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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말씀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알아 가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난다면 버리시고 그렇지 않다면 차근차근 읽고 되새기셔서 '자유롭게 피어나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모든 것이 "예'입니다! 더불어 '구원'이란 '인격의 발전'이 아닌 '신격의 발견'입니다.

 

4. 모형론(패턴)에 대한 이해

 

 

성경의 상징을 이해하는 형태가 있다. 그것이 모형이라고 한다. 이 모형론은 성경적 세계관에 절대적 기초가 된다.

 

 

고전10: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이때 본보기라는 말이 튀포스’(5179 tuvpo")인데, 모형(typos)이란 말은 밀랍(wax)같이 어떤 다른 것 위에 형상을 찍는 것을 말한다. ‘튀포스도장, 자국, example’이라는 뜻이다. 도장을 찍으면 자국이 남는다. 그런데 그 자국은 원형은 아니다. 원형은 도장 자체에 있는 것이다. 그럴 때 그 자국이 모형인 것이다. 모형은 원형을 반영한다. 그 도장은 모형이다. 원형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말하자면 하늘의 패턴을 땅에 새기는 것이다구약은 도장과도 같은 것이다. 즉 구약에 일어난 일들은 구약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말세를 사는 성도(교회)에게 똑같은 모형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사건이 인류-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7:44 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튀포스)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8: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휘포데이그마)과 그림자(스키아)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튀포스)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이 모형이 바로 보조관념에 해당한다. 따라서 모형도 일종의 상징이다. 상징은 그림자이다. 모형이란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그림자이다. 그림자(모형)란 실체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지상 성소하늘 성소모형’(휘포데이그마)으로 그리고 있다. 성막은 실체가 아니라 실체를 담은 그릇이다.

 

 

[25: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8403 tynIb]T' 타브니트)대로 할지니라

 

 

타브니트가 바로 구조, 모형, 견본이라는 뜻이다. 모형은 미래에 있을 어떤 인물이나 사건, 의식 등에 대해 미리 보여주기 위해(豫表) 제시되는 ‘symbol’ 인물, 사건, 의식등이 있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모형들은

1. 인물들 : 아담, 가인, 아벨, 멜기세덱,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여호수아, 다윗, 요나...

2. 사건들 : 홍수, 이집트의 역병, 유월절, 놋 뱀, 요단강, 도피성읍...

3. 의식들 : 제사, 정결례, 명절, 희년, 속죄일...

4. 구조들 : 방주, 성막, 성전...

5. 기구들 : 놋제단, 물대야, 촛대, 떡상, 향단, 언약궤...

6. 색깔들 : 청색, 붉은색, 흰색, 자주색, 주홍색, 녹색...

7. 숫자들 : 1, 2, 3, 4, 5, 6, 7, 8, 10, 12, 40, 70...

 

 

이 모형들이 수레바퀴의 살(spoke)이라 할 수 있다. 이것들은 그림자이다.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이삭도 약속의 아들이다(15:4, 7:14).

이삭의 출생도 미리 알려졌다(18:10, 1:30-31).

이삭의 이름도 태어나기 전에 붙여진 것이다(17:19, 1:31).

이삭도 불가능한 조건에서 태어났다. 사라는 불임이었고(11:30) 마리아는 처녀였다(1:18-20).

이삭도 독생자로 불린다(11: 17, 3:16).

이삭도 친족들에게 조롱과 핍박을 받았다(21:9,10, 4:28,29, 27: 29).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이삭은 자기가 드려질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갔다(22:6, 27:24).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이삭도 기꺼이 제단 위에 올랐다(22:9, 10:17).

이삭도 아버지에 의해 버림받은 것이다(22:12, 10:17).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듯이 이삭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받은 것이다(11:17-19, 28:6).

 

 

야곱의 12 아들에 대한 축복! 이 12 아들도 모두 그리스도의 사역을 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저주받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저주를 축복으로 만드는 죽음과 부활이 그 축복 속에 다 담겨 있다. 요셉 또한 그리스도의 모형이요, 그의 아들 베냐민과 에브라임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복음을 담고 있다. 그러한 복음을 알면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된다. 마태복음 13장의 천국비유의 마지막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성경에서 그러므로가 나올 때는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52절은 지금까지 천국 비유의 총 결론인 셈이다. 이때 옛것이 모형이라 할 수 있고 새것이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옛것이 보조관념고 새것이 원관념일 수 있다. 천국의 제자는 옛것을 통하여 새것을 가르친다. 구약을 통해 신약을 가르친다. 모형을 통해 아버지의 그 마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옛것은 모형(구약), 새것은 원형(신약)이라고 볼 수 있다. 구약과 신약이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서기관은 구약과 신약을 분리한다. 흔히 구약이 영화라면 신약은 자막이라고 한다. 히브리서 없이 레위기를, 요한계시록 없이 다니엘을, 복음서의 설명 없이 유월절이나 이사야 53장을 이해하기란 여간 어렵다. 산상수훈의 이해 없이 창 1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구약에 나오는 많은 모형들이 신약에 나타나는 원형들로써 설명되기 때문이다. 모형은 원형으로 설명 되어져야 한다. 반대로 구약의 배경 없이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수 없다.

 

 

모형(types)에는 원형(antitypes)에 대한 예언을 담고 있다. 신약(antitypes)은 구약(types)의 성취이다. 모형론은 이런 예표(豫表: 미리 보이는 징조)를 다루는 성경적 역사철학이다. 모형론은 약속과 성취를 담고 있다. 패턴은 흔적을 남긴다. 최초의 하늘의 패턴을 땅에 새긴 것이 에덴동산이다. 계시는 이 흔적에 흔적을 더함으로 발전해간다. 이를 계시의 점진적 발전(점진성)이라고 한다. 하늘이 점진적으로 땅에 찍히고, 그리스도가 점진적으로 계시 된 것 같이, 역사의 잠긴 의미를 푸는 열쇠는 모형론이다. “모형”(types)원형”(antitypes)에 대해 공부함으로써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의 권위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역사는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모형론이 의미하는 바는 역사가 하나님의 통제하에 있지, 사람의 통제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하나님은 흔적을 남긴다. 땅은 하늘의 흔적이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흔적이다.

 

 

4-1. 알레고리 해석과 모형론은 무엇이 다른가?

 

 

성경의 상징을 다루면 영해를 한다. 알레고리 해석을 한다고 한다. 심지어 성경을 영적으로 다루면 영지주의라고 몰아세운다. 그래서 모형론을 다루면 알레고리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도 바울 또한 이 모형론을 사용했음은 명백하다.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5179 tuvpo")이라

 

 

사도 바울은 아담을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그리고 있다.

 

 

4:22-26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바울은 하갈과 사라를 지상의 예루살렘과 천상의 예루살렘으로 영해 하였다.

 

 

고전 10: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고전 10: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고전 10: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고전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바울은 홍해 도하 사건을 세례로, 만나를 성찬으로, 반석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그리고 있다. 사도 바울 또한 이 모형론을 사용했음은 명백하다.

 

 

다니엘루(Jean Danielou)에 의하면 초기 기독교부들은 모형론을 그들의 성경 이해의 중심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들은 유대주의에 대항하여 모형론은 구약에 대한 신약의 우월성을 보여주었고, 영지주의에 대항하여 모형론은 구약과 신약이 공히 똑같은 진리들을 계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교부들은 과거의 사건들은 현재 혹은 미래의 실체를 위한 모델이 되었다고 보았다. 교부들은 성경의 상징적 해석을 즐겨 사용했다. 바울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은 영의 말씀이다. 따라서 영해를 해야만 한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영해를 한 이유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영해가 무엇인가? 초대교회의 큰 줄기는 안디옥파와 알렉산드리아파이다. 주로 알렉산드리아파가 영해를 많이 했는데 알렉산드리아의 영해의 근본적인 문제는 영해에 있기보다는 그 영해의 내용이 문제다. 즉 성경에 기반한다기 보다 헬라철학을 기반으로 성경을 도덕적 교훈으로 해석한 점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영해의 근본적인 문제는 영해에 있기보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수평적으로 통일되며 반복 되어진 동일한 패턴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을 영해로 전환한 것이 문제이다. 헬라철학으로 도덕적 교훈을 찾았던 것이 진짜 문제였다.

 

 

성경을 무엇으로 전하는가? 성경의 모든 내용을 도덕적 교훈으로 전하지 않는가? 그것도 자신이 가진 철학으로 말이다. 자신의 유익으로 성경을 해석하지 않는가?

알레고리로 유명한 오리겐이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플라톤 철학을 기반으로 성경을 해석한 것이 문제이지 영적으로 해석한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말하자면 성경을 철학으로 덮어씌운 것이 문제이다. 그것이 사도 바울과 다르다. 사도 바울도 영해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알레고리는 발전적 계시를 보지 못하고 수직적이다. 수직적이란 헬라철학에 입각하여 일회적으로 본문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에 비해 모형론은 수직적(천상의 일들/묵시)이고 수평적인(역사상 계속하여 반복된 사건들/역사)면을 동시에 가진다. 예표론은 사건, 인물, 제도, 사물이 수평적으로 성취되는 것으로 본다. 성경에 상징이 일회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성경 전체에 흐른다면 그것은 단순히 알레고리라 할 수 없고 모형이라 할 수 있다. 모형은 상징의 연속이다. 그러나 알레고리는 일회적 상징이다. 모형론(예표론)은 역사적 해석의 한 줄기이다. 이 모형론이 있기에 애굽-광야-가나안의 사건이 구원의 본보기(pattern)가 될 수 있다.

 

 

알레고리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전체 구속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구속사적 전체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상징은 암호가 아니며 반드시 성경에 명시되어야 한다. 성경은 성경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상징도 성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상징에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것이 성경을 읽는 이유이다.

 

 

4-2. 얼마나 많이 지식을 가져야 구원받을까?

 

 

지식을 많이 갖는 것이 중요할까?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할까? 조직신학을 잘 알아야 구원을 받을까? 새 신자 훈련을 받으면 구원을 위한 최소한의 지식일까? 제자훈련을 잘 받으면 제자가 되는 것일까? 히브리어, 헬라어 원어를 잘 알아야 할까? 그렇다면 원어 한 자 모르는 시골 농부 할아버지는 하나님을 모른단 말인가?

 

 

그런데 이 질문에 오류가 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이미 잘못된 말이다. 구원은 조건이 아니다. 지식이 조건이 될 수 없다. 산상수훈에서 나오는 복! 가난한 자! 애통한 자! 빼앗긴 자! 주린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바로 복이요 천국인 것이다. 그 선물로 인해 성도는 그 하나를 아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만 알아도 영생을 누릴 수 있다. 조건으로 받는 구원이 아니라, 선물로 주어지는 영생의 누림이다. 히브리어, 헬라어 전혀 모르는 시골 농부에게도 찾아오시는 하나님이다.

농사 속에 하나님은 농부에게 계속 말을 건다. 그 하나를 알면 된다. 그러나 그 하나는 이 세상 전체 언어를 다 합쳐도 표현할 수 없는 하나이다. 하나가 전체이며 전체가 하나이다. 성경의 그림 언어는 다음 같은 것들이 있다. 이것들을 spoke라고 한다

 

 

하늘, , 바다, 성전, 신랑(남자), 신부(여자), 결혼, 숫자, 사탄, , , , , 우물, 나무, 구름, 그리고 하나의 모형으로서 심지어 출애굽 여정(애굽-광야-가나안)도 그림 언어이다. 그런데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하나의 axis, 그리스도에 다가가려고 하는 것이다. 영생은 참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참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음과 하나 되어 산다. 그것이 영생이다. 많은 주제(spoke)를 다루지만 결국은 하나이다. 하나이지만 많은 주제로 바퀴를 이루는 것이다. 사람 안에 이미 그 하나의 보물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보물을 이미 안다.

바퀴라는 것은 살이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 이렇게 살이 더해질 때 더 잘 굴러가게 된다. 그래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바퀴가 잘 굴러가게 하는 것이다. 즉 영생을 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지식을 위한 공부가 아니다. 공부 자체가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님!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자체가 즐거움이다. 이것은 평생, 아니 영원히 알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영생은 참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 그 자체이다(17:3).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재미가 꿀맛이다. 그 알아가는 재미 자체가 낙이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만 먹는 것이 아니다. 맛있기 때문에 먹기도 하는 것이다. 그 맛에 사는 것이다. 낚시하는 사람은 손맛을 안다. 성경을 묵상하는 이들은 그 맛을 안다. 그 기쁨을 함께 누리길 원한다. 많은 지식이 아니라 그 하나를 알아 그 하나로 지금” “영생을 사는 것이다. 그 하나만 가지면 되는데 그 하나를 몰라 방황하는 것이 인생이다.

 

 

성경은 자연적인 현상이 하늘의 그림들이고,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이고, 이 세계가 모두 하나님의 집, 즉 성전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상징을 이해하면 모세가 본 떨기나무에 붙은 불을 볼 것이다. 그리고 신발을 벗자! 이 땅은 천국으로 충만하며 모든 평범한 떨기나무에는 하나님의 불이 붙어 있다. 그러나 보는 자만이 신발을 벗는다.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

많은 인생이 신비로운 의미를 갖고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것을 바로 읽어 내는 것은 아니다. 대개 그것은 은밀한 형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우리는 그것을 해독하지 못하면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져 절망에 빠진다. 위대한 인생의 비밀은 대개 자신에게 주어진 신비로운 상징들을 해독하고 이해하며, 그래서 참된 길을 걷는 법을 배우는데 성공하는 것이다.

 

 

-솔제니친

내가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를 보았다.

더 깊이 들여다보고는 파동을 발견했다.

 

 

-존 휠러(John Wheeler)

일생 동안 연구한 지금에는 모든 존재가 정보의 표현인 듯 보인다.

 

 

 

 

5. 셋째 하늘은 어디에 있을까 ?

 

[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46:6 새 번역 ] 주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시며,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며 

[9: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10:6] 세세토록 살아 계신 이 곧 하늘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에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성경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그대로 세상을 하늘--바다로 그리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 땅, 바다라는 언어를 알게 되면 많은 말씀 들을 이해할 수 있다. 언어는 다양하나 언어의 마음은 하나이다.

 

하늘 

고후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후 12: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

 

바울은 셋째 하늘을 언급하고 있다. 바울이 이끌려간 셋째 하늘은 도대체 어디일까? 바울도 하늘을 3중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하늘은 왜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을까?

 

셋째 하늘이란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 그렇다면 그곳은 어디인가? 바울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성전을 이해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성전이 원형이고 그 원형을 모형으로 보여준 것이 성막이다. 성막은 하늘의 흔적이다. 도장이다. 그래서 성막을 이해하면 셋째 하늘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성막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성소-지성소이다. 성막은 하늘--바다의 구조를 보여준다. 성막에서 하늘에 해당하는 것이 성소와 지성소이다. 이것을 하늘 짝(쌍수)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샤마임인데 쌍수인 이유이다. 즉 성소와 지성소가 짝이다. 그리고 뜰은 땅에 해당한다. 그리고 성막 밖을 바다이다. 흔히 이방인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셋째 하늘은 어디인가? 지성소이다. 성소가 첫째 하늘, 지성소가 셋째 하늘이다. 그리고 휘장이 말하자면 둘째 하늘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을 때 휘장이 찢어졌다고 한다. 막혔던 하늘이 열린 것이다. 그 막힌 하늘이 둘째 하늘이다. 창세기 1장의 궁창이다. 그래서 이 휘장이 찢어지면 하늘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완전한 하나 됨이다. 단수의 하늘이 하늘 짝에 계신다우주의 하늘이 있다. 그 하늘을 축소해 놓은 것이 성전이다. 그리고 그 성전의 원형은 사람이다. 즉 성도가 성전이다. 즉 성전은 사람을 보여주기 위한 설계도와 같다. 따라서 성전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창 1장이 우주창조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성전과 그리고 성전인 ‘인류-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기 위해 먼 하늘을 찾지 말라! 보물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셋째 하늘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찢어진 휘장을 통해 열린 성도 안에 있다. 그 성도를 하늘 짝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은 그런 하늘 짝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라는 것이다.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매일 기도하는 주기도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어디에 계시는가? 하늘에 계신다. 하늘은 헬라어로 '우라노스'인데 독특한 것은 복수로 되어있다. 성경 외에 어느 문자에도 하늘을 복수로 사용하지 않는다. 이 '우라노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샤마임'에서 온 단어이다. '샤마임'은 쌍수로 되어있다. 짝으로 되어있다는 말이다. 왜 그럴까? 성경에서는 하늘이 물로 되어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샤마임'이라는 단어 자체가 거기에 물이 있다라는 뜻이다. 단어 자체가 거기()+()+()로 되어있다. 이 모습을 창세기 1장에서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1:6]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

[1: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창세기 1장에는 분명히 윗물과 아랫물이 있다. 이 윗물과 아랫물이 도대체 무엇일까? 상상해 보라! 하늘 위에 물이 있고 아래에 또 물이 있다. 그렇다면 위의 물은 분명히 얼어버릴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가 1m가 되지 않는다(8,848m). 그런데 그 대기권을 벗어나면 물은 언다. 그런데 이 물로 나뉘어져 있다. 과연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그래서 창세기는 과학교과서로 읽기보다는 구속사로 보아야 한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모두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 한다.

 

창세기 1장의 윗물은 물리적인 물을 말하지 않는다. 이 윗물은 보이지 않는 물이다. 보이는 물(표적)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물(실체)을 알라고 하시는 것이다. 아랫물을 통하여 윗물을 알라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또 보이는 물은 무엇일까? 성경에서 물은 말씀을 상징한다. 아래 말씀으로 위 말씀을 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래 말씀이 무엇을 뜻할까?

 

샤마임이 쌍수라는 것은 원형의 하늘은 단수 하늘이다. 그 단수 하늘의 짝이 샤마임인 것이다. 그 쌍수 하늘들에 하나님이 계신다. 그 하늘들 안에 계신 아버지이다. 아버지의 하늘은 바로 아들들이다. 그 아들들을 말씀들이라고 한다.

 

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후토스'(////)이것은으로 번역하였으나 '남성, 복수, 주격'이다. 따라서 이들은이라고 번역해야 옳다. 따라서 이들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들이라 번역해야 옳다. 즉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이 말씀들이다. 그 말씀들이 곧 하늘들()이다. 그 말씀들에 말씀이 함께 호흡하며 사는 것이다. 그것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는 것이다. 샤마임에서 셈은 또한 이름 이기도 하다. 새 이름의 존재들 그들이 곧 샤마임이다. 그러므로 셋째 하늘을 우주 밖 가장 멀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은 가장 가까이에 있다.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 하시니라

 

그리스 로마신화에 보면 카오스 신이 있다. 천지는 이 카오스로부터 왔다고 생각한다. 본문도 이렇게 카오스 개념으로 보는 것 같다. 물질이 질서를 잡히기 전에 질서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창세기 1장은 우주 창조의 그림을 통하여 결국은 ‘인류-를 어떻게 만들어가겠다는 약속이다. 우주 창조라는 형식이지만 그 실체가 ‘인류-’‘이다. 그리스/로마신화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신화는 신들의 얘기 같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얘기이다. 인간의 얘기를 신화를 빌어 말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땅은 다름 아닌 '나'를 말하는 것이다. '나'에 대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주나 자연을 보면서 항상 '나'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1:2이 단순히 카오스를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을 어떻게 알수 있는가?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면 알 수 있다.

 

 

4: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4:23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4:24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4:25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4:26 보라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rB;dÒmi)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의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4:2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길 이 온 땅이 황폐할(hm;m;v) 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4:28 이로 말미암아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어두울 것이라 내가 이미 말하였으며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하였은 즉 또한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타락한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또한 지각없는 미련한 자들임을 빗대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땅은 단순히 물리적 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뜻할 때 땅으로 비유를 많이 한다.

 

34:8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날이요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시는 해라  

34:9 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 그 티끌은 유황이 되고 그 땅은 불붙는 역청이 되며  

34:10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아니하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  

34:11 당아새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에 살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위에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드리우실 것인즉  

34:12 그들이 국가를 이으려 하여 귀인들을 부르되 아무도 없겠고 그 모든 방백도 없게 될 것이요

34:13 그 궁궐에는 가시나무가 나며 그 견고한 성에는 엉겅퀴와 새품이 자라서 승냥이의 굴과 타조의 처소가 될 것이니

 

에돔에 대한 심판을 혼란과 공허, 귀인과 방백, 가시나무와 엉겅퀴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혼돈하고 공허(보후/구약에서 3번 사용/혼돈과 함께 사용)하다는 것은 가시적인 물질계인 우주 의 형태와 질서가 잡히기 이전의 미분화된 원초적인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나 자녀들이 아직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지각이 없어서 진리를 받지 못한 원시적 상태를 뜻한다.

 

땅과 유대 백성을 동일시하고 있다. 이러한 하늘과 땅이 성전에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은 시내 산에도 그대로 표현된다. 시내 산도 3중으로 되어있는데 모세는 가장 높은 곳, 즉 지성소에 그리고 70 장로는 산 중턱에 즉 성소에, 그리고 일반 백성은 산 아래에 있었다. 백성을 70 장로로, 그리고 결국은 지성소로 인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그대로 성전에 담겨있다. 이것은 지성소-성소-뜰의 구조를 가진다. 그러므로 시내 산은 성막의 연장선이다. 거꾸로 말하면 성막은 움직이는 시내 산이다하늘과 땅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함이다. 하늘과 땅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밟고 있는 땅(헬라어 호게, 히브리어 하 에레츠)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땅은 인간을 말하기 위한 도구이고, 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언약 백성/사람)을 뜻한다.

 

바다 

[삼하 22:4]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받으리로다

[삼하 22:5] 사망의 물결이 나를 에우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65:7] 바다의 설렘과 물결의 흔들림과 만민의 소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65:8] 땅끝에 사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5:30] 그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려서 어두우리라

 

[17:12]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 물이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

[17:13] 열방이 충돌하기를 많은 물이 몰려옴과 같이 하나 주께서 그들을 꾸짖으시리니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 산에서 겨가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 같을 것이라

 

[57:20]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6:23] 그들은 활과 창을 잡았고 잔인하여 사랑이 없으며 그 목소리는 바다처럼 포효하는 소리라 그들이 말을 타고 전사같이 다 대열을 벌이고 시온의 딸인 너를 치려 하느니라 하시도다

 

바다는 어두움, 세상, 이방인 등을 상징한다이러한 땅과 바다의 그림을 이해하면 계시록이 쉽게 이해된다. 계시록 13장에는 두 짐승이 있다.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있다.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왜 한 짐승은 바다에서 나오고, 또 한 짐승은 땅에서 올라왔다고 표현하는 것일까? 땅은 유대인이고, 바다는 이방인이라고 했다. 땅이 유대인, 바다가 이방인이라는 기본 심상을 안다면 이제 계시록 말씀도 쉽게 다가온다.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이스라엘, 즉 성전에서 올라오는 짐승이다. 누굴까? 유대주의자들에 의한 핍박을 뜻한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이방인을 뜻한다. 그렇다면 당시 누구인가? 바로 로마이다.

 

계시록은 마태복음의 종말 강화(23~25)와 맥락이 이어져 있다. 마 23장은 율법 학자와 바리새인에 대한 맹렬한 비판과 심판이 예언되어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예루살렘 성전멸망에 대한 예언이 나온다.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율법주의자들의 엄청난 공격이 있었다. 그리고 성전이 무너짐으로 복음이 승리했다. 성전이 무너진 후에는 로마가 교회를 박해 한다. 성도들을 종교와 정치가 하나 되어 핍박하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의 상징 언어를 이해하면 계시록 또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아닌 복음을 정확히 이해하는 기초석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메타포를 이해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하나님은 바다에 있는 사람을 육지에 끌어 올린다. 이러한 심상이 창 1장에는 바다에서 뭍이 드러나고그 뭍에 씨가 뿌려지고 열매 맺는다. 이제 땅에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즉 이제 땅이 하늘이 된다. 하늘과 땅이 하나 된다. 이것이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6. 에덴동산은 성전이다

 

시내 산도 하늘--바다라는 3중 구조로 되어있는 성전이고 노아의 방주 또한 3층이다(6:16-20).

 

위의 하늘(새들) / 아래로 땅(가축들) / 땅 아래 바다(기는 것들)

 

방주 또한 성전이다. 땅의 가축들은 뜰에서 희생 제사로 쓰인다. 기는 것들은 나비로 말하자면 애벌레에 해당한다. 이 애벌래가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된다. 이렇듯 성전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다.

 

에덴동산도 3중 구조이다. 즉 성전이다. 에덴동산(garden in the Eden)이 최초의 흔적이다. 원형은 흔적을 남긴다. 하늘에 뜻이 새겨진 땅이 에덴이다. 에덴동산이라고 알고 있어 에덴과 동산을 같은 곳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에덴에 있는 동산이다. 그래서 에덴동산도 하늘--바다의 구조를 그리고 있다.

동산-에덴-에덴 밖 세상으로 그리고 있다.

 

동산은 하늘이다.

먼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있다. 그 세상 안에 에덴이 있다. 그리고 그 에덴 안에 동산을 만든 것이다. 이 동산은 정원(@G" )이다. 정원은 1598(@n"G: 가난)에서 유래한 단어인데, ‘울타리를 치다라는 뜻이다. 보호를 받던 곳이다. 왜냐면 이 동산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3:8).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그러므로 동산은 하늘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늘은 물리적인 하늘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하늘이라고 한다.

 

에덴은 땅이다(땅의 네 모퉁이).

강이 에덴(기쁨)에서 흘러나와 정원을 적신다. 에덴에서 강이 갈라져 네 모퉁이로 흐른다(2:10). 동산(정원)에서 강이 갈라지지 않았는데 동산을 벗어나서부터 에덴의 네 모퉁이로 나누어져 흐른다(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즉 이 에덴은 4 모퉁이가 있고, 이 에덴은 땅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경에서 “4”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이 네 모퉁이는 땅의 사방을 상징한다(7:1, 9:13, 20:8, 11:12, 7:2). 제단들은 반드시 네 모퉁이를 가져야 한다(20:24-25). 4강은 그룹들의 네 얼굴(1:10)과 이스라엘의 진영의 네 편대(2)로 나타난다.

 

에덴 밖의 세상은 바다이다. 에덴 밖의 세상은 이방 세상이고, 이 이방 세상은 성경에서 자주 바다로 상징되어 있다. 인간의 타락 이후 육지와 바다의 분리는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을 위한 상징이 된다. 혼돈한 바다는 끊임없이 육지를 삼키려고 하는 것처럼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육지를 침범하려고 노력한다. 바다의 깊음, 즉 심연은 무저갱을 상징한다. 바다 중에서도 가장 깊은, 끝도 없이 깊은 것이 무저갱이다. 예루살렘성전 밖에 무엇이 있는가? 밖에는 힌놈의 골짜기가 있다. 게헨나이다. 지옥의 표현이다. 말하자면 성전 밖이 지옥이며 바다이다.

 

 

6-1. 예수님은 왜 어부들을 부르셨을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따르니라 (1:17-18)

 

하늘--바다라는 그림 언어를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어부를 부른 이유를 알 수 있다. 구약시대에는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적이 없다. 대부분 목자나 농부 같은, 모두 땅에서 일하는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부들을 부르셨다. 왜 그랬을까?

 

성경에서는 바다를 일관되게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혼돈, 공허, 두려움을 상징하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지칭하여 바다라고 한다.  

창세기 1장에 3일째 바다에서 땅이 분리된다. 그것은 혼돈에서 질서가 잡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에덴에서 강은 모든 땅에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4개의 강으로 흘러나왔다. 4개는 4방향으로 흐르는데 성경에서 4는 땅을 상징하는 숫자다. 4 모퉁이는 땅의 4방을 상징한다. 물은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닿는 모든 곳은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노아의 시대에 온 세상은 바다가 된다. 땅이 필요했다. 바다로부터 땅을 건설한 자가 있다. 노아이다. 노아는 방주()를 통하여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방주(성전/교회/복음)를 거부했고 심판을 당했다.

 

족장 시대에 인류가 바벨탑을 쌓기 시작한다. 바다이다. 바다가 된 세계로부터 땅에 성전을 만들고자 족장을 부르신다. 족장들은 그 땅에 우물을 팠고 오아시스-성소를 세운다. 그들에게 있어서, 물은 땅 아래에 있었고 길어 올려야 했다. 그들은 우물을 팜으로 복음을 전한다. 족장의 세계는 요셉의 시대에 절정기를 맞는다. 그러나 이집트 신을 섬기면서 그들은 바다가 된다.

 

그러나 홍해라는 바다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이집트를 나오게 하신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나와 엘림에 장막을 쳤을 때, 거기에는 물 샘 12와 종려나무 70주가 있었다(15:27, 33:9). 열두물 샘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70주의 종려나무는 70개국 나라(10)의 상징이다. 물 샘 곁에 있는 70주의 종려나무는 물 샘으로 성장하듯이 세계 70개국 나라는 이스라엘에 의해서 살아간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사명이다. 시내 산으로 인도한다. 이 시내 산은 또 하나의 에덴동산이다. 이 성산을 그대로 옮긴 것이 성막이다. 성막에서 세상을 깨끗게 하는 물두멍을 발견한다. 흘러내리는 것은 여전히 없지만 적어도 그 물은 더 이상 땅 아래에 있지 않다. 우물보다는 높다.

 

솔로몬의 성전에서 거대한 놋 바다를 본다. 그것은 이전의 물두멍보다 훨씬 더 높고 충만하며, 열 개의 물 병거들을 가지고 있다. 이들 병거들은 고정되어 있었고 흐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왕국에서 훨씬 더 많은 물, 훨씬 더 많은 영적인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전이 이스라엘이 망하면서 파괴된다. 그러나 이스라엘 성전은 새롭게 회복될 것이다.

 

 

47:6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47:7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47:8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47: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47:10 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 부터 에네글라임 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성전에서 물이 흘러 모든 것을 소성케 한다는 예언이다. 이를 받아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생수의 강이 나온다. 그 생수의 강가에 어부가 서서 그물을 치는데 그 그물이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성전에서부터 흘러나와서 건조하고 황량한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회복의 세계에서, 놋 바다는 기울어져 있다. 에스겔의 성전에서는 물두멍도 바다도 없다. 그것은 마침내 흘러나오는 강이 된다. 그러나 온 세상은 아니다. 그 강은 한 방향으로 흐를 뿐이다. 그러나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밖으로 흐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왕국이 임한다. 생수의 근원이 오신다.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몸이 하나님의 참 성전임을 말씀하신다. 이 성전이 십자가에서 찢어질 때,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흘리신다. 에스겔서에서 생수의 강으로 묘사된 성령은 성전에서 흐르고, 계시록에서 생수의 강으로 묘사된 성령은 어린양의 보좌에서 흐른다. 이는 성전 된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온 것이다. 성전 된 예수님의 몸에서 찢어질 때 흘러나온 것이다. 그의 물로 세례를 받는다. 그의 피를 마신다. 그의 피를 마시는 것이 성찬식이다. 세례와 성찬, 이것이 새 언약이다. 이 새 언약을 맺는 자는 이제 성전이 되어 생수의 강이 넘쳐 흐른다. 은혜가 흘러넘친다는 것이다. 은혜의 통로가 된다. 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복음은 로마라는 바다를 점령한다. 복음은 온 세계로 뻗는다. 성전의 물이 바다를 덮는다.

 

 

이제 왜 예수님이 어부를 부른지 안다! 새 언약교회를 주도한 베드로는 어부 출신이다. 주님은 그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도록 부르신다. 구약시대에는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은 적이 없다. 대부분 목자나 농부같이 모두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새 언약에서는 모든 것이 변한다. 사도들은 대부분이 어부들이다.

 

이젠 땅(유대인의 영역)이 아닌 바다(이방인의 영역)에서 일할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바울은 바다를 건너 복음을 전한다. 이 모든 것은 땅에서 바다로, 즉 이스라엘에서 이방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신약교회는 이제 땅끝을 넘어서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제 세계 즉, 바다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어부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물이 바다를 덮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바다가 더 이상 있지 않게 된다(21:1).

 

 

6-1. 새 하늘과 새 땅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헬라어의 새로운은 시간적 /연대기적 새로움을 나타내는 네오스와 질적인 새로움을 나타내는 카이노스가 있다. 본문은 카이노스이다. 이 카이노스가 고후 5:17에도 쓰인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카이노스)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렇다고 몸이 없어지는가? 질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질적인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새 하늘과 새 땅은 역사 끝에 있을 시간적인 새로운 하늘과 땅을 의미하지 않고 질적으로' 새로운 하늘과 땅이다.

 

벧후 3: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벧후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벧후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4747 스토이케이온)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벧후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이 구절 때문에 우주의 붕괴 를 생각하고 있다.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하늘과 땅이 다 타서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주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구종말, 더 나아가서 우주 종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날만을 사모하며 사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핵전쟁을 정당화하기도 하고, 자연 훼손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스트롱코드 : 4747 스토이케이온 stoicei'on

 

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 ]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2:20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 ]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5:12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벧후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벧후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스토이케이온'의 용례는 우주의 물리적 구성요소인 원자미립자로 쓰이는 경우가 성경에는 없다. 그것은 한결같이 '초등 학문', '초보'에 관해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옛 언약에 대한 내용이다. 그러므로 체질의 풀어짐은 옛 언약 질서, 유대주의에 대한 붕괴를 의미한다이것은 옛 언약 질서의 붕괴이며, 벧후 3:13에서 베드로가 언급한 그의 약속은 사 65:17의 약속이다.

 

65:17-25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에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 세가 못 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자이리라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 안에 살겠고 포도나무를 심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이 건축한 데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내가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이며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이 생산한 것이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들의 후손도 그들과 같을 것임이라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이사야는 메시야가 통치하는 나라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죽어서 가는 천국에 대한 표현이거나, 역사의 끝에 대한 묘사일 수 없다. 왜냐면 나무처럼 오래 살지라도, 여전히 사람들이 죽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집 짓고, 농사하고, 아이를 낳는다. 이사야는 복음이 퍼져나가는 미래를 신명기 28장의 축복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은 그리스의 나라를 뜻하며 하나님 나라가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새로운 시대이다. 새로운 세상이다. 새로운 피조물이 사는 새로운 나라인 것이다.

 

34:4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이것을 보고 하늘이 무너지리라고 생각하는가? 이 문장은 에돔의 멸망에 대한 것이다.

 

66:22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새 하늘과 새 땅은 성전으로 말하면 새 성전이다. 옛 하늘과 옛땅은 옛 성전이다. 그 옛 성전이 무너지고 새 성전이 임한다. 성경은 그래서 새 성전이 예루살렘으로 마무리된다.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그날에는바다가 없어진다. 바다가 왜 없어질까? 바다가 없어진다는 것은 물리적인 바다가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아랫물에 사는 사람이다. 혼돈과 공허에 있는 바다의 상태에서 이제 하늘 짝이 될 것이다. 그것이 바다가 사라진 것이다. 어떻게?

 

11: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물이 바다를 덮음으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함으로 바다가 없어진다. 6장에 오병이어 사건이 나오는데 중간에 예수께서 바다를 걷는 장면이 나온다. 왜 이 기사가 오병이어 중간에 나올까? 그것은 제자들의 무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바다가 없어진다는 말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방해되는 것들이 제거된다는 말이다. 예수는 바다 위를 걸었다. 그는 물이다. 물이 바다를 덮었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말씀이 바다를 덮는다. ‘그날에는바다가 없어지고 생명수의 강이 넘쳐 흐를 것이다. 그날에는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온전한 말씀의 섬김만 있을 것이다. 14:20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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