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은 듣거라.

by 김원일 posted Jun 14, 2017 Replie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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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대한민국의 저주, 군사주의!

국방이 흔히 ‘의무’가 될 수는 있어도 남의 침략 전쟁에 가는 것까지 국제 인권법상 ‘의무’일 리가 없다. 한데 국내에서는 이 끔찍한 국가 폭력을 통상적으로 ‘나라의 부름’이라고 일컫고 당연시한다. 사실, 식민주의적 침략을 저지른 과거도 없는 아시아 국가치고 대한민국의 해외파병 빈도는 꽤나 높다.

 

탈군사화야말로 국정의 핵심과제로 부상해야 한다. 탈군사화를 이루자면 몇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 군복 입고 해병대 훈련을 받는 초등학교 꼬마들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볼 수 있다는 점과, 대한민국이 미군 무기상들에게 건네는 돈의 절반이라도 남북 경협에 썼다면 이미 남북평화공존의 시대에 진입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 등을 인지해야 한다.

 

나는 이번 현충일에 문재인 대통령의 다음과 같은 추념사를 듣고 일대 충격을 받고 말았다. 심지어 내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경제가 살아났습니다. 대한민국의 부름에 주저 없이 응답했습니다. 폭염과 정글 속에서 역경을 딛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문 대통령 본인은, 베트남 파병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는 세대의 일원이다. 문 대통령 본인이 잘 알듯이, 베트남에 파병됐던 군인들에게는 “나라의 부름에 응답”하는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징병되어 침략 전쟁으로 끌려간 것이었다. 사실, 그 파병의 강제성이야말로 그들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만들기도 했다. 침략의 주범국인 미국도 당시에 징병제를 운영했지만, 거기에서는 그나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인정되기는 했다. 병역거부가 불허되면 캐나다로 망명 가서 난민지위를 얻을 수라도 있었다.

 

박정희 정권과 재벌의 이득을 위해서 미국의 침략에 끌려가야 했던 한국 청년들에게는 그런 선택의 자유마저도 없었다. 그러나 “폭염과 정글 속에서” 이루어졌던 학살과 성범죄를 살짝 빼고, 노동자의 임금을 맨날 체불하면서 전쟁 폭리를 누렸던 재벌들의 치부를 ‘조국경제 부흥’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판적 역사의식의 부재를 보여준다. 자국민을 남의 침략에 강제로 보내 돈을 벌었다는 것이 과연 자랑스럽기만 한 당연지사로 언급될 수 있는가?

 

문 대통령의 역사인식, 혹은 역사인식다운 역사인식의 부재는 한국 사회 전체의 한 가지 문제와 직결돼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는 자신의 신념·의사와 무관하게 남자라면 누구나 무조건 가야 하는 커다란 규모의 징병제 군대가 존재한다. 그리고 미국이 요구만 하면 이 군대는 언제 어디든 해외로 파병될 자세가 돼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당연하게 인식된다. 외부자 입장에서 본다면, 베트남 파병 시절에 한국 젊은이들이 거절할 권리도 없이 미국이 벌이는 침략의 현장에 끌려가 거기에서 그 제국이 ‘적’으로 규정한 사람들을 죽여가면서 자신들의 몸도 총탄에 노출시켜야 했다는 것은 무엇보다 엄청난 규모의 인권침해로 보일 것이다.

 

국방이 흔히 ‘의무’가 될 수는 있어도 남의 침략 전쟁에 가는 것까지 국제 인권법상 ‘의무’일 리가 없다. 한데 국내에서는 이 끔찍한 국가 폭력을 통상적으로 ‘나라의 부름’이라고 일컫고 당연시한다. 사실, 식민주의적 침략을 저지른 과거가 없는 아시아 국가치고 대한민국의 해외파병 빈도는 꽤나 높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만 해도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레바논 등에 파병했다. 미국이 침략하거나 미국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곳으로 한국군이 가는 것은 과연 당연한 것인가? 그런데 한국의 자유주의자들도 한국군의 대외활동을 거의 문제 삼지 않는다.

 

군사주의가 이토록 내면화된 현실적인 원인은, 한국이 그만큼 장기적으로 군사화돼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민 1천명당 현역 군인의 수는, 이미 반세기 넘게 자국 영토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은 한국(14명)이 최근에 그런 전쟁을 치른 아르메니아(16명)에 가깝다. 산업화된 세계에서 가장 군사화돼 있는 이스라엘(25명)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계 19위 정도는 된다. 참고로, 지금 자국 영토에서 쿠르드 민병대와 싸우는 한편 시리아 내전에도 개입하고 있는 터키(8명)보다도 한국에서의 인구 1천명당 현역 군인 수는 거의 2배나 높다. 물론 이처럼 군인의 수가 많을 수 있는 것은, 병사들이 받는 돈이 ‘월급’이라기보다는 속칭 ‘열정페이’에 더 가까워 ‘공짜 인력’과 마찬가지로 마구 징병하여 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의 계획대로 내년 병장 월급이 40만원까지 올라도 이는 최저임금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한데 병사에게 돌아가는 몫은 비교적 적어도, 무기수입 등의 관계로 한국은 세계 굴지의 군사예산을 운영한다. 한국의 국민총생산은 독일의 절반도 안 되지만, 세계 10위나 되는 한국의 군사예산은 세계 9위인 독일 군사예산의 90%나 된다. 2017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의 2.4%나 차지하는 한국 군사예산의 국내 경제상의 상대적 비중은 세계적인 군사 패권주의의 본산인 미국(3.2%)보다야 낮지만, 어느 유럽 국가나 일본·중국·인도보다 높다. 참고로, 한국에서 늘 “위협”으로 거론되는 북한의 국민총생산액(한국 돈으로 약 25조원 추정)은, 현재 예상되는 한국의 내년 국방예산(43조원 정도)의 절반을 약간 넘는 숫자다. 만약 북한의 입장에서 본다면 과연 누가 누구를 위협하는 것일까?

 

군사화는 무엇보다 막대한 국부 유출을 의미한다. 박근혜의 실정이 한창이었던 2014년, 한국은 “세계 최대의 무기수입국”이 되는 신기록을 세웠다. 그해에 주로 미국 무기 생산자들에게 유출된 한국 아줌마, 아저씨들의 혈세는 무려 9조원에 이른다. 일례로 예컨대 2017년 청년 일자리 예산은 불과 2조7천억원이었다. 구직 포기자와 가족에 얹혀사는 청년들까지 포함해서 실질적인 청년실업률이 30% 가까이에 달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청년 일자리 예산보다 3배 이상 되는 돈을 미국의 “죽음의 상인”들에게 건네주는 게 너무나 큰 사치(?)가 아닌가? 한데 예산이 축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다수에게 정신적인 상처를 남긴다는 것이다. 위에서 인용된 대통령의 연설이 보여주듯이, 한국의 ‘통념’상으로 강제로 징집된 군인들을 외국의 침략 전쟁에 보내서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는 것은 국가 폭력이나 인권침해보다는 ‘조국경제 부흥’의 원천이나 ‘애국’으로 인식된다. 그런 인식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어릴 때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다.

 

몇 년 전의 익사 사고로 사회 문제로 떠오르기는 했지만, 각종 ‘해병대 극기훈련 캠프’는 지금도 전국에서 성업 중이다. 2002~13년 기간만 해도 이런 캠프를 거쳐 간 초중고생은 무려 100만명이나 된다. 그런 캠프에서 배울 수 있는 ‘인생 철학’은 과연 어떤 것인가? 군대는 가장 효율적인 조직이다, 윗사람의 명령을 가장 정확하고 가장 빨리 수행한 사람은 성공하고, 그러지 못한 사람은 낙오된다, 복종과 자신에 대한 강제는 살길이고 항명은 반역과 낙오다 등등의 처세가 아닌가.

 

거기에다가 텔레비전에서 군복을 입고 행복하게 미소 짓는 연예인들의 모습을 자꾸 보고, 또 극우부터 온건 좌파까지 모든 대선후보들이 하나같이 ‘안보’를 최우선으로 내세운 모습을 보다 보면, 평균적 대한민국 사람은 징병제 군대를 당연지사로 받아들이게 되고 “조국경제 부흥”을 위한 해외 침략 동참과 전시 폭리 행각을 ‘자랑스러운 과거’로 받아들인다. 물론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군사예산은 복지예산의 억제를 의미하여 우리 선남선녀 대부분의 경제적·계급적 이해와 사실상 충돌된다. 한데 군사주의 문화에 길들여진 개인은 과연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바로 이해하기가 쉬울까?

 

우리가 행복해지자면 ‘안보’보다 탈군사화야말로 국정의 핵심과제로 부상해야 한다. 탈군사화를 이루자면 한국 사회는 먼저 몇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 군복 입고 해병대 훈련을 받는 초등학교 꼬마들은 전체주의 사회에서나 볼 수 있다는 점과,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의 내면화는 개인과 사회를 황폐화시킨다는 점, 그리고 대한민국이 미군 무기상들에게 건네는 돈의 절반이라도 남북 경협에 썼다면 우리가 이미 남북평화공존의 시대에 진입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 등을 인지해야 한다. ‘안보위기’?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의 원인들은 복잡하지만, 한국의 군사주의적 행보도 그 원인 중 하나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북 상호 군축과 군대·군비 축소 등 평화의 길로 우리부터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군사주의의 저주를 풀고 나라다운 나라, 강제와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군사력이 아닌 평화력이야말로 행복의 원천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출처: 한겨레신문 논단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8647.html?_fr=mt5#csidx2050a9f023080c28ba1488335f13d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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