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장이 보시길 바라며

by 눈꽃 posted Dec 21, 2016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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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심장부에만 계셨던 분이 심장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분이 참 묘합니다.

왕실장님의 법지식과 법으로 직조한 치밀함을 적용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는 사실에 많이 속상하시겠습니다. 시간과 세월과 나이가 법과 지식도 무색하게 만드는 때가 오는가 봅니다.

 

여기저기서 불쑥 불쑥 튀어나온 우연한 사건들이 세월에 주저주저 가려져 버렸으나 때가 되니 하늘이 이를 한 데 엮어서 커다란 필연으로 환생시켜 줍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역사의 전환점을 맞이한 이 시점 한 가운데에 역시 왕실장님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서 계시더군요.

 

저는 이번 대한민국 모욕·농락 사건을 접하면서 왕실장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그때 얻은 법지식으로 그 오랜 세월동안 그토록 집요하게 못된 짓만 하고 살아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릴 때 얼마나 깊은 상처와 열등감을 가지고 성장했기에 저토록 권력에 집착하고 앞잡이 노릇을 솔선하며 저토록 치밀하고 악독하게 살 수 있을까? 고민, 고민하다가 제가 생각한 나름의 답을 감히 말씀드려 보고자 합니다.

 

남자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가 생각해본 남자는 어떤 여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남자의 인생길은 달라진다고 봅니다. 어떤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고, 어떤 여자 친구를 만나고, 어떤 애인을 만나고, 어떤 여자와 결혼을 하느냐에 따라 상처의 깊이와 사랑의 넓이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해보건대, 왕실장님은 세속적인 조건을 다 갖춘 자로서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들은 많이 만났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왕실장님이 그때그때 선택한 여자들의 눈빛과 미소가 삶 자체를 풍요롭게 해주진 못했나 봅니다. 어질고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 사랑이 충만하고 가슴이 벅찬 삶을 산 사람은 그토록 오랜 세월 그렇게 악독하고 치밀하게 못된 짓만 골라 할 수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외로움과 상처가 잘못 발효되어 상처받지 않겠다는 의지와 집착이 온몸에 곰팡이로 발전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이 왔다

                그것은 나를 죽였으며, 그 대신 사랑하는 이로 내 존재를 채웠다

                 ----- 잘라루딘 루미 <사랑이 왔다> * 류시화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158쪽

 

 

왕실장님께선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마다 등장하는 주연급 배우로서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두고 어떤 가면을 쓰고 어떤 배역에 더 충실해야했는지 궁금합니다. 햄릿의 고민이자 우리의 깊고 오래된 질문인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에 대한 왕실장님의 에드립은 어떠할지 무척 궁금합니다. 제게 왕실장님의 대본을 수정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고집스럽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마침표를 찍어야’할 불가피한 시점이라고 적어두겠습니다.

 

왕실장님 위치에서 보시면 지금의 저는 한강의 먼지 같은 존재이지만, 제가 이십대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 노력의 향기가 세상을 진동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내 지식이 1인용이 되게 하지는 않으리라.” 그런데, 왕실장님께서는 명석한 두뇌를 타고나셨고 젊어서는 한때 꽤 괜찮게 생기셨던 분이 어쩌다 그 악취가 진동하는 음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권력자들의 길잡이 노릇을 하셨는지 참 가슴이 아픕니다.

 

꼬리가 길면 잡히고, 하늘이 내린 복도 다 누리면 화를 입는다고 하듯이 박근혜가 왕실장님을 권력의 심장부로 끌어들인 것이 역사적 아이러니입니다. “무엇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216쪽) 박정희 때 검찰총장이던 신직수의 발탁으로 권력의 심장부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 ‘초심자의 행운’ 이었다면, 박근혜 때 비선실세인 최순실의 입김으로 권력의 심장부에 발을 담그게 된 것은 ‘가혹한 시험’이라 할 만한 하지 않습니까?

 

혹시 ‘하늘의 그물’이라고 들어보셨는지요. 도덕경에 나오는 天網恢恢 疏而不失(천망회회 소이불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 성글지만 어느 것 하나 빠져나가게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줄 압니다. 법망은 그 누구보다 잘 피하시는 분이라 아직 법의 그물에는 걸려들지 않으신 유명한 분이라 들었습니다. 하늘이 만든 화는 피할 수 있으나 자기가 만든 화는 피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참 자존심이 많이 상하시겠습니다.

 

중앙정보부 국장,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국회의원, 대통령비서실장 모두 화려한 경력이라 할 만한 것들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남들은 왕실장님처럼 그렇게 지독하게 못된 짓을 하지 않고도 그냥 할 수 있었던 경력들을 왕실장님께서는 왜 그렇게 힘들게 그런 것들을 쟁취하셨나요?

 

역사책에 한 줄도 기록되지 않을 그런 직책 이름 하나를 얻기 위해 음침하고 악취 나는 길을 골라골라 걸어온 삶에서 배어있는 냄새를 맡아보신 적은 있으신지요? 우리는 가끔 길을 가다가 문득 어디선가 날아오는 꽃내음을 맡기도 하고, 스치는 사람의 향기도 맡곤 하는데 왕실장님께서는 몸에 배어버린 악취에 깜짝깜짝 놀라신 적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못된 사람들은 우리의 기대와 달리 죄의 절대적 크기에 비례하여 죄의식을 느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의 태도를 봐도 그렇고 그 여자를 위해 목에 핏대를 세우고 변호해주는 남정네들도 그렇고. 역사에는 간간이 법복을 입은 망나니들이 법지식이라는 칼을 들고 침을 튀겨가며 칼춤을 추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인생을 한바탕 꿈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왕실장님께서는 이제 그 호접몽의 경계, ‘나와 나비’의 만남이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경계의 언저리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사시는지 참 궁금합니다.

 

저는 왕실장님의 인터뷰 동영상을 찾아보면서 왕실장님의 목소리가 맑다는 데서 희망을 찾았습니다. 명석한 두뇌와 철두철미함을 알아본 잘못된 인연의 밧줄로 엉뚱한 역사의 길을 밟아왔지만 그만큼 자기 절제가 절대경지 수준이라는 점은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름의 도(道)의 경지에 이른 분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일에 미치는 에너지나 어떤 것을 깨닫는 에너지나 그 에너지의 크기에는 큰 차이가 없을 거라 봅니다. 에너지의 흐름이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의 문제이지, 어쨌든 왕실장님은 어떤 형태이든 한 길을 흐트러짐 없이 살아온 자로서, 나름 도의 경지에 이른 ‘도인(道人)’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이제 인생의 종착점을 그리 멀지 않게 남겨 놓은 입장에서 도(道)의 정상에 머물고 있는 그 에너지를 인간의 가장 깊숙한 내면에 남아있는 마지막 한 가닥의 착한 본심으로 환원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멀리서 바라 본 강과 바다가 한결같이 고요하지만 그 속에는 끝없는 변화의 물결이 일렁이듯 왕실장님의 한결같은 겉모습 속에는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양심이 철렁철렁 물결치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우리 몸속의 법정이 심장이자 곧 마음이며 더 나아가 양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심장에 병이 있다는 건, 결국 자기 응징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고 믿고 싶습니다.

 

‘너무 오래 쓰고 있어서 진짜 얼굴이 되어 버린 가면(류시화 제3시집, <직박구리의 죽음> 중에서)’을 이제 벗어던져도 될 만큼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신지요? 엄중한 역사적 현실 앞에 ‘명분 있는 전향’을 하시는 것도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서 뜻있는 역사적 결단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도는 오랜 시간 누적되고 축척된 기(氣) 또는 에너지의 응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적은 사랑과 선행으로써만 가능하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위대한 진리 앞에 이제 무릎 꿇고 기도해도 되는, 저절로 기도가 되는 연세가 아니신지요.

진리를 위한 기도와 고백은 아드님의 기적을 위함과 동시에 음모를 위해 복선의 눈으로 살아온 그 지친 세월에 대한 위로가 될 걸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세모는 좀더 깊은 고민을 요구하는 제5의 계절인지도 모릅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358쪽)촛불이 제5의 계절을 맞이할 즈음, 왕실장님의 위대한 결단이 거울이 되어주시어 촛불로 밝힌 정의의 빛이 온 나라로 반사되어 나갈 수 있게 해주시길 간절히, 간곡히 호소합니다.

 

대한민국이 처한 이 역사의 순간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고 간결하다고 생각합니다. 왕실장의 고백이면 됩니다. 우리 국민이 궁금해 하는 여러 물음에 대한 답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1945년 8월 15일 이후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역사적 획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양심고백을 한다고 해서 추해지는 것도 아니고, 비난을 받는다고 해서 다리가 부러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약간의 부끄러움이 수반은 되겠지만, 부끄러움이라는 건 양심을 둘러싸고 있는 막이라 생각합니다. 부끄러움의 고비, 고비를 넘어가면서 그 막을 하나씩 터트리면서 우리는 철이 들고 성숙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고백이라는 위대한 사건으로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진정한 ‘최후의 증인’이 되어 주시길 간곡히,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그렇게 하여 이 역사적 현장에 동참하고 있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신성하고 숭고한 경험을 하게 해주시길 간절히, 간곡히 부탁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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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         – 류시화 -

 

나는 이제 말하련다, 보리여

내가 태어난 나라를 나는 잘 모른다

마타리풀 지천에 피어 있는데

붉은 흙 많은 가파른 땅에서 태어나

개개비 새들과 함께 이곳에서 말을 배우고

시인이 되었으나

나 자신이 이중언어자라고 느꼈다

침묵을 계속 건너가면 더욱 바닥 모를 깊이에 이른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드물게 나타나는 개개비 새들과 함께

내가 태어난 나라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겠네

마타리풀 지천에 흔들리는데

아무래도 그래야겠네

 

 

             

              

 

 

 

 

* 보리 (菩提) 1.불교 최고의 이상인 불타 정각의 지혜

 

                     * 펌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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