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푸념

by 시골생활 posted Sep 05, 201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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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가 되지 않겠다고, 나대지도 않겠노라고 맘 먹고 들어간 좁은 시골에

열흘이면 다 아는 사람들이 될 그들에게서

텃세를 당하는 일도, 내 잘난 맛에 사는 일도 원치 않았지만,

동네는 아름다우나 마실과 사람들이 버겁다. 

 

흘깃 보고, 훔쳐 보고, 숨겨 말하고, 대놓고 갑질하는 그들이나,

가만 못 있는 나나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이기에

하늘 보고 산 보고 달 보고 호수 보고 탑 보고 꽃을 가꾸고 텃밭을 뒤지며 비질을 했다.

담 하나 사이로 이웃한 집의 풀이며 쓰레기들을 함께 쓸며 돈독한 우의를 쌓겠노라는 다짐에 여기 없이 찬물을 얻어맞고,

너댓 대 댈 수 있는 바깥마당 주차장에 잠시 모닝 세워뒀다가, 차 좀 빼란 소리에 얕은 내 '척'은 열흘을 버티지 못했다.

 

노인정에 떡이며 술이며 고기를 돌리고 좋이 인사를 하고 나온 다음 날에,

생긋 웃어주시던 할머님이 귀여워 "할매, 전 할매가 좋습니데이, 할매 참 예쁘시네요...."라고 했다가

대처에 나간 아들한테, 마실에 이사온 젊은 놈이 희롱한다고 전화하겠다는 걸 겨우겨우 말려놓고

담날 길에서 유모차 몰고 가시는 할머니 뵙고, 할머니 전 할머니가 좋은데 할머닌 왜 싫으세요 했더니,

어디 남정네가 내가 어데가 좋아요, 하고 삿대질에 홧증이다. --

에구, 할머님 그게 아니고 제 어머님도 할머니처럼 연세가 있으셔서 그래서 좋다구예~ 했다가 ....

그럼 당신 엄마나 좋아하소, 왜 나믜 여자한테 희롱하느냐고 혼쭐이 났다.

 

마실의 가게에 가서 그렇고 저렇네요 라고 타성받이 가게 할머니한테 중얼거렸더니

곁에서 박주를 마시던 본성받이 사람들이 들으란 듯이, 약간 모자라는 인간이네.. 라고

오줌 갈기러 가는 뒤통수에다 대고 공공연히 모지랭이를 만든다.

보태준 것도 없이... 

 

그래서 우리집은 온 동네의 사람들이 다 들여다 보아도 괜찮다고

산 오르는 이들이 오르내리며 집안의 꽃을 보고 참하다 소리해도 괜찮다 하려고 열었던 삽짝을 닫았다. 

사람들과의 교유가 아직은 아닌 것인지, 아니면

이성받이 타지 사람들이 이사 와서 돈자랑질 해대며 마실의 인심을 버려놓았는지 

꿰 까달스럽다.

 

한 달이 겨우 돼가는 지금 말수가 줄어들고 교유보다는 산책과 명상의 시간이 더 유익함을 느껴야겠다고

달을 보고 산을 보며 바람을 쐰다.

아내가, 아들이, 산이가 더 가까워진다.

 

세찬 소낙비에 뒤집어진 샛강의 바닥이야,

비 그치면 가라앉을 것이고 물 또한 맑아지겠지.

일어탁수

 

나는 맑은 마실 물을 흐린 미꾸라지 한 마리,

물 마른 꾸께구뎅이 흙에 쳐박혀 겨울나기 준비를 해야겠다.

 

한 두어 해 묵어야 배가 누러니 추어탕감이 되잖겠는가?

추탕에 탁주 한 사발, 그 촌 인심이 여기에도 있다.

있다. 꼭~

 

좋은 동네라고 허물어져 가는 집을 사와서 고대광실로 집을 짓고 사는 이들은 늘어나고

본성받이들이 줄어들면서

쌍그라운 마을 인심이 되지 않았으면 하고 맘 먹은 맘이 제 맘이 아닌 게지!!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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