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지와 부지대해

by 김균 posted Mar 25, 2020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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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지와 부지대해

 

큰 강에서 놀던 나그네 개구리 한 마리가 어느 날 우물가에 이르러

그곳 토박이 개구리한테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엄청 큰 강에서 왔소."

그러자 우물 안 토박이 개구리가

"큰 강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오?“

 

큰 강에서 온 나그네 개구리가 이랬다

"어흠 그건 말로 설명하기가 정말 난감해요.

당신은 이 우물에서 한 번도 벗어나 본 적이 없질 않소?

이 우물은 아주 조그마하지만 내 한번 설명해보리다."

 

우물 안 토박이 개구리는 껄껄걸 웃었다.

"이 우물보다 더 큰게 있다는 소리는 내 생전 들어본 적이 없소.

그래, 당신네 그 강은 얼마나 크오?"

 

토박이 개구리는 우물 안 넓이의 한 삼분의 일쯤 펄쩍 뛰어 보이면서 말하기를,

"이만큼 되오?"

큰 강에서 온 나그네 개구리가 껄껄껄 웃었다.

"천만에요, 선생"

그러자 토박이 개구리는 우물 안 넓이의 한 삼분의 이쯤 다시 펄쩍 뛰면서 말하기를,

"이 만큼 되오?"

그리고 다시 우물 안 넓이의 삼분의 삼을 완전히 펄쩍 뛰면서 말하기를,

", 우리 우물은 이렇게 넓소."

그런데도 큰 강에서 온 나그네 개구리는 말하기를,

"도저히 설명하기가 불가능하오. 너무너무 광대하단 말이오. 아예 경계도 없소!"

 

우물 안 토박이 개구리가 화를 벌컥 내며 말하기를,

"당신은 정말 미쳤거나 아니면 새빨간 거짓말쟁이군.

빨리 여기서 꺼져 버리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여도 유분수지!“(퍼옴)

 

물의 신으로 불리는 하백이 처음으로 바다에 나와

동해의 그 끝없음에 놀라 탄식하자 북해의 신인 약이

우물 안에서 살고 있는 개구리에게 바다를 이야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좁은 장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여름벌레에게 얼음을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여름만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한 것에서 온 고사성어로

장자의 추수편에 나오는 식견 좁은 사람을 일컫는 이야기이다

 

성경은 이런다.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만 참으로 사람이로구나 너희가 죽으면 지혜도 죽겠구나

나도 너희 같이 총명이 있어 너희만 못하지 아니하니 그 같은 일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 받는 자가 되었으니

의롭고 순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12:1-4)

 

우물 안에서 살고 있는 개구리에게 바다를 얘기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좁은 장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며,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여름만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살이에게 내일을 이해시키기 어려운 이치와 같다

식견이 좁은 사람에게는 도를 말해도 알지 못하거니와,

그것은 그들이 상식의 가르침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지금 좁은 개울에서 나와 큰 바다를 바라보고,

자기의 추함을 알았기 때문에 이제 더불어 큰 진리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너무 좁다

안다고 떠들고 좁은 길을 간다고 떠들어도 하나님이 보실 경우

우리는 정말 보잘 것 없다

그것을 빨리 깨닫는 자는 현명하고 총명한 자가 될 수 있고

서울도 못 가본 사람이 뉴욕을 이야기하고

중국도 한쪽 귀퉁이 가본 사람이 황하를 말한다면 어찌되겠는가?

성경은 너무 깊어서 끝이 없는 우물이다

퍼내고 또 퍼내도 결코 마르지 않는 우물이다

그래서 야곱의 우물 가에서 예수님과의 대화를 하던 사마리아 여인은 기겁을 한다

종교란 그 내면을 발견하게 하는데 오늘 우리는 외면만을 강조하는 일은 없는가?

 

하나님께 불러 아뢰어 들으심을 입은 내가 이웃에게 웃음 받는 자가 되었으니

의롭고 순전한 자가 조롱거리가 되었구나

 

우리 모두는 이처럼 하나님의 들으심을 입은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어떤 특정 세력에게 조롱거리가 된다면 그건 하나님의 의도하심이 아니다

우리는 어느 누구도 신앙의 제지를 받거나 당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

스스럼없이 연구하고 그 연구한 바를 말 할 수 있는 자유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교단이 내 세운 교리 이외에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 하거나

자기가 연구한 바를 밝히지 말라 하거나 해서도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1844년대에 자기가 다니던 곳에서

재림기별 때문에 출교나 제명을 당하고 나와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그런 일 하지 말자 하면서 교리도 신조로 바꿔 이름하던 분들의

후예라고 자부하지 않았는가?

여러분들이 믿고 있는 그 교단의 교리가 100% 마음에 들게 할 수는 없다

세상은 백가쟁명의 아수라장이며 누구든지 하늘의 이치를 느낀 대로

연구한대로 말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좁은 길을 가는데 너는 왜 넓은 길로 가냐 하는 식

참 대단한 논리다

누가 그대들만이 좁은 길로 간다고 인정해 주던가?

누가 상대방이 넒은 길 간다고 판정해 주던가?

좁은 길은 어떤 길이며 넓은 길은 또 어떤 길인가?

유대인 식의 바리새인들이 좁은 길이든가?

아니면 가난에 찌들어서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 갈릴리 어부들이 넓은 길을 간다던가?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2:1)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생각하는 게 달라야 하고

행동하는 것도 달라야 한다

우리 같은 범인은 감히 그런 경지를 밟지 못하지만

생각과 행동이 다르게 되기만을 소원한다

평생 우물 안에서 살다보면 넓은 세상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아서

물 댄 동산도 허물로 보이고 성도들의 공동체도 가치 없게 보인다

나만이 최고요 나만이 유일하게 느껴진다

우물 안에서 아무리 점핑을 한다 해도 언제나 우물인 줄은 절대로 모른다

 

충청도 어느 산골 학교에 취임한 선생이 바다를 설명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바다란 엄청 넓단다

그러자 한 학생이 이랬다

선생님 바다가 우리 학교 운동장보다 더 넓어유?”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가 세삼 생각나는 계절이다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고

너의 다름도 언젠가는 그럴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진다면

우리는 더 넓은 사상의 소유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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