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의 기도와 오병이어의 기적

by 아기자기 posted Feb 16, 2017 Replies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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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하기 너무 무거운 그러나 피할 수 없이 맡아야할 중요하고 과분한 직책이나 어떤 일에 직면한 적이 누구든지 살면서 한두 번은 겪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나도 드리는 기도가 있다. 바로 엘리사의 기도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선지자들 중에서도 엘리야는 가장 특출하고 많은 기적을 발휘한 선지자이다. 여러 이적들을 행하고 선지자 학교를 세워 많은 후배 선지자들을 교육하고 결국에는 큰 이적으로 불병거를 타고 승천함으로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화려하고 커다란 업적을 남기고 승천했다.

 

엘리사는 그러한 스승 엘리야의 뒤를 이어야할 난감한 중한 입장에 처했을 때 선임인 엘리야보다 두 배의 영감(성령의 능력)을 구하는 기도를 했다. 왜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보다 2배나 되는 성령의 능력을 구했을까? 스승보다 2배나 더 위대한 업적을 쌓기 위해서 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의 특출함과 대비되는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기에 스승의 반의 반 보다 못한 자신의 능력을 생각할 때 엘리야의 반이라도 따라 가려면, 엘리야보다 적어도 2배는 많은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자신의 형편없는 능력을 메울 수 있을 거라 보았을 것이다.

 

그러면 엘리사의 기도대로 엘리사가 스승보다 2배 많은 성령을 받았다고 그의 없었던 능력이 갑자기 몇 배가 되어 이전에는 못하던 이적을 갑자기 행하는 초능력을 발휘했을까? 물론 창조주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다면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과연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그런 초자연적인 능력이 현재 우리에게도 통용되고 과연 바람직한 성령의 능력일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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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는 것은 겨우 물고기 2마리와 보리 떡 5개 밖에 없는데 어떻게 수백 수천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럴 때 드리는 엘리사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응답하실까? 갑자기 나에게 없었던 마법 같은 재능이 나타나고, 수천 배의 재물과 능력으로 늘어나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기적을 바라고 기도하고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으로 응답하실 걸 기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르고 순수한 믿음일까?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을 때 그 수많은 물고기와 보리떡들은 하늘에서 떨어졌을까? 땅에서 솟아 났을까? 물고기 한 마리를 나누어 주면 바구니에 새로운 물고기가 뚝딱 새로 생겨 났을까? 아니면 한 광주리씩 번쩍하고 나타났을까? 어떤 이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뭐 그리 귀찮게 하실 필요 없이 각자의 손에 순간적으로 다 골고루 주셨을 거라고 한다. 그런데 4복음서 모두에 다 나와 있는 오병이어의 기적의 기록에는 (마 14:, 막 6:, 눅 9:, 요 6:) 사실 그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없다. 그러나 설교자들은 무조건 그대로 믿으라한다. 그러나 그대로 믿으려 해도 그 방법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그대로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우리 모두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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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호수에서 수천의 무리가 다가오자 예수께서 빌립이 어찌 생각하는지 시험하시고자 물으셨다. 

"어디에서 떡을 구하여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빌립이 대답하기를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200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다.“

이 때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떡을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셨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남은 조각을 거두니 12 바구니가 남았다. (요 6: 1-13)

 

다시 말하지만,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어떤 방법으로 수천의 무리를 먹이고도 12 바구니나 남았는지의 구체적 방법의 기록은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렸을 때부터 전해들은 대로, 떡과 물고기가 마법 같은 기적으로 하늘에서 튀어 나온 걸로 알고, 그것을 의심 없이 믿는 믿음을 순수한 믿음이라는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설교자들은 우리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한다. 그런데 오병이어의 사건에서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하는 교훈이 과연 이런 마법과 같은 초자연적인 기적일까? 우리가 바라고 드려야하는 순수한 믿음과 기도가 이런 알라딘의 램프를 비비는 기도이고 성령의 능력과 기도의 응답이 고작 알라딘의 램프의 '지니'의 마법 이야기와 동일한 것일까?

 

당시 중동 유대인들은 장거리, 장시간 외출 시에는 집에서 음식을 싸가지고 다녔다. 이 소년이 내어 놓은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는 약 2끼니 분의 음식이라 한다. 이 소년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어머니가 싸주시는 약 2끼 분의 음식 도시락을 지니고 집을 나섰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감동적인 말씀을 들었고 사랑을 보았던 이 소년은 예수와 제자들이 음식 때문에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소년은 서슴없이 자신의 도시락을 나누어 먹기 위해 내놓았다. 그러자 예수께서 이 오병이어를 들고 축사 기도하셨다. 과연 예수께서 무어라 기도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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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운보 김기창

 

 

40일의 금식 후에 사단의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유혹에도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사랑)으로 살리라'하시며 물리치신 예수께서 설마,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밖에 없으니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께서 돌이 떡으로 변하듯이 하늘에서 수천 명을 먹일 수 있는 음식을 내리는 기적을 보이소서." 하고 기도 하셨을까?

 

아니면, 아마도 늘 기도 하시는 대로,

"아버지 안에 내가, 내 안에 아버지가 거하는 것 같이 내 안에 이들이, 이들 안에 내(사랑)가 거하여 하나 되게 하소서"하고 기도 하시지 않으셨을까?!

 

이에 무리들이 크게 깨닫고 감동하여 서로 너도 나도 지녔던 음식들을 내어 놓음으로 바구니에 담아 제자들로 음식을 가져오지 못한 이들과 더불어 서로 나누어 먹지 않았을까? 그래서 다 나누어 먹은 후에 12 바구니나 남았고, 아마 남은 것들도 다시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가져가게 했을 것이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사랑)으로 살아야 한다는 예수가 오병이어의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것 아닐까? 예수께서 기도 후 음식과 함께 나눈 것은 서로 나눔으로 하나가 되는 사랑이었을 것이다. 진정한 성령의 능력, 성령 충만, 성령의 역사란 마법 같은 초자연적인 기적이 아니라, 바로 사람의 마음을 사랑으로 하나로 변화 시키는 일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예수께서 보이고자 하신 진정한 오병이어의 기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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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Hugh Hill

 

 

어떤 이들은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다"(마7:7, 눅11:9, 요15:7)를 근거로 무엇이든지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하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걸 믿는 것이 '긍정의 신학', '순수한 믿음'이라한다. 그러면 세속적 욕망도 믿고 구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지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 종교는 개인의 욕망을 이루는 도구에 불과할 것이다.

 

성경에는 구하기 전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요 15:7)이라는 전제조건이 있다. 즉, 무엇이든지 내 욕망대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뜻에 맞는 정의롭고 선하고 자비롭고 공평한 것을 구하라는 말씀이다. 잘못된 것을 구하면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쉽다. 다윗도 그의 잘못된 욕망으로 밧세바를 간절히 원함으로 얻었지만, 그것은 그를 욕망의 수렁으로 빠트리고 말았고, 그 결과 무거운 댓가를 치르고 말았다. 이기적 욕망을 바라고 기도하면 이루어져도 욕망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교훈일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전 10:24)

 

기도란 내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달라고 떼쓰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하나님의 섭리를 알아가는 하나님과의 소통 과정이리라!

 

율법(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지키려하지 말고, 율법의 정신을 지켜야한다. 모세로부터 온 율법은 우리를 정죄, 고소하고 결국 사망을 선고한다. 그러나 예수로부터 온 율법의 정신인 사랑은 우리를 차별 없이 하나 되게 하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영생의 길이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니라." (요 15:12)

 

이제까지 남에게 듣고 믿어온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기욕망 주도적인 '목적이 이끄는 삶'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이 이끄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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