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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분들의 싸움은 안식교도, 천주교도, 불교도, 다른 종교와의 싸움도 아닙니다. 싸우지 마세요 자기자신의 우상됨에 대한 싸움 즉, 자기와의 싸움인 것입니다. 말씀이 이해 될때까지 읽고 묵상하고, 또 읽고 묵상하고...그동안 축척해 왔던 선악의 지식에서 새로 거듭나서 생명 그 자체로의 존재함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이 믿겨지시나요? 부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십시요!

 

1. 죄에 대하여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리(실상으로 번역)를 말한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 .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는 것이 진리라는 말이다. ? 보혜사 즉 진리의 영은 예수의 죽음으로부터 넘겨받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예수는 진리의 영으로 엘코마이하는 것이다. 진리의 영은 3가지에 대해서 책망하신다. ‘책망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엘렝코’(1651  ejlevgcw)폭로하다’ ‘논박하다’ ‘깨닫게 한다가 더 원어에 가까운 뜻이다. ‘증거를 가지고 확실하게 논박한다는 것이다. ‘변증하다라는 뜻이다. 즉 성령께서 오시면 이 3가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깨닫게 하신다는 것이다. 3가지가 바로 죄, , 심판이다. 사실 이 3가지는 성경의 가장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그것이 양심이던 국가의 법이던지 법을 어기는 것을 죄라고 한다. 사전적의미의 '죄' 

사회적(會的)으로나 또는 도의()에 벗어난 행위()나 생각 

교법()을 어긴 무자비(慈悲)한 행위() 죄업() 

법률()에 어그러져 처벌()을 면치 못하는 불법()행위() 범죄() 죄범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그의 명령()을 감수()하지 않는 인간()의 행위()

 

죄라는 것은 법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무엇일까16:9에 보면 죄의 정의가 나를 믿지 않는 것이다. 죄는 법을 어기는 것이다’ ‘양심을 어기는 것이다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죄는 나를 믿지 않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이 죄인가?

 

1 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그러므로 나를 믿지 않으면 아버지께로 올 수 없다. 구원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이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16:9의 원어는 하마르티아’(266  aJmartiva)이다. ‘하마르티아과녁을 맞추지 못하다(264  aJmartavnw)는 뜻이다. 죄와 관련된 원어가 파랍토마’(3900  paravptwma)도 있다. ‘옆으로 떨어짐이라는 뜻이다. 사도 바울은 파랍토마하마르티아를 거의 혼용하여 쓰고 있다. ‘파랍토마옆으로 떨어지다’, ‘하마르티아표적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이다. 둘 다 무언가에서 벗어나다라는 뜻이 있다. 그 과녁의 중앙이 바로 길, 진리, 생명이고, 바로 그리스도이다. 그리스도가 과녁의 중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믿지 않는 것이 죄이다. 그 믿음이 없으면 과녁을 맞추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죄라는 것이 법을 어기는 것이라면, 성경에서 법(과녁)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말씀(진리/생명/길 그리스도)에서 벗어나면 모두 죄이다. 진리로부터 벗어나 옆에 떨어진 것이 죄이다.

 

 

옆에 떨어졌다는 말은 도대체 무엇일까?

 

최초의 죄를 설명할 때 성경은 선악 지식나무와 생명 나무로 그리고 있는데, 생명 나무로 먹지 못하면 그 옆인 선악 지식나무로 떨어진다. 성경에서 죄를 그림으로 설명한 부분이 선악 지식나무와 생명 나무이다. 사도 바울은 아담의 예를 들어 죄를 설명하고 있다(5:12~21). 아담이 옆으로 떨어진 것이 무엇인가? 바로 생명 나무 옆에 있는 선악 지식나무로 떨어진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선악 지식나무를 취하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였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즉 생명 나무가 아닌 선악 지식나무로 먹는 것을 죄라고 한다. 선악 지식나무는 율법을 뜻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취하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선악 지식나무(율법)를 보여주신 것은 그것을 통해서 죄를 발견하라고 준 것이다. 나보고 그것들을 완벽하게 지켜서 구원받으라고 준 것이 아니다. 그 율법을 통해서 처절하게 나는 무능력하구나! 그래서 은혜를 붙잡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그렇게 찾아온 것이 죽음이다. 나는 그렇게 죽음을 경험한다. 그런데 그 죽음을 통하여 생명을 발견하게 된다. 어두움이 없으면 빛을 알 수 없다. 선악 지식나무를 통하여 죽음을 경험하고 그때 생명 나무를 알게 된다.

 

요일 3:8 (aJmartiva)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 함이니라(aJmartavnw )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그래서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것이라고 한다. 이때 마귀는 창 3장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범죄 함이니라고 표현을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이러한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함이다. 즉 마귀는 선악 지식나무를 먹게 하는 일을 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마귀의 일을 멸하고, 생명 나무를 주기 위함이다하나님은 성경을, 율법을, 성전을 주신다. 그곳에 아버지의 마음(진리)을 담아 놓았다. 그런데 그 마음에서 옆으로 떨어지면 그게 죄이다. 생명을 잃어버린다. 그런데 그 마음과 다리를 놓는 길이 바로 그리스도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알면 아버지를 알게 된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한마음이 되게 한다. 그리스도를 알면 아버지를 안다. ?

 

과녁을 맞춘다는 것은 그 진리와 하나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 되지 못한 것을 라고 한다. 죄는 하나님과 분리된 것이다. 분리되면 마치 나무가 땅에서 뿌리 뽑힌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이 없다. 살긴 살아도 얼마 살지 못하고, 결핍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죄란 법과 양심을 어기는 것이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것, 그리스도와 하나 되지 못한 것이다. 한마음 되지 못한 것이다. 다른 것은 모두 죄의 현상과 결과일 뿐이다. 다른 것은 모두 과녁에서 벗어난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죄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그것이 바로 .

 

 

2. 의에 대하여

 

16:10 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343  dikaiosuvnh)라고 하면 대부분 정의로 보는 것 같다. 죄는 나쁜 짓을 하는 것이고, 의는 착한 일을 하는 것! 이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것은 어린아이들도 다 가지고 있는 정의개념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dikaiosuvnh)란 무엇인가?

 

16:10에 의하면 의란 예수가 아버지께로 가고, 예수를 다시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 말은 무슨 말인가? 한마디로 의는 예수가 죽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예수께서 죽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를 보지 못하는 것이 의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와 다른가? 도대체 예수께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어떻게 인가? 예수께서 왜 이 말씀을 하셨는가는 본문의 앞뒤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다.

 

 

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16: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예수가 떠나야만 보혜사가 오신다는 것이다. 보혜사는 누구인가? 13절에 의하면 진리의 영(프뉴마만 쓰고 있어 성령이 아니라 영)이다. 그가 '인류-나'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가 예수가 말한 것을 풀어주신다는 말이다. 그래서 ()란 예수()가 죽어 내() 안에 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바울도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의란 예수가 죽는 것인데, 그리스도가 죽을 때 나도 함께 죽었다고 고백을 한다. 이미 나의 죽음이 십자가에서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 자신이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왜냐면 이제 나의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살기 때문이다. 번역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라고 되어 있는데 소유격은 아들의 믿음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dikaiosuvnh)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의가 되는 것이 율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제 율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산다고 고백한다. 율법으로는 죄를 발견하고 사망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은혜가 작동하며 이제는 은혜로 산다는 말이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왜 그런가? 가나안은 어떤 특정한 지명보다는 나의 상태를 뜻한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애굽이 옛 하늘과 옛 땅이라면 가나안은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이다. 광야에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알았다면 내가 곧 가나안땅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모세는 율법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가나안은 약속의 땅이다. 율법으로는 약속의 땅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모세는 어떻게 가나안에 들어가는가? 모세는 여호수아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1세대는 다 죽고 2세대로 가나안에 들어간다. 아브람은 죽고 아브라함으로 들어가고, 야곱은 죽고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것이다. 다 같은 말이다. 율법의 옛사람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언약의 새사람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것이 예수가 죽고 아버지께로 간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예수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사는 곳이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율법으로는 왜 언약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가?

율법은 자기 의를 조장한다. 자기 의란 내가 열심히 율법을 지켜 그 의를 취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의인은 없나니 한 명도 없다. 의는 오로지 하나님의 의만 있다. 율법은 항상 둘로 나눈다. 그래서 율법으로 구원을 이루려고 하면 항상 둘로 분리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조차도 너와 나의 관계로 전락해 버린다. 열심히 율법을 지켜 하나님을 섬기려 한다. 그렇게 함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닌 주종의 관계로 전락한다. 율법을 통하여 죄인임을 깨달아야 하는데, 오히려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고 한다.

 

자기 의가 죽으면 하나님의 의로 산다. 즉 자기 믿음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산다.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모노게네스인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처럼 하나로 산다는 것이다. 분리주의자인 바리새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사는 것이다. 그것이 . 가 되는 것이 구원이다. 구원은 잘 먹고 잘사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그런 개념도 아니다. 구원은 아버지와 하나 되는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하나 됨에서 오는 결과일 뿐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 됨의 나라이다.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된 나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나와 너가 없는 그런 나라이다. 모두 1인칭의 나라이다. 나와 너가 존재하면, 하나님은 위, 나는 아래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종이 되어 섬기는 하나님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분리되어버린다. 의란 그리스도와 하나 됨인데 한자에도 이것이 잘 담겨있다. ()(그리스도)과 내()가 하나 된 것이다. 양은 신에게 드리는 희생제물이다. 그런 양과 내가 하나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의란 예수()가 죽는 것인데, 예수가 죽음으로, ()도 죽는 것이고, 그럴 때 세상 임금이 쫓겨나는 것이다. 그것을 심판이라고 한다.

 

 

3. 심판에 대하여

 

16: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심판이란 잘못한 일이 있으면 죽어서 옥황상제 같은 하나님 앞에 서서 잘잘못을 가리고 잘못 살았으면 불구덩이에 빠져서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본문은 세상 임금이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한다. 완료 수동이다. 왜 심판이 다음에 나오는가? 의란 예수의 죽음이다. 그래서 이 심판은 예수의 죽음으로 인해서 이미 완료된 것이다. 즉 심판과 구원()은 동시에 일어난다. 그래서 선지서에 보면 항상 심판 후 회복을 약속하신다. 심판은 세상 임금이 쫓겨나는 것이다. “세상 임금이심판받는 것이다. 언제? 예수가 죽을 때이다.

 

12: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12: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12: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 이러라

 

예수께서 세상의 임금의 쫓겨남과 자기의 죽음을 연결해서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도대체 세상 임금이란 누구일까? 대부분 세상 임금을 사탄으로 알고 있지만, 사탄은 뿔 달리고 망토 쓴 귀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그래서 성도를 참소하는 자! 비진리로 끊임없이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이다. 5:45에 의하면 모세가 아버지께 고소한다고 한다. 즉 율법이 나를 끊임없이 고소한다세상의 임금이란 하나님 나라의 왕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아르콘통치자라는 뜻이다. 가까운 문맥에서는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이 이스라엘의 통치자이다. 세상의 왕이다. 사탄을 실체를 추상적 언어로 생각하지만, 성전에서 왕 노릇하는 사람이 바로 사탄이다. 예수는 그래서 성전에 앉아 있는 세상 임금,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한다. 그들이 곧 사탄이다. 그러나 2000년 전의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만이 세상의 왕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모든 인간은 세상의 왕이 되어 살아간다. 그런 모습을 그린 것이 계시록이다.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그런데 이 짐승의 뿔이 열이고, 머리고 일곱이다. (kevra",2768, 케라스)은 힘과 능력을 상징한다. 그리고 머리(kwfalhv ,2776, 케팔레)는 통치와 주권을 상징한다. 7 뿔과 10 머리! 둘 다 언약과 율법과 관련된 숫자이다. 그들은 그 언약과 율법으로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 신성 모독이다.

 

눈여겨 볼 것은 그의 뿔에는 왕관을 쓰고 있는데 디에데마’(1238 diavdhma)를 쓰고 있다. 여자가 쓰고 있는 면류관은 스테파노스’(4735 stevfano"), 즉 운동 경기들에서 승리한 사람이 쓰는 월계관을 뜻하는 말로 영광, 영예의 상징이 되는 면류관이다. 그에 비해 디아데마는 주로 왕들이 쓰는 면류관으로 왕권, 권력을 상징한다. 이 사탄을 붉은 용이라고도 하고, 옛 뱀이라고도 하고, 마귀라도 하는 것이다. 즉 이것이 세상의 왕이다. 자기가 머리 된 왕을 뜻한다.

 

세상 사람 모두가 임금이 되어 재판석에 앉아 판결한다. 무엇으로? 모든 사람은 각자 선악 지식나무가 되어 좋은 놈 나쁜 놈, 그것도 분류안되면 이상한 놈으로 판결하며 심판하며 산다. 그들이 바로 세상의 왕이다. 심지어 하나님에게도 명령하는 대단한 왕들이다. 새벽기도 할 때마다 내 뜻 이뤄지게 해달라고 명령하는 왕이다. 이때를 면하게 해주세요! 이게 바로 사탄이다.

 

예수가 죽을 것이라고 했을 때, 말도 안 된다고 예수를 붙들고 항변한 베드로가 바로 사탄이다. 주의 일을 한다고, 봉사한다고, 선교한다고, 구제한다고 설치던 마르다가 바로 사탄이다. 선한 일을 함으로 선을 쌓으려고, 자기 의를 쌓으려고, 자기 만족에 빠져 있는 내가 바로 사탄이다. ‘라는 우상이 바로 사탄이다. 그러한 사탄의 죽음! 그것이 곧 자기 죽음이다. 그러면 내가 어떻게 죽는가? 이 세상 임금은 언제 쫓겨나는가? 진짜 임금인 그리스도()가 나()의 머리가 될 때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난다. 진짜 임금이 와야만 쫓겨난다. 진짜 임금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 것이다.

 

1:5 또 충성 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와 평강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 죽는 것조차 내가 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은혜이다. 그의 피로 나를 죄에서 해방했다. 이때 해방했다는 과거이다. 이미 해방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하고 있다. 십자가 사건 때 나의 죽음도 이미 완성한 것이다세상에는 자기 부인의 개념을 내려놓음이라고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데 그것도 자기가 내려놓는 것이다. 내려놓았으니 난 이제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야, 나는 완벽하게 하나님을 섬긴다고 자부하고 바쁜 마르다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열심히 봉사해야 상을 받을 것 같은 초조함! 그래서 란 면류관을 쓰고 있는데, 그 면류관은 디아데마를 쓰고 있다. 가 곧 사탄이다.

 

그런 에게 전쟁하러 그리스도가 온다. 구원자라고 생각한 그가 심판자로 오는 것이다. 다름 아닌 를 죽이러 오신다. 그때 나는 깨닫는다! ! 내가 바로 사탄이구나! 나에게 와서 전쟁을 벌이시는 그리스도! 나의 7 머리와 10 뿔은 나가떨어진다. 이것이 아마겟돈 전쟁이다. 나를 죽이러 오신 하나님! 나를 죽이기 위해 어떻게 오시었는가말을 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나귀를 타고 십자가에서 죽는다.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의 왕을 원한다. 그들은 예수를 세상 임금으로 추대하려고 한다. 세상 임금은 곧 그들이 원하는 메시아! 그들이 원하는 하나님이다. 그게 바로 사탄이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 임금은 쫓겨난다. 세상 임금 잡기 위해 세상 임금으로 오셔서 를 끌어안고 십자가에서 함께 죽는다. 모세의 뱀이 라는 뱀을 삼켜버린 것이다. 그렇게 예수께서 세상 임금의 대표! 그래서 이 세상의 임금이라는 표현을 한다. 즉 자기 세상의 임금이다. 세상 임금인 나의 대표! 그가 나와 함께 이미죽었다. 그리고 함께 이미부활했고, “이미함께 앉아 있다. 나는 십자가에서 사탄을 보고, 또한 구원자를 보는 것이다.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해서 사탄이 떠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사탄임을 발견했을 때, 그러한 사탄을 위해 예수가 이미나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알 때, 사탄은 하늘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죽는 것이 아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열매가 없다. 한 알의 밀은 예수이다. 그가 와서 죽음으로 라는 열매를 맺은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발견하는 것일 뿐이다. 은혜이다. 성도는 그 은혜를 마짜(ax;m; 4692)’한 자이다. 다른 것 아무것도 없다.

 

천국은 보물찾기이다. 하나님이 다 하셨고, 그 보물을 감춘 것 뿐이다. 그리고 보물을 찾으면 찾았네! 기뻐하시며 상 주시는 하나님이다그러므로 십자가 사건은 2,000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오늘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이다.

 

이제는 안다. 보이는 나는 우상이고, 불려지는 세상 이름은 가짜이고, 흰 돌에 새겨진 이름이 진짜 내 이름이라는 것을! 그 감추어진 이름이 진짜라는 것을, 하나님 안에 감춰진 내가 진짜 나라는 것을... 성경은 모두 그 이름을 증거 하며, 그 이름으로 만들어간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이름으로 산다. 새 이름을 위해서 나의 이름의 죽음이 필요한 것이다복음은 철저한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복음은 천국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지옥부터 시작한다. 죄를 통해서 죽음을 경험하며, 그 예수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나에게 넘겨진다. 그때 세상 임금이 쫓겨나는 것이다( à à심판).

 

그래서 창 1:2은 무저갱(테훔)으로부터 시작한다. 율법으로 무저갱을 발견한다. 율법으로 죽음을 발견한다. 선악 지식나무를 먹고 죽음에 처한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의 의가 일을 한다. 가죽옷을 입혀준다. 그렇게 죽음을 통해 생명을 얻는다. 그런데 그 죽음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을 때 나도 함께 죽는다. 그리고 함께 부활한다.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그리고 그 선물을 나에게 넘겨주신 것이다. 이렇게 진리의 영이 죄, , 심판에 대해 엘렝코(ejlevgcw 1651) 하는 그 날! 바로 그날! 하나 됨을 경험하는 것이다.

 

1651 ejlevgcw : {el-eng'-kho} : 엘렝코 불확신한 유사어에서 유래

'논박하다', '훈계하다', 죄를 깨닫게 하다, 잘못을 말하다, 책망하다, 꾸짖다 <3:20>. to confute;

 

 

하나 됨의 삶! 사랑의 삶! 하나 사랑의 삶이다. 그날에~ 진리의 영이 나를 엘렝코 하는 그날! 바로 그날이 영원이다. 그날에 영원으로 사는 것이다. 그 영원으로 사는 것이 사랑의 삶이다. 그날은 죽음을 통해 경험하는 삶이다. 성령의 교통이다.

 

 

14:20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4. 사탄 구약에 등장하는 사탄

 

신앙은 모두 실체로 알아야 한다. 인식론으로만 알면 안 된다. 실체가 되어야 나의 삶이 변한다. 내가 잘못 알고 있으면 신앙의 양태가 잘못된 곳으로 간다. 잘못 알고 있으면 실제로 잘못된 것을 본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사탄의 허리를 꺾으신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실제로 사탄의 허리를 꺾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는 기독교 안에서 사탄의 허리를 꺾었는가?

 

루시퍼

많은 사람이 루시퍼가 사탄의 이름으로 알고 있다. 루시퍼를 인터넷 사전에 찾아보면 사탄의 우두머리로 되어 있다. KJV에 루시퍼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이 귀신들의 우두머리가 하나님과 끝까지 싸우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적 근거가 있는가? 이 루시퍼는 이사야 1412절에 나오는데,

 

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1966)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966  lleyhe   heylel  {hay-lale'}

1984 에서 유래 (밝음이란 뜻에서 );새벽 별 :- 계명성

 

KJV에만 루시퍼로 번역하고 있고, 나머지는 morning star, 개역 개정에는 계명성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사야 1412~21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냥 교만한 바벨론 왕을 지칭할 뿐이다. KJV성경을 번역하기 전까지 루시퍼라는 관념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루시퍼가 모든 마귀의 우두머리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마치 루시퍼 아래 수 많은 귀신들이 하나님과 대적한다는 미신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야말로 성경에서 한참 벗어나게 된다.

 

사탄이라는 단어는 무슨 뜻일까?  

 

삼상 29:4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에게 노한지라 블레셋 방백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돌려보내어 왕이 그에게 정하신 그 처소로 가게 하소서 그는 우리와 함께 싸움에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가 전장에서 우리의 대적(사탄)이 될까 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그 주와 다시 화합 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로 하지 아니하겠나이까

 

우리의 대적이 될까 하나이다에서 대적이 사탄(7854)이다.

 

삼하 19:22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사탄)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원수라는 단어가 사탄이다.

 

왕상 5:4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원수(사탄)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원수는 솔로몬의 대적자를 말한다.

 

109:6 악인이 그를 다스리게 하시며 사탄(7854)이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

 

공통점이 있다. 사탄(7854)대적하는 자라는 뜻으로 모두 인간을 지칭하고 있다(삼상 29:4, 왕상 5:4, 109:6). 흔히 사탄을 생각하기를 뿔 달리고 망토 쓴 못된 타락한 천사라고 생각한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로 알고 있다.

 

포로기 전과 포로기 후의 사탄 

삼하 24:1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다윗을 격동시켜서 인구 조사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140년 이후인 주전 420년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역대상 21:1사탄이 일어나 다윗을 충동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똑같은 사건을 기록자의 해석이 달라진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포로기 이후에는 하나님을 아주 선하신 분으로 만 보기 때문에 악의 근원을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이제부터는 모든 악의 출발을 '사탄'이라는 개념으로 대체하기 시작한다.

 

구약에 따르면 하나님은 '살리기도 하시며 죽이기도 하시는 生死를 주관하시는 분이다(삼상 2:6). 내가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도, 나빠 보이는 것도 모두 하나님이 하신다. 그런데 포로기 이후에는 吉凶禍福의 주체가 하나님에서 사탄이라는 존재의 등장으로 한 것과 은 하나님, 하고 되는 것은 사탄으로 나누어 버렸다. 이는 바벨론이 당시 대표적인 조로아스터교 신학을 가진 상황이었고 그 신학은 이분법 신학이었다. 즉 하나님과 사탄, 빛과 어둠, 선과 악, 천사와 마귀, 등등의 구분으로 신학을 했던 지역이다. 그러한 사상을 일부 채택하였고, 사람들의 인식은 구약 초기와는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사탄의 본래의 뜻은 대적자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욥기에 나오는 사탄은 무엇일까 ? 

욥기서(BC 6세기 포로기 이후) 이전에는 사탄은 다윗과 솔로몬의 대적자로만 등장했다. 즉 사람에게만 사용되었다. 그러나 포로기 이후 사탄이 별도의 존재로 상정되는데 이는 바벨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욥기에 등장하는 사탄을 이러한 배경으로 이해해야 한다. 욥기서에서 사탄이 천상회의에 잠깐 등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욥기의 장르는 시가서라는 사실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시가서라는 것은 어떤 역사적 사실이라기 보다는 비유와 상징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이다. 욥기서에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탄이 함께 등장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함께 회의를 한다는 것이다. 사탄은 욥을 고소하는 고소자로 등장한다. ‘고소자라는 뜻이 사탄이다. 사탄이 고소하는 내용이 무엇인가? 욥이 하나님께 복을 많이 받으니까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아니냐? 즉 욥의 율법적 신앙을 드러내는 내적 화자이다. 그의 율법적 신앙을 고소하는 인물로 등장한 것이다. 더욱이 욥기에 등장하는 사탄은 하나님의 심부름을 한다. 천상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이 없다.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사람이다. 그것을 성경은 사탄의 실체라고 하는 것이다.

 

 

4-1. 신약의 사탄 귀신 

구약에서는 사탄/귀신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신약에 들어와서 갑자기 귀신, 사탄이 왜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가?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말씀의 섬김이 실체가 되면 비진리가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빛이 오면 어두움이 확연히 드러나는 원리이다.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1228 diavbolo")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개역 개정은 아비와 마귀 둘 다 명사처럼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너희는 마귀(형용사)의 아버지(명사)로 부터 존재한다(과거가 아닌 현재이다). 형용사라는 것은 명사의 속성을 묘사하는 것이다. 마귀의 속성을 가진 아버지라는 뜻이다. 마귀가 아버지를 수식한다. 그들의 아버지를 마귀로 규정하고 있다. 그들의 아버지는 오로지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오히려 마귀라고 예수는 말하고 있다. 마귀의 정의를 내린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 그 속에 진리가 없는 자! 진리에 서 있지 못해 거짓말하는 자! 그래서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버지가 곧 마귀이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라는 것은, [3장의 그 뱀]을 염두에 둔 것이다. 생명 나무(그리스도)가 아닌 선악 나무를 취하게 한 뱀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물론 그 뱀은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를 전하는 거짓 선지자를 뜻한다.

 

고후 11: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뱀은 그 속에 진리(생명 나무)가 없고, 거짓말쟁이다. 그 뱀은 선악과를 취하게 한다. 그리고 그 선악과를 취한 후손들, 그들이 곧 바리새인이다. 분리주의자다. 모든 것을 선악으로 나뉘어서 거짓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섬기는 하나님마귀라고 하셨다. 율법주의자들의 하나님이 마귀이다. 진리가 그 속에 없으면 그 섬기는 하나님이 마귀가 된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마귀의 실상을 드러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보고, 너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데, 사실은 너희의 하나님은 마귀라고 한다. 아니! 바리새인들이 마귀를 섬기다니! 절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다. 그런데 모르고 섬기는 그 하나님! 다른 하나님을, 예수님은 마귀라고 한 것이다. 아비가 마귀면 그 아들도 당연히 마귀가 되는 것 아닌가!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3: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베드로  

 

16:21 이 때로 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베드로는 멋진 신앙고백을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 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자신이 죽고 부활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듣고 베드로가 화가 나서 예수님께 항변을 한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보고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신다. 분명히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한다. 금방 실언을 하자 예수께서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한다. ?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자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부르신다. 곧 베드로가 그렇듯 내가 사탄이 될 수 있다.

 

[1: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1: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1: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1: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1: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1: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1: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 도다하더라

[1: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본문을 읽고 시선은 귀신에게 쏠리지만 본문 해석의 키워드는 교훈이다. 교훈은 22절과 27절에 두 번, 샌드위치로 감싸고 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말씀을 가르쳤는데(21) 교훈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과 같지 않다(22).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장면이 나오고, 더러운 귀신이 나가는 것을 보고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라고 외친다. 귀신을 내쫓는데 그것을 교훈이라고 한다. 여기에 힌트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퇴마사가 아니다.

예수님의 이적에는 교훈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두가 하나님 나라와 관련이 있다. 내가 귀신 쫓는 것만 보면 밤이라는 알맹이는 보지 못하고 밤송이 즉 껍데기만 보는 것이다. 내가 사탄의 실체를 앎으로 삶이 실질적으로 변화된다.

 

23절에 그때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문제는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어떻게 회당에 들어갈 수 있는가이다. 이스라엘 정결 법에 의하면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회당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회당에 있다.

 

그렇다면 이 더러운 귀신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선 더러운 귀신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원문은 pneu'ma ajkavqarto"이다. 프뉴마는 성령이다. 즉 성령 앞에 더러운 (169 ajkavqarto")라는 단어가 붙으면 더러운 성령이 된다. 그런데 이 성령 앞에 어떻게 성령 앞에 더러운 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 있을까?

 

성령을 히브리어로는 루아흐이다. 구약에서도 악령을 라+루아흐+엘로힘이라고 표현한다. ‘악하게 다루다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영이 루아흐 엘로힘인데 그 앞에 악한이 붙으면 악령이 된다. 그러니까 악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악하게 다루어지면 악령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악하게 다루어지는가?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런데 영은 어떻게 역사를 하는가? 성경에서 영은 말이라고 증거 하고 있다.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레마)은 영이요 생명이라

 

그런데 영은 <레마>라고 요한복음 663절에 증거 하고 있다. 마음(카르디아)은 일종의 중립지대이다. 그런데 깨끗한 말을 가지면 성령이 되고, 더러운 말을 가지면 악령이 되는 것이다. 본문은 더러운 귀신보다는 더러운 영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성령은 깨끗한 영(말씀), 귀신은 더러운 영(말씀)이다. 내가 더러운 말씀을 취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면 내가 그 영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귀신들린 사람은 더러운 말씀을 가진 자이다.

 

24절에 귀신들린 자가 말한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여기서 우리는 누구인가? 회당에 있는 사람이다. 더러운 말, 더러운 가르침을 가르치고 있는 그들이 곧 귀신들린 사람들이요, 그 대표로 귀신들린 한 사람이 말하는 것이다. 회당의 말과 예수님의 말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거룩하지 않다. 깨끗하지 않다. 귀신들린 가르침인 것이다.

 

지금 이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말하고 있다. ‘거룩한 자는 원문에 하기오스인데, ‘순결한’ ‘결백한’ ‘깨끗한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스스로 고백한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과 상관없다는 말은 자신은 그 깨끗함과 반대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아무리 고상한 신학을 말해도 귀신들린 말일 수 있다. 서기관들이 율법을 얼마나 잘 알았는가? 그런데 그들이 실질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는 장면 아닌가?

 

25: 그래서 주님은 그 귀신을 꾸짖는다.

26: 그러자 그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소리를 지르며 나온다.

 

이 때 귀신은 드라마에 나오는 몽달귀신, 처녀 귀신 같은 그런 귀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귀신은 더러운 영, , 마음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 하나가 변하려면 얼마나 큰 고통이 따르는가? 그것이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는 사건의 진의이다. 내가 죽는 장면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자신의 전 존재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 존재가 빠져나가는 순간 어떤 반응이 나오겠는가? 그동안 자신이 진리라고 확신했던 사실이, 사실은 거짓임을 알았을 때 어떠한 반응이 나오는가? 내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을 때 어떠했는가?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 내가 쌓아 올린 것이 한순간에 무너짐을 경험했다. 그것이 내 안에 들어있는 더러운 귀신이었다. 진화론 하나만 뿌리뽑혀도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내 생각은 지진이 일어난다. 그 사탄의 존재에 대해서 분명하게 모르면 계속해서 미혹에 빠지게 되어 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말이 있다. 적을 알아야 적을 물리칠 수 있다.

 

현대교회에서 축사를 많이 하고 있지만, 성경적 축사는 어떤 것인가? 더러운 영은 쫓아내기 위해서는 깨끗한 영, 곧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그런데 이 성령 충만은 막연한 개념이 아니다. 귀신을 어떤 기운으로 잘못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을 어떤 기운으로 생각하시는 분이 많다. 성령이여 임하소서! 할 때 어떤 기운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말씀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로고스가 레마로 뚫고 들어오는 것, 아랫물을 통하여 윗물을 깨달아 하늘이 찢어지는 것을 말한다. 깨끗한 말씀 ()이 들어오면 더러운 말()은 나가게 되어 있다.

 

진정한 축사는 깨끗한 말씀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진정한 축사는 22절의 말씀처럼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라는 회당에 오시는 것이다. 내 마음이 깨끗한 말씀이신 그분과 하나 되면 내 안에 있던 더러운 귀신들은 큰소리치며 나가게 된다. 그런 자들에게는 안식이 있다. 죽으라 축사할 필요도 없다. 소리 고래고래 지르며 축사하는 것은 종교의식일 뿐이다.

 

하나님의 섬김으로 내 마음이 진리로 가득 채워지면 귀신은 자연스레 떠나간다.

예수님은 귀신을 내쫓는 것을 <하나님 나라>가 임한 증거로 보여주신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섬김을 받는 것을 뜻한다. 그분의 섬김으로 안식을 누리는 것이다.

 

 

4-2. 사탄을 결박한다는 것은? (축사의 본질) 

광야 시험의 정체

사람이 사탄이라면 마태복음 4장의 광야 시험에 나오는 사탄의 정체는 무엇일까? 엄밀히 말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이 사탄이다. 광야의 시험은 결국 말씀에 대한 시험이다. 말씀에 대한 대적을 그린 것이 광야 시험이다. 그런데 예수는 말씀으로 대적하는 영()을 이긴다. 먼저 누가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넣으시는가? 마가에 의하면 성령에 의하여 광야로 몰아가신다(1:13). 그렇다면 누가 시험으로 몰아가신 것인가? 하나님이다. 그런데 진리(/)로 비진리를 이기자 어떻게 되는가? 천사들이 수종 든다. 갑자기 사탄이 천사로 바뀐다. 말씀의 시험을 이렇게 그린 것이다.

 

나에게도 똑같은 말씀의 시험이 온다. 바로 말씀의 시험이다. 나에게는 성경이란 것이 주어졌다. 내가 그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깨달으면 성경은 변호사(파라클레토스)가 되지만, 나의 본질인 선과 악의 지식으로 알면 성경은 나의 고소자(사타나스)가 된다. 성경으로 구원받을 수 있고, 성경으로 멸망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믿음의 여하에 따라 성경은 사탄일 수도 있고 천사가 부는 나팔 소리도 되는 것이다. 나를 감옥에 넣은 검사(고소자/사탄)이기도 하고, 나를 돕는 변호사(파라클레토스/성령)이기도 하다. 내가 믿는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자신이 사탄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눈치채지 못한다. 같은 표현을 계시록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16: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짐승거짓 선지자의 에서 나오니

16:14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세 더러운 영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면, 용의 ’, 짐승의 ’, 거짓 선지자의 에서 나온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귀신의 영이다그래서 하나님을 모르고 하는 더러운 비진리의 말을 귀신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비진리의 말을 하는 사람이 귀신이다. 그래서 4 복음서에는 귀신쫓는 장면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바로 이 비진리의 말을 몰아내는 일부터 시작된다. 그것이 내 안에 있는 7 귀신이요, 군대 귀신이다.

 

군대귀신

그것을 마가복음 5장에서는 2천 마리 넘는 군대 귀신이 등장한다.

 

5: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이름은 말씀이라는 뜻과 같다. 이는 곧 네가 가진 말씀이 무엇이냐? 이렇게 묻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 더러운 말을 가진 자가 자신은 군대라고 한다. 이러한 군대 귀신이 바다에 빠지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군대 귀신이 바다에 빠지는 것은 바로의 군대가 홍해에 빠지는 것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고전 10: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그래서 모세와 속하여 세례를 받았다는 말은 모세 안으로 들어가서 세례를 받았다는 말이다. 모세 안으로, 모세를 위하여, 모세를 목적으로, 세례를 받았다. 에이스라는 것은 어디 ~어디로 들어갈 때 쓴다. 그들이 모세 안에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그들을 품고, 즉 모세와 하나 되어, 모세와 함께 죽고 모세와 함께 부활한 것이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11: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이스라엘은 애굽을 섬기기를 원한다. 돌아가길 원한다. 사실 그들의 믿음은 보잘것없다. 그런데 믿음으로 , 라는 표현을 쓴다. 무슨 믿음인가? 그들의 믿음인가? 아니면 모세인가? 모세의 믿음이다. 그들을 모세가 품어 홍해를 건넌 것이다. 모세가 지팡이를 든다. 지팡이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가 그리스도를 들어! 그리스도의 들림이다. 그리스도의 들림을 통하여 바다가 갈라진다. 그리스도의 믿음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품어 바다를 건넌 것이다. 그리스도의 바다 건넘이다.

 

이때는 곧 모세에 속하여 세례를 받았을 때이다. 따라서 유리 바다 찬양은 세례 후 부르는 찬양이다. 15장은 바로의 군대를 바다에 잠긴 것에 대한 노래이다. 홍해를 건너는 사건은 군대 귀신이 바다에 빠지는 것과 같다. 홍해는 붉은 바다라는 뜻이다. 피바다이다. 죽음의 바다이다물에 빠져 죽는 것이 세례이다. 누가? 바로의 군대가 말이다. 바로를 섬기는 무리가 바로의 군대이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홍해 바다로 들어가서 죽은 것이다. 그것을 마가복음에서는 군대 귀신으로 그린 것이다.

 

그 더러운 귀신이 2 천마리가 되는 돼지에 들어간다. 무슨 말인가? 그 사람 안에 그만큼 많은 더러운 영()이 있었다는 것을 예수께서 시각적(사건)으로 보여준 것이다. 사건은 의미를 담고 있다. 사건 속에 의미를 본다. 비진리가 물에 빠져 죽는 것이다. 땅에서 바다로 몰아내신다.

2 천마리 돼지는 무엇을 뜻하는가? 진주를 개나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은 더러운 말이다. 그러므로 돼지에게 허락하신다. 그 돼지 떼는 우상 숭배자들 곧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들이다. 비진리를 땅에서 빼내어 바다로 몰아버리는 것이다. 즉 땅은 성전을 상징한다. 성전을 깨끗게 하는 장면이다. 결국, 성전은 이다. 성전이 깨끗해지는 장면이다. 비진리의 성전을 바다에 내던지는 장면이다.

 

17: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뽕나무가 아니라 무화과나무이다. 무화과나무는 씨 없는 성전을 상징한다. 즉 그리스도 없는 성전은 바다에 던져버린다는 말이다. 내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다면 이러한 옛 성전을 바다에 던져버릴 수 있다.

 

그러자 이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해진다. <정신이 온전하여>라고 번역되었는데 원어에 보다 가깝게 번역하면<건전한 마음이 되었다>이다(5:15).

 

즉 귀신과 마음이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더러운 말을 담으면 귀신이 되는 것이고, 깨끗한 말씀을 가지면 건전한 마음이 된다. 그것이 성령 충만이다. 건전한 마음이 되기 전에는 더러운 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 겉옷을 입는다. 성경에서 속옷은 율법을 뜻하고, 겉옷은 진리를 뜻한다. 이제 진리로 옷 입은 것이다. 사람이 곧 성전이다. 그런데 이 성전 안에 더러운 말을 담을 수도 있고 깨끗한 말을 담을 수도 있다. 더러운 말을 담으면 악령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깨끗한 말을 담고 있으면 성령이 충만한 것이다. 성령이 없는 자에게는 2천이 넘는 더러운 말과 사상, 가치관이 혼재할 수 있다. 그로 인해 나의 마음이 더러워질 수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귀신들렸다고 한다. 그러므로 나도 귀신을 내쫓아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비진리의 말을 바다로 몰아버려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준 귀신을 제어할 엑쑤시아’(ejxousiva 1849 권세)이다.

 

사탄을 어떻게 결박할 것인가 ?

그렇다면 이 사탄을 결박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결박할 수 있을까? 강한 자를 결박하려면 더 강한 자가 와야 한다. 더 강한 자가 누구인가? 바로 성령이다.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daimovnion)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 나라는 귀신이 쫓겨나야만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말씀의 섬김이다. 말씀의 섬김이 오려면 비진리의 영이 없어져야만 한다. 나도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그 귀신은 다름 아닌 내 안에 있는 더러운 영, 더욱 구체적으로 더러운 비진리의 말이다. 내 안에는 온갖 더러운 말들이 있다. 그 장면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20: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20: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이다. 영은 말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가지고 있는 내가 사탄이다. 내가 사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때 무한한 책임을 느끼게 된다.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싸운다고 생각하면 분열된 세상이다. 이렇게 알면 하늘에는 두 주인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 두 주인이 있을 수 없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둘로 분리된 세상에 모노게네스로 오셨다. 독생자로 번역된 이 모노게네스(모노+게네스=하나+기노스코마이 :안다)는 하나를 안다, 하나를 가진 자라는 뜻이다. /악으로 이분화된 세상을 하나로 통일하러 오셨다. 사탄의 허리를 꺾으셨다. 나도 그리스도와 연합 되어질때 모노게네스, 즉 하나를 가질 때, 하나로 알 때 사탄이 없어진다. 하나의 하늘이 된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과 사탄은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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