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내가 평생을 교회에서 주워들은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이 카더라 통신일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이 성경이 아니라 예언의 신이라는 책에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하는 것이며
그 중 하나가 막달라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면 오류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나보다 못한 위치로 놓기 위해서는 은근히 헛된 예언을 한다
성경은 은근히 남성 우월주의를 가르친다
여자는 숫자에도 안 들어가느니
여자 목사가 뭐냐는 둥
여자가 장로가 되면 교회 기둥 뿌리라도 빠지는 시늉을 한 내 친구도 있었다
내가 아는 한 교회는 장로가 중학교 졸업의 직업도 변변치 않은 시골에서 이사 온 남자였는데
그 교회에는 변호사인 여자 집사도 있었고 대부분이 대학을 졸업한 인테리였다
문제는 장로가 집사들을 휘어 잡지를 못하고 의견에서 항상 뒤진다는 것이다
그래도 남자라고 고집을 부리고 너네들이 뭘 아느냐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문제가 생기더라
니들 이 책에 다른 소리 해석해서 가감하면 그냥 안둔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
이 필사자는 원래 있는 글 아래에다가 자기 의견을 덧칠했다고들 후세가 말한다
그런데도 잘도 가감한다
지금부터 45년쯤 전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교회 목사가 단위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일아난 일을 이야기했다
설교를 마치고 내려오는 목사에게 내가 일침을 줬다
목사님 이야기는 벌써 잘못된 해석이라고 천주교회가 사과한 글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라고 표현한 것은
591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느닷없이 바티칸에서 한 설교였다.
그가 누가복음 7장에 등장하는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죄지은 여자’를
막달라 마리아로 해석해 그녀를 ‘회개한 창녀’로 설교한 것이다.
“우리는 이 여인이 누가의 죄 많은 여인, 곧 요한이 마리아라 부르는 그 여인이자
마가가 마리아에게서 일곱 마귀를 쫓아내줬다고 말하는
그 마리아임을 믿습니다.”(복음서 강론 33편)
울며 겨자 먹기로 천주교회는 아리고 시려도 그레고리1세의 강론을 무류로 여기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교회가 막달라 마리아의 본모습을 바로잡은 것은 20세기가 되어서였다.
1969년에야 가톨릭교회는 그레고리우스 1세의 설교에 실수가 있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철회했다.
그런데도 그 이후의 문서를 구경하지 못한 일부 목사들이
철회된 그 내용을 모른채 창녀였으나 회개해 성녀가 된 여자로
일반적으로 지칭하곤 한다.
교회 안에서 여성의 권한을 제한하고 남성에게만 사도적 권위를 부여한
정통파 교부들이 승리한 증거다.
막달라 마리아의 자리는 그렇게 효과적으로 도둑질당했다.
막달라 마리아가 베다니 나사로의 누이인가?
오늘 우리는 어떤 해석을 요하는 문제에 봉착하면
제일 먼저 하는 게 이걸 화잇이라는 선지자는 뭐라고 했나 하는 것을
먼저 챙긴다
삼위일체의 예수에 대한 것도 화잇이 뭐라고 했는지를 먼저 챙겼다
교과 해설에서도 그렇게 판결하고 있다
4년이라는 세월 전에 집대성했다는 안교 교과도 위원들이 정하고 나면 그게 정설이 된다
그러다 보니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바꾼 목회자의 해석에 따라
재림 전 심판론도 야곱의 환란과 겹치는 늦은비 성령도 시도 때도 없이
내려야만 하고 기다려야 하고 나중에는 두리뭉술하게 넘어간다
아 참 늦은비 성령 내리기 운동용으로 5억을 예치했었는데 그 돈 아직도 남아 있을까?
나는 요사이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얼마나 잘난 분들이 많은지 실감한다
이 시대가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의 재현처럼 들린다
시골 할배 할멈 앉혀 놓고 히브리어는 어떻고 헬라어는 어떻고 하는 소리 들으면
내가 신학을 공부하러 갔던 1950년도 말인 것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