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많이 비겁했다.

by 범어사 posted Sep 05, 2017 Replie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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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의 따뜻한 축구] 나도 많이 비겁했다

차범근 입력 2017.09.04. 13:41 수정 2017.09.04. 16:37 댓글 1325개

 

 

좋은계절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우리집은 평창동의 꼭대기에 있다. 시내에 나갈때면 두개의 길이 있다. 곧장 내려가서 성북동 고개를 넘어서 혜화동을 지나는 길과 오른쪽으로 돌아서 자하문 터널을 지나 청와대 광화문을 지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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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욱 내려가는 길은 손석희 앵커의 집 골목앞을 지나가야 하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김기춘 씨의 집을 지나가야 한다. 한동안은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사 차량과 백여명의 기자들이 김기춘씨 집 앞에서 뻗치기를 하더니 어느날은 손석희 앵커의 집앞으로 태극기 부대가 몰려와서 집회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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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 병원 앞 큰 길에는 백남기 어른의 비극을, 광화문 쪽으로 돌아 가면 세월호의 비극을 아파하는 현수막과 푯말때문에 늘 마음이 답답했다. 이 일들에 관계되어 있거나 관심이 특별한 많은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냥 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이유없이 우울하고 무겁게 가라앉은 몇 해를 보냈다.

어느날 아내와 나는 청운동 주민센터의 사거리 신호등 앞 빨간 불에 멈춰 섰다. 키가 작은 아주머니가 사거리 주민센터 옆에 있는 작은 국수집에서 일인시위에 쓸 커다란 표지판을 들고 나왔다.

 

그날은 두꺼운 파커를 입고도 모자라  온몸을 모자와 장갑 머풀러로 단단히 감싸고 무장을 해야하는 유난히 추운 겨울 아침이었다.

시위판을 들고 집에 까지  다닐 수가 없으니 국수집에 맡기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걸 꺼내고 문을 닫는 아주머니의 뒷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 국수집 주인은 괜찮을까?

세월호 가족의 아픔보다 국수집 주인이 먼저 걱정이 되는 순간 내몸에 배인 위선과 비굴함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나는 오랫동안 그 부끄러움을 잊을 수가 없었다. 못나고 이기적이고 어찌보면 잔인하기까지 한.

 

어느날 아내는 그 순간이 너무 미안했는지 그 분들에게 국수를 대접하고 싶다며 가게를 다녀왔다. 내가 나타나면 얼굴을 알게되니 귀찮다고 혼자서 들어 갔다.

 

가게에 들어가 눈치를 살폈는데 주인은 국수를 휘휘 삶더니  그곳에서 시위를 하는 세월호 가족들과 머리를 맞대고 점심을 드시더라고 했다. 가족처럼...

만약 세상에 나같은 사람들만 있었다면 세월호 가족은 그 긴 시간을 버티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다행이 이렇게 구석구석에서 손잡아주고 위로해 주고 함께 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세월호가 물밖으로 나올수 있었을 것이다.

 

총선이 시작되면서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이 출마를 했다. 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세월호 가족들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그를 통해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다. 작지만 후원금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결국 나나 아내의 이름으로는 보내지는 못했다.

 

알 수 없는 부담감때문에  남의 이름을 빌리기로 했는데, 더 슬픈 것은 우리에게 이름을 빌려준 그 친구도 자기 이름으로 못하고 전업주부인 애기엄마 이름으로 보냈다고 했다.

본인 이름으로 보내기에는 직장이 너무 번듯한 탓에....

 

세상을 바꾼 용감한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나처럼 비겁한 사람들도 많다. 촛불을 들면서도 행여 남의 눈에 띌까봐 얼굴을 가리고 나를 숨기는 이 못난 모습을 한 사람들 때문에 지난 수 년 동안의 혼돈은 더 깊어졌을 것이다.

 

침묵은 금이 아니고 나약함 일 뿐임을 배웠다. 지난 한 주는 대통령 취임 100일이라며 갖가지 얘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같은 사람에게 취임 100일이라고 해서 특별한 일이 있을리 없지만 그동안 알 수 없는 뭔가에 눌려있는 듯한 무거움이 많이 가벼워 진 것은 사실이다.

 

우선 청와대 앞을 지날 때면 경찰이 차를 세우면서 자동차 문을 내리게하고  "어디 가십니까?" 하고 묻던 일을 더이상 하지 않는다. 이제는 차를 세우지도 않을 뿐 더러 인사까지 해준다. 사실 그동안 은근히 스트레스였다.

 

"평창동에 간다!"고 한 들 안보내 줄 리가 없을 터인데, 우리집 기사아저씨는 청와대와 좀 더 가까운 부암동이나  청운동에 간다며 필요없는 거짓말을 했다.

그때는 왠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공연히 주눅 들었던 게 부아도 나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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