도이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다. 그리스도는 말씀이다. 따라서 성령을 구한다는 것은 말씀을 구한다는 말과 똑같다. 성령 충만이 곧 말씀 충만이다.

 

따라서 이 기도는 매일 매일 주님이 깨닫게 해주시는 말씀을 넘겨달라는 기도이다. 단순히 내가 해석한 말씀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처럼 주어지는 기름 부음이다. 이 기도를 나는 매일 해야 한다. 그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이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요(5:3), 그들에게 천국이 임한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말씀으로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김치에 질리지 않듯 성령의 사람은 말씀에 질리지 않는다. 말씀을 먹고 산다.

 

모든 기도 제목 내려놓고 성령을 구하라! 자신의 모든 프레임을 내려놓고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 도와달라고 기도해보라! 진리의 영으로 나를 인도해달라 기도해보라! 그렇게 성령의 음성을 다시 한번 듣는 것, 기존의 종교 해석 모두를 내려놓고, 다시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 그것이 기도이다. 말씀으로 영, , , 그리고 모든 나의 프레임을 수술받는 것(4:12)이 기도이다. 그렇게 말씀으로 수술받을 때 성령 충만하게 된다. 성령 충만은 곧 말씀 충만이다.

 

시편에는 수많은 기도가 있다. 심지어 원수에 대한 저주의 기도도 있다. 힘들어하는 기도도 있다. 기도는 자신의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할 것이 많을 때는 많이 기도하면 된다. 마음으로 교제하는 것이 기도이다. 기도는 인스턴트 식품이 아니다. 누구나 똑같이 해야 하는 공식이 아니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 또 기도의 이해가 다 다를 것이다. 언어가 바뀌면 마음이 바뀐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마음으로 기도하면 된다. 그리고 아래로 향하는 기도도 있다.

 

하나님 마음을 알아채서 이제는 기도의 방향이 위가 아닌 아래로 향하는, 그래서 중재가 되고, 또 구제가 되고 치유가 되는 내리 기도를 경험하자. 그 하나님의 바람을 이제 가난한 자에게 넘겨 주는 것 그것이 기도, 파랄 (중재)이다. 마치 노아가 동물을 실은 것처럼,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바람을 알려주고 안식을 선물해 주는 것이 기도이다. 바울의 기도다.

 

1: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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