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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말씀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알아 가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읽고 또 묵상하고, 묵상하고 또 읽고....이제껏 쓴 글들이 이해되었다면 이번글도 넉넉히 이해되실겁니다. 부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1. 지옥 (gevenna 1067 게헨나) 

지옥이라고 하면 대부분 불신자들이 죽어서 가는 곳으로, 꺼지지 않는 불이 있고, 구더기도 죽지 않는 유황불 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거리에서 전도하는 전도자들의 주요 메시지가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다. 이 말 자체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때 불신 지옥이라는 메시지가 아마도 이런 지옥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전통 신학에서는 지옥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된 곳이고, 불에 의한 고뇌가 심한 곳 등 불신자들이 사후에 가는 구체적인 장소로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지옥과 관련된 단어는 게헨나, 음부(하데스, 스올), 무저갱 등이 있다.

 

1067  gevenna   geenna   {gheh'-en-nah}

기원은 히브리어1516 2011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 지옥(혹은 -힌놈), 예루살렘의 골짜기, (상징적으로)영원한 형벌의 장소(나 상태)에 대한 이름으로서 사용 <5:29;3:6>여명. hell ;

 

'게헨나'가 사용된 구절들은 아래와 같다.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5:29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5: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23: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특이하게 요한복음과 바울서신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생각보다 지옥이라는 말이 성경에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주로 예수께서 하신 말씀 속에 나온다. 그런데 예수의 말씀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결같이 도전적인 화법이다. 도전 화법이란 일종의 충격적인 화법이다.

 

마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5:21은 유대교 전통 가르침이다. 살인하면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말씀에 한 걸음 더 나가 나를 괴롭게 하는 말씀처럼 보인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된다.

 

라가 (4469 rJaka)는 아람어 래크 (7386 qyre)에서 온 말인데 머리가 텅 빈이란 뜻이다. 골빈 놈이라고 하는 것이다. 형제에게 골빈 놈이라고 말했다고 바로 공회에 잡혀가게 된다? 공회에 잡혀가게 된다라고 되어있는데 e[noco":는 에네코 (1758 ejnevcw :안에 가지고 있다)에서 유래한 말로 안에 가지고 있는 상태로써 ‘~어떤 상황에 처해있다는 뜻이다. 잡혀가게 된다기 보다 만약 네가 그 형제를 라가라고 믿으면 그 공회를 너희 안에 가지게 될 것이다. 왜 공회를 너희 안에 가지게 될 것이라고 표현했는가? 공회 (4892 쉬네드리온)은 헤드라이오스(1476)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헤드라이오스는 복지부동하게 앉아 있다라는 뜻이다. 그들은 모세(율법)의 자리에 복지부동하게 앉아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한다. 예수는 지금 실제 공회에 잡혀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라가라고 하는 그 사람의 마음 안에 생기는 현상에 대해서, 강조 용법으로 도전적인 화법을 사용하고 있다. 예수님의 화법은 대부분 이런 도전적인 비유이다.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 모로스(3474 미련한 자)는 우리나라 말로 바보정도 해당한다. 바보라고 말하면 지옥 불에 던져진다? 곧이곧대로 듣는다면 율법도 이런 율법이 없을 것이다. 살면서 바보라고 누구를 비난해 본 적 없는 사람이 누구인가? 그런데 이것도 도전하는 비유이다. 지옥 불에 들어가리라로 번역되어있는데 여기에도 똑같이 에노코스를 사용하고 있어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옥 불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화병이라는 것이 있다. 화병은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민간에서 사용되는 병명이다. ()는 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분노를 의미하기도 한다. 화병은 울화병(鬱火病)의 준말이다. 울화란 화가 쌓여 울()해진(답답한) 것을 의미한다. , 화병은 화의 기운을 가진 분노가 쌓인 병이다자기 안에 쌓여 있는 것이 나가게 되어있는 법이다. 바보라고 말이 나가기 전에 이미 자기 안에(지옥) 불이 있게 되는 것이다. 자기 형제에게 바보야!”라고 쏘아붙이기 전에 내 마음이 먼저 미움으로 가득 찬다. “멍청이!”라고 불을 뿜기 전에 내 마음이 먼저 불지옥에 떨어진다. 그렇게 재판에 넘겨진다. 일명 자동재판이다.

진리도 마찬가지이다. 내 안에 진리가 넘치면 진리가 넘치는 법이다. 천국이 존재이듯이 지옥도 그래서 존재개념이다. 사람은 모두 천국 에너지 혹은 지옥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정신분열 환자를 보았는가? 그 사람 주위에는 지옥의 에너지가 전달된다. 자신이 지옥인 사람은 어디를 가더라도 지옥으로 만든다.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4 (없음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6 (없음)

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지옥이라는 단어는 게헨나에서 왔는데, 게헨나는 본래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계곡으로서(15:8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 성전 아래 골짜기이다. 성전의 쓰레기들이 버려지는 곳이다. 그곳에는 항상 시체가 썩고 해서 불을 태운다.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으로 묘사된다. 지옥을 이렇게 묘사한다고 정말 지옥이 이러한 장소를 뜻할까? 이것은 마치 천국을 보석으로 묘사했다고 해서 천국이 보석으로 장식된 장소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지옥의 처참함을 묘사한 비유이지, 실제로 구더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지옥에 대한 비유적(특별히 도전적) 묘사이다. 계시록 1:13-17절이 그리스도에 대한 묘사이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입에서 검이 실제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비유적 묘사이다. 지옥은 정확히 천국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많은 사람은 천국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다. 그에 반해 지옥에 대한 개념은 달리 가지고 있는 것 같다.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19: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전통적으로 지옥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된 곳이고, 불에 의한 고뇌가 심한 곳으로서 알려지고 있다. 천국도 그렇고 대부분 지옥을 장소 개념으로 알고 있지만, 천국도 존재개념이듯이 지옥도 존재개념이다. 그 존재의 고통/고뇌 상태를 성경에서는 이렇게 지옥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에서 천국을 보석으로 장식한 성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렇다고 천국이 보석으로 장식한 성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신부를 표현하는 것이다. 지옥도 마찬가지이다. 유황불로 표현한다고 해서 유황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천국이 내 안에 있듯이, 지옥도 내 안에 있다. 모든 답은 안에 있다.

 

2. 음부 (하데스, 스올) 

구약에 천국이라는 말이 없듯이 지옥이라는 말도 없다. 구약은 지옥 대신에 음부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 음부라는 말이 헬라어로는 하데스(a/{dh")이다 .

하데스는 히브리어로는 스올(l/av)이다. 히브리인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천, , 지하(, , 地下)의 세 계층으로 되어있고, 그 중 스올(음부)은 지하의 영역이다(16:30, 33, 31:17, 9:2). 스올은 죽은 자가 죽은 후에 거처하는 곳이다. 스올은 원래 단순히 죽은 자의 거처이다. 처음에는 보상과 형벌 개념이 없었다. 스올은 돌아오지 못할 어둡고 암울한 곳으로(10:21,22; 143:3), 적막한 곳으로(94:17 ; 115:17 ) 나타난다. 스올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하데스이다. 호머에 의하면 하데스는 지옥의 신 이름이 하데스이다. 이 하데스의 개념을 차용함으로서 하데스는 보상과 형벌의 장소로 변화된다. 바리새파와 에세네파가 이 입장을 받아들인다.

 

일반적으로 부자와 나사로 비유를 통해서 생각하는 음부는 다음과 같다. 음부는 상층부와 하층부로 나뉘어져 있다. 나사로는 상층부, 즉 아브라함의 품에 있고, 하층부는 부자가 있는 곳이다. 그들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의 고통을 의식하면서 살고 있다(16:19-31). 음부는 고통스러운 곳이며 (16:23) 따라서 결국 "지옥"과 동일한 개념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개념이 정말 옳은가? 신약에서 음부를 자세히 설명한 부분이 이곳이 유일하다. 지옥이 정말 그렇게 중요한 개념이라면 왜 딱 한번, 그것도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실까?

 

16: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거지는 천사들에 의해서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죽어 그냥 장사 된다. 그렇다면 부자가 음부, 즉 지하에서 눈을 들어 아브라함을 보고 있다는 말인가? 많은 사람이 음부는 육체를 떠난 사람의 영혼이부활하는 날까지 대기하는 곳으로 생각한다. 음부를 상층/하층으로 나눠 생각한다. 나사로는 음부의 상층부, 즉 아브라함의 품, 부자는 음부의 하층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아브라함 품을 낙원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주님이 강도에게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을 때, 음부를 말하는 것일까?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 음부에 있다는 말일까? 그렇지 않다그러나 눅 16장에 의하면 영혼이라는 말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냥 장사했다고만 한다. 그리고 나사로는 바로 아브라함의 품으로 들어간다. 질적으로 다르다. 부자는 음부에, 나사로는 천국에 들어간 것이지 음부의 상층, 하층이 아니다. 건널 수 없는 구렁텅이가 있다.

 

16: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하데스(86 a/{dh")란 부정 불변사+에이도이다. 에이도는 보다! 알다! 라는 뜻이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알지 못하는 것이 음부이다. 음부는 지옥(형별 개념이 포함)과 같은 개념이다. 그런데 이 지옥은 천국과 정확히 대조되는 개념이다. '천국'이 '아버지와 하나 된 나'라면, '지옥'은 그 반대로 '아버지와 분리된 이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를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것이 하데스이다. 성경에서는 그런 자들을 존재로 보지 않는다. 오직 존재, 즉 하야 아쉐르 하야, 존재는 아버지 자신밖에 없다. 존재 아닌 내가 존재 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의 호흡만을 가지면 그것은 존재가 아니다. 그때의 호흡은 죽었다고 한다. 범죄 한 자의 호흡은 죽으리라! 호흡이 죽어 아버지와 분리되어있는 고통의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하데스를 쓴 것이다. 죽어있는 호흡은 존재도 아니다. 비존재이다. 존재와 비존재, 건널 수 없는 큰 구렁텅이이다.

 

음부(스트롱코드 86)가 쓰인 구절이다.

 

11: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0: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16: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2:31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6: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20:14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요한복음에는 음부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계시록에서는 사망과 음부를 병치시킴으로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음부는 곧 사망이다. 사망(죽음)은 혼의 죽음을 말한다. 죽음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상태를 뜻하고, 그 상태에 있는 자를 음부에서 고통스러워 한다고 하는 것이다. 부자는 사망의 상태에 있다. 네크로스이다. 그러나 나사로는 산자의 대표인 아브라함의 상태, 즉 산자의 상태임을 보여준다.

 

3. 죽음이란 무엇인가

 

복음은 천국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천국과 지옥은 장소 개념보다는 존재개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천국은 지금 여기에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그렇다면 죽으면 천국은 없다는 말인가? 이렇게 묻는다. 지금 여기에 있듯이 천국은 영원히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사후 천국과 지옥일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다루려면 우선 부활이라는 것을 먼저 다루어야 한다. 부활을 이해해야 사후 천국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 말한다. 그래서 예배 때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오>라는 사도신경을 고백한다. 이것은 액면 그대로 예수의 재림 때에 죽은 육체의 몸이 부활하여 영원히 산다는 고백이다. 이러한 고백에는 죽음을 육체의 죽음으로 이해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따라서 부활을 논하려면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을 먼저 알아야만 한다.

 

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이때 죽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분명히 육체적으로는 살아있는 자들이다. 이때 죽은 자들이 말 그대로 육체적으로 죽은 자들이라면, 어떻게 시체가 시체를 장사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이때 죽은 자들은 육체적으로 죽은 자들을 의미하지 않는다성경에서 죽음은 몸이 죽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혼의 죽음이다.

 

18:4 모든 영혼(vp²n)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vp²n)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vp²n)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af;j)하는 그 영혼(vp²n)은 죽으리라

 

영혼이라 번역되어 있는데 원어에는 네페쉬이다. 즉 혼이다. (네페쉬)이 죽으면 네크로스가 된다. 크로스는 영이신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영이 죽었다 살았다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영은 죽고 살지 않는다. 혼이 죽고 산다. 그래서 구원의 대상은 네페쉬이다. 헬라어로는 푸쉬케이다.

 

벧전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yuchv)의 구원을 받음이라

 

그래서 영의 구원이라 말하지 않고 혼(푸쉬케)의 구원이란 표현을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바로 푸쉬케, 네페쉬의 죽음을 말한다. 같은 사람이라도 살아 있는 혼이 있고, 죽어있는 혼이 있다. 살아 있는 혼은 이신 하나님을 안다. 이 살아 있는 혼을 성경에서는 산 자라고 한다.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래서 예수께서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라고 한 것이다. 몸의 죽음이라면 이 말씀은 허구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한 죽음은 바로 혼의 죽음을 말한 것이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기 때문이다. “으로 인하여 이 살아났으며 그래서 산 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곧 생명이다.

 

6:63 살리는 것은 영(pneu'ma)이니 육(savrx)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rJh'ma)(프뉴마)이요 생명(조에)이라

 

6:63은 생명과 프뉴마를 동의 반복하고 있다.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다. 물론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할 때는 단순2,000년 전 육체의 예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싸륵스가 아니라 예수께서 하신 말(레마)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생명은 진리 되신 그리스도를 뜻한다.

 

1:1 태초에 말씀(호 로고스)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 그리스도는 말씀이다. 따라서 말씀이 없으면 생명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은 말씀(그리스도/생명/진리)이 없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단순히 육체(싸륵스)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생명이 없으면 죽은 자들이다. 그것이 죽은 자들이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는 말이다.

 

18:4에 범죄(af;j)하는 혼은 죽으리라고 했다. 목사들이나 복음주의 전도자들은 끊임없이 인간의 죄인 됨을 외친다. 그들은 우리는 명령을 어겼으므로 죄인이다. 아버지가 말한 대로 우리는 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화가 났다. 중한 벌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실제로 죄의식을 느끼면서, 잘못을 말하고, 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궁극적 정의와는 사뭇 다르다. (af;j)는 헬라어 하마르티아인데, 궁술에서 온 말이다. 과녁의 정중앙에서 벗어나다이다. 과녁의 정중앙(진리/그리스도)에서 벗어남이다. 진리(생명되신 그리스도)에서 벗어나면 그것을 죄(af;j)라 하고, 생명에서 벗어났으니 당연히 혼(네페쉬)은 죽는 법이다. 이들이 예수께서 말한 죽은 자들, 네크로스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네크로스들을 산 자로 살리시는데 어떻게 살리시는가? 바로 진리 되신 그리스도이다. 요한복음의 언어로 빛이 어둠(네크로스)에 비추는 것이다. 그래서 네크로스들이 산자로 변한다.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다.

 

3-1.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

 

성경은 부활을 말할 때 <예수께서 죽었다가 살아났다>.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한결같이 죽은 자들로부터 (에크 네크로스) 부활했다! 이렇게 말한다.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전 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 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이렇게 죽은 자들로부터 (에크 네크로스)부활했다. 여기에 부활의 비밀이 담겨있다. 네크로스란 무엇인가? 죽음이다. 혼이 죽어있는 자들을 네크로스라고 한다. 그리스도는 어디에 부활했는가? 바로 무덤인 네크로스에게 부활한 것이다. 네크로스였던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그리스도의 영(생명)을 갖게 된 것이다. 네크로스가 그리스도의 영을 가졌기에 네페쉬가 살아나, 생명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을 산자라고 한다. 목숨만 붙어있다고 산자라고 하지 않는다. 이같이 현생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들은 몸의 생사와 관계없이 이미 죽음과 관련이 없다.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원역/나를 믿는 자는 만일 죽었다면 살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살아 있는 자, 그리고 나를 믿는 모든 사람 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너는 이것을 믿는다.

 

그러면 이제 부활은 네크로스로부터 부활이다. <나스타시스 에크 네크로스>이다.

마가복음이 복음서 중 가장 먼저 씌여진 책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마가복음은 부활을 아주 담백하게 묘사하고 있다.

 

16:1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16:2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16:3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16:4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16:5 무덤에 들어가서 흰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16: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16: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16:8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사실 9절부터는 원문에는 없는 구절이다. 마가복음 16:9~20의 긴 결론부 대신 다음과 같은 짧은 결론부를 가진 사본도 있다.

 

베드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해진 모든 소식들은 급속히 전파되었다. 이 일들 후에 예수 자신도 거룩하고 썩지 않는 영원한 구원의 가르침을 동쪽에서부터 서쪽에까지 그들을 통해 보내셨다. 아멘.”

 

보고 있는 구절은 후대에 첨가된 구절이다. 아무튼 이 구절에 의하면 ,

 

16:12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24:13 그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24: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24: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24: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다. 다른 모양이기 때문이다.

 

24: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24: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24: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4: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4: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4: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4:23 그의 시체는 보지(euJrivskw )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함이라  

24: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4: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 하시니라  

24: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4: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24: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떡을 떼고 축사를 하자 그제야 그들이 예수인 줄 알아본다. 그리고 갑자기 예수는 보이지 않는다. 예수를 알아보자마자 예수는 사라진다.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성경을 풀어줄 때 마음이 뜨거워진다.

 

20: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20:12 흰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20: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20:14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20:15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 가리이다  

 

마리아는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다! ? 예수는 단순한 육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동산지기라고 묘사한 것은 그를 에덴동산의 아담으로 묘사하기 위한 신학적 진술이다.

 

20: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20: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20: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 문들이 닫혀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나타나신다. 따라서 나타난 것은 싸륵스가 아니라 프뉴마이다. 만약 육신의 부활이라면 왜 본 사람도 있고, 보지 못한 사람도 있을까? 싸륵스가 부활했다면 누구나 볼 수 있다.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deiknuvw 1166) 제자들이 주를 보고 (ei[dw 1492) 기뻐하더라  

 

20:24 열두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oJravw)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에이도)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에이도)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29절을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도마야! 너는 나를 호라오 했기 때문에 믿었다(의문형이 아니다). 에이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이다. 도마도 손가락을 옆구리에 넣어 본 것은 아니다. 도마는 손을 옆구리에 넣어보고 고백한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과 하나님으로 고백을 한다. 29절에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로 되어있어, 마치 도마가 손가락을 넣어 본 것처럼 느껴지지만 의문형이 아니라 너는 호라오 했기 때문에 믿었다! 이다. 호라오이다. 그리고 뒤에 에이도 하지 않고 믿는 자는 복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의도적으로 다른 단어를 쓰고 있다. 에이도는 직접 보는 것이다. 그래서 에이도와 관련된 단어 에이돌론은 우상이다. 우상은 보는 것을 쫓는 것이다. 에이돌론이 바로 에이도에서 왔다. 즉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이다. 그리고 도마도 에이도 하지 않고 믿는다. 따라서 그는 복된 자이다.

 

고전 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 15:4 장사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 15:5 게바에게 보이시고 (oJravw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고전 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oJravw )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고전 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oJravw)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고전 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oJravw)

 

부활 장으로 유명한 고전 15장은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보이신다. 이때 호라오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심지어 사도 바울도 호라오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육신의 몸을 본 것은 아니다.

 

9: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9: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9: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9: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9: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qewrevw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22: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22: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22: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22: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qeavomai )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위 구절에서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기록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기록된 22:926:14에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9:7에서 그 ""에게 말하는 사울의 소리(주여)만 듣고, ""이 사울에게 말하는 소리(22:9)는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둘째, 9:7의 헬라어 문장 구조가 22:9과 다르다. 9:7은 그들이 어떤 소리를 들었는데, 22:9은 그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공통점은 똑같은 빛과 소리를 들었어도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사울에게 했던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닌 것이다. 아무튼 바울은 그리스도의 육체를 본 것은 아니다. 그런데 고전 15장에서 자신도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한다. 따라서 호라오는 단순히 육신의 눈으로 육체를 보았다는 말이 아니다. 자신에게 영()으로 임한 그리스도를 보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활의 진실을 알게 되면 다음의 말씀을 이제 이해할 수 있다.

 

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27: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27:53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27: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가복음에는 단순히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15: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예수의 부활 후에 ,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고 표현되어 있다. 마태복음 27장에 의하면 예수가 부활 후에 많은 성도의 몸(sw'ma)이 일어났다고 한다. 만약에 이렇게 무덤들이 열려서 많은 성도들이 육체적으로 부활했다면, 어째서 역사적 기록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까? 이 정도면 지금으로 말하면 뉴욕타임스 기사감이다. 오늘날 대부분 부활한 사람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성경은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고 진술한다. 이렇게 부활한 사람은 또 어디에 갔는가? 그들은 다시 죽었는가? 그들은 부활했으니 지금도 살아 있어야 하지 않는가? 이들은 누구를 말하는가? 그들은 예수의 부활 후에 일어났다. 무덤이 열렸다. 자던 성도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바로 제자들이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라고 되어 있는데 이들이 바로 제자들이다. 예수님은 네크로스로부터 부활했다. 즉 제자들로부터 부활하셨다. 이것이 부활의 비밀이다.

 

이것이 바로 네크로스로부터 부활한 그리스도의 실체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아난 제자들이다. 예수님(말씀)이 영으로 죽은 제자들 안에서 부활한 것이다. 그것을 바위가 터졌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을 휘장이 찢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그럴때 영 안이 열려 호라오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네크로스들에게 영으로 임해서, 네크로스들이 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네크로스들로부터 부활했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다.

 

3-2.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나는 있느니라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24:33 곧 그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24: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oJravw) 하는지라  

 

원문은 시몬이 보았다(oJravw )이다.

 

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24: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24:37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24:38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24: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24:41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24: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24: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 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24: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24: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24: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24: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24: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24: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 

24: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24: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그리고 갑자기 사라진다. 조금 전만 해도 뼈와 살이 있다고 했는데, 갑자기 사라진다요한복음에 의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다(4:24). 그런데 영은 뼈와 살이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뼈와 살이 있다고 한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런 말씀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생각을 한다. 이러한 말씀 때문에 늘 언제가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은 지금도 뼈와 살을 가지고 우주 어디엔가 살고 계신가? 하나님은 영이신데, 그렇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신가? 예수님도 영이시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 예수다.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savrx)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님은 육은 무익하다고 하셨는데 다시 육을 강조한단 말인가?

 

고전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ai|ma)과 육(savrx)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분명히 육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다. 그 말은 부활 체는 흔히 생각하는 육체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많은 사람들이 부활한 예수님이 생선을 먹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보자!

 

21: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2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21: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21: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예수께서 떡과 생선을 먹었는가? 떡과 생선을 먹었다는 말이 없다. 떡과 생선을 제자들에게 주었다. 그렇다면 누가 먹은 것인가? 제자들이 먹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매일 그들과 같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라고 되어 있다. 만약 살과 뼈가 있는 육체라면, 말 그대로 살아 있을 때의 똑같은 육체, 그 모습 그대로, 그 몸 그대로라면 그들과 항상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왜 특별할 때 그들에게 나타나는가? 그렇다면 생선을 먹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생선을 먹는 장면은 다음과 같이 이해 할 수 있다.

 

3: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하면, 3:20의 말씀이 이해된다. 말 그대로 제자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먹는다. 그래서 내가 먹는 것이 그가 먹는 것이고, 그가 나로 더불어 먹는다. 부활은 모두 내 안에서 일어나서 제자들과 더불어 먹은 것이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 때, 그리스도는 나와 더불어 먹는다.

 

영은 살과 뼈가 없다. 그러나 나는 있다. 예수는 [죽은자들]로부터 부활했다. 여기에 답이 있다. 죽은 자란 제자들을 말한다. 제자들에게 프뉴마로 오셨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쏘마 프뉴마티코스라고 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자신은 뼈와 살이 있다는 것은 자신은 뼈와 살을 통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말씀이 육신이 된다는 의미이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살과 뼈이다. 죽어있는 영혼에 그리스도가 부활하면 내가 그의 뼈와 살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즉 그리스도의 뼈와 살이다. 그 고백이 아담의 고백이다.

 

너는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2:23).

 

뼈와 살이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무형이 아니라 실체가 있다는 말이다. 예수는 제자들을 통해 실존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나를 보면 아버지를 본다고 하는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

 

3-3. 부활의 몸! 영광의 몸!

 

부활은 영광의 몸을 입는 것이다. ‘쏘마 푸쉬키코스’(육의 몸)에서 쏘마 프뉴마티코스’(영의 몸)로 변화된다. 언제인가? (쏘마)은 내용물이 규정한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인하여 나의 몸이 지금 여기에서 이미 변화된다. 그래서 죽음과 상관없다. 그러나 나는 더욱더 영광의 몸을 소망한다. 그 영광의 몸은 무엇인가? 이러한 영광스러운 모습을 예수께서 변화 산에서 미리 보여주었다.

 

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metamorfovw {met-am-or-fo'-o} : 메타몰프호오 3339) 

 

스트롱코드 : 3339

17: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후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9: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9: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9: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9: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9: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9: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부활 되는 몸은 지금의 몸과 전혀 다르다. 그래서 고전 15장은 항상 지금의 몸을 뜻하는 싸륵스 대신에 쏘마를 사용하고 있다.

 

고전 15: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전 15: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전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부활 장으로 알려진 고전 15장에서는 쏘마 푸쉬키코스쏘마 프뉴마티코스로 나뉘어 설명하고 있다. 부활 체는 쏘마 프뉴마티코스라는 것이다. ‘쏘마는 단순히 살덩이를 나타내는 싸륵스와는 다르다. 그래서 싸륵스는 하나님 나라와 상관이 없다. 그러나 쏘마프뉴마를 담는 그릇이다. 그런데 쏘마에는 육의 몸이 있고, 영의 몸이 있다. ‘쏘마는 중립적이다. 그러므로 쏘마를 규정하는 것은 프뉴마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래서 부활 체의 본질은 말씀에 있다. 말씀이 쏘마를 규정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활이란 가장 건강한 모습! 가장 전성기의 나이! 그때의 육체를 가진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그러한 몸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이 부활인가? 그에게 생명이 없다면 그것은 영원한 저주이다. 말씀이 그 존재를 규정한다. 그래서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리스도가 네크로스인 나에게, 무덤인 나에게 살아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쏘마 프뉴마티코스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신령한 몸이라고 한다. 그래서 영은 살과 뼈가 없으나 나는 있다. 즉 예수는 죽는다! 그의 육체는 사라진다. 이제 그는 제자들로부터 부활한다. 즉 제자들에게 영으로 온다. 그래서 문이 닫혔는데 그가 제자들에게 나타나고, 또 예수께서 함께했는데도 제자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말씀이 풀어질 때 그가 누구인지 알고, 그를 알아볼 때 그는 또한 사라진다.

 

3: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쏘마)을 자기 영광의 몸(쏘마)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그리스도가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보여준 몸이 바로 이 영광의 몸(쏘마)의 형체이다. 예수님은 영광의 몸(쏘마)으로 부활하셨다. 육신의 몸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각 종 형태로 보여주신 것(테이크논)은 쎄메이온이다. 쉽게 이해되는 언어로 말하자면 천사와 같다.

 

22: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22: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2: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22: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2: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2:28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2: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22: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22:31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22: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오늘날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혼을 한 사람은 배우자가 2명이다. 그렇다면 부활한 후에는 누가 나의 배우자가 될까? 사람들은 부활 때에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가리라 본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부활이다.

 

종교적 부활은 자기 몸이 그대로 부활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자기는 그대로 살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기 부인을 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고방식은 성경을 근본적으로 대적하는 것이다. 나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신념을 담은 것이 지금 이대로의 몸, 혹은 가장 전성기 때의 몸으로 부활을 열망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이란 무엇인가?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사는 것이 아닌 죽음이다. 나의 죽음이다. 부활은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살아나심이다. 부활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나(무덤)에게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안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호라오)하는 것이다. 의식의 변화 없이 새로운 몸을 가지는 것이 부활이 아니다. 참 부활은 의식의 살아남이다. 의식의 변화 없이 클레오파트라로 전부 부활 된다면 그것은 영원한 지옥이다. 의식의 변화 없이 완전한 몸은 저주이다.

 

부활의 삶은 새로운 의식에 의한 새로운 삶이다. 새로운 의식의 삶이다. 그것을 속성으로 말하면 사랑의 삶이다. 이웃사랑의 삶이다. 사람은 그 사람의 의식대로 살게 되어있다. 복음은 의식을 변화시킨다. 하나님에 대한 의식, 나에 대한 의식, 그리고 이웃에 대한 의식을 변화시킨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지만 이웃을 어떻게 볼 때 사랑 할 수 있는가? 이웃사랑을 정의하자면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즉 그들도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럴때 사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웃을 어떻게 나와 똑같이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내 안에 being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being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복음은 이웃 안에서 하나님을 본다. 그래서 막살려고 해도 그 이웃 안에 하나님이 보인다. 그렇다면 그 이웃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그 이웃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는 자명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들이듯이 그들도 아들임을 볼 줄 아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이 집 나간 아들이다. 그들이 집에 돌아오게 하는 삶!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삶을 사는 것이 이웃사랑이다. 그리고 그 이웃사랑의 삶이 영생의 삶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사는 것이 부활의 참된 의미이다.

 

부활은 마치 애벌레와 나비의 관계와 같다. 애벌레와 나비는 같다. 그러면서도 차원이 다르다. 애벌레는 땅에 살지만, 나비는 땅과 하늘을 날아다니며 산다. 그것이 부활의 삶과 자연인의 삶의 차이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삶이다. 나비로 부활한 자들은 지금 여기에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산다. 그들만이 새 하늘과 새 땅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누리며 사는 것이다. 천국은 어디 갔다 오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 사는 나비들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나비는 사랑의 씨앗을 나르며 산다. 새로운 생명을 낳는 삶을 산다. 神性의 발견은 교만이 아니다. 오히려 내 이웃에게 神性을 본다. 자기가 최고로 높은 하나님이 아니라 섬기며 사는 신을 보게 된다.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는 바로 그런 神性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이다. 그리스도의 나라이다. 애벌레의 나라가 아닌 나비의 나라이다. 이것은 비유이다. 예수께서는 그래서 부활한 자는 천사들과 같다고 말했다. 이제 애벌레가 아니라 나비들과 같다. 그런 말이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영광의 몸이다. 몸은 이차적인 것이다. 근본은 말씀이요 그리스도이다.

 

예수는 죽었다. 그리고 부활했다. 그리고 그는 제자들로부터 부활했다. 제자들은 예수를 보았다. 말하자면 예수께서 천사처럼 영으로 incarnation해서 제자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구약에서도 천사가 등장한다. 말라크이다. 구약에도 그리스도가 말씀을 전했다. 구약에서 늘 그래왔듯이 ,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지금도 무덤은 터진다. 그 무덤으로부터 그리스도가 부활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쏘마 푸쉬키코스에서 쏘마 프뉴마티코스로 변화되는 것이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복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후 5: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단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지금 나는 부활한 나비로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나비의 몸조차도 벗으면 영광을 볼 것이다. 육신의 장막을 벗으면 영광의 몸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 영광의 몸의 실체는 낮은 몸보다 훨씬 뛰어난 영광의 몸이다. 이것이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다. 이미 부활 된 자만이 가지는 소망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부활 된 자만이 영광의 몸을 소망할 수 있다. 이미 주님을 만난 자만이 다시 주님을 소망한다. 사랑한 연인이 그 연인을 소망한다. 지금은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볼 것이다. 맛 본 자 만이 그 맛을 안다. 본 자 만이 다시 볼 것을 소망한다. 그러한 소망이 마라나타이다. 주님을 본 자만이 다시 보길 소망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다. 영광의 몸을 규정하는 것은 영광이다. 그리스도이다. 그 그리스도를 소망하며 , “마라나타

 

4. 사후 천국과 지옥(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천국과 지옥 개념은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존재이다. 아버지와 하나 된 아들이 천국이라면, 분리된 아들이 지옥이다. 그렇다면 사후 천국과 지옥은 없는가? 당연히 존재한다. 이 사후 천국과 지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활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영으로제자들에게 부활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는 제자들과 함께 있고, 제자들은 예수와 같이 말씀 육신이 된다. 나는 예수의 말씀으로 살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예수는 내 안에 살아 있다. 그렇다면 나도 예수와 똑같다. 나도 죽고 예수와 같이 부활한다. 모든 것의 답은 예수에게 있다. 그래서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를 보면 아버지를 볼 수 있다. 따라서 예수의 부활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천국과 지옥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고 왔다는 간증을 한다. 그러나 사실 성경에는 사후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지 않다. 물론 벧전에 다음과 같은 묘사가 있어 마치 땅밑의 지옥이 있다는 느낌이 들지 모른다.

 

(벧전 3:18-20, 개역) [18]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여기서 옥에 있는 영들이라고 할 때 옥은 헬라어로 <퓔라케>로 감시, 감옥이란 뜻이다. 그리스도가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셨다는 것은 지하의 어떤 세계에 내려가셨다는 말이 아니다. 즉 옥은 무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뜻한다. 그 무덤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의미이다. 이때 육체로가 아닌 영으로 전파했다고 한다. 영으로부활하셔서 무덤인 네크로스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말이다. 사후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는 사실  누가복음의 부자와 나사로 비유밖에 없다. 그것도 사실적 묘사라기보다는 일종의 비유이다.

 

16: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16: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16: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16: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 되매   

대부분 죽어서 영혼이낙원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거지가 간 이 아브라함 품을 낙원이라고 생각하고, 부자가 있는 곳이 음부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음부는 육체를 떠난 사람의 영혼이” “이 부활하는 날까지 대기하는 곳으로 생각한다. 음부를 상층/하층으로 나눠 생각한다. 나사로는 음부의 상층부, 즉 아브라함의 품, 부자는 음부의 하층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부자가 하층 음부에서 상층 음부에 있는 아브라함을 눈을 들어보고 있다는 말일까? 보통 아브라함 품을 낙원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주님이 강도에게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을 때, 음부를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 예수는 음부의 상층부인 낙원에 있다는 말일까? 재림하기 전까지 예수께서 낙원에 있다는 말일까? 그렇지 않다. 나사로는 천국에 들어간 것이지 음부의 상층이 아니다. 아브라함 품과 음부는 질적으로 다르다.

 

거지는 천사들에 의해서 (복음을 전한 자들/복음에 의해서)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간다. 이는 예수뿐만 아니라 거지(프토코스-가난, 절대 빈곤)인 나도 천사들에 의해, 즉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 의해 아브라함 품에 들어간다. 그러나 부자는 죽어 그냥 장사 된다. 천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음부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16장에 의하면 영혼이라는 말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냥 장사했다.

 

또 아브라함의 품과 음부는 건널 수 없는 구렁텅이가 있다. 질적으로 전혀 다른 곳이다. 그것이 서로 같이 볼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볼 수 있는데 건널 수 없는 구렁텅이가 있다는 말이다.

 

천국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 좋은 일보다 오히려 좋은 것을 다 빼앗아 나를 거지로 만든다. 욥기서를 보라! 종교인으로서 완벽한 부자인 욥을 탈탈 털어서 거지로 만드신다. 그러자 자기가 얼마나 인과율에 의한 자기 의에 의한 신앙인이었는지를 발견한다. 그러자 그는 관념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정말로 하나님을 호라오하게 된다.

 

그런 욥이 바리새인이고, 나다. 이 비유는 그래서 바리새인을 염두에 둔 비유이다. 14절에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그래서 예수를 비웃는다. 그래서 이 비유의 부자는 바리새인을 애둘러 표현한 것이다. 사실 이 비유의 본질은 천국이 이렇다 지옥이 저렇다 자세히 묘사하기 위함이 아니라 부자 바리새인의 각성을 위한 말씀이다. 뒷부분에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성경에서 진리를 발견하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왜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하나님의 품에 들어갔다고 기술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고 했을까?

 

12: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12:26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12: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그 산자의 대표가 아브라함이다. 그래서 나사로가 죽고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비유에서 왜 하필 나사로라는 이름을 사용했을까?

 

499  rz:[;l]a²  ?'El`azar  {el-aw-zawr'}

4105826에서 유래 ;하나님은 돕는 자(이시다)일곱 이스라엘인의 이름 엘르아살 :-엘르아살

 

나사로는 돕는 엘, 보혜사 성령을 상징한다. 천사와 같으니 , 성령이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는 것이다. 성령이 산 자에게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사후 천국의 비밀이다. 산 자의 하나님이 부활의 비밀이요, 이 부활이 사후 천국의 비밀이다.

 

산자의 하나님이라고 하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다. 하나님은 "산 자"에 사신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들이 산 자들이고 그 산자 들이 지금도 나와 함께한다. 아브라함은 산 자의 대표이다. 믿음의 조상이다. 하나님은 산 자(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품은 도대체 어디인가? 나사로(엘리에셀/성령)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간다. 성경은 그것을 낙원으로 표현한다. 성령을 품은 아브라함이 낙원이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란 뜻이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성전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성전이 아브라함이다. 성령이 거하는 곳이 성령의 전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품은 다름 아닌 성전이 된 이다. 그것이 낙원이요 에덴동산이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그의 영이 내 안에 거처를 마련해서 내 안으로 오시는 것이다. 그것이 속히 되어질 일이다. 그래서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다.

 

4-1. 하늘은 하늘로 땅은 땅으로

 

구약에는 사후의 천국과 지옥을 그리고 있지 않다. 다만 전도서에서

 

3:18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인생들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시험하시리니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3:19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3: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한 곳으로 가거니와  

3:21 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인생과 짐승이 댓구로, 위와 땅이 댓구로 되어있다. 이때 짐승은 단순히 강아지 같은 짐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짐승 같은 사람을 비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똑같은 루아흐를 쓰고 있다. 위와 땅이 댓구로 되어있기 때문에 위는 하늘로 볼 수 있다. 인생들의 혼(루아흐)은 위로 올라간다. 즉 승천한다. 그러나 짐승의 루아흐는 땅으로 내려간다. 그들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간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인생들, 하아담의 벤, 아담의 아들, 그 사람의 그 아들은 위로 올라간다. 하늘은 하늘로 돌아간다. 땅은 땅으로, 하늘은 하늘로 가는 것이 바로 분리이자 심판이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하늘은 그리스도가 계신 곳이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신가? 바로 성전에 계신다. 성전이 하늘이다. 그러면 성전은 어디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자기가 사라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사라지기 싫어하는 그 자기란 무엇인가? 자기 몸에서 나오는 자기 생각의 총체 아닌가? 그것을 버리기 싫은 것이다. 성경에서는 계속해서 자기 부인을 말한다. 너는 존재가 아니다. 너는 흙과 같다. 너는 풀과 같다. 너는 사라져 없어진다. 즉 너의 그 몸은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나다. 본질은 떡이 아니라 말씀이다. 보이지 않는 말씀이다. 말씀들은 말씀으로 가고, 흙은 흙으로 간다. 성경에서 네크로스는 이미 무덤이라고 한다. 흙은 무덤으로 갈 뿐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들을 짐승과 똑같다고 한다. 짐승은 흙으로 돌아간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짐승과 사람들을 엄청나게 다르게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생명, 그 의식이 없으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똑같다.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런 자기가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것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이다. 나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의 부인이다. 그리고 온전히 말씀인 하나님만이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사라진다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아니 사라져야만 영광을 본다. 나는 썩을 것이다. 나는 낮은 몸이다. 그러나 그것이 부인되어야만 썩지 않는 것, 영광의 몸을 입는다. 말씀들은 말씀으로 연합된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다. 그래서 아버지 계신 곳에 아들 또한 있게 된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있다. 하늘은 하늘로 모이고 땅은 땅으로 모인다.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분리)이 있으리니

 

크리시스는 결정, 판단, 심판이라는 뜻인데, 재판용어이다. 재판이 이루어지면 분리가 이루어진다. 사람이 죽으면 분리가 이루어진다. 그 분리는 큰 구렁텅이이다. 이것이 전 3:21에서 말하는 분리이다. 하늘은 하늘로, 땅은 땅으로 간다. 말 그대로 천지 차이이다.

 

예수는 죽었다! 예수는 어디로 갔는가? 예수는 어디에 계신가? 이것이 핵심일 것이다. 그는 아브라함 품으로 갔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plhvrwma 플레로마 4138)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는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있다. 교회가 하나님의 플레로마이다. 하나님은 다른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교회에 계신 것이다. 따라서 나도 하나님이 계신 곳에 함께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교회에 거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예수가 구름과 함께 오신다는 말이다. 구름이 때로는 성도를 비유하는 것이다.

우주적 교회가 땅에 충만할 것이다. 이것이 창 1:26절의 명령이요! 하나님 자신의 목적인 것이다. 즉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했다. 그리고 그의 몸으로 교회를 사용한다.

그리고 그가 호흡하며 산다. 천지창조는 하나님 자신을 위해 만든 것이다. 즉 자신의 충만을 위해 만든 것이다.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alem),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4390  alem;   male'  {maw-lay'}or   mala' (Esth. 7:5)  {maw-law'}

또는   mala ,(7: 6)마라 기본어근 ;채우다 , 또는 (자동사로 )충만하다 광범위한 적용에서(문자적으로, 상징적으로 ):-성취하다, 확인하다, +봉헌하다, 끝나다, 기간이 끝나다, 울타리로막히다, 채우다, 완성하다, 가득하다(가득해지다 , ×잔뜩 당기다 ), 충만하다, 흘러넘치다, 충만함, 공급하다, (함께 )모이다, 다시채우다, 만족시키다, 세우다, 거리를 유지하다, 한줌가득 취하다, +온전히 가지다

 

창조 5일에 충만하다라는 말레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플레로오이고 이 플레로오의 명사형이 플레로마이다 .

 

4138  plhvrwma   pleroma   {play'-ro-mah}

4137에서 유래 ;충만, 혹은 완성(주체가),(내용물, 공급물, 지식,군중의)가득찬 것,또는(대상이; 그릇, , 시간 등이)가득 채워진 것, 가득 채우는 것, 완수하는 것 중명. fullness, fulfillment;

 

플레로마는 충만인데, 신의 임재로 충만한 상태를 뜻한다.

 

3: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3: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ginwvskw)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plhvrwma)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plhrovw) 하시기를 구하노라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2: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2: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2: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2: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 이 육체로 거하시고  

2: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으로 충만하다. 하나님으로 충만하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하나님으로 충만한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이다. 그리고 지금의 하나님 나라가 그 충만의 결과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더욱더 자라날 것이다. 몸이 자라듯 그리스도의 몸은 충만할 것이다. 하늘은 하늘로, 말씀은 말씀으로 간다. 그리고 그 말씀은 쏘마 프뉴마티코스에서 살아 움직인다. 말씀들은 말씀과 완전하게 연합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항상 있다. 하나님은 한 생명이다. 한 생명인 하나님의 몸이 교회이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산다. 아들은 아버지의 영광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몸이다.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9: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계시록 19장에 보면 그리스도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라는 표현이 나온다. 만왕이 있기에 왕이 있는 것이다. 왕들이 있어야 왕이 있다는 것이다. 14절에 성도가 그리스도를 따른다. 내가 죽으면 말씀과 연합된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성도는 항상 있게 된다.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는가? 아브라함 품, 즉 산자에 있다. 그리고 또 초월하여 아니 계신 곳이 없다. 그러므로 성도들도 그가 계신 곳에 항상 있다.

 

우주 전체를 왕들로 채우겠다는 것이 신의 목표이다. 나의 시간으론 왕들로 채워지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이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프로젝트가 지구에만 있을까? 깊고 깊은 비밀을 어찌 다 알겠는가? 다만 나에게 주어진 지구를 잘 이해할 때, 그나마 또 다른 차원의 빛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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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안에 2020.11.14 07:01

    요일2:22,23,
    요일4:1~4,
    히2:9~14~18,

    물과 피로 임하신 예수,
    물로만 아니라 물과 피로 임하셨고,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 적그리스도의 영이라 하심,/요일4:1~3~
    형제들이 혈과 육에 속하심 같이 혈과 육에 속하심,
    대제사장이 되어(지성소) 단번에 들어가심,

    부자= 예수를 거절한 바리새인, 서기관들, 등등,, 너희는 보고도(복음=예수오심)종시 뉘우쳐 믿지 않음, =책망하심(복음을 먼저 받은 자기 백성)
    가난한 나사로= 세리와 창기들, 이방인들,, 저희는 믿었으며,,,

     

    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눅6:24)~

     

    믿는 자= 생명의 부활로,

    믿지 않는 자= 심판의 부활로,                 공의로운 주의 말씀=심판

    온 성경은 복음이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었는가? 거절했는가?
    믿은 자= 가난한 자들,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 죄인인 자임을 안 사람들,
    거절한 자= 부자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다, 자기의 의로 옷입은 사람,(교만을 책망하심)

    먼저는 당시 자기 땅에 오신 예수를 믿지 않은 유대 지도자들,,,등등,,

    각 시대마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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