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가을인가!

by fallbaram posted Oct 21, 2016 Replies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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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엊그제 가을인가 싶었는데

벌써 아침저녁으로 다가오는 초겨울의 기운이

초로 인생의 어깨를 내리 누르고 또 잡아 끈다.

 

도망 다니던 시절을 포함해서

밥을 먹기 위해 들어가 살았던 애급의 나그네 생활까지

합치면

아마도 맨발로 걸었던 야곱의 인생이 그가 애급의 왕 바로 앞에서

토해낸 첫마디 단말마처럼 "험한" 인생 그 자체였다고 생각된다.

 

경남 진해여자 고등학교 사택에서 태어나서

통영으로 옮겨와 유년시절을 보내고

경북 경산에서 중고등학교의 춘소년시절을 보내면서

지금은 없어져 버린 교정이지만 그 좁은 공간에서 넉넉한 추억들의

사진들을 수도 없이 찍었었다.

 

팔자에도 없는 예비고사 합격으로

무조건 불려갔던 서울의 불암동 (삼육동) 기슭에선

지독한 가난속에서도 기죽지 않던 지금의 내가 만들어 지고

졸업이 안될 정도로 성적이 바닥이어도 챙피하지도 않고 기죽지도 않던

사나이로 몸과 마음이 굵어져 갔다.

 

모두들 다 제짝을 찾아 떠나버린 텅빈 운동장 (노총각의 세상)에

홀로 싱글로 남아

 

소공동 빌딩숲에서

꼼장어 포장마차속에서

젊음을 태우는 것이 마냥 그런 것인 줄만 알고

줄담배 태우던 날들이 있었다.

 

감히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날 좋아한다고 하는 느낌 만으로 덜커덕 한 여자의 팔장을 끼고

너도 나도 걸었던 "속았구나"의 짧은 행진을 마친후에

그 치마폭에 쌓여서 미국을 왔다.

 

첫입국 공항이 하와이였지.

이국의 향기가 진동하는 라이를 걸어주던 아가씨들.

그리고 나성 공항에 내려 오렌지 카운티로 들어 오던 날.

난생 처음 그리도 향기로운 오렌지 꽃 향내속에서

잠시 헤어졌던 처갓집 식구들을 만나고...

 

뉴욕으로

다시 나성으로

이젠 텍사스로

또 미시간으로

 

그리곤 오하이오와 일리노이스로 왔다 갔다 하는

내 혼자만의 고달프고 바쁜 여정이 생겨났다.

 

그러다가 드디어 어제는

두달이 지나면 받게 되는 메디케어에 대한

자세한 브리핑을 듣게 된다. (아니 벌써)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지나온 여정들을 단숨에 주마등 같이 추억하며 지나가 보았는데

가을 하늘 아래 노랗게 물이 든 이파리 사이에 탐스럽게 익어 있는

그런 과일은 내 몸에 한개도 보이지 않고

 

유년 시절이나

춘소년 시절이나

지금이나

 

보고싶은 것에 눈 돌아가고

하고싶은 것에 마음 눌리고

듣고싶은 것만 골라서 듣고

먹고싶은 것에 침 흘리고

 

그렇고 그런 인생이다.

 

딱 한가지 희망을 가지게 된다.

법대로 살았다고 보이는 니고데모나

남자를 여러번 갈아치웠던 우물가의 그 여인이나

가리지 않고 만나 주는 그 분 때문이다.

 

순전하고 정직하고 악에서 떠난 욥이나

날때 부터 남의 발목 잡고

속이고 달아나던 야곱이나

인간의 행동이나 존재를 셈하지 않고

동일한 방법으로 끌고 가시는 그분의

공산주의를 보는 까닭이다.

 

다만 십자가의 좌편과 우편처럼

그분앞에 줄을 서야할 줄이 둘 있다면

나는 서슴없이 야곱이 잡은 줄의 한참 뒤에서 숨어 있고 싶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까지.

 

야고비형님 뒤에서 이렇게 기도 할 것이다.

날 변화 시켜 달라고 하는 사치스런 기도는
이제 올리지도 않겠읍니다
다만 날 이대로 받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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