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편지와 세 개의 축하엽서>중에서-오규원

by 백근철 posted Mar 06, 2017 Replie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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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또는 관점에게: 더러운 너의 얼굴에 축하를 보낸다. 먼지가 뽀얗게 낀 너의 얼굴에, 금이 간 너의 눈동자에 또한 축하를 보낸다. 그 얼굴이 귀하고, 그 눈이 귀함을 너무 늦게 내가 보았다고 웃지는 마라

축하를 한다는 일은 역시 즐겁다. 밖을 보기 위해서 네가 존재한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빛을 방안으로 들이기 위해 네가 존재한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믿음은 시멘트나 철근처럼 단단할수록 좋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그들에게도 축하를 보내자. 믿음이란 중요한 것이니까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만한 은총이 있어야 마땅하다. 시멘트처럼 단단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시멘트처럼 단단한 은총이 있어야 마땅하다. 시멘트처럼 단단한 은혜, 그 은혜에게 만세!

사람들은 네가 밖을 보기 위해 필요한 존재라고 믿고 있다. 밖을 잘 보기 위해서는 잘 닦여진 네가 필요하다. 그러나 더러운 너의 얼굴은 밖을 보는 대신 안을 보는 데 필요하다. 금이 간 너의 눈동자는 밖이란 보는 각도에 따라서, 보는 위치에 따라서 밖이 달리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데 귀중한 존재이다. 안(內)만 바라보는 존재가 그러하듯 밖(外)만 바라보는 존재가 너라면 너는 무의미하다. 의미는 안으로부터 밖으로, 밖으로부터 안으로 의미를 찾는 자의 힘의 크기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 어느 쪽으로 바라보아도 밖이 동일하게 보이는 게 너라면 너는 무의미한 존재이다. 밖은 결코 동일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더러워져서 그리고 금이 가서, 밖을 보는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과 밖은 결코 언제나 동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더러운 그 속에 담고 있는 너의 얼굴-그러므로 너의 그 모습은 참으로 진지해 보인다. 진지함 또는 진지성-축하한다.

「하나의 편지와 세 개의 축하엽서」중에서​ 

 

 

 

*김원일 교수님의 격려에 조그만 감사를 표하고 싶기도 했고, 릴케 선생님의 글 중에

 

이런 글들을 보시고, 어떤 믿음 있는 분들이 나타나서,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따르면 될것을,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져라, 예언의 신에는 너 같은 놈에게 이런말을 쓰고 있다" 할까봐 두렵습니다.

 

라는 말이 마음 아프기도 한 참에 오규원의 시집에서 위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서로 격려해가면서 진리의 길를 향해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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