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두 사도인 요한과 바울은
각각 유대인과 헬라인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으나
고린도전서 1`장 22절에 기록한대로 "유대인은 표적을
헬라인은 지혜" 라고 하는 인식적 사고방식의 다름에 따라
요한은 표적을 중심으로 복음서를 진술하고 바울은
헬라적 지혜 즉 철학적 방식으로 복음서를 설명한다
그당시 글을 쓰려면 양피지에 먹으로 써야 하는데
양피지의 한정된 싸이즈 안에 하고싶은 내용을 다 써서
전달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줄기차게 그들이 반복한 내용들을 계속해서 읽다보면
"오직 예수"라고 하는 내용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의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했노라"고 하는 절대절명의 주제를 접하게 된다
오늘도 여전히 요한이 반복하는 표적의 이야기가 계속된다
오병이어의 표적이 있은 후에 일어난 사건이다
요한복음 6장 16절에서 20절까지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다
구약 (옛언약)은 육신에 준 표상이고
신약 (새언약)은 영에 준 실상이다
첫째 아담은 둘째 아담의 표상이고 둘째 아담은
첫째 아담의 실상이다
다시 말해서
표상은 목적이고 실상은 목적지이다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그들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이상의 이야기를 영어식으로 한번 paraphrase (의역) 해 본다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하늘나라로 가는데
시간적으로는 이미 저물어 어두웠고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는데
예수가 아직 오시지 아니햐셨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그런 중에서 제자들이 혼신의 힘을 쏟아서 노를 저었지만
겨우 십여리쯤 밖에 갈 수 없었으나
어두운 바다 한 가운데서 예수를 만나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예수가 곧 그들이 가려던 그 땅이다
예수가 곧 그들이 믿어서 이르고 싶은 그 땅이다
십자가 이후에 실망하여 고향으로 돌아간 제자들이
모여 밤새껏 그물을 던져 보았으나 한마리도 잡지를 못하였는데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물을 오른쪽으로 던져라" 했을 때
그물이 찢으지도록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물고기는 목적이지만
예수는 목적지이고 에수는 오른쪽이다
안식일을 지켜서 천국에 가려하던지
안식일을 지켜서 남은 무리가 되려하던지 하려면
모세가 지키라고 한 안식일은 목적이다
그러나 히브리서 4장에 "여호수아의 안식에 들어가라"
고 한 그 안식은 목적지이다
다음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따르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떡을 먹고 배부르려 하는 것은 목적이다
그러나 표적 (십자가)은 목적지이다
전개를 하는 것이 곧 목적과 목적지가 바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