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 말씀하시려고 여태 뜸을 드리셨군요! 민초1 님!

by 계명을 posted Sep 16, 2016 Replies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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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1 님 씀:

 

믿음으로(은혜로) 구원 얻는 자는

“그리스도의 법”,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롬 8:1)안에서 산다.

------------------------------------------------ 

(우선 8:1절 이 아니라 8:2 절입니다.)

 

그래도 님은 법이 필요하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님은 분명 네째 방 구원론 자임을 자인 하셨습니다.

우선 이방의 선배로써 환영합니다.

 

단지 님은 자기가 어느 방인지 구별을 못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님은 아래의 세가지를 제시하시면서 이 세가지는 틀린 답이라고 말 했습니다. 

 

①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에 율법대로 행하는 믿음만이 구원을 얻는다

②구원은 믿음으로 얻었지만 구원받은 자는 마땅히 율법대로 지켜 행해야 한다

③예수님께서 모든 율법을 다 이루시고 폐하셨으므로 이제는 율법은 필요가 없고 입으로만 예수 믿는다고 하면 오케이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기로는 이곳에서 줄기차게 웨치는 fallbaram 님, 김균 님, 김주영 님, 김원일 님 그 외 분들은

다 3번의 소유자들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줄기 차게 구약의 율법은 죽은 율법이라고 졸업했다고 하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적어도 그 분들은 로 8:2절의 성령의 법 혹은 그리스도의 법이 구약의 율법으로 이해하는 분들로 알고 있습니다.

 

님은 아래와 같이 말하면서,

 

"새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법 아래 산다고 하는 것이다.

이때 지난번에 살던 엄격했던 옛 남편과의 관계는 없는 삶이다."

 

옛 남편 = 율법

새 남편 = 그리스도의 법

 

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럴가요?

 

민초1 님,

 

옛 남편이 그리스도의 법 입니다.

즉 율법이 그리스도의 법이란 말입니다.

 

이 문제는 너무 쉽기 때문에 제가 몇 예만 드리겠습니다.

 

첮째: 집나간 탕자

       

       집을 나간 탕자가 무서운 아버지를 오해해서 집을 나갔다가 인생의 죽을 맛을 본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무서웠던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하는 아버지 인 줄 깨닫게 됩니다.

       아버지가 변한 것이 아니라 아들이 변했습니다.

       이렇게 변하게 한 것을 "성령의 법"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을 따르는 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두째: 부자 청년

 

       네가 계명을 어떻게 읽었느냐?

       예수님께서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라"

       계명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잘못 읽었을 뿐이다 라고 말하면서

       영을 따르는 자가 되기를 주문합니다.

       청년은 사랑의 율법을 오해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세째: 님이 예로 든 며느리

 

       이 집 주인 아들과 결혼해서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며느리가 되고 보니 그 집안의 150가지의 법이 갑자기 다 변했겠습니까?

       그 법들은 그대로 다 있습니다.

       단지 의무로 하던 일들을 이제는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150가지를 지킬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솔선 수범하지 않으면 아래 것들이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어려웠던 법들이 이제는 쉬워졌을 뿐입니다.

       며느리가 변한 것 입니다.

       법은 그대로 있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말하고 있나?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로 8:4)

 

님이 말한 2절에서 계속 되는 말씀입니다.

내가 죽었다가 살아나서 변하면,

영을 좇아 행하게 되면,

율법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게 해준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인 새남편이 바로 그 같은 옛 율법이란 말입니다.

 

내가 아프기 전에는 현미 먹는 것이 죽기 보다 싫었습니다.

그러나 건강을 잃고 죽을 뻔 하였다가, 

다시 살아나니 현미가 그렇게 맛있고 좋을 수 없습니다.

"현미 법"은 그대로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의 생각이 변하고 나의 혀가 변한 것 뿐입니다.

"현미 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건강법칙, 생명의 법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변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어 봐야 깨닫게 됩니다.

 

내가 계명으로 인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영의 사람이 되어서,

율법을 사랑의 율법으로

율법을 생명의 율법으로

 

무서운 율법이 아니라

주야로 묵상하는 아름다운 시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 맛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다운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가 그랬던 것 처럼...

다메섹을 거쳐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죽어 봐야 삽니다.

 

...

 

참 그리스도인은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양심에 따라 행동 할 뿐입니다.

그래야 참다운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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